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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73화 (73/180)

73화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우드로 인해 귀가 찢어질 것 같지만 어떻게 무사히 마을로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있던 벨라 트레이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자일 지그하르트. 무사히 돌아왔구나.”

“선생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당연하지. 이 몸이 그런 쓰레기 같은 놈에게 질 것 같으냐!”

“물론, 믿고 있었습니다. 근데 왜 저를 도우러 안 오시고 바로 마을로 오신 겁니까? 그러다가 제가 지기라도 했으면….”

“그럼 그냥 죽는 거지. 어쩌겠냐.”

내가 빤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헤드락을 걸었다.

“농담이다. 인마.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너를 도우러 갔다가 이미 한기가 사라진 것을 보고 네가 잘 처리했다고 판단했다. 네놈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신으로 에이몬 레프너를 상대할 줄이야…….”

“강한 놈들인가요?”

“둘 다 8서클 초입에 다다른 마법사다. 예전에 내가 확인했을 때는 동생 쪽이 100만 골드, 형 쪽에 150만 골드가 걸려있었지. 용병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현상수배범들이다. 특히 아녀자를 겁탈하고, 잔혹하게 죽이는 걸로 악명이 자자했지.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마신숭배가 되었을 줄이야. 뭐, 죽어 마땅한 놈들이니 잘 죽였다.”

…8서클 초입이라.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약하지 않았나?

악명에 비해 실전경험이 적거나 혹은 자신보다 약한 놈들만 상대했을 터다. 그렇지 않으면 그토록 허무하게 죽지 않았겠지.

애초에 내가 흑마술사인걸 모르고 있었다는 걸 감안해도 조심성이 없었다.

처음부터 간을 보지 않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어야 했다.

뭐.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겠지만.

“그나저나 그 재앙들은 대체 어떻게 해결한 거냐? 네가 원래 원소 계열 마법을 다룰 줄 알았던가? 내가 알기로 네 원천속성은 강화 하나 뿐인데. 태어날 때부터 속성 저항력이 높았나?”

뭐라고 둘러댈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대충 얼버무리기로 결정했다.

“아, 예. 뭐. 얼음과 불 속성에 약간이나마 내성을 지니고 있긴 합니다. 재앙은 그 얼음 마법사 놈을 죽이고, 앞에 있는 신전에다 기도를 좀 드리니까 사라지던데요? 아무래도 그놈들이 원인이었던 거 같습니다.”

벨라 트레이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하여간 대단한 자식. 너 내 제자가 될 생각 없냐? 네만 원한다면 내 무투기도 전부 가르쳐주마.”

“무투기를 가르쳐주신다는 제안은 매력적이지만 제가 선생님의 제자가 된다면 맥도웰 학부장님께서 화를 내실 걸요?”

“맥도웰 학부장? 그 아재가 왜? 너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자 제안을 받았습니다.”

벨라 트레이가 질린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검귀 아재도 너한테 눈독을 들였단 말이지. 앞으로 더욱 재밌어 지겠군. 그래서 대답은? 물론, 받아들였겠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일단은 제가 지망하는 쪽이 마법이여서요.”

“야! 그거 꼭 붙잡아야 돼. 내가 진짜 웬만하면 사람을 인정 안 하는데 우리 아카데미 내에서 인정하는 사람이 딱 3명이 있어. 한 명은 그 괴물 같은, 아니 우리 아카데미의 이사장님이고, 다른 한 명은 검귀 그 양반. 그리고 마지막은…….”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무는 벨라 트레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 내가 먼저 물었다.

“요한 교수님이요?”

그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재수 없는 자식. 재수는 없지만 실력은 인정해야지. 우리 아카데미에 날고 긴다 하는 천재들이 전부 모여 있다지만 그 자식은 천재 중의 천재야. 하루 종일 잠만 처자면서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지? 말이 안 돼. 말이. 그 놈 혼자서 S랭크 임무도 단독으로 전부 처리하니까 이사장이 예뻐할 수밖에 없지.”

요한이 천재라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같은 교수인 그녀조차 극찬을 할 정도라니…….

“S 랭크 임무요? 그게 뭐죠?”

“가끔가다 황실이나 아니면 용병길드에게서 우리 아카데미에게 의뢰를 하거든. 대부분 본인들이 해결할 수 없는 아주 극악의 난이도들이야. 황실이야 로열 나이트들이나 궁정마법사들을 파견하면 금방 해치울 수 있겠지만 굳이 본인들의 전력을 쓰려고 하지 않거든.”

“그럼 그 극악의 난이도를 지닌 임무들을 요한 교수님은 단독으로 수행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말이 안 된다니까? 교수급 4~5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수행할 만한 임무를 혼자서 척척 해결한단 말이지. 그러니 교직원 회의에서 잠을 자도, 우리 이사장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는 거 아니겠어?”

이제야 그가 왜 그토록 강한 것인지.

그의 숱한 전투 경험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한 명의 마법사이기 이전에 그는 전투의 프로였다.

“그 정도면 교수님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거 아닌가요? 어째서 요한 교수님이 마법학부장을 맡지 않으신 거죠?”

“나야 모르지. 맥스웰 그 늙은이가 요한 그 자식보다 강한 건지, 아니면 그냥 그놈이 뜻이 없는 건지. 내가 보기에는 후자 같지만 말이야. 그 놈 여기 아카데미 말고도 마탑에서도 엄청 연락 받았을 걸? 그 콧대 높은 마탑주 늙은이들도 요한 그 자식에게는 꼭 자신들의 마탑에 와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이 돌았었으니까.”

…그 요한이? 평소에는 언제나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실감이 가지가 않았다.

알면 알수록 더욱 많은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

양파 같은 인간.

둘이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저 멀리서 드렌트의 수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처음에는 뭔가 기괴하게 느껴졌던 나무인간들도 이제는 별 느낌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살짝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드렌트의 수장이 숨을 헐떡이며 내게 말했다.

“어, 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재앙은 해결하셨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네.”

그가 내 손을 덥석 붙잡으며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줄줄 흘릴 것 같은 기세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은인이겠지만 사실 더 득을 본 건 내 쪽이었다.

덕분에 정령들을 진화시킬 수 있었고, 레메게톤의 사본과 더불어 레비아탄과 계약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감사, 감사, 정말 감사합니다아아!!”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쳤다.

“आपदा गता ! मनुष्यः अस्मान् तारितवान्! अस्माकं मित्रं विपत्तिं पराजितवान्।”

그러자 주변에 있던 드렌트들 또한 들뜬 얼굴로 다 같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몇 명은 감격스러운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किं वस्तुतः अस्ति ?”

“भवता इतः परं भयं न कर्तव्यम्?

잔뜩 달아오른 분위기.

“आम्। अद्यतः वयम् अस्य मानवस्य मित्रत्वेन स्वीकरिष्यामः।!”

“शोभन!”

“अद्यतः उत्सवः अस्ति! अहं उत्सवं उद्घाटयिष्यामि!”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무척 기뻐하고, 또 격앙되어 있다는 것만은 잘 느껴졌다.

갑자기 내 주위로 드렌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나는 무어라 할 것도 없이 공중으로 뛰어 올라갔다.

“हुर्रे ! चिरं जीवतु मानवः !”

“अस्माकं मित्रं जीवतु !”

“हुर्रे !”

모두가 기뻐하며 나를 하늘 위로 던지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헹가래였다. 대체 어디서 이런 문화를 배운 건지.

아…. 시온 지그하르트. 당신입니까…?

무리에 섞여있던 우드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이 우리 마을을 구해주어서 모두가 너무 고맙다고 하네요. 형은 우리 마을의 은인이고, 앞으로 우리 드렌트들은 형을 영원한 친구로 생각할 거라고 해요. 그리고 오늘부터 재앙이 없어진 것을 기념하여 축제를 연다고 하네요! 고마워요, 형! 형 덕분에 마을이 살아났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약 30여 분 정도를 헹가레를 당하고 나서야 나는 바닥을 밟을 수 있었다.

너무나 격한 환대에 토가 쏠릴 지경이었다.

“टोका टोका !”

축제가 시작됐다. 원래는 곧장 아카데미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드렌트들이 격하게 붙잡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즐기고 돌아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아카데미도, 제국도, 드렌트들도 모두가 축제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축제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अहो, गच्छ गच्छ गच्छ गच्छ गच्छ गच्छ गच्छ!”

“गदं कम्पयतु.”

드렌트들의 축제는 신기했다. 다 같이 원을 둘러앉은 채로 한 명씩 가운데로 나가 자기들만의 춤을 췄다. 굳이 비유하자면 강강술래를 하면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신의 춤을 뽐내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나온 것은 우드였다.

그의 춤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저거 윈드밀 아니야?’

양팔로 몸을 지탱한 뒤 하반신을 위쪽으로 들어 올려 팽이처럼 빙빙 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어 이제는 물아일체가 되었다. 그가 춤이고, 춤이 곧 그인 것이다.

주변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진다. 드렌트가 이렇게 흥과 끼가 많은 종족이라는 사실을 지금 처음 깨달았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벨라 트레이가 킥킥거리며 물었다.

“어이, 영웅 나으리. 기분이 어떠신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좋네요.”

“네가 만들어낸 광경이다. 모두가 너로 인해서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야.”

모두가 나로 인해서 이렇게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마음 같아서는 네가 이곳에서 했던 일들을 이사장님께 보고해 보상을 내리고 싶지만 그건 네가 바라지 않겠지?”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면 충분합니다.”

“그래. 그 대신….”

내게 다가온 그녀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한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자식. 부끄러워하기는. 아직 애가 맞긴 하네. 이제 슬슬 가자.”

나와 벨라 트레이가 슬슬 눈치를 보며 빠져나가려고 하자 열심히 춤을 추고 있던 드렌트의 수장이 급하게 뛰어왔다.

“허억. 허억. 이제 가시려는 겁니까?”

“네.”

그러더니 품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이게 뭡니까?”

“세계수의 가지입니다. 저희 드렌트 일족이 1000년 동안 보관하고 있던 물건이지요. 아무래도 저희보다는 우리들의 은인의 손에 있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저희 드렌트 일족은 은인을 잊지 않을 겁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망설임 없이 저희를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드디어 숲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 숲으로 향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있었는데,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생각해보면 숲 안쪽과 바깥쪽의 시간이 미묘하게 어긋나있는 것 같았다.

저벅. 저벅.

갑자기 발을 멈춘 벨라 트레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들릴 때가 있어서 이쯤에서 나는 먼저 가겠다. 내일 아침 식사 때 보도록 하지.”

“네.”

벨라 트레이를 떠나보내고 홀로 기숙사를 향해 걸었다.

아무래도 숲 근처라서 그런지 인적이 드문 외길이었다.

스슥.

수풀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

툭.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쪽지.

수풀 사이로 튀어나온 손이 바닥에 던진 것이었다.

어이가 없는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다가가 쪽지를 주웠다.

쪽지에는 푸른달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평범하게 와서 말하면 될 것을 굳이 굳이 쪽지로, 그것도 눈앞에 던져 놓고 가는 걸 보면 아직 푸른달 시절의 버릇을 못 버린 것 같았다.

그래. 그게 낭만이지.

나는 쪽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

.

.

.

내일 오후에 취임식을 치르려고 한다.

너의 힘이 필요하다. 부디 약조를 지켜주길 바란다.

뢴달 하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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