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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62화 (62/180)

62화

아침 일찍 기숙사로 돌아왔다.

벨라 트레이에게 한 소리 들을 각오로 왔었으나 축제 때문인지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입구에서부터 온갖 먹거리들과 노점상들이 깔려 있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축제라는 게 조금 실감이 났다.

마법 곡예단.

온갖 종류의 악기와 음악들.

하늘 위를 수놓은 가지각색의 마법.

웃음이 끊이질 않는 학생들과 주민들.

축제의 첫날이니 만큼 그 열기는 상당했다. 이제야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는 실감이 날 정도였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내 아카데미 생활은 평범이라는 이름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입학시험에 이블이 나타나지를 않나.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지를 않나. 참… 다사다난 했지.’

청춘. 축제. 열정.

그래. 이게 아카데미고.

이게 축제지.

괜시리 나까지 들뜨는 기분이었다.

방으로 들어선 나는 침대 위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프레이가 써놓은 건가?”

나는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자일.

최근 들어 얼굴을 자주 못 보는 것 같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만약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제게 말해주세요. 저희는 친구이지 않습니까. 비록 큰 힘이 되지 못하더라도 짐을 같이 들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저를 의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대의 친구 프레이.

추신. 축제가 한창입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저와 함께 축제를 즐기시지 않겠습니까? 그 요한 교수님께서도 젊을 때 청춘을 즐겨야 한다고….

뒤에는 잘못 쓴 것인지 펜으로 직직 그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내용은 읽을 수 있었다.

“아주 청춘이구나. 청춘이야.”

뒤쪽에서 검은 날개를 달고 있는 인형이 아장아장 걸어왔다.

어디서 난 것인지 그녀의 손에는 노점상에서 팔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인형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가능한 건가?

“그 금발 계집이 네가 없는 동안 얼마나 이 몸을 괴롭혔는지 아느냐? 아주 그냥 매일 같이 ‘자일은 언제 돌아오는 걸까요~’, ‘자일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려댔다.”

민망해진 탓에 말없이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끙끙거리며 내 무릎 위에 올라온 아스모데우스가 몸을 기댔다.

“그래. 죽음을 맞이한 소감이 어떻느냐.”

“……두렵더라.”

“하하하! 그렇지. 두렵지.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야. 원시회귀(元始回歸)라는 권능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지. 이 몸도 처음 죽음을 겪었을 때에는 아주 그냥…….”

열심히 말을 하고 있던 아스모데우스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아주 그냥…?”

“크흠.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 또한 처음 죽음을 겪었을 때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동질감이 들었다.

“……불경한 생각 하지마라. 정욕과 격노의 마신인 이 몸이 그런 감정을 느꼈을 것 같으냐!”

“아무 생각 안 했어. 이런 걸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뭐라고 하는 지 알아?”

“궁금하지 않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해.”

인형의 미간이 일그러졌으나 하찮은 외관으로 인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그래서 수확은 좀 있었느냐? 몸은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르만 저택에 있던 영약을 먹었어. 그 덕분에 정령을 볼 수 있게 됐고.”

아스모데우스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정령이라……. 마기를 지니고 있는 네놈에게 하급 정령들은 두려움을 느낄 터인데……. 흐음.”

“뭐, 다른 이유가 있겠지. 그보다 진짜 수확은 이게 아니야.”

“…레메게톤을 찾은 것이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지는 않아. 허나 찾아볼 가치는 충분해.”

“호오. 꽤 쓸만한 단서를 얻었나 보군. 그래. 언제 갈 것이냐?”

“지금.”

“지금 말이더냐?”

“응.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어? 마침 축제기간이라 다른 사람들도 정신이 없을 테고. 지금이 딱 적기지.”

“…일 리가 있군. 이번엔 이 몸도 함께 가도록 하겠다.”

아스모데우스가 끙끙거리며 내 어깨 위로 올라가려 했으나 아무래도 다리가 짧아서 그런지 상당히 애를 먹는 듯 했다.

잠자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 아스모데우스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지켜만 볼 것이냐?”

나는 군말 없이 그녀를 어깨 위에 올려주었다. 그제야 흡족한 얼굴이 된 아스모데우스.

“위치는?”

“기숙사 바로 옆 숲.”

“……숲? 그런 곳에 레메게톤이 숨겨져 있단 말이냐?”

“나야, 모르지. 어쨌든 그곳에 단서가 있단 건 확실해.”

채비를 마친 나는 기숙사를 나와 숲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 ‘출입금지’라고 적혀있는 푯말이 보였다.

분명 저런 푯말을 세워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이제부터 그걸 알아봐야 했다.

나는 담장을 넘어 숲 안쪽으로 향했다. 아직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금세 사방이 어두워졌다.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단순히 그 이유 하나 뿐이라기에는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솨아아아아!

스산한 바람이 불며, 근처에 있던 풀과 나무들이 춤을 추었다.

어째서인지 나를 환영한다기보다는 이곳에 들어온 것을 비웃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벅. 저벅.

처음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코끝을 어루만졌지만, 지금은 축축하고 음습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숲의 형태가 바뀌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무.

풀.

꽃.

모든 게 점차 바뀌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오던 잡초가 어느새 무릎 위까지 차올랐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끓어 올렸다.

어쩐지 사방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스스슥.

무엇인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갔다.

그저 바람인지, 혹은 짐승이나 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 한복판에 이런 숲이 왜 있는 것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사박. 사박.

이제는 발을 내딛을 때마다 풀잎 소리가 상당히 거슬렸다.

“아무래도 이 숲 전체가 마법적인 공간인 거 같구나.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겨난 듯 하군.”

“…그게 가능해?”

“당연한 것을 묻는 것이냐. 지맥에 마나가 고이면 얼마든지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마나가 아니라 마기여도 마찬가지고. 자연은 그보다 더욱 신비한 법이지. 기본적인 이치도 깨닫지 못해서 어찌 내 사도라 하겠느냐.”

“……열심히 공부할게.”

“배움은 끝이 없는 법이지. 앞으로 더욱 정진하도록.”

“예. 예.”

다행히 아스모데우스가 곁에 있었기에 불안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강대한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찾고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아무런 마력도 느끼지 못했다.

체감상으로 대략 1시간 정도를 걸어온 것 같다.

숲 안쪽으로 향할수록 풀과 나무들이 비현실적으로 커졌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나무는 최소 아파트 5층 높이는 되 보였다. 풀은 어느덧 허리춤까지 올라왔다.

스스슥.

또 다시 수풀을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대략 7~8번 정도 이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무엇인가가 내 주위를 둘러싼 채로 나를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전신강화(全身强化).”

몸 전체를 뒤덮은 자색 빛의 마나가 이내 하나로 합쳐져 팔찌의 형태가 되었다.

눈을 감고.

청각에 집중했다.

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나의 시야 속에 서서히 하나 둘씩 형상이 잡힌다.

스스슥.

그 순간.

지축을 박차고 나아간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진했다.

펑!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포탄처럼 쏘아졌다. 공기의 저항을 뚫고서 풀숲 사이로 힘차게 손을 뻗었다.

“잡았….”

…어린아이?

근데 그 형상이 이상했다.

분명 어린아이의 얼굴이었으나 나무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은…….

.

.

.

나무인간.

그 외에는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내게 붙잡힌 나무인간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린 소년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쳐댔다.

“एतत् गच्छतु विजा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주변에 기척들이 나를 둘러싸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가 소년과 같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나이와 성별이 제각각이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늙은 나무인간이 내게 다가왔다. 손에는 무슨 재료로 만든 것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창 같은 게 쥐어져 있었다.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빤히 노인을 바라봤다.

“그 아이를 풀어주시게나.”

노인은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질문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우리는 이 숲의 주민일세. 나무정령의 후예들인 드렌트라고 하지.”

드렌트? 처음 들어보는 종족이었다.

“어째서 저를 따라온 겁니까?”

노인이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우선 그 아이를 풀어주고 마저 얘기하는 게 어떻겠나. 자네가 계속 그 아이를 붙잡고 있는 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네.”

노인이 나무로 된 손으로 힘을 주자, 주변에 있던 나무인간들도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मुख्य। मारयामः.”

“किं भवन्तः आक्रमणकारिणां प्रति अतिशयेन नम्रतां न कुर्वन्ति ?”

나는 천천히 손의 힘을 풀었다. 내게서 탈출한 아이는 내 정강이를 발로 한 번 찬 뒤 곧장 나무인간들의 틈으로 숨었다.

노인이 창을 내려놓고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 나무인간들이 소리를 질렀다.

내용은 모르겠으나 아마 위험하니 물러서라는 얘기일 것 같았다.

“이제 대답해주시겠습니까?”

“당연한 걸 묻는구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자네가 침입자가 아닌가. 이곳은 우리가 살고 지내는 터전일세.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어떤 괴한이 아무런 허락도 없이 침입한다면 그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 혹시 인간들은 다른가?”

“……맞는 말이군요. 허락도 없이 침입한 건에 대해서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허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분명 자신들을 나무 정령의 후예인 드렌트라고 칭했다.

내가 만든 설정이 아니기에 무슨 종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들의 입으로 정령의 후예라고 했으니 아마 땅 속성의 정령과 관련된 이들 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렇기에 정령의 후예인 만큼 분명 자연의 기운이 느껴져야 했을 터인데…….

“나무 정령의 후예라고 자칭한 분들에게 어째서 마기가 느껴지는 것입니까?”

그 말을 들은 노인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며,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것을 어찌 알아낸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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