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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63화 (63/180)

63화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내가 흑마술사인데.

짙은 기운은 아니었으나 노인과 나무인간들에게 느껴진 것은 확실하게 마기였다.

외형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말한 대로 나무 정령의 후예는 맞는 것 같은데 어째서 마기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타락한 건가…?’

그러나 별로 위협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스모데우스가 곁에 있기도 했고, 마기를 다루는 이들과 싸우는 것은 솔직히 말해 자신 있었다.

…아. 그 괴물 같은 반인반마 검사는 빼고.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대놓고 마기를 그렇게 풀풀 풍기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나는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게 몸의 긴장을 유지했다.

몸은 전보다 더 튼튼해졌지만, 정신 쪽은 아직 임시방편에 불과하기에 솔직한 심정으로는 마기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싶었다.

그때, 노인이 갑자기 마기를 거두었다.

“그대는 아무래도 그 인간들과는 다른 것 같구려.”

아무래도 노인이 무리의 수장인 듯 했다. 그가 마기를 거두자 나를 둘러싼 나무 인간들 전부가 똑같이 행동했다.

허나 나는 아직도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말했다.

애초에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수적으로도 내가 불리하다.

지금 당장은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인간들이요? 혹시 저 말고도 이곳에 온 인간이 있나요?”

없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타이밍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네. 일단 가면서 얘기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마을로 초대하지.”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싸울 생각은 없던 걸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먼저 덤비지 않은 걸 보면 처음부터 간을 보려고 한 것일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경계를 풀 생각은 없다.

대체 아카데미 내부에 왜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에 더불어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나무 인간이라니…….

어느 누가 봐도 굉장히 수상한 상황이 아닌가.

다른 나무 인간들이 앞장을 서고, 나와 노인은 가장 뒤편에서 걸었다. 나뭇가지 같은 형상의 발을 열심히 내딛던 노인이 불현 듯 내게 물었다.

“자네도 혹시 마신 숭배자인가?”

“…….”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곳은 아카데미 내부다.

나 이외에 다른 학생들이 들어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쓸데없는 걸 물었나 보군. 아, 오해하지는 말게. 자네가 우리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우리도 자네와 적대할 마음은 없다네. 최근에 이곳에 들어온 인간들 때문에 다들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일세.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침입한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네. 자네가 좀 이해해주게.”

그래서 나를 쫒아왔던 건가.

“그럴 수 있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고맙네. 역시 자네는 그들과 확연히 다른 것 같구만.”

“대체 그들이 누구입니까.”

“…흐음.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시간이야 많습니다. 천천히 얘기해주시지요.”

나무 노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노인은 천천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드렌트라는 종족은 아카데미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곳에 살던 나무 정령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 정령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본인들의 뿌리는 그것이라고 한다.

아주 먼 과거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은 드렌트들은 아카데미가 세워질 때 설립자이자 최초의 초월자인 살몬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이 땅에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대신 아카데미는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은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 약속은 현재 이사장인 아슈타르 때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숲을 둘러싸고 있던 알 수 없는 마력의 정체가 바로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결계였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최근 들어 그 결계의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외부의 인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인간들은 무엇인가를 찾는 듯 했어. 처음에는 굉장히 호의적이었지. 우리도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는 인간들이라 무척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지. 결계에 이상이 생긴 것 같긴 했지만, 어찌됐건 손님이었으니까.”

드렌트의 족장은 최대한 선의를 베풀었다고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간만에 맞이한 손님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다.

주변 지형을 알려주고, 탐사를 위해 나선 이들이 혹여나 길을 잃을까 싶어 안내자를 붙여주었다.

인간들의 시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자신들의 터전조차 내주었다.

말 그대로 마을의 손님으로서 대접한 것이다.

나무 정령과 인간의 혼혈인만큼 간만에 맞이한 인간 손님에게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그저 호의를 베풀었다.

비록 절반 뿐 이었지만 그들도 자신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동포였으니까.

그렇게 무사히 끝났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터지만 이 세상은 그리 허울 좋은 이야기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몇날 며칠을 머무르며 매일 같이 주변을 탐색하던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열렬한 축하를 보냈지만, 이내 그 위치를 듣고 태도를 바꾸었다.

이 숲 가장 안쪽에 위치한 신전.

그 안에 그들이 찾는 물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드렌트들에게 있어 신성한 곳이었다. 아무리 손님이라고 하지만 외부인은 결코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성역(聖域).

드렌트들의 족장인 노인은 다른 건 다 허락할 수 있어도 그곳만큼은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극구 만류했고, 그들 또한 결국 이해했다는 듯 뜻을 굽혔다.

허나 그 모든 게 연기였음을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본색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돌변한 태도.

처음에 보여주었던 선한 모습들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족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몰래 신전에 침입했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신전을 지키고 있던 드렌트들과 마찰이 있었고, 그들은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드렌트들을 죽였다.

처음부터 이것이 그들의 본 모습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을 믿는 것이 아니었어. 모든 게 전부 내 실책일세…. 나로 인해 애꿎은 젊은이들이 죽었어. 나 같은 건 수장으로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무능한 늙은이 일 뿐이야. 내가… 내가 재앙을 불러들였어.”

냉기(冷氣)와 화기(火氣)를 다루는 마법사.

나무인간인 드렌트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성을 지닌 그들에게 드렌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허나 재앙은 거기서 끝이 난 게 아니었다.

“나무 정령의 후예라는 우리에게 왜 마기가 느껴지냐고 물었지?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마기를 다룰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네. 우리를 구원해준 신이 하필 마신이었을 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드렌트가 어째서 숲 가장 깊숙한 곳에 신전을 만든 것인 줄 아나?”

“…모르겠습니다.”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준 신을 기리기 위함이야. 엄밀히 말하면 그곳은 성역 따위가 아닐세. 우리 일족을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재앙의 근원지이지.”

신전이 세워진 곳은 과거에 엄청난 열기와 한기를 뿜어내는 동굴이었다고 한다.

그 열기가 어찌나 강한지 날이 갈수록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고, 그들의 터전인 숲은 잿더미가 되었다.

한기도 마찬가지였다. 꽃과 나무, 풀 등 모든 것을 집어삼킨 한파는 대지마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형태로 만들었다.

원인도, 이유도 불분명한 현상.

드렌트들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애초에 불과 얼음에 약한 그들이 지니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멸망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드렌트의 수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카데미에 도움을 요청했고, 최초 그들과 계약을 맺었던 설립자 살몬이 직접 이곳에 들어와 그것들을 해결해주었다.

당시 드렌트들의 수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살몬에게 대체 어찌 저 거센 화마와 냉기를 잠재웠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를 그곳에 봉인해두었거든요.

이후로, 드렌트들은 그곳에 신전을 세우고 자신들을 위기에서부터 구해준 살몬과 지금까지도 재앙을 먹어치우고 있는 미지의 존재를 기리며 감사를 표했다.

머지않아 자신들이 기도를 드렸던 미지의 존재가 사실 마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들은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것이 설령 마신이었다 한들, 멸망의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마기를 얻게 된 것이다.

“허나 그 외부인들이 신전을 어지럽힌 탓에 다시 재앙이 시작되고 있네…. 이대로라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 것이야….”

“…….”

그의 얘기를 듣자 확신이 섰다. 살몬이 직접 이곳에 들어왔다면 레메게톤이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들의 재앙을 잠재운 미지의 존재가 마신이라는 것도 정황이 맞는다. 그리고 드렌트들을 학살했다는 인간 마법사.

‘아마 연합의 흑마술사들이겠지.’

그들이 직접 이곳에 왔다면 단서는 다 모인 셈이었다.

저벅. 저벅.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드렌트의 수장이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 염치불구하지만 부탁하나 하겠네.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그를 빤히 바라봤다.

간절한 표정.

허나 그 진의가 의심스러웠다. 인간들을 믿고,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한 그들이 어째서 또 인간에게 부탁을 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어째서 저입니까? 저도 그들과 다름이 없는 인간일 텐데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솔직하게 말하겠네. 우리들로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인간들을 당해낼 수가 없다네. 모순적이게도 결국은 외부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네.”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저를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자네는 우리를 발견한 뒤에도 곧장 공격하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려 했지. 경계는 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먼저 공격하지도 않았네. 우리 쪽 아이도 풀어주었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충분히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네. 그리고…….”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무는 노인.

“크흠. 미안하네.”

“그냥 말씀해주시지요.”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낸다 한들 믿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네. 내가 봐도 뜬구름 잡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아 쉽게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 구려.”

“괜찮습니다.”

“알겠네. 적당히 흘려서 들어주게나. 과거에도 자네와 비슷한 생김새의 인간이 찾아온 적이 있었네.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지닌 인간이었지. 영문 모를 소리를 자주하는 친구였지만 순박하고, 친절했네. 우리 모두 그를 친구로 받아들였지. 그 친구가 떠나기 직전에 했던 얘기가 있었네.”

“그게 무엇입니까?”

“멀지 않은 미래에 재앙이 다시 깨어나게 된다면 자신과 닮은 얼굴을 지닌 인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얘기였네. 검은 머리칼의 자색 눈동자를 지닌 인간. 그 당시에는 그저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가 장난스럽게 내뱉은 말이라 생각했지만 자네를 직접 보고, 얘기를 하다 보니 확신이 들었네.”

“그 인간의 이름이 기억나십니까?”

노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기억을 더듬고 있는 듯 했다.

“음……. 지그… 하르트. 시온 지그하르트….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

깜짝 놀란 내가 다시 되물었다.

“시온 지그하르트요? 확실합니까?”

“그렇다네…. 혹시 아는 인간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복잡했다. 여기서 느닷없이 그 이름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거기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시온 지그하르트는 마치 내가 이곳에 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대체 뭐하는 인간이지…?’

전설 속 영웅. 용살자(龍殺者).

인간의 몸으로 마성을 극복하고 신격을 얻은 인물.

마신 아스모데우스의 첫 번째 사도.

그에 대한 얘기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풀리지 않는 의문만이 점점 커져갔다.

아스모데우스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대답이 들려왔다.

【나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긴 채 걷다보니 어느덧 드렌트의 마을에 도착했다.

“자. 이곳이 우리의 마을일세.”

온통 목재로 이루어진 마을.

마을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어쩐지 익숙한 인간을 발견했다.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식탁에 앉아 다리 한 쪽을 올린 채 정체를 모를 죽 같은 것을 열심히 퍼먹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여성.

한 쪽 뺨에 길게 그어진 흉터.

나무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평범한 인간 여성.

“사감 선생님…?”

허겁지겁 밥을 먹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앙? 네가 여기 웬일이냐?”

기숙사의 사감 선생이자, 입학시험의 총 감독관인 붉은 사자.

벨라 트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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