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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83화 (83/180)

83화

이상함을 느낀 나는 바닥에 있던 붉은색 카펫을 올렸다.

그곳에는 나무로 된 작은 쪽문이 있었다. 내가 손짓 하자 로만이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로만이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주변의 기척을 차단하는 마법을 걸었다.

사다리를 따라 쭉 내려가자 어두운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작가 하녀의 집 아래에 이러한 통로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끝을 찌르는 정체불명의 악취.

거기에는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와 로만은 긴장을 풀지 않고서 안쪽으로 향했다.

성인 남성 한.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 바닥을 걸을 때마다 진득한 액체가 밟혔다.

그리고 점차 안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백골(白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작게 목소리가 들린다. 발음이 불분명하다.

“우리…의 어…니이시여. 그대를 사랑…는 아버…이시여. 여기 인…들의 피와 살…을 제물로 받…겠습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드리는 기도였다.

목소리는 작고, 발음은 불분명했으나 어떤 간절함은 똑바로 전해져 왔다.

나는 더 안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주변에 동물들의 시체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있었는데 하나 같이 상태가 안 좋았다. 눈알이 없거나, 손과 발 등이 잘려 있고, 혹은 배가 갈라져 있어 그곳에서 내장이 튀어나와 있었다.

몇몇은 이미 부패된 것인지 구더기가 들끓었고, 몇몇은 아직까지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은총과 축복을! 사랑과 은혜를! 아아, 어머니! 나를 구원해주소서!”

이제는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렷하게 보였다.

바닥에 새겨진 숫자 6과 오망성(五芒星).

한 여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앞에 있는 석상을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석상은 여인의 몸과 염소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양쪽 눈에서 붉은색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제단으로 보이는 선반 위에는 인간이 있었다.

시체…?

아니, 살아있는 인간일까?

얼굴은 복면을 쓰고 있어 정확히 볼 수 없었지만 배가 반으로 갈라져 내장이 사방으로 흩뿌려진 상태였다.

허나 죽었다고 보기에는 간헐적으로 꿈틀 거리는 것이 아직까지는 숨이 붙어 있는 듯 했다. 그 주변에도 비슷한 형태의 시체 같은 것이 너부러져 있다.

내장과 살점이 한데 뭉친 것 같은 덩어리가 꿈틀꿈틀 거렸다.

그 혐오스러운 광경에 나는 육성으로 욕을 내뱉었다.

“…미친. 아주 지랄 났군.”

로만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목소리를 들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절대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은 공간에 불청객이 들어왔음에도 그녀의 반응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이 레일라인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주저하지 않고 마기를 끓어 올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내장 덩어리가 같은 것이 점점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대한 인간의 형태가 되었다.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그 외에는 딱히 부를 명칭이 없었다.

굳이 명칭을 정하자면 누더기 골렘 정도? 아니면 시체 골렘?

뭐, 그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어디서 저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겁니다.”

누더기 골렘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솔직히 말해 너무 끔직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기에 몸을 닿는 것조차 싫었다.

나는 가볍게 마력의 창을 만들어낸 뒤 골렘을 향해 던졌다.

푹!

그대로 골렘의 가슴팍을 관통한 창. 누더기 골렘의 가슴팍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순식간에 재생하기 시작하는 가슴팍을 바라보며 레일라가 붉게 충혈 된 눈동자를 빛냈다.

“꺄하하하! 고작 그따위 마법을 믿고 있던 것입니까? 이래서 마법사들이란……. 왜 이 좋은 마기를 쓰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죠. 신을 모시는 것만으로 이만한 힘을 얻을 수 있는데! 본인들이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생각이 없나요? 마법사님?”

그녀가 우리를 보고도 왜 그렇게 평온한 얼굴인지 이제야 알았다.

그것은 자신에 힘에 대한 자신 때문이었다.

‘시체 골렘이라니……. 끔찍하군. 소환계열 흑마술인가.’

나는 별 관심 없는 얼굴로 다시 마력을 끓어 올려 두 개의 창을 만들어냈다.

이 와중에 어이가 없는 것은 로만은 그저 이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고는 하나 주인이 걱정도 되지 않는 것인지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푸하하하! 또 그 마법인가요? 그 정도 마법으로 제가 자랑하는 시체 골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서 살려달라고 빌어보시지요! 그럼 목숨만은 살려줄 지도? 아니면 팔과 다리를 잘라서 장식용으로 걸어둘 거랍니다!”

저런 싸이고 같은 년이 지금껏 정체를 숨기고 프레이 옆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화르르륵!

내가 쥐고 있던 한쪽 창에 화기가 깃들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냉기가 깃들었다.

두 정령들이 내 의지에 반응하여 도움을 준 것이다.

마침 정령술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연습해볼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

나는 다시 한 번 골렘을 향해 힘껏 창을 던졌다.

팡!

이번에는 조금 세게 던진 탓인지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체 골렘을 보고 있던 레일라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 이게 무슨!”

그녀가 그렇게 자랑하던 시체 골렘의 상반신은 열기(熱氣)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고 있었고, 하반신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툭하고 내려치면 부서질 것 같았다.

“어…. 생각보다 너무 쎈데?”

상상이상이었다.

나름 힘 조절을 하라고 부탁했던 것인데 내 생각 이상으로 정령들의 힘이 강력한 것 같았다. 이래서 마법사들이 정령, 정령 하는 구나 하고 새삼 다시 깨달았다.

“감히 내 골렘을!”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그 상황을 지켜봤다.

“진정한 공포를 느끼게 해주마! 내 부름에 응답해라. 지옥의 사냥꾼들이여.”

바닥에 새겨진 오망성(五芒星)이 빛을 뿜었다.

잠시 후.

다섯 마리의 악마가 날개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레일라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지옥의 사냥꾼들이여! 저 인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내게 돌진하려던 악마들이 나를 보고 움찔하더니 이내 멈추었다.

그 광경을 본 레일라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열을 냈다.

“뭐하는 것이냐! 내 말이 들리지 않은가? 저 인간을 어서 죽이란 말이다!”

[거부한다.]

[인간. 무섭다.]

[괴물.]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촤아아아악!

나는 지금껏 억누르고 있던 마기를 발산했다.

심해의 안쪽처럼 짙은 검은색 마기가 이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마기를 느낀 악마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무래도 귀족의 작위도 받지 못한 중급 수준의 악마들인 듯 했다.

악마들이 저 정도인데, 고작 일개 흑마술사에 불과한 레일라는 어떻겠는가.

그녀는 아예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 하반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바닥이 축축해진 것을 보니 아마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실례를 한 것 같았다.

나는 악마들을 향해 말했다.

“돌아가라.”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레일라에게 다가갔다. 방금까지 보여주었던 의기양양한 모습은 마치 내 착각이었다는 듯, 그녀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저 몸만 덜덜 떨 뿐이었다.

“이제 재롱잔치는 끝났나?”

“다, 다, 다, 당신은 대, 대, 대체 누, 누, 누, 누, 누구십니까.”

“너와 같은 흑마술사지.”

“그, 그, 그, 그럴 리가……. 그 기운은 부, 분명……”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였다. 나는 흑마술을 발동시켜 그녀의 기억을 들여다봤다.

촤라라라락.

수많은 기억들이 책장을 넘기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근처에 사람들을 납치하여 제단에 재물로 받치는 광경.

죽은 시체를 손질하는 광경.

‘…찾았다.’

그리고 마기를 주입한 독을 음식물에 넣는 장면이 나타났다.

뒤이어 나온 것은 누군가와 접선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들의 검집에 낯익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황금빛 왕관을 가로지르는 잿빛의 검.

‘룬델 공작가!’

그것은 룬델 공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그리고 장면은 또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마족? 혹은 흑마술사로 보이는 인물과…….

그 순간.

펑!

커다란 굉음과 동시에 그녀의 머리가 폭발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뇌수와 살점.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다음 기억을 살펴보려고 하자,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그대로 머리가 폭발했다.

“게티아…….”

본능적으로 그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 수법.

그때 그들의 조직원을 사역마로 종속시키려 했을 때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숙한 조직들이 얽혀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도움이 될 만한 증거들을 긁어모은 뒤 다시 기숙사로 향했다.

* * *

잠에서 깬 나는 기지개를 핀 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내려갔다.

내가 마지막이었는지 이미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프레이의 말로는 나를 서너번 깨웠지만 자꾸 5분만, 5분만을 간절히 외치기에 하는 수 없이 먼저 내려왔다고 했다.

“왔냐. 앉아서 밥 먹어라.”

“넵.”

오늘의 메뉴는 간장 계란밥과 정체불명의 국.

간장과 계란은 있지만 김치는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치도 설정에 추가할 걸….’

나는 프레이의 옆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아리아 발렌타인과 실프, 그리고 이든이 앉아있었다.

아리아 발렌타인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샬럿이 물었다.

“프레이. 오늘 축제 갈 거지?”

“네. 그래야죠.”

이든이 끼어들었다.

“오! 축제 가시게요?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처음에는 퉁명스럽게 말하던 샬럿이 태도를 바꾸었다.

“뭐야? 넌! 평민. 귀족들 노는데 끼지 말고 좋은 말로 할데 빠……. 아니다. 그래. 너도 같이 가자.”

“정말요?”

“그래. 상관없지, 프레이?”

프레이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뭐……. 많으면 좋은 거죠.”

샬럿이 나를 쓱 바라보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기가 승리했다는 얼굴이었다.

“아, 샬럿. 그러고 보니까 어제 방 공사한 거는 어떻게 됐어? 너 사비 엄청 들여서 완전 멋있게 인테리어 한다며!”

그 말을 들은 벨라 트레이가 샬럿을 바라봤다.

“공사……?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샬럿 메이지?”

악귀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샬럿이 이내 표정을 바꾸고 벨라 트레이를 바라봤다.

“그, 그게! 기분을 좀 내려고! 인테리어를 조금…….”

“내게 허락도 없이 멋대로 기숙사 내부 공사를 했단 말인가?”

“……네.”

“나중에 내 방으로 오도록 해라.”

“……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속으로 히죽 웃었다. 그때 갑자기 이든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형님! 근데 어제 새벽에는 어디 갔다 오신 거에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향했다.

‘…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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