49화
코를 찌르는 악취.
주변을 둘러보던 자일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독히도 자신의 코를 괴롭히던 피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절그럭. 절그럭.
쇠사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옥인가…?”
“고문실 겸 수용실입니다. 아직 세뇌가 덜 된 아이들을 방치해두는 곳이지요. 저도 한 때는 여기 있었습니다.”
좁은 복도.
줄지어 늘어선 방.
쇠창살 사이로 아직 앳된 아이들이 엿보였다. 그들의 손과 발에는 구속구로 보이는 것이 채워져 있었고,
바닥에는 늘러 붙은 핏자국과 오물 등이 흩뿌려져 있었다.
대체로 말라 비틀어져 뼈만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의 눈빛에는 자일조차 움찔할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가 벼려져 있었다.
“이 아이들이 모두 살수로 키워지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끔찍하군.”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저벅. 저벅.
마지막 수용실을 지나쳐 저택 안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녹슨 쇳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혹시… 그대가 자일 지그하르트인가…?”
흠칫 놀란 자일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권능을 이용해 외형까지 바꾼 상태였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 기력이 쇠하여 축 늘어져 있었지만, 몸 곳곳에 새겨진 흉터와 자리 잡은 근육의 형태로 보았을 때 평범한 인물은 아닌 듯 했다.
얼마나 악을 지른 것인지 목이 완전히 쉬어버린 탓에 숨을 쉴 때마다 노인의 입에서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자일이 쇠창살에 다가가려고 하자, 로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막아섰다.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괜찮아.”
자일은 로만을 지나쳐 쇠창살 앞에 섰다.
“기이하구나. 정녕 인간이 맞는 것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노인의 눈동자는 온통 흰자 뿐 이었다.
‘…맹인(盲人)인가.’
“그대는 누구신데 제 이름을 아시는 것입니까?”
노인의 텅 빈 눈동자가 자일에게로 향했다. 그의 세상은 온통 어둠 속이었지만 때때로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하게 타오르는 자색 불꽃……. 그 밑에 깔려있는 거대한 심연. 이것도 결국 운명인가….”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는 노인.
허나 그 행색이나 풍기는 기운이나 여간 심상치 않음을 자일은 느끼고 있었다.
“나는 라다무스라고 하네. 세간에서는 서쪽 숲의 눈먼 현자라고 부르고 있지.”
자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서쪽 숲의 눈먼 현자……. 라다무스…?’
자일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마신의 저주를 받아 시력을 잃었지만, 그 대가로 미래의 편린을 보는 권능을 얻은 점성술사.
훗날, 천악천 일행에게 큰 도움을 주는 조력자였다.
안 그래도 그와 접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워낙 행적이 불분명한 탓에 수색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꿀꺽, 자일이 침을 삼켰다.
“…불꽃이 동요하는 것을 보니 그대는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듯 하군.”
“현자께서는 제가 이곳에 올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보잘 것 없는 재주네. 원치 않음에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 허나 정작 내 한치 앞길도 볼 줄 모르는데 이런 놈을 어찌 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하하….”
무언가 이상했다.
자일이 알기로 그는 상당한 경지에 이른 권사(拳士)였다.
마신의 저주를 받기 전, 그를 부르던 이명은 투귀(鬪鬼). 문자 그대로 싸움에 미쳐 전국을 떠돌던 사내였다.
비록 두 눈을 잃고 난 뒤에는 은거한 뒤 점성술에 매진하고 있었지만, 그가 지닌 무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잡혀 계신 겁니까?”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맹인(盲人)이네. 허나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가 있지. 나를 이곳에 끌고 온 이들은 그 능력을 필요로 했던 거 같네.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나 늙은 몸뚱아리 하나 간수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네만…….”
“지켜야 될 사람이 있었군요.”
“그렇네. 귀여운 제자 녀석이 하나있지. 총명하고 바른 아이일세, 나와는 다르게…. 지금쯤 스승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테지. 그 아이는 아무 죄가 없는데 말이야.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돌아가야 하네. 이곳에서 나를 꺼내줄 수 있겠는가? 내 이 일은 결코, 잊지 않겠네. 내 이름을 걸고서 맹세하지.”
자일이 봤을 때 라다무스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서있는 애매한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이라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인물. 그러나 그만큼 은원(恩怨) 관계에도 확실한 인물이었다.
자일이 말했다.
“저희는 지금부터 하르만 백작가를 점령할 것입니다.”
노인이 대답했다.
“나를 꺼내주기만 한다면 그 어떠한 것도 묻지 않고 전적으로 그대에게 협력하겠네. 설령 그대가 마신숭배자라 하여도….”
능글맞은 노인네.
처음 언급했던 내용을 보면 이미 내 정체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좋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물론이네.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걸세.”
“알겠습니다.”
우드득.
오로지 완력만으로 쇠창살을 구부린 자일이 노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양팔과 양다리를 감싸고 있는 구속구.
일반적인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였다.
“마력(魔力)을 차단하는 성질을 지닌 마류석(魔流石)으로 만든 구속구일세. 평범한 구속구에 비해 그 강도가 어마어마하니 푸는 것은 쉽지…….”
“조심하십시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일이 구속구를 부숴버렸다.
노인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정녕 인간이 맞는가?”
“맞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노인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깨를 돌릴 때마다 으드득, 으드득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류석으로 인해 차단된 마나가 개방된 것이다.
‘7서클…? 아니 그 이상일지도….’
지금 보니 약해지기는커녕 숲에 쳐 박혀 수련이라도 했는지 전성기 때보다 더욱 강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자, 가세.”
문 앞에 선 로만이 말했다.
“이 앞부터는 푸른달의 직속 살수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나무로 된 작은 문.
일행은 긴장을 끌어올리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주방이었다. 비밀통로는 주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주방에 있던 요리사들이 일제히 자일 일행을 바라봤다.
“…….”
느닷없는 괴한의 침입.
머리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그들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훈련된 살수답게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인원은 총 6명.
예리한 칼날이 사방에서 쇄도했다.
후웅!
자일은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달려든 살수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파직.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살점이 튀었다.
“우선 1명.”
눈앞에서 동료의 머리통이 박살 냈음에도 불구하고 살수들의 얼굴의 동요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기라도 하듯 거리를 벌리며 침착한 자세를 유지했다.
허나 잠자코 기다려줄 자일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흑색 창으로 변했다. 자일이 힘껏 창을 던지자, 살수 한 명의 가슴팍에 박혔다.
―즉사였다.
상대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살수 한 명이 곧장 자리를 이탈하려 했다.
“……32호. 너는 곧장 이곳을 나가서 침입자가 왔음을 알려라.”
“알겠….”
그 순간, 뒤편에서 튀어나온 로만의 검날이 휘몰아치며 두 살수의 머리통을 베었다.
“…다.”
툭.
데구르르르.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나머지 살수들마저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오랜만에 몸을 쓰니 제법 상쾌하구만.”
전신에 피칠갑을 한 라다무스가 흡족한 얼굴로 팔을 돌리고 있었다.
물론, 그의 몸에 묻은 피는 살수들의 것이었다.
그의 발밑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자일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쪽입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가주의 침실이었다.
병력이 분산됐다고는 하나 저택 내부에 있는 살수들을 전부 처리하는 것은 체력 낭비였다.
전쟁이란, 결국 적장을 잡으면 끝나는 일.
저택을 점거하기 위해서는 가주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저택의 내부는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커다랬다. 저택의 구조를 알고 있는 로만이 없었다면 아마 상당히 애를 먹었을 것이다.
저택에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사방에서 살수들이 튀어나왔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살수집단 답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습을 해오며 다양한 형태의 암기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허나 안타깝게도 전력의 격차가 너무 컸다.
어느덧 그들이 지나온 복도에는 살수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시체들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세 합을 넘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사귀재생(邪鬼再生).”
그런 와중에도 자일은 틈틈이 시체들을 마물로 만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성이 없는 마물이니 만큼 큰 전력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로만처럼 강력한 무인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었기에 마기 소모가 적다는 점도 한몫했다.
라다무스는 시체를 되살리는 자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요상한 힘을 부리는 구려.”
자일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영감님. 정말 맹인이 맞으십니까?”
“하하하!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은 내 전문이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저택에는 남아있는 살수보다 자일이 만들어낸 사귀(邪鬼)가 많아졌다.
“…많기도 하군.”
“명색이 암살명가 아닙니까.”
“오늘부로 시체명가가 되겠구만. 하하하!”
흡사 미로와 같은 복도를 끊임없이 걸었다.
암살명가라는 명성답게 복도 자체가 침입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함정 투성이었지만, 대부분의 함정은 로만이 해제했다.
다만 그 또한 완벽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혹은 시간이 지나며 추가를 한 것인지 몇몇 함정이 발동이 되었는데 라다무스가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모조리 파훼했다.
마지막 복도의 끝에 도달한 자일 일행이 문을 열었다. 나선형으로 이뤄진 긴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숨죽인 채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주변을 경계해보았지만 딱히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국의 밤을 책임진다는 작자가 겁은 더럽게 많군.”
“그동안 저지른 악행들을 생각하면 하늘 위에라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하긴……. 나 말고도 노리는 놈들이 한 둘이 아니겠지. 듣기로는 가주가 쇠약한 상태라는데 사실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있을 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자일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로만.”
“예?”
“이제 너의 주인은 하르만 백작이 아닌 나다. 그러니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높이지 마라.”
“……죄송합니다.”
이런저런 애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계단의 끝에 도착했다.
이 앞에 있는 문을 넘어서면 드디어 가주실이다.
차기 가주로 선정된 기레스 하르만이 7서클이라고 했으니, 가주는 그 이상의 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가문의 수장인 만큼 그에 버금가는 호위들 또한 대동하고 있을 터였다.
‘긴장해야겠군.’
마음의 준비를 끝낸 자일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곤 이내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여기 맞아?”
로만 또한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습니다만….”
가주의 침실이라고 하기에는 물건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휑해도 너무 휑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고 들어왔건만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주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 수준의 무인이라면 이미 우리의 기척을 느꼈을 터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침대 뿐 이었다.
자일은 위화감을 느꼈다.
‘가주의 침실에 호위가 없다고…?’
자일이 침대로 향했다.
저벅. 저벅.
멈춰선 그가 이불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표정을 구겼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였다.
하르만 백작가를 상징하는 붉은 머리칼만이 이 시체가 누구인지를 보증하고 있었다.
“가주가 죽었다.”
놀람도 잠시.
문 너머로 수십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