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당황한 프레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기계가 고장 난 건가요?”
기계를 살펴보던 조교 무명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네. 완전히 맛이 가버렸네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프레이 군에게 돈을 배상하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프레이 군의 힘을 견디지 못한 기계 탓이니까요.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니랍니다.”
“이런 적이 또 있나요?”
무명은 대답 대신 요한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교수님도 이런 적 있었나요?”
“아… 예…. 첫날에 기계 테스트를 한다고 시험 삼아 해봤는데 그대로 맛이 가더군요… 아크론 공방에서 만든 제품이라 꽤 기대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구성이 형편 없더군요….”
무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교수님이 이상하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요, 아르미. 저는 제대로 힘 조절을 했습니다만…”
“본인의 마력을 생각하셔야죠. 그리고 아르미가 아닌 소피 마르틴입니다. 교수님.”
어찌됐건 프레이가 부수기 이전에 요한도 한 번 부쉈다는 얘기였다.
프레이가 미안한 얼굴로 샬럿에게 다가가 말했다.
“샬럿…… 미안합니다… 제가 힘 조절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내기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샬럿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활짝 웃었다.
“미안하긴 뭘 미안해! 그만큼 프레이가 열심히 수련했다는 증거지! 그걸 알고 나니까 오히려 기쁜 걸? 나는 괜찮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냥!”
그녀의 냥체를 들은 요한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저 샬럿 양… 그 기괴한 말투는 무엇입니까…?”
샬럿의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아, 아니 그게 이렇게 된 거에는 깊은 사정이….”
그때였다.
대로변 쪽에서 비명 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졌다. 이변을 감지한 우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나선 것은 요한이었다.
후웅!
공중으로 떠오른 요한이 순식간에 대로변으로 향했다.
“꺄아아아악!! 마물이다!! 마물이 나타났다!!”
“으아아아앙!!! 살려줘어어!!!”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아아, 라파엘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 대로변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이후였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리사! 어디 있니! 리사!”
“팔이…! 내 팔이…!”
“길 막지 말고 비켜!”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
수 백, 수 천 여명의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나오는 광경은 흡사 좀비 떼를 보는 듯 했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다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들을 본적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릴 뿐이었다.
그중에는 바닥에 깔린 인간들을 그대로 밟고 지나치는 인간들도 적지 않게 존재했다.
쏟아지는 인파 속에 부모를 놓친 것인지 한 아이가 바닥을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그 위로 거대한 바위가 날아왔다.
“엄마!! 아빠!!! 어디 갔어!! 나 무서워!!”
강화 마법을 발동한 내가 순식간에 아이를 낚아챘고, 뒤이어 달려온 프레이가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바위를 갈랐다.
서걱!
“후에에에엥! 엄마아아아아!”
나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한 쌍의 뿔을 지닌 악마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인 채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악마…?’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남성과 여인이 내게 다가왔다. 내가 아이를 건네주자 그들은 아이를 품에 안으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곧장 내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마의 주위에는 눈과 입을 꿰맨 끔직한 형체의 인간형 마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배회하고 있었다. 풍기는 마기로 보았을 때 하나, 하나가 강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 수가 상당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이단심문관들과 요한이 빠르게 마물들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공중에 뜬 요한이 손짓하자 거대한 마나의 창 수 십 개가 지면으로 향했다.
콰과과광!
지상으로 낙하한 수 십 개의 창들이 마물들의 살점을 갈기갈기 찢었다.
이단심문관들 또한 신성한 광채를 몸에 두른 채 마물들을 도륙 냈다.
“대형 악마 발견. 자작급 악마로 추정.”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모두 정문 밖으로 나가십시오!”
“이곳에는 라파엘 교단의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부상자들은 근처에 성직자들에게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나마 위협이 될만한 것은 뿔 달린 악마였으나 그 마저도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제국 최강의 교수진들과 악마 사냥의 스페셜리스트들이 함께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행히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고, 일반인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화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듯한 찝찝함.
한창 축제가 진행 중인 아카데미 한복판에 악마가 나타났다.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을 리는 없고, 분명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소환을 한 게 분명했다.
허나 그렇기에는 뭐랄까 너무 약했다.
그저 주위의 이목을 끌기 위한 것처럼….
‘이 정도로 일을 벌려놓았는데 고작 한 마리 밖에 소환하지 않았다고?’
악마를 소환한 이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제국 최고의 양성기관이라고 불리는 살로몬 아카데미다.
바보가 아닌 이상 고작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아무런 흠집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지금이야 내부에서 튀어나온 악마로 인해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어차피 금세 정리될 문제였다.
‘내부라… 축제로 인해 몰려든 인파들 사이에 섞여 들어온 것인가….’
문득 이곳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그러한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저 멀리 위치한 건물 사이로 거대한 여인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는… 신입생 기숙사…?’
악마가 나타난 방향은 B 클래스와 C 클래스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쪽이었다.
그 크기가 어찌나 커다란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형체가 뚜렷하게 보였다.
주변에 있는 건물들을 압도할 정도의 크기였다.
“…….”
검은 드레스 위에 면사포 같은 것을 뒤집어 쓴 채 두 손을 맞잡은 여인.
푹 파인 가슴 위에는 역십자 모양의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아까 보았던 마물들과 마찬가지로 두 눈과 입이 어린 아이가 바느질이라도 한 것처럼 형편없는 솜씨로 꿰매져 있었는데, 거기에서 검은 핏물이 흘러 내렸다.
끔찍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뚜뚜둑.
실밥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눈먼 수녀의 입이 열렸다.
[אוי ואבוי, האמהות שלנו. אני כאן.]
그것은 노래였다.
진명을 각성했던 일리야가 부른 노래가 성스러움을 가득 담은 찬가라면, 지금 내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 노래는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부르는 진혼곡(鎭魂曲)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대상이 이곳에 있는 살아있는 인간들을 위해 부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울려 퍼진 마기가 아카데미 전체를 뒤덮었다.
“끄으으윽!!”
“크윽. 자일…….”
“형님!!”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신체와 정신력을 강화하는 마법을 걸어주었다.
“복합강화부여(複合强化附與).”
성마술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다행히 마법의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일행들의 안색이 조금씩 밝아졌다.
나는 허공에 떠있는 요한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그는 지금 막 악마를 고깃덩어리로 만든 뒤였다
“교수님!”
요한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참견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뒤이어 요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계열 최상위 마법인, ‘공간전이(空間轉移)’였다.
나 또한 마나를 일으켰다.
“다중가속(多衆加速).”
전신을 감싸는 보랏빛 마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짐을 느낀다.
그 모습을 본 프레이가 얼굴을 찡그린 채 물었다. 아직 고통이 심한 듯 했다.
마기의 내성이 있는 나나 요한 같은 괴물, 혹은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성직자가 아닌 이상 당연한 결과였다.
“자, 자일……. 가지 마십시오…….”
프레이 또한 신입생 기숙사 쪽에 나타난 저 악마가 얼마나 규격 외에 존재인지 느낀 듯 했다.
인간이라면 저런 기형적인 존재를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괜찮습니다. 직접 전투에 나서지는 않고, 다친 학생들이 있는지만 보고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곧장 지면을 박차고 날아 지붕 위에 안착했다. 뒤에서 프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일!!”
솔직히 말하면 나도 굳이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저 장소에 갔다가는 이단심문관들과 엮이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알아야 했다.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런 일을 벌인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딴 짓거리를 한 것인지.
‘개 같은 것들이 이제 좀 쉬려니까…….’
이런 일이 많아질수록 곤란해지는 건 결국 같은 흑마술사인 나다.
안 그래도 아카데미 내에서 마신숭배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수색을 강화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놓고 악마가 나타났으니 아마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게 분명했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든 속일 자신은 있었지만, 아카데미 내에 잠입한 72교단의 교인들은 아니었다.
“염병…. 뭐 하나 쉽게 가는 법이 없군….”
지붕과 지붕 사이를 빠르게 이동한 나는 어느새 B 클래스 기숙사 근처에 도착했다.
“저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괴한이 세 명.
그중에서도 가운데에 있는 괴한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것으로 보아 최소 사도급 흑마술사인 것 같았다.
그 옆에는 어림잡아 봐도 족히 이 백은 넘어 보이는 마물 군단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뒤편에는 아까 전 보았던 눈먼 수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אני אהפוך את העולם הזה לשלך. אז הצילו אותי, הצילו אותנו! גיהנה!]
엉성하게 꿰맨 눈동자 사이로 흐르는 검은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치지직, 소리와 함께 바닥이 녹아내렸다.
그런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여인.
“크리스 발렌타인…?”
만년설처럼 새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백색 광채를 뿜어내는 검을 뽑아든 그녀가 발을 내딛었다.
수 백의 마물과 세 명의 마신 숭배자, 그리고 최소 사도급 악마를 눈앞에 두고도 그녀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제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부터.”
단신으로 악마들의 소굴을 향해 몸을 던지는 그녀에게서는 그 어떤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청십자회(靑十字會) 주교, 크리스 발렌타인.”
그저 묵묵히 신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주신(主神) 라파엘(Raphael)의 이름으로 지금부터 집행을 시작하겠다.”
앞으로 나아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