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첫 발은 가볍게 명중.
당연한 결과였다.
마나 운용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 심지어 나는 군필자였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군 생활 내내 권총 한 번 쥐어볼 일이 없겠지만 나는 달랐다.
남들과는 다른 특수한 보직으로 인해 거의 분기별로 권총 사격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만발.
꼰대력이 넘치는 부대의 간부들조차 감탄하며 전문하사를 권유 할 정도였다.
‘악마 같은 새끼들.’
탕! 탕! 탕!
감을 잡은 나는 쉬지 않고, 방아쇠를 눌렀다.
7발 연속 명중.
뒤에서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슬슬 권총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름대로 마력을 조절한다고 했지만 역시 과열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제는 출력을 고려하여 마력을 제어해야 했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전도율강화(傳導率强化).’
권총을 쥐고 있는 손에서 보랏빛 마력이 은은하게 피어났다.
탕!
‘예상대로군.’
과열된 총이 스스로 내린 출력을 강화마법을 통해 강제로 올렸다.
기계를 직접 조정한 것이 아닌 그저 마력이 더 잘 통하는 성질로 바꾼 것이다.
방아쇠를 당길수록 급속도로 맛이 가고 있었지만 이 정도만 돼도 충분했다.
탕! 탕!
탕! 탕! 탕!
숨도 재대로 쉬지 않고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사격에 완전히 몰입한 탓에 주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혹은 주변 일대가 조용해진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내가 쏜 마력탄은 19발.
어느새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것만 맞추면 만발이다.’
그러나 표적지를 본 순간 그 동안 왜 만발을 맞춘 사수가 없었는지 깨달았다.
‘이 아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순 사기꾼이군.’
총에다 장난질을 한 것도 모자라 19발을 맞추고 나온 마지막 표적지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좌. 우. 위. 아래.
대각선.
심지어 규칙도 없이 지 멋대로 이동했다.
“뭐, 뭐야! 저걸 대체 어떻게 맞춰? 이거 완전 사기 아니야?”
“쉿! 조용히 해. 그렇게 크게 말하면 어떡해?”
“아니! 네가 봐도 이상하지 않아? 표적지가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면 사격왕 할아버지가 와도 못 맞추겠다.”
“…그렇긴 해. 좀 심하다.”
뒤쪽에서 떠드는 이들의 말대로 저건 맞추라고 만든 표적지가 아닌 것 같았다.
제작자의 진득한 악의가 느껴지는 괴랄한 난이도.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안력강화(眼力强化).’
솔직히 말해 강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했으나 안전빵을 택했다.
이걸 만든 제작자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맞추고 싶었다.
그래도 내가 만발사수였는데 말이지.
“후우….”
천천히 호흡을 조절한 뒤 표적이 정중앙에 온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탕!
“…….”
표적지는 그대로였다.
뒤쪽에 있던 구경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풀린 나는 급격히 피로감을 느꼈다.
“뭐야…? 결국 실패인가?”
“그럼 그렇지. 저걸 어떻게 맞춰. 순 사기꾼이네. 여기!”
“…아니야. 저기를 자세히 봐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표적지 위쪽!”
“미친! 다들 저기 눈을 봐!”
“어디? 어디?”
뒤늦게 표적지를 확인한 구경꾼들이 하나 같이 흥분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눈…! 눈이 뚫려있어!”
“오오! 진짜야.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 못 챘는데 표적지의 오른쪽 눈에 구멍이 뚫려 있잖아!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우어어어어어!!!”
그들이 말한 것처럼 표적지는 인간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하필 눈 쪽에 맞아 멀리서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사격을 한 나조차도 빗나간 줄 알았다.
‘중앙을 노리고 쐈는데 조금 빗나갔군.’
자리에서 나온 나는 주인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거 가져가도 되죠?”
주인장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뒤늦게 대답했다.
“…그, 그러도록 하시게나.”
“감사합니다.”
“잠깐. 자네 본격적으로 사격을 배워 볼 생각은 없나? 자네 같은 이가 사격을 배우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해라네! 내가 아는 분 중에 뛰어난 실력의 사격가가 있으니 그 분에게….”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1등 상품을 가져가기 위해 등을 돌리자 구경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에는 아카데미의 학생들 도 섞여 있었다.
“저 사람 자일 지그하르트 아니야? 이번에 S 클래스에 배정 받은 그 자일 지그하르트!”
“그 영웅의 일족…? 입학시험을 망쳐서 A 클래스가 아닌 S 클래스에 배정받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소문에 불과한 건가?”
“당연히 소문이지! 대체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야? 무려 그 지그하르트인걸! 최근에는 S 클래스가 곧 학년 최강의 클래스가 될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에이,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야…? 그래도 A 클래스인데….”
“너는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 저 정도의 마나 운용능력을 지닌 사람이 왜 S 클래스에 배정 받았겠어. 그리고 저 아저씨가 말했잖아. 20년간 장사를 하면서 만발을 맞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하긴……. 말이 안 되긴 해. 저 표적지를 대체 어떻게 맞춘 거지? 인간이 맞긴 한가? 얼굴도 잘 생겨. 핏줄도 좋아. 싸움도 잘해. 사격도 잘해. 젠장, 세상은 불공평해….”
1등 상품을 챙긴 나는 일행들과 함께 구경꾼들 사이를 헤집고 나왔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될 줄 몰랐던 지라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샬럿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는 내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마력 운용능력 만큼은 내가 우위라고….”
그 모습을 본 프레이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샬럿을 위로해주었다.
“샬럿. 너무 풀 죽을 필요 없어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20발 중 13발을 맞춘 것도 대단한 거라고.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에요.”
옆에 있던 이든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요. 20발 중 13발이면 충분히 잘 한 겁니다. 샬럿님!”
그 말을 들은 샬럿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평민! 너 한 번만 더 사격 얘기 꺼내면 확 구워버릴 줄 알아!”
“너무 하십니다! 저는 그저 위로를…….”
“닥치라고! 닥치라고! 닥치라고!”
샬럿이 양손에서 불을 뿜으며 이든에게 돌진했고, 위기를 느낀 이든은 재빨리 도망쳤다.
“에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군.”
“하하. 그래도 보기 좋지 않아요?”
저택에서 보았던 표정과 달리 그녀는 지금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니 문득 레일라와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레일라가 첩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이 심할 텐데.’
“확실히 재밌긴 합니다.”
“하하. 그쵸? 저도 그래요. 샬럿이 저 이외에 누군가와 이렇게 얘기하는 광경은 처음 봤거든요. 처음 S 클래스에 배정 받았을 때는 많이 우울했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자일과 이든, 그리고 다른 학우들과 같은 클래스가 되어 행복한 거 같아요. 저희 S 클래스를 더욱 뛰어난 반으로 만들 수 있도록 앞으로도 파이팅 하죠!”
말을 하다 말고 뜬금없이 파이팅을 외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하. 네. 파이팅 합시다.”
“자일! 저기 봐요, 저거!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간식거리를 파는 노점상이었다.
그 주변에 아이들이 손에 쥔 채 쪽쪽 빨고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탕후루였다.
‘탕후루를 판다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생긴 건 분명 탕후루였다.
“저희 저거 먹으러 가죠!”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얼굴로 말하는 프레이를 보고 있자니 거부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죠.”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노점상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어서옵쇼!”
메뉴판을 바라보던 프레이가 말했다.
“이거 두 개 주세요!”
“맵기는 어떻게 해드릴 깝쇼?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있습니다.”
프레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몇 단계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무슨 탕후루가 맵기 조절이 가능해……? 대체 정체가 뭐야…?’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일단 5단계로 하기로 했다. 평소에도 매운 걸 좋아하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어 그럼 5단계로 부탁합니다.”
“5단계 두 개요!”
“예이~”
노점상의 주인이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프레이에게 물었다.
“프레이. 이거 이름이 뭔가요?”
“아… 자일은 처음 보는 건가요? 이 사탕의 이름은 후루탕이라고 해요. 불꽃 도마뱀의 마석을 가공해서 만든 거라 그 맛이 아주 별미거든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네이밍과 재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자, 후루탕 두 개 대령이요!”
“감사합니다.”
프레이가 내게 후루탕이라 불리는 붉은 사탕을 건네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사탕을 베어 물었다.
동시에 입안에 퍼지는 매콤함과 화기(火氣).
‘씨X…. 이게 뭐야…? 이딴 걸 왜 돈 주고 사먹는 거야?’
사탕 주제에 뜨겁고, 매웠다. 그것도 아주.
생전에 먹었던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매웠다. 거기에 뜨겁기까지 하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건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음식이 아니라 고문용으로 개발해낸 게 틀림없었다.
옆에서 사탕을 쪽쪽 빨아먹던 프레이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조금 맵긴 하지만 생각보다 맛있죠? 자일도 매운 거 좋아하나 보네요?”
“…크흠. 좋아하긴 합니다만 생각보다 많이 맵네요.”
“원래 그 맛에 먹는 거죠.”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래.
네가 맛있으면 된 거지….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못 먹겠다.
‘눈치보다 버려야지. 미안 프레이.’
우리는 손에 후루탕을 쥔 채 아카데미를 걸었다.
아카데미 자체가 워낙 넓기도 했고, 축제인지라 주변에 볼 것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눈을 끈 것은 줄 없는 번지점프였다.
아파트 15층은 족히 돼 보이는 높이에서 줄도 없이 무작정 뛰어내리는 게 컨텐츠였다.
낙하지점에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것이 보였는데 아마 바람 계열 마법을 이용하여 다시 뛰어오르게 만드는 역할인 것 같았다.
“끄이이야이야야아악!”
방금 뛰어내린 사내의 외마디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즐거워하는 걸까. 괴로워하는 걸까.
둘 중 뭐가 됐든 그저 미친 짓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주변에 안전요원의 역할을 하는 마법사들이 있다고는 하나 끽 하면 그대로 죽는 게 아닌가.
‘대체 어떤 인간의 머릿속에서 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걸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오, 재미있어 보이네요?”
“저게요?”
“네! 저는 마법을 쓰지 못하니까 하늘을 날 기회가 없거든요.”
“……개인적 의견은 존중하지만 다음에 하는 게 어떨까요? 줄도 꽤 길어 보이는데….”
“아… 그럼 그럴까요?”
인간은 원래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그때. 한 15살 정도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봤다.
“아저씨. 용한 점집 아는데 점 보러 가실래요?”
“점……?”
“네! 아주 용한 점성술사가 운영하는 곳이에요. 옆에 있는 예쁜 누나랑 같이 오시면 50 퍼센트 할인! 어때요?”
당황한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예…쁜 누나…?”
당황한 것은 프레이 뿐 만이 아니었다.
‘프레이가 여자인 걸 알아봤다고? 감이 좋은 건가?’
프레이가 분명 예쁘게 생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현재 인식저해를 유발하는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저 소년은 프레이를 보고 분명 ‘누나’라고 불렀다.
“…….”
“자일! 우리 저기 한 번 들렸다 가는 게 어때요?”
“제가 원래 점이나 이런 건 안 믿는 편이라….”
“에이, 그냥 재미로 보는 거잖아요! 한 번 만요. 네?”
그녀가 이토록 간절하게 부탁한 건 처음인지라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으면 나오는 겁니다.”
“헤헤. 감사해요!”
순간적으로 소년의 얼굴에서 ‘호구 한 명 잡았다.’라는 글씨를 본 것 같았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두 분 다 이쪽으로 오시죠!”
우리는 소년을 따라 걸었다. 몇 개의 노점상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입니다.”
낡은 천막.
[인류 최고 점성술사가 운영하는 점집]
그 위에 걸려있는 수상한 간판.
다른 노점상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후미진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나와 프레이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다.
“…….”
“…….”
“에이. 이상한 곳 아니니까 저 믿고 들어오세요.”
소년이 먼저 천막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주춤하던 우리도 결국 안쪽으로 들어갔다.
‘설마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겠어?’
천막 내부는 생각보다 더 넓었다. 양쪽에 촛불들이 켜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터번 같은 모자를 뒤집어 쓴 노인이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어서들 오시게. 여행자들이여.”
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를 유심히 바라봤다. 우리를 데려온 소년이 다급히 소리쳤다.
“소, 손님! 점성가님에게 가까이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잠깐.
“…영감님?”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