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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67화 (67/180)

67화

우드는 숲을 안내하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부터 인간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듯 했다.

어쩐지 드렌트의 수장으로 보이는 노인을 제외하면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드렌트는 없어 보였는데, 우드는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 따로 배웠다는 것 같았다.

“형은 언제부터 그렇게 강했어요?”

“인간은 원래 다들 그렇게 강해요?”

“누나는 저번에 보니까 불을 막 만들어내던데 그게 마법이에요?”

“저도 형이랑 누나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처음에 나를 향해 보여주었던 적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단순한 건지, 아니면 순수한 건지. 영악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런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다웠다.

허나 나는 그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만남.

벨라 트레이와의 동행.

이것이 과연 내게 있어 득이 되는 일인지 따져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숲의 안쪽에는 레메게톤이 있을 확률이 높다.

거기에 아마 곧 우리가 조우하게 될 인간들은 내 추측 상 ‘게티아’라고 불리는 연합의 놈들일 게 거의 확실했다. 그들이 아카데미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푸른달에게 의뢰한 정보도 기레스 하르만을 통해 이미 입수했을 테니 이 숲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은 그들 또한 알고 있을 터.

분명 그 단서를 찾기 위해 조직원들을 보냈을 것이다.

허나 벨라 트레이가 곁에 있으면 나는 흑마술을 사용할 수 없다.

그놈들과의 싸움은 안 봐도 뻔한 것이었지만 주력인 흑마술을 쓸 수 없다는 것은 내게 있어 큰 타격이다.

‘하필 여기서 엮이다니 운도 지지리 없군.’

최악의 최악에는 벨라 트레이를 처리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했다.

그녀쯤 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아카데미 내에서도 꽤 난리가 나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애초에 마법사가 아닌 흑마술사다.

수세에 몰리면,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흑마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내가 흑마술사라는 걸 알게 된 벨라 트레이도 내게 덤벼들 게 될 테고, 그러면 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죽여야만 한다.

‘그래도 나름 정이 들었는데……. 근데 그녀 정도의 기사를 사역마로 만들면 꽤 쓸만….’

문득 떠오른 위험한 생각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점점 사고방식이 평범한 인간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우드가 동그란 눈동자를 빛내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형. 왜 갑자기 고개를 저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나쁜 생각이 들었어.”

“나쁜 생각이요? 그게 뭔데요?”

“꼬맹이는 알면 다쳐.”

“치. 저도 알거 다 알거든요.”

그저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숲은 더욱 미로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계속 같은 방향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우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마 드렌트들만 알 수 있는 일종의 표식 같은 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저 멀리서부터 숯 냄새 같은 게 났다.

“이제 거의 다 온 거 같아요.”

우드가 말한 것처럼 미로와 같은 숲을 빠져 나오자 광활한 들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열기가 장난이 아니군.”

한쪽은 불바다.

“이쪽은 전부 꽁꽁 얼었는데요.”

“…추운 건 딱 질색이다.”

한쪽은 얼어붙은 대지.

그 이외에는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광활한 들판의 절반은 온통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턱 막히고 얼굴이 화끈 거렸다.

상대적으로 불꽃에 약한 우드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 아무래도 여기까지 인 것 같아요. 이 앞을 넘어가면 신전이에요.”

나와 벨라 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줘서 고맙다. 어서 돌아 가봐.”

“돌아올 거죠?”

“물론이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말을 끝으로 우드는 다시 미로와 같은 숲으로 돌아갔다.

정확히 절반.

마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라도 그어져 있는 것처럼 들판은 불과 얼음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억제하고 있는 듯 했으나 이 불이 계속 커진다면 머지않아 드렌트들이 사는 마을까지 불바다가 될 것은 안 봐도 뻔했다.

그와 반대로 얼음 쪽이 강해진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보니 괜히 재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게 드렌트가 말한 재앙이라는 것인가 보군.”

“그런가보네요. 신전은 저 안쪽에 있다는 거죠?”

“그런 것 같네.”

“그럼 신전으로 가려면 저 불바다를 뚫고 들어가야 된다는 거네요?”

“그렇지.”

“아니면 저 눈보라를 뚫고 가야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대로 불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벨라 트레이.

나 또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 복용한 ‘화룡의 심장을 짜낸 핏물’로 인해 불과 관련된 저항력이 눈에 띄게 올랐다는 점.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버티지 못하고 탈주했을 것이다.

【기이하군,】

‘뭐가?’

【아니다. 확실해지면 말해주마.】

‘싱겁기는.’

내 어깨에 있던 불꽃의 정령이 신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주변에 있던 불꽃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꿀꺽.

먹방이라도 찍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불꽃을 먹자, 정령의 몸집이 점차 커졌다.

‘이게 진짜 최하급 정령이 맞나…?’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령 덕분에 이 끔찍한 화마(火魔)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벨라 트레이는 태생이 불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견디고 있는 정도였지만 그녀는 표정에 변화도 하나 없었다.

주변에 다른 정령들이 그녀에게 들러붙는 것을 보면 확실히 불에는 강한 듯 했다.

“사감 선생님.”

“왜.”

“혹시 원천 속성이 화(火)속성이신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내 원천속성은 트리플(triple)로 세 개가 전부 화속성이지.”

트리플이 전부 화속성이라니 그런 게 가능한 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가능하다더군. 나도 지금껏 살면서 나 이외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잠깐.”

선두에서 걷던 그녀가 갑자기 멈추었다.

“왜 그러시죠?”

“앞쪽에 사람이 있다.”

이 불구덩이에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드렌트가 말했던 그놈들인가 보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

화르르륵!

공중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졌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든 벨라 트레이가 순식간에 불덩이를 베었다.

저벅. 저벅.

“뭐야? 인간이네?”

“……조지 레프너.”

“오. 나를 알아?”

붉은 눈동자의 사내.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로 인해 나는 단번에 그가 흑마술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악명 높은 현상수배자들이 이곳에 있었군.”

“여기서 내 팬을 만나다니 영광인걸?”

“네놈의 형은 어디 있지?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아니었나?”

“…진짜 팬인가 보네?”

벨라 트레이와 사내의 대화를 통해 그가 현상금 수배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는 사이에요?”

“용병 시절 전장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지. 살인, 강간, 방화 등으로 유명한 현상수배범들이다. 쌍둥이 형제 모두 아주 악질이지. 동생은 불, 형은 얼음 계열의 마법을 다룬다. 이제는…… 흑마술도 다루나 보군. 빌어먹을 이단 놈.”

사내의 전신에서 시커먼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흐.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배웠나 몰라.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말이야.”

벨라 트레이가 쥐고 있는 검에서 붉은 오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일 지그하르트.”

“네.”

“저 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너는 이곳을 빠져 나가 신전으로 향해라. 혹시라도 저 놈의 형과 만나게 되면 내가 올 때까지 되도록 싸우지 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녀와 같이 있으면 흑마술을 사용할 수 없어 고민이었는데 그녀 스스로 이런 제안을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새랴 칼 같이 대답을 한 뒤 곧장 뒤쪽으로 빠져 나왔다.

동생이 저쪽에 있다면 형은 반대편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에는 눈보라인가.”

동토(凍土).

얼어붙은 대지.

흡사 툰드라를 연상케 하는 기후였다.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야말로 재앙(災殃). 그러나 선택지는 이것 뿐 이었다. 이곳을 넘어가야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마 그곳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레메게톤이 잠들어있을 것이다.

나는 얼음 들판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눈보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끈거렸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이번에는 얼음의 정령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름대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나 크기가 너무 작은 탓에 그저 귀여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눈보라는 더욱 거세졌다.

몸이 서서히 얼어붙고 있음을 느낀다.

기분 좋게 춤을 추던 얼음의 정령이 손짓을 하자 눈보라가 조금 잦아들었다.

다시 손짓을 하자, 주변에 있던 눈들이 그녀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공청소기처럼 눈을 빨아들이는 정령으로 인해 추위가 줄어들었다.

볼록해진 배를 팡팡 두드리는 정령. 나는 정령의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고맙다.”

얼음 정령은 기분 좋다는 듯 내 손가락에 몸을 비벼댔다.

추위를 아예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령들 덕분에 활동하는데 있어 생각했던 것만큼 큰 지장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다.

‘몸이 둔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한껏 몸을 부풀린 불꽃의 정령이 어깨 위에 올라타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불을 흡수한 만큼 힘도 세진 것인지 어깨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쓸모가 많은 친구들이었다.

계속해서 걷던 나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이건….’

눈 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아하니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소음(消音).”

소리를 없애는 마법을 발동했다.

지금부터는 언제 적과 조우하게 될지 몰랐다. 하필 눈보라 때문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에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급습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벨라 트레이는 자신이 올 때까지 되도록 싸움을 피하라고 했지만 그녀가 없는 편이 오히려 내게 유리했다.

나는 발자국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한 5분 정도를 걷자, 발자국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끊겼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눈보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발밑에서 송곳 형태의 얼음기둥이 솟아올랐다. 다행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덕에 간신히 몸을 틀어 피했다.

‘1초만 늦었어도 몸이 꿰뚫릴 뻔 했다.’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그걸 피해?”

눈보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푸른 눈동자를 지닌 새하얀 백발의 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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