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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77화 (77/180)

77화

그녀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손을 덜덜 떨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야? 누가 보면 죽은 사람이라도 본 줄 알겠네.”

상황 파악이 덜 된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네, 네, 네가 여긴 어떻게…… 아니 너는 분명… 방금까지 자일 지그하라트라는 사내였는데…….”

“오랜만에 보니 반갑지? 근데 너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은 안 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아주 표정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 하네? 조금 무서워 질라고 그러는데?”

“…….”

“그냥 입을 다물기로 한 거야? 방금까지는 나랑 얘기 잘만 했잖아! 계속해봐.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며~ 정작 지금까지 고블린 한 마리도 못 죽였지만 말이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언제나 내게 마무리를 시켰지. 본인의 손에는 피를 묻히기 싫다는 이유로 말이야. 나에게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서슴없이 시키면서 정작 본인은 이렇게 떳떳하게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건가?”

“그, 그런 게 아니다….”

“그거 말고 또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 사람들한테 네가 방관자였다는 사실을 말해도 전부 아니라고 우길 거지? 알잖아 너도. 용사라고 불리는 그 놈이랑 동료들이 나와 데미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치? 너도 잘 알잖아. 다 보고 있었으니까.”

“……그, 그런 게 아니야.”

“물론, 언제나 보고만 있었지. 귀찮다는 듯, 나는 관심 없다는 듯, 싫증난다는 듯 언제나 방관하고만 있었어. 그리고 나를 보는 표정은 항상 같았지. 경멸과 혐오. 그리고 약간의 동정. 너도 똑같아. 테레사. 너나 걔네나 하나도 다를 거 없어. 그 사실을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안 그래? 내가 너를 증오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너희들에게 나와 데미안은 같은 동료가 아닌 가축 그 이하가 아닌가?”

그녀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자책감과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

“그래. 데미안을 괴롭힌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건 인정하지. 나 또한 너희들과 똑같은 쓰레기였어. 너희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데미안에게 풀었지. 너희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나는 다르고, 나는 우월하다는 것을 데미안에게 보여주려 했었다. 짐꾼인 데미안이 가장 만만했거든.”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어. 모두, 모두 그렇게 행동했으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하지 못하는 살생을 너에게 강요한 것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내가 이기적이었다. 죄를 짊어지고 싶지 않는 마음에 너를 이용했다. 미안하다. 또한 네게 당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 아무런 제지도 않지 못하고 방관만 한 것도 인정한다. 다시 한 번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그렇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솔직히 말하면 사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죽여 버려서 입을 막거나,

권력이든 뭐든 어떤 식으로든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누를 수 있었을 것인데 그녀는 사과를 택했다.

뭐 살생을 할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 나를 죽이는 것은 못하더라도, 본인의 뒷배를 이용하여 나를 압박하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용사 파티에서 탈주한 보조 마법사보다 마왕을 토벌한 황실 기사단장의 말을 믿어줄 것이 뻔하니까.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과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처음부터 악인(惡人)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었지만 딱히 내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적은 없었다.

내가 진짜 증오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은 테레사가 아니란 얘기였다.

적어도 그녀는 나를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해주었다. 최소한 같은 인격체로서는 존중해주었단 얘기다.

비록 그러한 괴롭힘들을 방관하고 지나쳤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나름 고민 상담 비슷한 것도 해주긴 했었지.’

그 당시에는 나에게 말을 걸어준 유일한 인물이었다.

정확히는 ‘나’가 아닌 ‘아벨 크로이’이지만. 마기를 사용한 영향일까? 그게 아니라면 육체의 결속력으로 인해 내 자아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 들어 ‘나’와 ‘아벨 크로이’ 사이의 경계가 점점 더 허술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 솔직하게 말해줘. 마왕을 토벌했다는 얘기 진짜가 확실해?”

“…….”

나는 다시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발휘해 자일 지그하르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로서도 본래의 징그러운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고, 솔직히 말해서 거부감이 든다.

방금처럼 ‘나’와 ‘아벨 크로이’이라는 인격체의 혼동이 올 때마다 차라리 자일 지그하르트로서의 나 자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원래 진짜 너의 모습인가?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아벨 크로이가 본래의 모습인가?”

하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묻는 그녀.

“그게 뭐가 중요하지?”

“하긴. 이제 와서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지…. 마왕을 토벌한 게 사실이냐고 물었지? 전 용사 파티였던 너로서는 우리가 절대 마왕을 토벌하지 못했을 거라 확신한다 이 얘긴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불가능해. 절대.”

테레사가 자조적인 웃음을 뱉었다.

“하하. 역시 그런가…. 그래. 그대의 말이 맞다. 우리는 마왕을 토벌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망치듯 빠져 나오는 게 고작이었지.”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무슨 일이라……. 자일 지그하르트. 아니, 아벨 크로이인가.”

“편한대로 불러.”

그녀가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용사 파티를 나간다고 선언한 이후에 많은 이들이 있었다. 끼어있던 거품이 빠졌던 것이지.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힘들, 무위, 모든 걸 통틀어서 실력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온전한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 아니……. 결국은 인정하지 못 했던 거 같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보조 마법사로서의 내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또한 내가 차지하고 있던 역할이 단순히 ‘보조 마법’ 하나에 국한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마족의 생태. 지리. 정보. 그 외에 모든 것들을 아벨 크로이가 알고 있었기에.

잡다한 것들까지 전부 아벨 크로이에게 짬쩌리를 한 그들로서는 그 빈자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

본인들이 그토록 멸시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던.

열등한 인간이 빠진 것만으로 용사 파티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을 오만하고 자존심만 센 그들은 절대 인정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대의 버프가 없는 우리는 평상시에 절반이 되는 실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마왕군 군단장을 상대하던 그 당시의 우리는 더 이상 없었지. 매번, 매순간이 죽음의 기로였다. 군단장이 아닌 사단장 급 마족을 상대하는 데에도 우리는 고전했다. 용사가 지닌 성검과 가호가 없었더라면 아마 마왕성까지 도달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허나 우리는 그 빈자리에 대해 인정하고, 부족한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서로의 잘못들을 까내리기 바빴다.”

나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뱉었다.

“뻔하군.”

“그래. 그동안 우리를 보았던 그대로서는 내가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고 있겠지. 오합지졸이었다. 각자가 가진 장점들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있었어. 동료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실정이었지. 오죽하면 성녀인 리아 또한 전투에 참가했어야 했다. 매번 피투성이가 된 우리를 치료하면서도, 그녀 본인도 전투에 참가했어. 그녀가 전투력이 뛰어난 건 둘째 치고, 그녀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열악했다는 뜻이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관계는 마왕성을 도달하는 기점으로 사실상 파탄이 났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왕만 처치하면 모든 게 해결 될 거라 믿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래서?”

“허나 깨달았다. 우리로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결코 마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우리를 영웅이라고 떠받들지만 정작 우리는 영웅의 자질은커녕 생사를 넘나든 동료들조차 믿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에 불과했지. 그래서 우리는 마왕의 부하들을 납치하고, 그들을 고문하고 협박하여 마왕성의 비밀 통로를 알아냈다.”

“이쯤 되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확실해지는 군. 과연 너희들이 용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테레사 고개를 저었다.

“안다. 우리도 그것이 옳지 않은 방법이었음을. 허나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아니 변명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다.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마왕을 처치한다면 이 세상은 평화로 가득 찰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최후의 최후까지는 우리는 마왕의 부하들을 인질로 삼아 치졸하게 그의 목숨을 탐냈다.”

언뜻 담담하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녀의 얼굴은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비참할 것이다.

자신들이 믿어왔던 정의가 그 누구보다 악에 가까웠음을 부정할 수 없었을 테니.

기사로서의 자신을 믿어왔던 테레사는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테레사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봤다. 이제 그 눈동자는 처량하기까지 했다.

“비겁한 술수를 썼으니 적어도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전황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허나 변수가 생겼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구나.

“칼 데미안인가?”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생각이 많은 듯 했다. 혹시나 내가 그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돼있는 게 아닌지를 판단하고 있겠지.

“…그,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아벨. 그대는 처음부터 그 자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대도 역시….”

“진정해. 진정.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니까.”

“그럼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감이야.”

“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또 내가 그런 류의 감은 기가 막히게 잘 맞고. 그래서 파티를 나왔던 거야. 너희들의 태도도 신물이 났고, 계속 그 놈이랑 같이 다니다가는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았거든.”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단순히 그런 감 하나에 의지해서 파티를 나왔다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날 그대의 태도는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평소에 그대는 한 문장을 내뱉을 때도 여러 번 말을 더듬었지. 허나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정상적으로 대화를 했어. 오히려 거기에 있던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깔끔한 언변을 보여주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테레사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으로 향한다.

“…아벨 크로이. 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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