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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90화 (90/180)

90화

──하늘이 갈라졌다.

방금까지 흉흉한 마기를 뿜어내며 괴성을 지르던 눈 먼 수녀는 잿더미가 되어 소멸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광경에 손이 덜덜 떨렸다.

‘대체 뭐야…. 저 괴물은…?’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그녀의 전신을 뒤덮고,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벼락이 내려치는 굉음과 함께 하늘이 갈라졌다.

청십자회(靑十字會).

마를 사냥하는데 이골이 난 이단심문관들 중에서도 괴물 같은 이들을 따로 선별해 만든 특수 조직.

통칭 악마사냥꾼.

그러나 그녀는 그 중에서도 규격 외에 힘을 지니고 있었다.

괴물 중의 괴물.

하늘 위의 하늘.

그야말로 천외천(天外天)이었다.

이블이 된 레이첼을 일검(一劍)으로 베어버렸을 때 이미 그 경이로운 무력에 대해 감탄했지만 지금 본 이 광경은 감탄을 넘어 경외(敬畏)가 느껴질 정도였다.

‘…저런 인간이 고작 주교(主敎)라고?’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온 것일까.

이미 나라는 변수로 인해 세계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다지만…….

그녀는 그중에서도 이질적이었다.

이쯤 되면 내가 구상한 설정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라파엘교의 이단심문관들이 마물, 마족, 악마를 잡기 위해서 특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범위 내의 이야기다.

청십자회 또한 그저 그들 중 조금 더 특별한 힘을 지닌 이들을 선별해 만든 조직이라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녀는 그런 수식어로 정의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애초에 저걸 인간으로 봐야 할까?

인간이 검으로 하늘을 가른다고…?

눈먼 수녀 악마는 최소 마신급 존재의 사도로 추정되는 존재였다.

‘분명 악마 중에서도 귀족… 그것도 최상위 작위를 지니고 있을 게 분명해.’

내 추측 상 눈먼 수녀는 최소 공작급 악마였다.

그녀에게서 풍겨지던 마기는 마신의 계약자인 나조차도 한 순간 움츠러들 정도였으니까.

눈먼 수녀가 기도를 끝내고, 등 뒤에서 손을 꺼냈을 때에 그 전율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모시는 마신에게 기도를 드림으로서 힘을 부여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악마는 결코 그런 힘을 지닐 수 없다.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존(强者尊). 적자생존(適者生存).

이 모든 것들이 당연시 여겨지는 지옥에서 악마들의 강함은 대개 작위로 매겨진다.

오래 살고, 강인한 악마일수록 백작 혹은 공작 등에 높은 작위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자신이 모시는 마신에게 작위를 부여받고, 일개 사단을 이끌거나 혹은 군단을 이끈다.

그렇게 더욱 더 강해진다.

물론,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홀로 돌아다니는 악마들 또한 존재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지옥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낸 계급 체계인 것이다.

그들 중 마신의 총애를 받게 된 이들은 사도가 되거나 가호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고.

‘그런 악마를 단신으로 죽였다는 거지….’

분명 보았다.

수녀의 십자가에 찍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곤죽이 된 크리스 발레탄인의 시체를.

나 이외에 다른 이가 그때 그 광경을 보았더라도 모두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죽었다고.

도저히 치료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아니, 상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 몰골을 직접 본다면 ‘상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웃긴 짓거리인지 공감할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곤죽.

인간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그녀는 되살아났다.

환한 빛기둥 속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허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그녀는 본래의 말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평소와 같은 차분한 얼굴로 태연히 검을 드는 그 모습은 내게 공포로 다가왔다.

성기사들이 경이로운 재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성마술로 그런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무엇보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스모데우스가 말해주길, 그녀가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성마술 따위가 아닌 라파엘 교단을 지탱하는 12신들이 내려준 가호(加護) 덕분이라고 했다.

……죽음에서 부활하는 가호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허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녀가 지닌 가호가 한 개라는 것이었다.

아스모데우스가 말하길 크리스 발렌타인은 최소 10개 이상의 가호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가 보여주었던 경이로운 무력이 납득이 됐다.

1개의 가호를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갖 찬사를 받는데, 10개 이상…? 그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천악천보다도 내게 있어 가장 위협이 되는 인간은 저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림(降臨)이라 했던가……. 그 막대한 신성력과 새하얀 날개는 천사 그 자체였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그런 힘을 자유자재로…’

그때.

허공에서 내려온 크리스 발렌타인이 비틀거리더니 이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본래 상당히 희고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창백했다.

“쿨럭.”

그녀의 입에서 붉은 피가 한 웅큼 새어나왔다.

‘그래. 그럼 그렇지. 그만한 힘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용할 리가 없지.’

상태를 보아하니 성마술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인한 반동이 꽤나 심한 듯 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 쉰 뒤 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러고는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허나 몸의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 균형을 잃고 다시 바닥에 고꾸라졌다.

순간.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흑마술사인 이상 우리는 필연적으로 적대하게 될 운명이다.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싸움은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모든 권능과 모든 마법, 그리고 흑마술까지 사용한다 해도 지금의 상태로는 이기는 모습이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기회.

미래의 위험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결단을 내린 나는 지붕에서 착지해 그녀에게 걸어갔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힘겨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너는 아까 그…….”

그녀 앞에 멈춰선 나는 품에 있던 붉은 물약을 건넸다.

최상급 회복제. 엘릭서 만큼은 아니었으나 상당한 효력을 지닌 물약이었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군요.”

그녀가 말없이 물약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뚜껑을 딴 뒤 꿀꺽 꿀꺽 들이켰다. 이내 그녀의 안색이 조금씩 밝아졌다.

“…고맙군.”

“아닙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녀를 향해 다가가는 도중 마음을 바꾸었다.

그 찰나에 순간에도 그녀는 나를 벨 각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적의를 보이는 그 즉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을 게 분명했다.

지금 당장은 쇠약해져 있다고는 하나 갑자기 어떤 마술을 부릴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까처럼 갑자기 부활이라도 하게 된다면 한없이 불리해지는 건 내 쪽이었다.

이곳은 아카데미였고, 곧 있으면 교사들이 몰려올 것이다. 거기에 축제로 인해 사방에는 이단심문관들이 깔려 있다.

내가 흑마술을 쓰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그 즉시 즉결처형이다.

그렇다고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내가 그녀의 손에 죽게 될 게 뻔했다.

어떤 가호들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러한 도박은 할 수 없었기에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은혜를 베푸는 쪽으로 결심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시간으로 그녀의 전신에 상처가 재생되고 있었다. 물약의 효능을 감안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회복력이었다.

‘…괜한 짓을 했나.’

지금 상태를 보아하니 굳이 물약을 건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일어났을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카데미 재학생으로 보이는데 다친 데는 없나?”

“그렇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잠시 고민하던 내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괜히 거짓말을 쳤다가 훗날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자일 지그하르트입니다.”

내 이름을 들은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그하르트.”

그제야 생각이 난 것인지 날 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다행히 적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호기심. 의문.

그런 류의 감정이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이제야 기억이 났군. 그때 이블에게 당해 쓰러져 있던 학생인가.”

“기억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도움을 받은 건 나다. 오늘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지.”

“괜찮습니다.”

마음속으로만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괜히 은혜를 갚겠다고, 청십자회 전부를 끌고 오는 짓거리는 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요한과 맥도웰 학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요한은 비교적 멀끔했었으나 맥도웰은 전신이 피투성이었다.

“아는 사람인가?”

“예. 아카데미의 교수님들입니다.”

요한이 내게 물었다.

“악마는…?”

“이분이 해치우셨습니다.”

요한이 크리스 발렌타인을 바라봤다. 둘은 잠시 동안 서로를 마주보다 이내 요한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자일 군.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교수님은 어디 갔다가 오시는 길인가요?”

그가 공간전이 마법을 사용한 걸 봤기에 당연히 나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하리라 생각했다.

“다른 건물에 고립된 학생들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른 곳을 해결하고 온 모양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카데미 곳곳에서 악마들이 출몰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요한의 옆에 있던 맥도웰이 나를 향해 물었다.

“자네가 이곳에는 어쩐 일인가?”

“아… 이곳에도 도움을 바라는 학생들이 있을까 싶어 오게 되었습니다.”

맥도웰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학생들을 구하러 왔다고? 그야말로 영웅의 표본이로군. 역시 지그하르트의 핏줄은 다르구만 그래! 자네는 어디 다친 데는 없는가?”

“네. 저는 괜찮습니다만 학장님이…….”

그제야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본 맥도웰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 피 때문에 그런 건가? 걱정 말게나. 이건 내 피가 아니라… 마신숭배자들의 것이라네.”

어쩐지 ‘마신숭배자’라는 단어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럼! 이 맥도웰이 고작 그런 이교도들 따위에게 당할 성 싶은가? 하하, 걱정도 팔자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내가 제안한 건 생각해 보고 있…….”

요한이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학장님. 지금은 그보다 피해자들을 살펴야 할 거 같습니다. 전투의 여파 때문인지 B 클래스와 C 클래스 건물 윗부분이 무너져 내린 것 같군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남아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군. 내가 경솔했네. 지금 당장 움직이지.”

크리스 발렌타인이 앞으로 나섰다.

“청십자회 주교 크리스 발렌타인이라고 합니다. 저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신의 사자를 여기서 뵙는 구만.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학생들부터 찾도록 합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돕겠다고 얘기를 꺼내려고 하자,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요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교수들이 해결하겠습니다. 자일 군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세요.”

“……예.”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멀어지는 시야 속에서 맥도웰이 한쪽 다리를 부자연스럽게 절뚝이고 있었다.

‘다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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