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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59화 (59/180)

59화

“네, 네, 네가 어, 어, 어떻게 여기에…….”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로만이 물었다.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놈은 누구지?”

안타깝게도 그저 한낱 도구에 불과했던 로만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기억력마저 참으로 솔직한 놈이었다.

로만이 혐오스러운 얼굴로 나지막이 뱉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군.”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기레스가 말했다.

“데이지.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죽은 게 아니었나…?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데이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 하르만 백작가의 차기 수장, 아니 이제 곧 가주가 되니 가주라고 해도 상관이 없지. 내가 하르만 백작이다. 데이지! 하르만 백작가의 가주, 기레스 하르만이라고! 날 알아보겠지! 어서 이곳에서 나를 꺼내라! 명령이다, 데이지!”

여전히 주제 파악 못하고 설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내가 더 화가 났다.

철컹.

로만이 감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가 그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퍽!

그의 고개가 휙 꺾이며, 이빨 두 세 개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그의 턱주가리를 붙잡고 짓이기듯 내뱉었다.

“아직도 네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안 가나 보지, 기레스 하르만?”

“아……. 어디서 본 적이 있나 했더니 네놈 데이지의 혈육이냐? 하하. 이 쓰레기 같은 년 놈들이 한데 모여서 아주 지랄을 떠는 구나. 지금 나를 여기에 가둬둔다 한들 뭐가 바뀔 것 같은가? 이 천한 것들아! 하르만 백작가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평생 밑바닥에서 뒹굴었을 것들이 내게 이딴 짓을 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지금 당장 날 여기서 풀어 주거라. 그러면 내가 친히 자비를 베풀어 네놈들을 다시 하르만 백작가의 고용하도록 하겠다.”

로만의 얼굴이 흉신악살(凶神惡殺)처럼 일그러졌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끓어오르는 살의를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 듯 했다.

그래. 어떻게 얻은 복수의 기회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면 되겠는가.

참고 또 참아내서.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을 선물해주어야지.

그것을 알기에 로만도 저렇게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로만이 품안에서 수 십 개에 달하는 물약들을 꺼내 바닥에 흩뿌렸다.

“이것들이 보이는가? 다 네놈을 위해 친히 준비한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한가?”

그러더니 이내 그의 입을 억지로 벌린 뒤 손을 집어넣었다.

푹!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선홍색의 무엇인가가 로만의 손에 딸려져 나왔다.

“끄에으으에에에엑!!!”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과 같은 비명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로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있던 물약 하나를 꺼내 그의 입안에 탈탈 털어 넣었다.

꿀꺽. 꿀꺽.

강제로 물약을 삼킨 기레스의 표정에서 점차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로만이 손에 들고 있던 혀를 바닥으로 던졌다.

“자. 다시 말해봐라. 누가 자비를 베푼다고?”

혀가 잘려나간 그가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히 비러머그 자시기 바드시 즈겨버힌다.”

턱을 잡고 있는 로만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으득. 으드득.

“끄이이에에엑!!!”

턱뼈가 으스러진 기레스가 발광하며 몸을 움직였지만, 양팔과 양다리는 꿈적도 하지 않은 채 쇠사슬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잔혹한 광경에 자일이 힐끔 데이지를 바라보았지만, 살수로서의 경험 때문인지, 혹은 과거의 기억이 어느 정도 떠오른 것인지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로만이 다시 물약을 꺼내 그의 입안에 통째로 털어 넣었다.

그러자 부서진 턱뼈가 천천히 붙기 시작했다. 성직자들의 신성력이 담긴 상급 물약이라 그런지 그 효능은 굉장했다.

“지금부터 네놈이 죄를 고할 때마다 신체를 하나씩 도려낼 것이다. 지금까지 네놈이 살면서 저질렀던 모든 잘못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고해라. 만약 그중에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거나 혹은 거짓을 고한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도려낼 것이며, 오늘 안에 끝나지 않는다면 내일이 될 것이고, 내일 안에 끝나지 않는다면 그 다음 날이 될 것이다. 네놈이 모든 죄를 고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네 놈 스스로 모든 죄를 털어놓는 것이다.”

“…….”

“우선은 발가락부터 시작하겠다.”

푹!

로만의 단검이 그의 엄지발가락을 쑤셨다. 기레스의 발목에 채워져 있는 족쇄가 거칠게 움직였다.

“으아아아악!!”

“없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손을 뻗어 발톱을 뽑았다. 훤히 드러난 살갗 사이로 피가 새어나왔다.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던 기레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연달아 찾아오는 격통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로만은 바닥에 두었던 포션들 중 노란색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딴 뒤 그의 머리 위로 부었다.

시큼한 냄새가 방안에 진동했다.

잠시 후.

축 늘어져 있던 기레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로만이 그에게 말했다.

“좋은 꿈 꾸셨나?”

다시 상황 파악을 한 기레스가 악귀와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니노메 시므장으 자그자그 씨버 머거즈 테다.”

그 모습을 본 로만이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흠…. 생각해보니 혀가 없으면 고해를 듣지 못하겠군.”

바닥에 던져 있던 혀를 주운 로만이 그의 입을 벌린 뒤 절단면에 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아까 사용했던 붉은 포션을 다시 입안으로 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잘렸던 혀가 다시 붙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의 표본이었다.

“다시 시작하지.”

혀가 다시 재생된 기레스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제국의 밤을 지배하는 하르만 백작가의 가주 기레스 하르만이다. 내가 고작 이까짓 고문 따위에 굴복할 것 같은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고문해왔다고 생각하지? 10명? 100명? 아니, 그 이상이다! 그런 내게 있어 이 까짓 고문 따위 어린 애들 장난과 다름이 없지.”

“풋.”

“…뭐가 웃기지?”

“고작 100명…? 저택에 틀어박혀 주색잡기에 빠져 있던 놈이 잘도 지껄이는구나. 제국의 밤을 지배하는 하르만 백작가의 가주? 그 밤을 지배하게 만든 조직이 바로 푸른달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던 것이냐? 내가 바로 네놈이 만든 괴물이다. 기레스. 푸른달의 최고 살수로 살아온 나는 과연 얼만큼 많은 이들을 고문했을 것 같은가?”

그 말을 들은 기레스의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이깟 허세 따위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너희들에게 저지른 죄가 있다면 내 진심으로 사과하마. 무엇을 원하지? 돈? 명예? 여자? 원하는 게 무엇이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총 동원해서 들어주겠다. 진심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여전하군.”

서걱!

로만의 단검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툭.

기레스의 오른쪽 귀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찌나 깔끔하게 잘렸는지 당사자인 기레스조차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자신의 귀가 짤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 내, 내 귀이이이!!!!!”

기레스가 바닥에 떨어진 귀를 줍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구속구는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로만이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그를 보며 짓이기듯 내뱉었다.

“어차피 쓸모도 없는 귀 한 쪽 사라진다고 해도 별반 다를 거 없지 않나? 두 개가 있든, 한 개가 있든 말귀 못 알아먹는 건 매한가지 일 텐데 말이야.”

“…대체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이러는 것이냐! 오갈 데 없는 고아 새끼들 거둬주고, 입혀주고, 먹여주고, 백작가의 사용인으로 고용까지 해주었는데 그것이 그리 큰 죄란 말이냐!”

로만이 다시 한 번 나서려고 하는 순간, 데이지가 그를 멈춰 세웠다.

“오빠.”

“데이지……? 무슨 일이니?”

“오빠만 괜찮다면 제가 한 번 해봐도 될까요?”

갑작스런 데이지의 말에 로만의 눈이 커졌다.

“…네가? 괜찮겠어?”

“네.”

데이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로만은 데이지에게 단검을 건네준 뒤 뒤쪽으로 빠졌다.

데이지가 기레스 하르만의 앞으로 다가갔다. 제자리에 선 채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데이지…. 여기서 이렇게 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정말 보고 싶었다. 나의 사랑. 기억하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데이지. 너도 나를 많이 사랑했잖아. 그렇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데이지.

“…….”

기레스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데이지……. 미안하다……. 내가 다 미안해……. 그때 너를 그런 식으로 보냈으면 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데이지가 단검을 들어 그의 오른쪽 눈을 찔렀다.

푹!

“……끄으에이이에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정난 짐승처럼 발광을 해대는 기레스 하르만.

데이지는 바닥에 놓아져 있던 물약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방금 자신이 찌른 기레스의 눈동자에다 부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쥔 물약은 회복약이 아닌, 통각을 극대화시키는 산성 계열의 독약이었다.

치이이익!

살이 녹는 소리와 함께 고기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레스의 오공에서 붉은 핏물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완전히 나간 것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해석할 수 없는 언어를 지껄여댔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로만이 급하게 다가가 회복 물약을 그의 입안에 털어 넣었다.

데이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되묻는 데이지를 보며 나는 그녀 또한 푸른달의 살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맞아. 잘했어. 데이지.”

“감사합니다.”

기레스 하르만은 로만이 상급 물약 두 개를 쏟아 부은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이미 그의 한쪽 눈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눈알이 꿰뚫린 것으로도 모자라 산성을 지닌 독약까지 부어졌으니 사실상 영구적 손상이라 봐야 했다.

저런 걸 치료하려면 최상위 성직자 정도는 데려와야 가능할 것이다.

기레스 하르만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초점 없이 멍한 눈동자.

정신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로만이 그의 뺨을 툭툭 쳤다.

반응이 없다.

“…….”

안 되지. 안 돼. 어딜 도망가려고. 이제 시작인데.

벌써 망가지면 안 된다.

나는 품에 있던 녹색 약초를 로만에게 건네주었다.

이 약초의 이름은 각성초.

향을 맡은 이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을 지닌 약재였다.

로만이 약초를 그의 코에 가져다 대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한쪽 눈을 잃은 탓에 거리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지 자꾸 허공에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내 눈……. 내 눈이 어떻게 된 거야…….”

그런 기레스를 바라보며 데이지가 말했다.

“다음에는 반대쪽 눈을 찌를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착실히 자신의 죄에 대해서 고백해주세요.”

방금 전 고통이 떠올랐는지 하나 남은 기레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제발. 제발 살려줘. 내가 잘못했다. 내가 다 잘못했어. 뭐든 다 말할게. 제발 그만해. 제발.”

“기레스 하르만. 저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당신이 제게 죄를 저질렀고, 그렇기에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죠. 그러니 앞으로는 당신께서 하나하나 직접 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게 어떤 짓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말할 게. 전부 말할 테니까 내 죄를 전부 고백하면 그때는 나를 이곳에서 내보내주는 거지?”

데이지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그때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는 겁니다.”

기레스의 얼굴의 다시금 희망의 빛이 맴돌았다.

“…저, 정말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매일 같이 찾아올게요.”

그리고는 그대로 방안을 나섰다. 나와 로만 또한 그녀를 뒤따라갔다.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데이지에게 물었다.

“데이지. 기레스가 자신의 죄를 모두 고하면 정말 풀어 줄 생각인가?”

“아니요.”

“그럼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한 거지?”

“재미있을 거 같았거든요.”

가장 큰 절망은 희망이란 이름에서 비롯된다고 하던가.

기레스 하르만은 앞으로 자신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을 믿고서 꿋꿋이 버티고 또 버틸 것이다.

언젠가 이곳을 나갈 날만을 그리며.

그것이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 달콤한 꿈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매일. 매일.

희망의 끈을 붙잡고 살아가겠지.

니체는 말했다.

희망은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라고.

그것이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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