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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79화 (79/180)

79화

“그리고 마왕 또한 내가 처리하겠다.”

그녀가 여전히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네가 마왕 그리고 칼 데미안을 죽이겠다고……?”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에는 절망과 확신이 깃들어있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해….”

“나라면 가능하다.”

그리고는 이내 마기를 끓어 올렸다. 내 몸에서 피어난 검은 연기가 점차 뚜렷해지더니 이내 악귀와 같은 형상으로 변모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짙은 마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달달달.

그녀가 앉아있는 의지가 격하게 떨렸다. 테레사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이, 인간이 아니야?”

흑마술사라면 치를 떠는 게 제국의 인간들이다. 물론, 기사단장인 테레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나 정신적으로 너무 불안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뿜어낸 마기가 감히 적의를 가질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강대한 탓이었을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이만한 마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사본을 얻고 나서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언제나 냉정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나를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묘환 쾌감이 들었다.

“……대, 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아, 악마?”

나는 마기를 회수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영웅의 일족이다. 아까 내 정체가 무엇이냐 물었지. 내 이름은 자일 지그하르트. 전란의 위기에서 제국을 구한 지그하르트 가문의 후예다.”

그녀는 아직도 떨림이 가시지 않는지 말을 더듬어댔다.

“……거, 거, 거짓말로 나, 나를 또 속이려는 건가? 그, 그, 그만한 마, 마기를 다루는 이가 여, 여, 영웅? 흐, 흑마술사가 여, 영웅이라니….”

“어째서 흑마술사들은 영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아니, 왜 흑마술사들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그, 그건 이단이기 때문이다. 주신 라파엘과 12신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이단이다. 그것이 곧 죄이고, 그것이 곧 악이다.”

방금 그렇게 겁을 집어먹었음에도 자기 할말은 똑바로 하는 그녀를 보니 어이가 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왜 악이라는 것이지? 너희들은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

“……의문을 가지는 것 또한 죄악임으로.”

“하하. 웃기지도 않는 군. 너희들은 그저 라파엘과 12신들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재미있는 애기를 하나 해줄까? 제국을 전란의 위기에서 구하신 나의 선조(先祖) 시온 지그하르트님 또한 마기를 다루는 흑마술사셨다. 모두가 도망치기 바빴을 때, 모두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을 때 유일하게 맞서 싸운 그 분 또한 흑마술사셨다. 이래도 악인가? 제국을 구한 영웅이?”

“……그럴 리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간에서는 악룡의 저주로 인해 지그하르트의 핏줄에는 마기가 공존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처음부터 그분은 흑마술사셨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온 지그하르트가 흑마술사……?”

“그렇다. 믿을 수 없다면 나중에 지그하르트 가문으로 찾아와라. 내가 직접 관련된 증거들을 보여주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국 최고의 인재 양성기관인 살로몬 아카데미의 창시자. 최초의 초월자인 살몬 또한 흑마술사였다. 그것도 인류 최초의 흑마술사였지.”

“…….”

내 말이 듣고 있는 건지 뭔지 모를 얼굴이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분 또한 악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래도 마기를 다루는 흑마술사들은 전부 악인이라고 얘기할 것인가? 시온 지그하르트는 제국을 구했고, 살몬은 인류를 구원한 성자와 다름없다. 그럼에도 제국과 라파엘 교단에서는 그들이 흑마술사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함구했지. 아직도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살 것인가?”

“……믿을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 하여도 흑마술사들은 악이다. 마신숭배자놈들은 전부 죽어 마땅한……."

“테레사. 너는 모르겠지. 스스로의 손에 단 한 번도 피를 묻혀보지 않았으니. 그럼 내가 묻겠다. 어린 자식 앞에서 그들의 부모를 죽인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선인인가?”

“악(惡)이다.”

“그것이 우리다.”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껏 우리가 해 온 게 그런 것이었다는 얘기다. 내가 말한 어린아이는 마족이었다. 그 마족은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지. 그 아이의 부모를 죽인 것은 나였다. 네가 상처를 내고, 마무리를 내가 맡았지. 그럼 용사 일행은 악(惡)인가?”

“……그건.”

“그럼 반대로 죽어가는 아이와 그의 부모를 살린 이가 흑마술사였다면 그는 악(惡)인가?”

“…….”

“인류를 구한 영웅이 흑마술사였다면 그것은 악(惡)인가?”

“…….”

“제국을 구한 영웅이 마신숭배자였다면 그것은 악(惡)인가?”

“…….”

“그럼 이제 제국과 인류를 지킬 사람이 흑마술사라면 그는 악인가?”

“……모르겠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는 지쳐가고 있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선명하고.

부드럽게.

그녀의 뇌리에 박힐 수 있게.

“나는 영웅의 후예다. 마기란 내가 생각하는 적으로부터 나의 동료들과 나의 백성들과 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녀가 멍한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수단…….”

“테레사.”

“…….”

“진짜 영웅이 되지 않겠나?”

“진…짜 영웅……? 내가……?”

“그렇다. 제국과 백성을 속인 가짜가 아닌 정말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진짜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나의 눈동자가 서슬 퍼런 마기를 뿜어냈다. 테레사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기계처럼 중얼거렸다.

“진… 짜… 영… 웅….”

처음 그녀와 얘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아주 미세한 양의 마기를 조절하여 그녀의 머리에 스며들게 했다.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아주 미세한 양을 조금씩, 조금씩 그녀에게 주입하였고 나와의 대화로 정신의 방벽이 약해진 틈을 노려 흑마술을 사용했다.

“그래. 진짜 영웅.”

라미안의 속삭임.

정신계열 흑마술의 일종으로 지속적으로 암시를 걸어 상대를 세뇌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정신 계열 흑마술과의 차이점은 아주 정밀한 마기 운용을 통해 발동되는 형식을 지니고 있어 저주에 걸린 당사자와 성직자들조차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정신 계열 흑마술들에 비해 상대의 정신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정신계열 흑마술들이 조금만 어긋나면 상대를 백치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장 난이도가 높지만 안정적인 흑마술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들어갔군, 여기에 추가로…….’

혹시 모를 보험을 대비해 사자의 맹약을 새겨 넣는다.

조건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발설할 시 심장이 터져 죽는다.]

그때였다.

문이 덜컥 열리며 사딘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누님. 여기 계십니까…?”

얼빠진 표정으로 나와 테레사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凶神惡煞)처럼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이내 괴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이 개자식이 누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아무래도 내가 테레사와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 본인만의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

그가 뽑아든 검에 서늘한 한기를 띤 마나가 깃들었다.

지독한 살기.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인지 정말 나를 죽일 작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와 처음 대련했을 때보다는 확실히 많이 성장한 것 같았지만 테레사도 어쩌지 못하는 내게 소용이 있을 리가.

‘힘 조절은 해야 겠…’

쾅!

나는 놀란 눈으로 테레사를 바라봤다.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검을 뽑아든 그녀가 사딘을 공격한 것이다.

단순히 막아내었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마나를 두른 검으로 사딘의 검을 쳐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검을 휘두른 당사자인 사딘이 되려 바닥에 쳐 박혔다.

부서진 잔해들 사이에서 몸을 일으킨 사딘이 피를 한 웅큼 토했다.

“쿨럭.”

자신이 피를 토했다는 사실보다 사랑하는 누님이 자신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가 테레사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 누님……? 어째서 제게 검을 휘두르신 겁니까…?”

테레사는 냉랭한 얼굴로 대답했다.

“감히 이 누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손님에게 검을 휘두르다니……. 너는 예의란 것을 모르는 것이냐?”

“그, 그렇지만 누님… 저 녀석이 누님에게….”

“듣기 싫다. 나가거라.”

그 말을 들은 사딘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누님.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원래 이런 분이 아니시지 않으셨습니까? 항상 제게 따뜻하게 웃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오해가 있으신 겁니다. 아니, 저놈이! 저 쓰레기 같은 놈이! 분명 누님에게 이상한 짓을 한 게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테레사는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사딘을 바라봤다.

나에게는 꽤나 익숙한 눈빛이었다. 용사 파티를 나가기 직전에 나를 바라보던 테레사의 눈빛이 딱 저랬으니까.

“공작가의 차기 후계자라는 놈이 제국을 구한 영웅의 일족에게 예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모함을 하려들다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구나. 사딘.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지금 이 방을 나가라.”

사딘이 절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내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누나인 테레사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

문을 향해 걸어간 사딘이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진득한 살기와 증오가 뒤섞여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테레사에게 더욱 가까이 붙어 그녀의 어깨에 있던 먼지를 털어주었다.

그것을 본 사딘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표정이 사라졌다.

그저 멍하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나와 테레사를 바라볼 뿐.

그리고는 방을 나갔다.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을 걸어났기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취임식을 끝낸 나는 샬럿과 함께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정문 입구부터 기숙사까지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친구끼리 몰려다니는 이들부터 커플들까지.

청춘이라는 기분이 물씬 풍겼다.

“그래서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던 건데?”

“그냥 볼일이 좀 있어서.”

“그 볼일이 뭐냐고!”

“비밀이야. 너무 알려 하지 마.”

“안 봐도 비디오지. 어디 구석진 곳에 박혀서 또 음습한 계획이나 짰겠지? 그치?”

“아닌데? 완전 헛다리짚었어.”

샬럿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팡팡치다 이내 걸음을 멈추고 앞을 빤히 바라봤다.

표정을 보아하니 굉장히 당황한 듯 했다.

“샬럿? 갑자기 왜…….”

나 또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얼굴만한 사탕을 손에 쥐고 있는 프레이가 나와 샬럿을 번갈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쩐지 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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