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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64화 (64/180)

64화

우리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드렌트의 수장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호오. 두 분이 아는 사이신가?”

벨라 트레이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여기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입니다.”

“…그랬군. 이것도 인연인데 두 분이서 얘기 나누시게나.”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된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벌써 밥을 다 먹은 그녀는 시원하게 트름을 내뱉은 뒤 주머니에서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치이익.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피어난 작은 불꽃이 연초에 붙었다.

“…스읍. 후우. 역시 식후땡이 최고지.”

주변에 있던 드렌트들이 그녀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불을 무서워하는 드렌트의 특성 상 담배를 피는 행위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제야 분위기를 눈치 챈 벨라 트레이가 급하게 연초를 끄려하자,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제지했다.

“괜찮네. 지금까지 지켜본 자네는 조금 덜렁거리기는 하나 우리에게 해를 끼칠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네. 그러니 불씨만 조심해주게나. 드렌트들은 불에 민감하거든.”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던 벨라 트레이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리고는 다시 열심히 연초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연기를 쭉 빨아들일 때마다 행복해 보이는 것이 표정에서도 드러났다.

흡연을 끝낸 그녀가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지진 뒤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자일 지그하르트. 네놈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분명 이곳은 출입금지 일텐데. 앞에 있는 푯말 못 봤나?”

“봤습니다.”

벨라 트레이가 으르렁 거리며 소리쳤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여길 들어왔다? 제정신이냐?”

붉은 사자.

용병업계의 전설로 회자되는 그녀의 이명이었다.

‘여기서 그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녀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기억을 되짚어보다 과거 그녀가 처음 기숙사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진상 규명은 반드시 해낼 것이니 그때 다시 한 번 사과를 하도록 하겠다.

진상 규명.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입학시험에 이블이 난입했던 그 사건과 관련된 수색을 위해 따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었다.

“야. 대답 안 하냐? 생각해보니까 너 이번에 보고도 없이 아침 식사 자리에 빠졌더라?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자일 지그하르트?”

그녀의 이마에 튀어나온 힘줄을 보며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이사장남의 허락이 있었습니다.”

“허락? 이사장님이 네가 이곳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셨다고?”

“정확히 말하면 이사장님과 동등한 권한을 이임 받았습니다. 아카데미 내에 위치한 곳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요.”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그 여자…. 아니, 이사장님이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분이라지만 그런 권한을 고작 일개 학생에게 주셨다? 헛소리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가라. 이 일은 내가 따로 보고 할 거니까 내가 나갈 때까지 기숙사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알겠어?”

생각해보니 구두로 권한을 주었을 뿐. 그것을 증명할 어떤 물건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사감님.”

그녀의 전신에서 붉은 오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뭐? 죄…송? 자일 지그하르트. 다시 한 번 말해보도록.”

단순히 오러를 발산한 것만으로도 주변 일대의 공기가 요동쳤다. 근처에 있던 나조차 몸이 저리저릿할 정도였다.

‘…확실히 교수는 다르군.’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만큼 무력하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막대하나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중복합강화(二重複合强化).”

자주빛 마나가 전신을 뒤덮었다. 양팔을 감싸고 있던 자주빛 마나가 뭉치며 이내 굵은 팔찌의 형태가 되었다.

신체를 강화하고 나니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다.

벨라 트레이가 나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쿵!

단순히 발을 내딛은 것 뿐 인데,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몸을 짓눌렀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오늘따라 유독 더 짙게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이 아니었다. 그녀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오러가 머리카락에도 깃든 것이다.

“네가 지금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거냐?”

나는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사장님에게 정당한 권한을 이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사감 선생님께서는 저보고 이곳에서 나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혹시 이사장님의 출입권한보다 사감 선생님의 개인적 재량이 더 우위에 있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벨라 트레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양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을 미루어보았을 때 아마 손찌검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참아내고 있는 듯 했다.

이마와 팔뚝에 선 핏줄과 이제는 형태를 갖춘 오러를 보면 당장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 이 새끼 봐라…? 그래. 네가 이번 신입생들 중에도 꽤나 독특한 놈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허나 그래봤자 병아리들 중에 뛰어난 것이지. 네가 마치 닭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이냐? 고작 신입생에게 이사장의 출입권한을 주었다는 말을 내가 어찌 믿지? 무단으로 이곳에 들어온 네 녀석이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 거라는 것은 어떻게 확신하지?”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 의심스러우시면 이곳에서 나간 직후에 곧장 확인하시면 될 문제 아닙니까? 제가 받은 정당한 권리를 사감님께서 부정하실 권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빠득.

그녀가 쥐고 있던 휴대용 재떨이가 가루가 되어 으스러졌다.

“……권한이라. 그래. 내게 그럴 권한은 없지. 정말 이사장님에게 권한을 이임 받은 게 확실한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입학시험 때 이블을 막아낸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얻어낸 것입니다.”

벨라 트레이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화가 덜 풀린 듯 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군. 하지만.”

그 순간.

후웅!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동시에 내 턱을 향해 뻗어져 오는 그녀의 주먹.

아무런 전조 동작도 없이 뻗어져 나온 주먹에 순간, 당황했으나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턱 아래.’

나는 침착하게 주먹이 향하는 방향을 끝까지 확인하고는 고개를 틀어 피했다.

이 광경을 본 벨라 트레이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호오, 이걸 피해? 그래. 인정. 확실히 이번 신입생들 중에 가장 쓸만하긴 해.”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제가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사장님께 직접 권한을 이임 받았다고…….”

후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어지는 두 번째 일격.

이번에는 발차기였다.

무슨 놈의 공격들이 최소한의 준비 동작도 없이 곧장 튀어나왔다.

가까스로 피하기는 했으나 자칫하면 그대로 갈비뼈가 으스러질 뻔 했다.

우득. 우득.

제대로 불이 붙은 것인지 벨라 트레이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하. 이거 물건이네. 이것도 피한다고?”

당황한 내가 소리쳤다.

“사감님! 아니,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래. 네가 이사장님께 권한을 이임 받은 건 알겠다. 근데 여기는 교수인 나조차도 정확히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이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지. 그러니까 네가 이곳에 있고 싶다면 적어도 본인 목숨 하나는 지킬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겠지? 이건 내 개인적인 판단이고, 네가 이 일에 대해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상관없다. 허나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의 교수로서, 기숙사의 사감으로서 학생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

무슨 개소리를 저리도 뻔뻔하게 하는 거지?

보호, 실력을 운운하고 있어도 본질은 그저 본인이 열 받은 걸 분풀이 하려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벌써부터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 누가 봐도 패죽일 마음이 한가득 이지 않은가.

“사감 선생님! 진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어, 돼. 꼽으면 이사장한테 이르던가. 마음대로 해. 나는 테.스.트.를 해야겠으니까.”

나는 다급히 드렌트 수장을 바라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심지어 입소문을 탄 것인지 주변에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तत्र मानवस्त्री मानवपुरुषश्च युद्धं कुर्वतः इति वदन्ति।.”

“भवन्तः जानन्ति यत् जगति किं सर्वाधिकं हास्यं वर्तते! युद्धस्य तमाशा अस्ति!!”

“सा रक्तकेशिका उन्मत्तकुत्सिता इव ध्वन्यते?”

그 중에는 아까 내가 잡아챘던 꼬마 드렌트도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며 혓바닥을 내밀었다.

“मूर्खः”

언어는 이해할 수 없지만, 행동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똑똑히 전달됐다.

메롱은 만국 공통어인 듯 했다.

몸을 다 푼 것인지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오던 벨라 트레이가 약간 신이 난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감정이 롤러코스터 마냥 휙휙 바뀌는 것이 조울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자일 지그하르트. 구경꾼도 이렇게 많이 생겼는데 계속 그렇게 뺄 건가? 솔직히 말해서 너도 나 한 대 치고 싶을 거 아니냐? 마음껏 쳐라. 이건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테스트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 상관 안하도록 하지. 어때? 괜찮지 않나?”

그래. 어차피 그녀에게 승패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겠지. 그저 지금 이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것이다.

…좋다. 지금의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도 해볼 겸, 경지에 오른 기사와는 어떤 식으로 싸워야 할 것인지 경험도 쌓는 것이다.

‘그때 그 괴물 같은 놈은 솔직히 말해서 권능이 아니었다면 절대 이길 수 없었을 테지.’

반인반마에게 사지가 절단 당했던 그날의 기억은 이제는 내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야! 괜찮냐고. 대답 안 해?”

나는 대답 대신 시동어를 외웠다.

“다중가속(多重加速).”

화아악.

정신이 맑아진다.

평소보다도 더 짙은 자주빛 마나가 양쪽 다리에 깃들었다.

근육이 팽창하며, 혈류가 빠르게 돈다. 다리 주변에 세포가 비명을 지른다.

나를 제외한 주변의 시야가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이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 한 감각.

나에게 말을 하고 있던 벨라 트레이의 입술도 느릿느릿 움직인다.

잠시 숨을 삼킨 나는 그대로 돌진했다.

퍼엉!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파공음이 뒤늦게 울렸다.

내 주먹이 그녀의 주먹에 가로막히고.

정확히 2초가 지난 뒤에.

“방금 한 말씀 지키셔야 합니다.”

약 세 걸음 정도를 뒤로 밀려난 벨라 트레이가 턱에 생긴 상처를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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