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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89화 (89/180)

89화

자일 지그하르트는 지금 당장 나서지 않고 우선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가운데에 있는 흑마술사가 소리쳤다.

“저 계집을 죽여라!”

흉측한 몰골의 구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수 백 마리가 넘는 구울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광경은 뇌리에 박힐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발렌타인은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반달 모양으로 뻗어져 나간 검격이 잔잔한 호수 위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파스스슥!

무작정 돌진하던 구울들이 반달 모양의 검기에 닿는 순간,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수 십 명이 넘는 구을들이 단 한 번의 일격만으로 모조리 소멸한 것이다. 단순한 검격이었으면 재생력이 뛰어난 구울들의 특성상 어떻게든 달려들었겠지만, 그녀의 신성력은 그런 특성을 짓밟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에 이채가 깃들었다. 이내 불꽃처럼 일렁이며 사방으로 푸른 불꽃이 뻗어 나갔다.

화르르르륵─!

푸른 불꽃에 뒤덮인 구울들이 괴성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왼쪽이나 오른쪽 다른 곳으로 빠진 적 없이.

오로지 앞만 보며.

“부패의 사슬!”

촤르르륵!

흑마술사의 손에서 피어난 마기가 그녀의 몸을 옥죄였다.

이어서 바닥, 허공에서도 사슬들이 뽑아져 나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자, 흑마술사가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하하! 라파엘의 노예여. 쓸데없는 저항을 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노리개로 삼아주마!”

퉁!

그녀가 힘을 주자, 그녀를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들이 힘없이 나뒹굴었다.

이어서 백색의 오러가 깃든 검이 허공을 갈랐다.

수직으로 내리친 검.

검의 궤적을 따라 일직선으로 이어진 한줄기 빛이 직선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갈랐다.

쩌저적!

그녀와 같은 경로에 있던 구울들이 일제히 반으로 쪼개졌다.

그 광경을 본 흑마술사가 경악하며 옆에 있던 흑마술사들에게 외쳤다.

“뭣들 하고 있나! 어서 저 년을 막아!”

고개를 끄덕인 두 흑마술사가 거대한 낫을 쥔 채 날아올랐다. 검은 마기로 뒤덮인 낫이 크리스 발렌타인의 정수리를 향해 낙하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낫을 휘두른 흑마술사는 자신의 팔 다리가 바닥에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머리가 바닥을 굴러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 나서야 본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기를 느낀 또 다른 흑마술사는 품에 있던 검은 물약을 삼켰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라^%*@#파#$엘의 개%^% 죽$#^#인#$다.”

알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흑마술사.

방금 전 보여주었던 몸놀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촤악!

거대한 낫이 허공을 가르며 피어난 검은 연기가 크리스 발렌타인의 몸을 옥죄었다.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그녀가 두르고 있던 푸른색 망토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특한 것.”

그녀의 몸에서 백색 광채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녹아내렸던 망토가 다시 재생됐다.

동시에 빛이 번뜩였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뻗어져 나간 그녀의 칼날이었다. 검의 궤적을 따라 허공에 새겨진 수십 개의 선.

이윽고 선을 따라 흑마술사의 몸이 잘려나가며 매캐한 연기를 피운 채 소멸했다.

경이로운 무력.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자일은 과거 자신이 봤던 그녀의 실력이 오히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수녀가 이내 아카데미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의 괴성을 내질렀다.

[אמא תברך אותי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תעמוד]

그것은 마치 종말을 알리는 나팔소리 같았다.

눈먼 수녀의 등에서 날개처럼 생긴 팔이 돋아났다. 괴이하게도 등에서 솟아난 양팔은 거꾸로 된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흑마술사가 감탄하듯 소리쳤다.

“오오! 드디어 기도를 끝마치셨습니까. ‘어머니의 눈을 뽑아버린 공녀’시여──”

수녀의 눈동자가 흑마술사에게로 향했다.

엉성하게 꿰매어 있던 눈꺼풀이 뚜두둑, 소리와 함께 열리더니 이내 커다란 구멍이 뚫린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을 가득 채운 것은 붉은색 핏줄이었다.

──실지렁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핏줄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내장 같아 보이기도 했다.

수녀가 흑마술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흑마술사는 감격이라도 하듯 무릎을 꿇고, 그녀의 거대한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다르게 수녀의 손이 향한 곳은 본인의 입이었다.

그대로 흑마술사를 집어삼킨 수녀가 입을 움직였다.

꿀꺽.

으드득. 으드득.

살과 뼈가 뒤섞여 씹히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수녀의 시선이 크리스 발렌타인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올라왔다.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אמא אמא אמא]

그녀가 쉴 새 없이 내뱉는 단어는 ‘어머니’였다.

두 손은 여전히 기도를 하듯 깍지를 낀 채 다소곳한 상태였고, 등 뒤에 달린 두 개의 팔만이 그녀의 외침에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끔찍한 존재가 이 세계에 왔구나.”

수녀는 마치 그 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두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이며 크리스 발렌타일을 향해 돌진했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등에 달린 두 개의 팔이 주변에 있던 건물들을 헤집었다.

쿵!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가 크리스 발렌타인을 향해 쇄도했다. 땅의 균열이 생기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עונש.]

수녀의 부름에 반응이라도 한 것일까.

산산조각 났던 구울들의 살점들이 이내 한곳으로 모여들더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쿵! 쿵!

수녀의 양팔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거대한 십자가는 눈앞에 이교도를 뭉기기 위해 미친 듯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일방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발렌타인은 신묘한 몸놀림으로 그 모든 공격들을 부드럽게 피해냈다.

발을 몇 번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거리를 이동했다.

어느새 지면에는 그녀의 발자국들이 새겨져 백색 섬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 솟아오른 손들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았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상에 그녀조차도 반응을 하지 못했고, 그 위로 거대한 십자가가 떨어졌다.

콰직!

단 한 번의 일격.

격의 차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딱 한 번을 허용했을 뿐인데, 크리스 발렌타인은 곤죽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인간의 시체라고도 부를 수 없는 형상이었다.

신체를 구성하는 온갖 것들이 터지고, 짓뭉개져 붉은 액체를 흩뿌렸다.

꿈틀.

짓뭉개진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

[הכלב של רפאל מת?]

…그녀의 숨이 아직 붙어있다는 증거였다.

곤죽이 되어버린 그녀의 전신에서 한 줄기 빛줄기가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구름을 넘어 저 하늘 위까지 솟아오른 기둥에서 크리스 발렌타인이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애꿎은 가호를 낭비했군.”

재생(再生)의 가호.

라파엘 교의 12신 중 하나인,『은혜와 재생의 신 아르미엘』이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에게 내려준 축복이었다.

──그 효과는 무척 간단했다.

【하루에 한 번, 죽음에서 재생(再生)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그녀가 가진 가호는 열 손가락으로 전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가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위 기관에서 묻지도 따지지 않고 스카웃을 하는 이 세계에서 그 정도의 가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말 그대로 그녀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이질적 존재였다.

“강림(降臨).”

그녀의 눈동자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어서 그녀의 등 뒤에 한 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순백의 날개가 펄럭이며 그녀의 몸이 허공 위로 떠올랐다.

펄럭. 펄럭.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주변에 성스러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강림(降臨)의 가호.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시간 동안 천사의 힘을 빌려 쓸 수 있다.】

그녀가 검을 높게 뻗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섬광이 검날에 깃들며 웅혼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성마술(聖魔術).”

위기를 느낀 눈 먼 수녀가 광분하며 십자가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의 균열이 생기며, 갈라진 틈 사이로 흉흉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수 십 개의 손들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אִמָא! אִמָא! תן לי להרוג את הכלב של רפאל!]

허나 크리스 발렌타인의 주위에 원 형태로 퍼져 있는 결계에 가로막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게 전부였다.

어떻게든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신성력에 노출 된 손은 점점 타들어갈 뿐이었다.

크리스 발렌타인이 양손으로 검을 쥔 채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검신에 깃든 백색 오러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이내 거대한 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주변 일대의 공기가 거세게 요동쳤다.

쿠구구궁!

벼락이 내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녀가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신성검(神聖劍) 제 1형(形). 천지개벽(天地開闢).”

이윽고.

──하늘이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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