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다음 날 아침.
기숙사에서 일어난 나는 식사를 마치고 곧장 하르만 저택으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마주친 프레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많지 않아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풀 죽은 얼굴로 날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그녀가 적어두었던 편지가 생각났다.
추신. 축제가 한창입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저와 함께 축제를 즐기시지 않겠습니까? 그 요한 교수님께서도 젊을 때 청춘을 즐겨야 한다고….
‘취임식이 끝나고 돌아오면 얘기라도 좀 해봐야겠군.’
안 그래도 최근 그녀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이제 슬슬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었으나 아카데미 입학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일을 계기로 프레이는 흑마술사들에 대해 처절한 증오와 혐오, 나아가 제국과 이 세계 전체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서서히 흑화하게 된다.
그녀가 흑화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
반드시 그것을 막아야만 했다.
그녀의 재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녀를 아군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적어도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떠올리는 것조차 괴롭다.
처음에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그저 내 목적을 위해 접근한 것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정이 든 것인지 어느새 그녀의 삶 자체를 응원하고 있었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자신의 미래를 위해 충실이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훌륭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충분히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 인물이다.
그걸 알기에 더더욱 그녀가 망가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도착을 알렸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정면에 위치한 하르만 저택을 바라보았다. 대낮에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기분이 색달랐다.
17세기 유럽을 떠올리게 만드는 호화로운 저택은 흡사 작은 성처럼 보였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외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듯 했다.
‘저걸 바로크 양식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말고.’
드넒은 정원. 입구에 세워진 분수대.
이렇게 보니 그때 그 저택과 같은 곳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홀로 전시회에 온 것처럼 감상을 하고 있는데 정문에서 나온 여성이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자일… 지그하르트님?”
“네?”
“가주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나는 그녀를 따라 저택 안쪽으로 들어섰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제법 낮이 익다 했더니 기레스 하르만의 심복으로 활동하던 로즈라는 여성이었다.
데이지의 기억 속에서 그녀를 하수구에 던져 놓았던 그 여자.
뢴달 하르만이 결국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나 보다.
대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찝찝해서 그렇게 하지는 못 했을 것 같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저택 밖으로 쫓아내거나 어떤 수단을 강구했을 터.
어떻게 보면 적의 부하를 걷어 들인 거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뭐, 뢴달도 뢴달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한 걸 테지.
적어도 그놈의 형보다는 똑똑해 보였다.
‘아님 그냥 대인배인가.’
미로와 같은 계단을 지나 복도를 걸었다. 앞에서 걷던 로즈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앞은 막다른 벽이었다.
‘설마 여기서 날 처리할 셈인가?’
라는 생각도 잠시.
그녀가 벽면에 손을 대자, 드르륵 하고 작은 쪽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암살명가다 보니 저택 전체가 비밀 투성이였다. 그녀를 따라 긴 나선형의 계단을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뢴달 하르만이 가주실 의자에 앉아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오셨…. 아니, 왔나. 자일 지그하르트.”
“오랜만이네. 뢴달 하르만 백작.”
그는 아직도 내게 말을 놓는 것이 어려운 듯 했다.
“하르만 백작이라…. 듣기 좋은 말이군.”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지.”
“그런데 취임식을 이렇게 빨리 진행하려는 이유가 있나? 예상보다 더 빠른 것 같군.”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가주가 병상에 들어선지 대략 1년이 다 되었다. 방계의 귀족들과 원로들이 슬슬 가주의 몸 상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작하더군. 하이에나 같은 놈들. 언제든 틈이 생기면 물어뜯을 궁리만 하고 있지.”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복잡한 사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되나?”
“그렇다.”
나는 가주의 침실로 향했다. 로만은 어느새 푸른달의 전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제는 모두가 같은 처지이니 서로 더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다.
침대 앞에 선 나는 뢴달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취임식에 성직자가 오지는 않겠지?”
“물론이다.”
최대한 마기를 숨길 생각이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같은 흑마술사이거나 혹은 성직자라면 미세한 마기를 느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신서의 사본인 ‘아르스 폰티움(Ars Pontium)’을 얻은 덕분에 마기를 다루는 능력이 더욱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마기를 아주 미세한 양까지 섬세하게 컨트롤 할 수 있었다.
미라가 되어버린 전 가주의 시체를 바라보며 나는 마기를 끓어 올렸다.
화르르륵.
내 손에서 피어난 검은 연기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이내 가주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망자(亡者)의 인형극.”
나는 양손을 폈다. 10개의 손가락 끝에 이어진 마기가 실처럼 움직여 가주의 전신에 달라붙었다.
느껴진다.
가주의 몸이 내 의지에 반응하는 것이.
삐그덕. 삐그덕.
고장 난 구체관절 인형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가주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다루는 거다 보니 아직 조작이 미숙했다.
가주는 인형.
나는 인형사.
지금부터는 인형극을 할 차례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뢴달이 눈썹을 찡그린 채 나를 바라봤다.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조금 미숙하지?”
“미숙한 수준이 아니다. 저건 누가 봐도 인간의 몰골이 아니지 않은가! 봐라, 사람 손목이 어떻게 180도 돌아갈 수 있나! 저 다리는 어떻게 오른쪽 왼쪽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날카로운 지적에 기가 죽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흔한 줄 아나. 그러는 지는 처음부터 오러도 쓰고, 마력도 다루고 그랬나?
“……기다려봐.”
대충 10분 정도 조작을 하자 어느 정도 감이 왔다. 허나 더 큰 문제가 따로 있었다.
바로 얼굴.
“야. 근데 이거 누가 봐도 죽은 사람 아니냐? 너무 창백한데? 몸은 죄다 말라 비틀어져 있고.”
뢴달이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이미 죽은 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설마 그에 대한 준비도 하나 없이 저 몰골로 취임식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그의 목소리에서 신뢰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 아닌데? 그럴 리가 없지. 이미 준비는 다 해왔지. 누굴 뭘로 보고.”
그렇다.
사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무지성으로 왔을 뿐이다.
대충 죽은 놈 일으켜서 말 몇 마디만 하면 끝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왔다.
이 새끼. 통찰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혹시 남는 시체가 있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면 하르만 백작가 만큼 시체가 넘쳐나는 귀족 가문도 없을 것이다.
아. 한 군데 빼고.
푸른달의 살수들이 급하게 시체 몇 구를 들고 왔다. 그나마 훼손되지 않고, 상태가 좋은 것들이었다.
이제부터는 디자인을 할 차례였다.
시체들의 살점을 이용해 망자의 얼굴을 새롭게 만들다니.
이제야 내가 진짜 흑마술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원래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지만 유독 지금 적나라하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뢴달은 감독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팔짱을 낀 채 유심히 나를 지켜봤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초조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하긴 취임식에서 가주가 사실 ‘좀비였습니다. 짜잔!’하고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하게 된다면 하르만 백작가는 그날로 제국의 지도에서 지워질 터였다.
나는 시체들을 마기로 뭉쳐 반죽처럼 만들었다.
일반인들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혐오스러운 광경이었지만 평생 암살을 가업으로 삼아온 살수들답게…….
“우웩!”
“우웨에에엑!”
살수들 답게…….
“끄우우에우엑!”
그래. 살수들이여도 이런 광경에는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뒤에서 들려오는 구토소리는 무시한 채 작업에 열중했다.
열과 혼을 담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빚어냈다.
나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후우. 완성이다.”
장인정신을 발휘하긴 했지만, 당사자인 내가 봐도 예상 이상으로 잘 나온 것 같았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뢴달이 감탄을 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그치?”
“전혀 아버님과 닮지 않았어. 이자는 대체 누구냔 말이다!”
“…….”
그 감탄은 칭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순수하게 충격을 받아 나온 것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나는 가주의 본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대충 이렇게 생겼겠거니 하며 나름의 상상을 가미하며 만든 것이다.
“그러냐? 미안하다.”
한숨을 내쉰 뢴달이 로즈에게 명령했다.
“후우. 로즈. 아버님의 초상화를 가져와라.”
“네.”
그녀가 초상화를 건네주었다.
붉은 머리칼의 호쾌한 인상의 사내.
눈매가 사나운 것이 상당히 신경질적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케이. 이제 알았어.”
나는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가주의 얼굴이 완성되었고, 뢴달은 그제야 합격점을 주었다.
허나 그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에는 ‘내가 정말 이런 놈을 믿어도 되는 걸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해한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나를 믿지 않으면 불안한 것은 본인이었다.
취임식이 시작될 동안 나는 조작을 연습했다.
뢴달과의 혹독한 1대1 코치 덕분에 생전 가주의 모습들을 조금씩 재현해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 자연스러운 목소리.
말라비틀어진 미라에서 하르만 백작가의 가주 게놈 하르만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이군.”
“후우.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발…. 실수하지 않기를 빈다.”
“걱정마라.”
모든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1층 홀로 향했다. 벌써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다 명망 높은 귀족들일 것이다.
…대부분 한 번쯤은 하르만 가문에게 암살의뢰를 맡겼었던.
수 백 명이 넘는 가문의 식속들 또한 전부 일렬로 줄지어 서 있었다.
오와 열이 딱딱 들어맞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했다.
저 중에서 그저 일반적인 가사나 집무를 보는 이들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이 푸른달 소속의 살수들이었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한참 떠들고 있던 좌중들이 입을 다물었다.
“……”
이내 고요한 침묵 속에서 취임식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