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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66화 (66/180)

66화

무기가 사라졌음에도 자일은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틈을 노리고 이어질 일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몸을 튼 뒤 그 회전력을 이용하여 발차기를 날렸고, 동시에 벨라 트레이 또한 발을 뻗었다.

무척 단순하고, 과격하지만 효과적인 전략.

두 다리가 부딪치며, 밀려나간 것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자일 지그하르트 쪽이었다.

각종 영약과 강화 마법을 통해 신체가 강화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사의 근력은 넘어설 수 없었다.

자일은 정강이 쪽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어찌나 단단한지 마치 쇳덩이를 차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도 요한 그 인간을 따라 마투사를 지망하는 것이냐? 차라리 기사가 되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만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면 그 편이 더 좋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기사는 영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까다롭기는.”

말은 그렇게 해도 벨라 트레이는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고양감은 마치 마약과 같았다.

공방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검은 점차 빨라졌다.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퍼붓는 그녀는 한 마리의 맹수처럼 날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일은 어째서 그녀에게 붉은 사자라는 이명이 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좌측 어깨. 우측 어깨. 왼쪽 허벅지. 우측 종아리. 가슴팍.

벌써 다섯 군데가 넘는 곳에 자상(刺傷)이 생겼다. 그녀가 힘 조절을 하고 있었기에 생명에 지장이 갈 만한 깊은 상처는 생기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처는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게 끝은 아닐 테지? 조금 더 힘을 내보거라. 자일 지그하르트!”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일 지그하르트는 현 상황에 대해 굉장히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그러나 전력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그녀 뿐 만이 아니다.

사실상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강화 마법도 기본적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대결의 양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본인이 꽤 많이 성장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흑마술이 아니더라도 아직 충분히 성장할 여지가 있다.

무투술.

창술.

마법의 응용.

더 다양하게 배우고, 흡수하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

그거면 충분했다.

“초가속(超加速).”

지이이이잉!

자일의 전신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짙은 보랏빛 마나가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고, 온몸 곳곳에 맴돌고 있는 피가 맹렬하게 요동친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속도에 맞게 그의 몸도 점차 뜨겁게 달궈진다. 모든 감각들이 극도로 예민해짐을 느낀다.

처음 가속 마법을 사용했던 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주변 사물들이 흘러간다.

오로지 벨라 트레이만이 그의 시간을 따라오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그녀 또한 느리게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똑같은 속도가 되었다.

자일 지그하르트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그녀도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마력응축(魔力凝縮).”

“헝태변환(形態變換).”

그의 손아귀에서 농도 짙은 마나가 압축되어 이내 창의 형상으로 변모한다. 방금 전에 만들었던 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파지직!

마나로 이루어진 보랏빛 창날에서는 흡사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강렬한 기운들이 용솟음친다.

마법을 전혀 모르는 이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 짧은 순간, 벨라 트레이는 그가 전격계열 마법을 사용했다고 착각했다. 그녀의 눈에는 일련의 과정들이 1초도 채 지나지 않고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느려진 세상에서 오직 자일 지그하르트 만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앞발을 내딛은 그가 섬광처럼 창을 뻗는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 창끝이 벨라 트레이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향했다.

푹!

찰나의 순간, 벨라 트레이는 초인적인 반응속도를 발휘해 몸을 틀었으나 완전히 피해낼 수는 없었다.

“…….”

그녀의 오른쪽 어깻죽지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핏물을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두근. 두근.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고, 목덜미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그 짧은 순간.

그의 창은 자신의 인지속도를 뛰어넘었다.

8서클 기사인 자신의 동체시력으로도 쫓을 수 없었단 말이었다.

비록 한 순간이었고, 처음부터 전력을 다 하지 않고 방심을 했다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게 정말 신입생이라고……?’

이제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정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힘을 아끼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본래 사용하던 검과 무투기조차 사용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진심을 다했다가는 결국 어느 한쪽이 크게 다치고 말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본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가볍게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학생의 생명을 위협 할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자일 지그하르트…. 진짜 괴물이군.’

갑자기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냅다 바닥에 던지는 벨라 트레이.

그러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어이가 없군. 하하하하!”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자일 지그하르트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한동안 계속 웃어대던 그녀는 자일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테스트는 끝이다. 인정하지. 본인 목숨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겠어. 아니, 이 정도면 내 등을 맡겨도 되겠군. 대체 어디서 너 같은 괴물이 나타난 건지…….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군.”

뜬금없이 종료된 대련과 쏟아지는 칭찬에 자일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감사를 표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 어깨는 괜찮으십니까?”

“아아. 괜찮다. 이까짓 상처는 침 바르면 금방 낫는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처음부터 테스트를 하고자 한 것은 나다. 그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나였고. 그러니 내게 죄송할 필요 없다. 다만,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에게 대판 얻어터진 다는 것이 쪽팔려서 죽을 것 같구나. 이왕이면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해주었으면 한다. 이 사실을 막심 그놈이 알면 아마 내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놀려댈 것이다.”

“물론입니다.”

“고맙다. 그렇다면 나도 네가 아침 식사를 빠졌던 일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도록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여기서 대련을 멈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불같은 성격상 상처를 입으면 오히려 더 거칠게 덤벼들 거라 예상했는데….

솔직히 말해 초가속을 사용한 직후 보여주었던 회심의 일격을 그녀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면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상대할 수 없었을 테지.’

이왕이면 그녀가 무투기를 사용하는 것도 보고 싶었으나 거기까지 바라는 건 아무대로 욕심인 듯 했다.

【제법 성장했구나. 계약자여.】

‘아직 멀었지.’

때마침 주변에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대련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것인지 드렌트들이 흥분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열광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자일에게 메롱을 했던 꼬마 드렌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꼬마 드렌트는 눈을 빛내며 자일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는 동경이 담겨 있었다.

“कृष्णकेशः मानवः राक्षसीं स्त्रियं ताडयति स्म। मनुष्याः आश्चर्यजनकाः सन्ति।.”

“भयंकरं। भयसन्त्रस्तः। मनुष्याः किमर्थम् एतावन्तः बलवन्तः सन्ति ?”

“अहमपि तथैव बलवान् भवितुम् इच्छामि। कथं बलवान् भवेयम् ?”

드렌트의 수장이 자일에게 다가왔다.

“자네. 정말로 굉장하구만! 저 여인도 굉장히 강한 인간으로 보이는데 자네도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구만 그래.”

“과찬이십니다. 선생님께서 힘 조절을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노인 드렌트가 자일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나무라서 그런지 굉장히 거친 감촉이었다.

“겸손하기까지 하군.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네가 제격 일세…. 부디 우리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비록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만… 자네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네.”

잠시 고민하던 자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면 되는 겁니까?”

“신전을 어지럽히고, 우리 일족을 죽인 극악무도한 인간들을 처치해주면 된다네. 그들만 없어진다면 마신께서도 화를 가라앉히실 테고, 재앙도 금세 사라질 것이야.”

“…혹시 신전에 있는 그 마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드렌트의 수장이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네. 그건 우리도 알지 못한다네. 그저 그분이 마신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일세.”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죠. 길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정말인가! 고맙네. 정말 고맙네! 길은 내가……,”

그때.

자일에게 메롱을 했던 꼬마 드렌트가 노인의 손을 붙잡으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मुख्य। किं सः मानवः अस्माकं साहाय्यं कर्तुं निश्चितवान्?”

“그렇단다. 저분이 우릴 도울 거란다.”

“भवन्तः मनुष्येषु कथं विश्वासं कुर्वन्ति ?”

“모든 인간이 악한 건 아니란다. 네가 태어나지 않은 먼 과거에는 우리에게도 인간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했던 예언 속 인간이 바로 이 분이지. 우리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단다.”

“ततः मार्गं दर्शयिष्यामि.”

“네가? 괜찮겠느냐?”

꼬마 드렌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또렷한 발음.

그 목소리를 들은 자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꼬마. 처음부터 인간의 말을 할 수 있었던 건가…?’

영악한 놈.

보아하니 지금까지 일부러 말을 안 하고 있던 것 같았다. 꼬마가 자일에게로 다가와 손을 뻗었다.

“우리 구면이죠? 저는 우드라고 해요.”

자일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나는 자일 지그하르트다.”

“반가워요. 자일. 제가 당신의 길 안내를 담당하게 됐어요. 잘 부탁해요.”

“그래.”

우드가 이번에는 벨라 트레이에게로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우드라고 해요. 누나도 저희를 도와주시기로 했죠?”

“그래. 꼬마야. 네가 길 안내를 담당하기로 했니?”

“네. 잘 부탁드려요.”

“그래. 잘 부탁한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자일이 그녀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도 이들을 돕기로 하셨어요?”

“그래. 외부의 인간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들었는데 아카데미의 교직원으로서 마냥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애초에 이곳에는 왜 들어오신 건데요?”

“이블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함이다. 너는 이곳에 왜 들어온 것이냐?”

“저도 뭐 좀 찾는 게 있어서요.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것을 끝으로 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각자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갈까요?”

“그러지.”

“가시죠.”

어린 나무인간 우드의 안내를 받아 자일과 벨라 트레이는 숲의 안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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