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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61화 (61/180)

61화

몸을 살펴보았지만 마나가 조금 늘어난 것과 상처들이 사라진 것 외에는 딱히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엘릭서와 영약들 덕분에 정신을 갉아먹던 마기가 어느 정도는 해소된 것 같았다.

허나 진짜 변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정령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왼쪽 손등에 있는 눈꽃모양의 정령이 실시간으로 내 손등을 얼리고 있었지만 살짝 시리다는 느낌만 들 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또한 영약의 영향이겠지.’

아무래도 화기(火氣)와 냉기(冷氣)를 억지로 흡수하는 과정에서 속성과 관련된 저항력과 친화력이 오른 듯 했다.

비록 갓난아이와 다름없는 최하급 정령들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친화력은 저항력과는 다르게, 쉽게 올릴 수가 없다. 설령 동일한 원천속성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관련된 마법을 다루는 데 능할 뿐이지 그것이 친화력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원소 계열 속성마법을 다루는 대부분의 마법사가 정령을 보지 못한다.

그 예시로 샬럿이 있지 않은가.

장차 본인의 언니를 뛰어넘어 최고의 마법사 중 한 명이 될 그녀조차도 정령을 보지 못한다. 주변에서 유일하게 정령을 보고, 계약한 인물은 실프.

자연의 일부분이라 불리는 하이엘프 정도다. 그 정도 친화력은 지니고 있어야 정령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아마 실프 정도라면 중급 정령, 혹은 그 이상의 정령과도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엘프만큼의 친화력을 지닌 건 아니었지만, 나 또한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상급 이상의 정령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선물이었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원소계열과 관련된 원천 속성을 타고나지 못한 나로서는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한들 뚜렷한 한계가 존재했다.

화 속성 마법을 사용한다 한들 기껏해야 작은 불씨를 피우는 정도.

높게 쳐주어봤자 3서클 정도가 한계인 것이다.

허나 원소 그 자체와 다름없는 정령과 계약한다면 그 이상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손등을 미끄럼틀 삼아 놀고 있는 두 정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기와 냉기 저항력은 얼마나 올랐으려나.’

최하급 정령이 갓난아이와 같은 지능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소통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눈꽃 형태의 정령에 머리 부분으로 추측되는 곳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정령은 내 손길이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신기하게도 정령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원소 개념으로 볼 때 눈꽃 형태의 정령의 본질은 수(水) 속성이었지만 정령을 취급할 때는 수(水) 속성과 빙(氷) 속성을 별개로 분류한다.

따지고 보면 결국 한 핏줄인 건 매한가지나 빙(氷) 속성 계열의 정령은 훨씬 더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사촌지간 쯤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내 손등을 얼려볼 수 있겠니?”

고개를 갸웃하던 얼음 정령이 이내 자그마한 얼음 꽃을 피웠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허공에 핀 얼음 꽃의 형태를 이리저리 바꾸며 꺄르르 웃어댔다.

반대쪽에 있던 불의 정령 또한 승부욕을 불태우며 불씨를 피워댔다.

“음……. 재주가 좋긴 한데, 내가 원하는 건 허공이 아니라 내 손등이야.”

다시 고개를 갸웃거린 얼음 정령이 이내 손등의 손을 대자.

“――!”

순식간에 손등부터 팔 언저리까지 얼어붙었다.

꽃.

얼음으로 이루어진 꽃이었다.

허나 내가 놀란 것은 그 위력이었다.

‘최하급 정령이 손짓 한 번으로 이 정도 위력을 낼 수 있다고…?’

다행히 이 정도로는 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얼음을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속성 저항력이 훨씬 많이 오른 것 같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불의 정령이 반대쪽 손등에서 폴짝 뛰어내려, 얼음 정령이 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하려고 저러지?’

씨익씨익, 콧김을 뿜어내며 다가온 불의 정령이 얼어붙은 내 팔을 향해 거센 불길을 뿜어냈다.

화르르르륵!

강렬한 열기가 얼음과 맞닿으며 수중기가 피어올랐다.

꽁꽁 얼어붙어있던 내 팔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불의 정령은 자신의 가슴팍으로 보이는 곳을 팍팍 치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얼음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얼음의 정령은 그 이름답게 차가운 시선으로 불의 정령을 흘깃 바라본 뒤 이내 고개를 돌려 내 팔위에 올라왔다.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나중에 실프나 요한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어.’

두 정령 다 최하급 정령이라고 하기에는 보여준 능력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원래 정령의 힘이 그렇게 강한 것인지 혹은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내 지식이 너무 얕았다.

나는 허공에 손을 뻗은 뒤 천천히 마기를 일으켰다.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이내 내 의지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변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덕분에 이 정도 마기를 운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사실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마나를 끓어 올렸다. 머리 위에 7개의 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7서클인가. 마기를 마나로 치환할 수 있다면 좋겠군.’

전체적인 마력은 늘었지만 아직 8서클에 도달할 수준에는 못 미쳤다.

어째 육체만 점점 강해지는 것이 마법사라기보다는 정말 마투사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투사라…. 요한에게 들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수많은 전투 덕에 나름대로 경험을 쌓았지만 아직까지 보완할 점 투성이었다.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능력과 힘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확실한 전투법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학부장 맥도웰이 자신의 제자로 들어오라고 했었지. 이제 한 일주일 남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채비를 마친 나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 * *

마왕성 최상부.

휘황찬란한 옥좌 위에 앉아있는 사내의 붉은 눈동자가 발밑을 향했다.

“데아몬.”

“예! 교주!”

마치 자신이 하늘인 것처럼 오만한 얼굴.

그의 이름은 소천마 천악천.

이 세계에서는 용사파티의 짐꾼. 칼 데미안이라고 불리던 인물이었다.

“이 세계에는 초월자라 불리는 존재들이 있다고 하였지.”

“그렇습니다.”

“어디로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지?”

데아몬이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주님께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이 세계에 초월자라 불리는 존재들은 총 7명입니다. 모두가 별에게 선택 받은 이들이지요. 하늘을 볼 때 가장 밝게 빛나는 7개의 별이 초월자들을 상징하는 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족이 길다.”

“…허나 '루나(luna)'의 이름을 하사받은 대마도사 아슈타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초월자들은 현세에 관심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고는 ‘룩스(lux)'의 이름을 하사 받은 창술사 아르스 디에고가 로키 산맥 근처에 은거하고 있다는 정도가 전부입니다만……. 사실 이마저도 확실한 정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소문이란 것이 그렇듯 근거 따위는 없고, 하염없이 부풀려지기 마련이니까요.”

턱을 괸 채 잠시 고민하던 천악천이 말했다.

“초월자라는 존재들은 강한가?”

“……이미 종족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규격 외에 존재들입니다.”

“본좌보다 말인가?”

“…….”

데아몬은 침음에 잠겼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를 모시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는 속된 말로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첨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객관적이고, 솔직한 대답을 원했다.

알고 있다. 눈앞의 사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는 이제 마족이 모시는 신이었다. 마족은 이제 마신 ‘오르바스’가 아닌 살아있는 신, ‘소천마 천악천’을 섬겼다.

천악천이 오르바스의 석상을 부순 이후, 마왕성에는 천마신교(天魔新敎)라는 한자가 적힌 명패와 그를 본떠 만든 석상이 자리 잡았다.

이곳은 천마신교(天魔新敎)의 영역이고, 그들은 천마의 그늘 아래 보호 받는다.

무려 투쟁(鬪爭)의 마신, 바르바토스에게 인정을 받은 인간.

그 강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허나.

장담할 수가 없었다.

초월자라는 작자들은 무인들에게 있어 범접할 수 없는 꿈이자, 공포와도 같다.

그렇기에 천악천의 위상을 알고 있는 데아몬조차도 섣불리 확답할 수가 없었다.

익히 말했다시피 그는 입에 발린 말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데아몬이 난처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자, 천악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솔직하군. 그거면 충분하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 초월자라는 작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면 될 터. 아슈타르라는 인간이 있는 곳이 어디지?”

“인간들의 나라인 카이사르 제국에 위치한 살로몬 아카데미라는 곳입니다. 그녀는 아카데미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카데미? 학관 같은 곳인가?”

“학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카데미란 인재를 양성하는 육성기관입니다. 제국의 수도에 위치한 만큼 명문가의 자제들이나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들만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죠. 사실상 장차 제국의 기둥이 될 인간들을 미리 선별하는 곳이라 보면 됩니다.”

천악천이 흥미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 붉은 머리 계집도 아카데미를 나왔다고 했었지.’

“이곳의 인간들은 그곳에서 마법이라는 것을 배우는 건가?”

“그렇습니다. 좀 더 심도 깊게 마법을 가르치는 마탑이라는 곳이 존재하지만, 아카데미에서도 마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천악천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당황한 데아몬이 다급히 물었다.

“교, 교주님. 어디 가십니까?”

“아카데미.”

“지,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천악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교, 교주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걸음을 멈춘 천악천이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지?”

“그… 교주님의 강함은 제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로몬 아카데미에 들어가시려면 새로운 신분이 필요하실 겁니다.”

“신분이라…. 그렇군.”

언뜻 보기에 천악천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압도적인 자신감에서 기인 된 것일 뿐.

엄밀히 따지면 그는 상당히 냉정하고 계획적인 편에 속했다.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용사 파티를 당장 죽이지 않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조심성이 많은 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렇다 칠 수 있어도, 내공이 어느 정도 돌아온 이후에도 천악천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칼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착실히 연기했다.

마법. 축복. 권능 등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힘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음에도 완전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힘을 비축하며 이 세계를 관찰했다.

“제가 돕겠습니다!”

“부탁하지.”

데아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 그리고…….”

“말하거라.”

“살로몬 아카데미의 제 딸아이가 있습니다. 대단히 송구스러운 부탁이지만… 혹시나 아카데미에 들어가시게 된다면 제 딸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너의 여식(女息)이면, 그 아해 또한 천마신교의 교인이 아니더냐. 교주가 교인을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말 거라.”

데아몬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노파심에 드리는 얘기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교주님이 바르바토스님의 사도라는 사실을 드러내시면 안 됩니다. 현재 제국은 마신숭배자 토벌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라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제 아무리 교주님이라도…….”

천악천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이 몸이 그 정도도 모를 것 같더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맡은 바 임무나 착실히 행하거라.”

“……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악천의 파격적인 행보를 지켜본 데아몬은 어쩐지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국의 한바탕 피바다가 불겠군.’

물론.

그에 대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저 그가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지에 대한 걱정일 뿐.

교주실을 걸어 나가던 천악천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그 놈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군.’

아벨 크로이.

자신의 정체를 가장 먼저 눈치 챈 특이한 인간.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지 돌연 용사 파티 탈퇴를 선언하고, 자신에게 호의까지 베풀었다.

그 외에도 처리해야 될 인물들이 많았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칼 데미안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 몸을 빌려준 대가는 톡톡히 치를 터이니.’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갚는다.

그것이 소천마 천악천이 살아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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