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날카로운 눈매.
신비로운 느낌의 푸른 눈동자. 새하얀 백발.
호리호리한 체격.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불길한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너 뭐하는 놈이냐?”
나는 대답 대신 마나를 응축하여 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통을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후우웅!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 마력의 창이 맹렬한 기세로 쇄도했다.
그러나 곧장 사내가 만들어낸 얼음의 방벽에 막혀 소멸했다. 찰나의 순간 영창도 외우지 않은 채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은 것이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인 듯 했다.
“이것 봐라? 기사가 아니었네…?”
얼음 계열 마법사.
마법사와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온전한 위력의 마법을 발동시킬 수가 없다.
“복합가속(複合加速).”
위이이이잉!
나는 지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내 오른쪽 손아귀에서 악시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악시온의 창날이 보랏빛 예기를 뿜어냈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 잡은 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사내의 머리통을 향해 창을 내려찍었다.
“빙벽(氷壁).”
사내의 주변에서 얼음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이글루와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한눈에 봐도 단순한 얼음이 아니었다. 거북이 등껍질 같이 생긴 것이 무척 단단해 보였다.
허나 악시온 또한 단순한 창이 아니었다.
파바박!
악시온의 예리한 창날이 얼음으로 이루어진 방호벽을 가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는지 사내는 황급히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마법이 발동되기 직전에 사내의 심장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푹!
이번에는 감촉이 느껴졌다……고 생각이 든 순간.
사내의 모습이 눈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은 짜증나게 생긴 눈사람 뿐 이었다.
‘함정이었나.’
언제 바꿔치기를 했는지, 혹은 처음부터 가짜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쩌저적!
발밑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한기가 느껴졌다.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깊게 파인 눈들이 쉽게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리가 얼어붙었다. 주변 일대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저 뒤편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이한 놈이네. 그냥 창술사라고 하기에는 무투기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 같고. 강화 마법을 사용해서 근접전을 하는 타입인가?”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감각이 없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더 이상 놀아줄 수가 없겠어.”
어느덧 하반신이 전부 얼어붙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한 것인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높게 솟은 얼음 기둥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희가 레프너 형제인가.”
“오. 우리를 알아?”
“잘 알지. 방금 네 동생 놈의 목을 썰고 오는 길이었거든.”
사내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재미없는 농담을 하네.”
“과연 농담일까?”
“…이 개자식이.”
그의 전신에서 흉흉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역시 흑마술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연합 쪽 인물이 맞았다.
“곱게 죽여주려고 했더니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키는 멀대 같이 큰 놈이 죽기 직전까지 어찌나 형을 불러대던지 아주 우애가 두텁더군.”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사내가 나를 향해 마기가 뒤섞인 얼음의 창을 던졌다.
“그 주둥아리 닥치지 못해!”
쩌저적.
하반신을 붙잡고 있던 얼음의 금이 갔다.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불의 정령이 전부 녹여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내의 눈동자가 커졌다.
허나 놀라기에는 일렀다.
포식귀(捕食鬼).
검은 연기에서 피어오른 마물이 얼음의 창을 집어삼켰다. 사내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네놈 흑마술사였냐!”
나는 조소를 머금고서 두 번째 흑마술을 발동했다.
“부패의 사슬.”
촤르르르륵!
사내가 딛고 있는 얼음 기둥에서 검은 사슬이 치솟아 순식간에 그의 몸을 감쌌다.
사내가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사슬은 더욱 사내의 전신을 옥죄였다.
“큭!”
사내가 다급히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무영창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태여 영창을 외우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 사용했던 마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였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들…….”
“로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로만이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얼음 기둥을 올랐다.
탁. 탁. 탁.
서걱!
오러를 머금은 단검이 그의 손목을 베었다. 사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갑작스런 기습으로 인해 사내가 발동하려던 마법이 취소되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내의 가슴팍을 향해 악시온을 던졌다.
후웅!
그대로 가슴팍을 꿰뚫고 지나간 악시온.
그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생각보다 허무한 승리였다.
마법을 발동시킨 당사자가 죽자, 얼음기둥이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진 사내의 시체에게 다가가 사자소생(死者蘇生)을 사용했다.
이번에도 역시 반인반마 검사 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연합의 소속된 놈들은 전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쩐다….”
이대로 눈보라를 뚫고서 신전 안쪽으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벨라 트레이를 도우러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결국 고민 끝에 신전 안쪽으로 향하는 것을 택했다.
방금 일어난 전투를 복기해보았을 때 벨라 트레이라면 내 도움 따위 없어도 충분히 이길 거라 판단했다.
아카데미 교수라는 직함은 개나 소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채비를 끝낸 나는 다시 눈보라를 헤치며 안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조지 레프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앞에 여인을 바라봤다.
“헉…. 헉…. 이 괴물 같은 년….”
“숙녀에게 그런 말은 실례라고 못 배웠냐?”
“어디서 본 것 같아 했더니 이제야 기억이 나는 군. 붉은 사자. 벨라 트레이. 네년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내가 이 아카데미의 선생이기 때문이지.”
“…네년이? 선생? 웃기지도 않는 군.”
그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수두룩했다. 대부분이 검에 베어 생긴 자상이었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머리가 띵했다.
아무래도 상성이 좋지 않았다.
불 마법 하나 만큼은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그였지만, 저 괴물 같은 년에게는 그가 자랑하는 불 마법이 통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 마법을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불 마법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흑마술을 사용했으나 압도적인 신체 능력의 격차로 인해 맞추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나마 운이 좋게 몇 가지 저주를 걸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10분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젠장! 형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벨라 트레이는 여유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로 벌써 지친 건가? 이래서 마법사놈들은 안 된다니까. 조금 더 힘을 내봐. 악명이 자자한 레프너 형제께서 이렇게 쉽게 무너지면 되겠어? 너희 형제가 죽인 인간들만 해도 두 자릿수가 넘어간다지?”
조지 레프너가 이를 바득 갈며 머리를 굴렸다.
‘개 같은 년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군.’
이쯤 되면 그녀가 일부러 자신을 살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벨라 트레이는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길게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자일 지그하르트와의 대련으로 인해 그녀의 피는 들끓는 상태.
마침 목숨을 빼앗아도 전혀 지장이 없는 적이 나타났으니 최대한 이 상황을 즐기고 싶은 까닭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에는 도망을 갈까 생각을 했지만, 공간 마법이라도 익히지 않은 이상 저 괴물 같은 여자를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형이 오기를 기다리다가는 그 전에 내가 먼저 죽을 거야.’
그의 주특기인 화염마법은 사실상 봉인된 상태.
남은 것은.
‘…이것 뿐 이야.’
연합에서 지급해준 정체불명의 물약. 도대체 무엇으로 정제한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것을 복용한 이는 단 시간에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전부.
그 대가가 무엇인지, 그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
지금까지는 찝찝해서 손도 대지 않았지만, 물 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이대로 개죽음을 맞이할 바에는 도박이라도 해 봐야지 않겠는가.
조지 레프너는 품에서 검은 물약을 꺼냈다.
“그건 또 무엇이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입 안 가득 물약을 털어 넣었다.
꿀꺽. 꿀꺽.
바닥이 보일 때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그러나 그가 느끼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무언가 변화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왜 아&*&^런 변$^도@%$&없^%$^&는 거%&&야…?”
응…? 이게 왜 이러지?
말이 제대로#%^%*^&*지가 않았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조지 레프너의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으득. 으드득. 으드드득.
그의 전신이 인간이라면 결코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한다.
그는 그저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 본인의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진득한 살의(殺意)가 저 밑에서부터 끓어오른다. 그의 전신을 뒤덮는 지독한 마기.
“…….”
이변을 감지한 벨라 트레이 또한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녀의 검을 휘감고 솟아오르는 붉은 오러. 주변을 뒤덮은 화마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열기(熱氣)를 머금고 있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단순히 본인의 흥미를 위해 시간을 끌었지만, 지금 저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계속 방치해두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생사를 오가는 전장에서 피 튀기는 싸움을 했던 그간의 경험이 경고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조지 레프너가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악!!!”
조지 레프너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찢어발길 듯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본인이 펼쳐낼 무투기(武鬪技)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화검(火劍).”
화르르륵!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불꽃들이 그녀의 검으로 빨려 들어왔다. 붉은 오러가 춤을 추듯 일렁이며 그녀의 검날에 깃든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러나 조지 레프너는 이미 그녀의 전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쿵! 쿵! 쿵!
이미 인간의 탈을 벗어던진 조지 레프너.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지면이 진동했다.
흉흉한 마기를 띄고 있는 예리한 손톱. 섬뜩하리만큼 길고 날카로운 그것은 오로지 벨라 트레이의 심장을 파내기 위해 움직였다.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
“크예에에에엑!”
―동시에!
“제 1식 화산(火山).”
벨라 트레이의 검이 허공을 그었다.
촤악.
일직선의 선을 따라 불꽃들이 줄지어 피어올랐다.
퍼엉!
짧은 순간.
그들의 작은 세상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정말 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주변이 전부 녹아내렸다.
이윽고.
남아있는 것은.
그녀 뿐 이었다.
모든 게 녹아내린 들판에 홀로 서 있던 벨라 트레이가 얼굴에 묻은 검댕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번에 돌아가면 새로운 검을 구해야겠군.”
그리고는 품에서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