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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93화 (93/180)

93화

나는 평온한 얼굴을 유지한 채 그를 바라봤다.

‘떠보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추기경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저도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방금 친절한 미소를 보였던 인물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한 기운.

그의 눈동자가 뱀처럼 일렁였다.

“자일 지그하르트. 제국을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의 후예. 허나 그 실체는 흑마술사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설마…… 진짜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 어떻게…?’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전에 그 어떤 얘기도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추기경.

그리고는 대뜸 내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정말 나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일까? 어떻게? 어디서 새어나간 거지?

아니.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저 단순히 떠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 나지? 많고 많은 학생들 중에 왜 하필 나를 콕 집어서 떠보는 걸까.

나를 의심할 만한 정보를 얻은 걸까? 내가 동요하는 것을 노린 걸까?

만약 정말 내 정체를 알게 된 거라면…….

‘죽여야 하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라? 어떤 오해 말씀이십니까?”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의 동요를 들키지 않기 위해 평온함을 연기했다.

“저는 흑마술사 따위가 아닙니다. 비록 피의 저주로 인해 몸 안에 일부 마기가 흐르고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까 전 주교님이 검증해주었습니다. 추기경 님께서는 어째서 저를 흑마술사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그것은 신을 모시는 성직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미소였다.

“그거야 저 또한 마신숭배자이기 때문이지요.”

“…….”

충격적인 발언에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한 평생 주신 라파엘을 모시며 살아오신 분이 마신을 숭배하다니요. 제가 비록 교단과 연이 깊지는 않지만, 추기경께서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라파엘 교단의 추기경은 교황을 제외하고 총 11명이 존재한다.

교단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주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신앙심과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

성별, 신분, 나이를 막론하고 오로지 자신의 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가 그들이 추기경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다.

신을 향한 사랑만 증명이 된다면 그 누구도 추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라파엘 교단의 이념이다. 실제로 이단심문관 출신임에도 추기경이 된 인물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대외적인 이미지일 뿐.

내가 보기에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이능을 지니고 있는 광신도들이다.

11명 모두가 신의 사도라고 불리는 인물들이기에 그들이 지닌 힘이 어느 정도인지 나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어쩌면 지니고 있는 무력 자체는 별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신성력과 가호, 권능은 충분히 경계할 만하다.

“하하.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답니다. 비단 흑마술사라면 모든 것을 경계할 줄 알아야지요. 저 또한 큰 결심을 하고 그대에게 이러한 얘기를 하는 것이랍니다.”

“……왜 제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주신 라파엘을 증오합니다.”

“…….”

“표정을 보아하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계시는 군요.”

일반적으로 흑마술사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성기사들 혹은 성직자들이라고 한다.

마기를 무찌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성마술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성기사가 흑마술사보다 더 뛰어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소 속성으로 비교하자면 ‘불’과 ‘물’이 있다. 누구는 불이 더 강하고, 누구는 물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답은 더 ‘강한’ 쪽이 ‘강하다’이다. 불이 강하면, 물을 증발시키고, 물이 강하면 불을 꺼트리는 것이다.

불과 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극이다.

마기와 신성력도 마찬가지다.

성(聖)과 마(魔)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상극이다.

결국 더 강한 쪽이 이기는 것이다.

“저는 오랜 세월 라파엘 교단에 몸을 담았습니다. 추기경이 되기 이전에 저는 그저 한낱 신자에 불과했죠. 이제 막 사제가 된 젊은 청년은 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신학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라파엘 또한 제 마음을 알아주시리라 믿었었죠. 저는 그를 사랑했으니까요.”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허나 저 따위가 이해하기에 라파엘의 가르침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른 방식으로 신에게 은혜를 갚고자 결심했죠. 라파엘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이교도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이단심문관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을 만났죠. 이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마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지옥이라고 부르는 ‘게헤나’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도…….”

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눈은 섬뜩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나 표정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과연. 지금 내게 꺼내는 말들이 사실일까?

아직까지도 그런 의문들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아! 라파엘은 우리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그들은 우리를 우롱하고, 능멸하며, 조롱할 뿐. 우리의 창조주도, 우리의 부모도, 뭣도 아니었습니다! 날조된 정보들로 인해 인간들을 세뇌하여 그 신앙심을 먹고 자라는 기생충일 뿐. 과연 그들이 정말 선(善)일까요? 그들이 정말 선(善)한 신들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왜 그렇게 많은 고통과 불행들이 존재하는 거죠?”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왜 그렇게 많은 악인들이 존재하는 거죠? 그럼에도 그들은 왜 보고만 있는 것입니까? 왜 직접 나서서 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까?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체 왜! 방관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숨긴 채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더욱 더 솔직하게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단 한 분. 지혜와 광기의 마신이신 아스타로트 님만이 제게 이러한 진실을 알려주시었죠. 마신(魔神)은 폭력적이고, 원초적이고, 진취적일지언정 그들처럼 인간의 신앙심을 모으기 위해 거짓된 정보를 주입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광기의 마신, ‘아스타로트’.

그녀의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인간계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마신일 텐데….

지혜와 광기라는 모순된 개념을 상징하는 마신으로서 같은 마신들끼리도 상종하기를 꺼리는 마신이라고 알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이유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인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존재.

그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렇기에 저는 새로운 신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신은, 우리를 사랑하는 신은, 우리가 믿고 있던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요. 인간들에게 더 이상 낙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어서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얘기지요. 그러니 우리가 새로운 낙원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광기(狂氣)로 점철된 그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자일 지그하르트. 영웅의 후예여.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추기경 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란 무엇입니까?”

그가 미소를 지었다.

“구도자(求道者)들입니다. 이 거짓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나갈 인류의 희망.”

“왜 하필 저에게 이러한 제안을 하시는 것이지요?”

“그대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으니까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제 몸에 마기가 흐르는 것은 맞지만 이것은 선조 때부터 이어진 저주의 일종일 뿐. 오히려 저는 이것을 명예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저의 선조께서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냈다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추기경 님. 저는 마신숭배자가 아닙니다.”

내 선택은 일단 부정이었다.

설령 그의 말이 전부 진짜고, 그가 진짜 마신숭배자라고 하더라도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그의 제안을 수락할 수 없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 제안도 아니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역시 그런 선택을 하신 건가요.”

“예.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전부 진실이라 하여도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그릇되었다면 제가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주신 라파엘의 자식이니까요.”

“하하. 참 탐이 나는 인재였는데 말이죠. 상징성으로도 이만한 인물이 없고… 아카데미 내에서 평판도 좋은 것 같은데… 이거 아쉽게 됐군요.”

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격입니다.”

“네?”

그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속여서 미안합니다. 지금까지 했던 얘기는 전부 거짓입니다. 처음부터 그대를 시험하려고 이러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대가 어떤 인물인지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이런 시험을 하신 겁니까?”

“그대가 마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대의 핏줄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요. 허나 그것만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를 일 아닙니까? 그대가 영웅의 후예라는 가면을 쓴 흑마술사일지.”

“…….”

“영웅의 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넘기기에는 시국이 좋지 않습니다. 제국 곳곳에서 마신숭배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암암리에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내에서 일어난 사건만 해도 그렇지요. 또한 그대는 이미 이블(evil)과도 직접 조우했던 경험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영웅의 후예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그의 주위에서 마신숭배자들과 관련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입학시험에서 그를 담당하던 교관이 이블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시험장에 난입해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그의 몸속에는 마기가 흐르고 있군요. 이 모든 것들을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쩐지 아귀가 너무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입학시험에서 마기를 드러낸 것. 레이첼 교관이 이블이 된 것. 그리고 시험장에 난입했던 것.

이 모든 것들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이제 오해는 다 풀리신 겁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확신이 서는 군요. 그대는 흑마술사 따위가 아닌, 선조의 의지를 계승한 진정한 영웅의 후예라는 것이. 그런 그대이기에 부탁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상황에 갑자기 부탁이라고?

“무엇입니까?”

“저의 눈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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