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평소에 그와는 다른 느낌.
이 느낌의 정체는 위화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도, 기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미건조한 말투.
“제가 뭔가 실수한 겁니까……?”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네. 명색이 아카데미의 한 개 학부를 책임지는 교수가 그런 이교도놈들을 상대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창피한가! 그래서 최대한 숨기려 했었는데 그것을 자네가 보았구만.”
“아……. 죄송합니다. 딱히 의도하고 본 건 아니고, 그저 우연히 보았습니다.”
“죄송할 거까지야 있겠는가. 부상을 입은 내 잘못이지.”
“저 혹시 질문 하나드려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나.”
“대체 그 이교도놈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학부장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던 것입니까?”
또다.
순간적으로 그의 시선이 서늘할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다.
무엇인가 건들이면 안 되는 것은 건들인 건가.
어쩌면 방금 내가 내뱉은 말들 중 그의 역린을 건드릴만한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구만.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조차도 상당히 애를 먹을 만큼 녹록치 않은 상대였다는 거네.”
“그렇군요…… 그래도 학부장님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네. 자네야말로 칭찬을 들어야지. 그렇게 어수선한 와중에도 학생들을 구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네. 정말 대단해. 그야말로 영웅의 귀감일세. 자네 나이 때의 나는 알아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걸세. 누구든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 법이니까.”
“과찬이십니다.”
“겸손한 것도 좋지만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게나. 그건 그렇고 내 제안의 대답은 아직도 생각중인건가?”
역시 이걸 물어보기 위해서 부른 건가….
안타깝지만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는 기사를 희망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제자가 된다면 수많은 혜택과 더욱 빠른 성장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죄송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거절인건가…. 왠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아쉽군. 그대야 말로 나의 검을 완성시켜줄 인재인데 말이지.”
“저는 기사가 아닌 마법사가 되려고 합니다.”
맥도웰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대는 마법보다도 무의 자질을 타고 났다네. 그만한 재능을 그대로 썩힐 셈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내게는 여러 제자가 있지. 그들 또한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자네만큼은 아니라네. 그렇기에 내가 더욱 자네를 원하는 것이기도 하지.”
“…….”
“내 첫 제자는 재능보다도 욕심이 더욱 많은 아이었다네. 좋지. 욕심. 인간이란 무릇 강렬한 열망을 지니고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법이라네. 난 그게 마음에 들었네. 허나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 아이의 욕심은 커다랬지. 나로서는 그 아이의 욕심을 모두 채워줄 수 없던 듯 하네. 결국 그 욕심이 화를 불렀지…….”
그에게 많은 제자가 있다는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 제자 분은?”
“죽었다네……. 본인이 지닌 재능보다 커다란 욕심은 도리어 화를 부르는 법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네. 모두가 나와 같은 길을 걸을 수가 없던 것이야. 나는 후회했네. 내가 제자를 더욱 잘 가르쳤다면, 내가 그 아이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스승이었다면, 내가 그 아이를 바로 잡아주었다면… 그 아이는 그토록 비참한 결말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였지.”
맥도웰의 제자가 죽었다고…?
“그 제자 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자신을 증명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헤롤드 산맥으로 향했네.”
“헤롤드 산맥이라면…….”
“마경(魔境)이라고 불리는 곳이지. 험한 산세와 온갖 마물들, 그리고 용이 존재하는 곳이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이 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네. 그곳에 실제로 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헤롤드 산맥의 지배자. 지룡(地龍) 아게시오의 래어가 그곳에 있지. 무모한 선택이었어. 허나 그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네. 아무리 말려도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러한 운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나의 제자가 된 것도, 그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도…….”
헤롤드 산맥의 지배자 아게시오라…. 지룡(地龍)이면 땅 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용인가?
그의 눈동자가 앞에 있는 호수처럼 고요하게 일렁였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구만. 후회로 얼룩진 늙은이의 푸념이라 생각해 주게나.”
“……애도를 표합니다.”
“고맙네. 그 아이도 지금쯤 ‘폴크왕그르(Fólkvangr)’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 아니, 꼭 그랬으면 좋겠네.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부모가 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고 처음 생각하게 해준 아이였네. 맥도웰 학장이 제자들을 끔찍이 아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게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네. 나에게는 모두가 자식 같은 아이들이거든. 첫째를 그리 허망하게 잃었으니 더욱 싸매고 돌게 되더군. 또 나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아이들이 잘못된 길을 걷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나의 선택이고, 업보인 것을. 그렇기에 나는 한 번 제자로 받아들인 이들을 평생을 다해 지킬 걸세. 내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저 정도로 제자를 끔찍하게 아끼니 기사 학부를 선택한 학생들이 그에 눈에 들기 위해서 필사적인 것도 이해가 됐다.
막말로 그의 제자만 된다면 이후 삶을 살아가며 마주칠 장애물들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으니까.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일 지그하르트 군. 정녕 내 제자가 될 생각은 없는가? 그대라면 내 모든 것을 전수해줄 수 있다네. 그리고 그대의 미래 또한 전력을 다해서 책임지겠네. 그대가 마법을 배우고 싶다면 그 또한 용인해줄 것일세. 그리고 마법학부 교수에게 따로 부탁을 하지. 그대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것일세. 살로몬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학부장이자 검귀 맥도웰의 수제자로서 그대는 모든 것을 거머쥐게 될 것이야.”
그의 눈동자에 피어난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것이 정녕 나를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욕심일지, 혹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토록 저를 생각해주시는 것은 정말 너무 감사하고, 또 영광이지만…… 아까도 말했듯 저는 마법사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마법을 가르치는 분에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그하르트르라는 분에 맞지 않는 핏줄을 타고 태어났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생각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고, 느낀 뒤 천천히 결정하고 싶습니다.”
맥도웰의 표정이 돌변했다.
방금까지 보여주었던 따뜻한 미소는 온데 간데 없었고,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 크루이프 교수 때문인가? 그자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한 거지? 내 제자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것인가? 자신이 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아니면 방금 내가 들려주었던 제자의 애기를 한 것인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맥도웰.
당황한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오해이십니다. 요한 크루이프 교수님께서는 오히려 학장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라 하셨습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는 것이지?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네. 왜 이러한 기회를 져버리려고 하는 것인가? 본인의 재능을 믿고서 그러는 것인가? 스승 따위는 없어도 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저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 말씀하신 생각 같은 건 절대 해본 적이 없습니다!”
“후우…. 내가 잠깐 흥분했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랬네. 그렇다면 자네가 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부와 명예, 나아가 권력도 난 자네에게 줄 수 있다네. 그럼에도 싫다는 건가?”
“제가 바라는 것은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이 아닌……. 생존, 그리고 귀환입니다.”
“생존과 귀환이라…….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군. 그래. 어찌됐건 자네의 의견은 잘 알겠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걸세.”
“……제가 학장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린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이제 와서 죄송은 무슨…. 괜찮네. 그저 안타까울 뿐이야. 자네라면 사딘 그 아이와 더불어 서로에게 좋은 경쟁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번에는 내 얼굴이 굳어졌다.
“혹시 말씀하신 사딘이라는 자가, A 클래스의 사딘 룬델 공자를 칭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며칠 전에 그 아이가 내 제자가 되고 싶다며 직접 찾아왔었네. 제국 최강의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검성(剣聖) 하이덴 룬델 경의 핏줄이니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본인 또한 열망이 강하니 수락했다네. 문제 있는가?”
하……. 이 늙은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간을 보고 있었구만?
자칫하면 사딘 룬델 그 빌어먹을 새끼랑 사형제가 될 뻔 했다.
“아니요. 누구를 제자로 받든, 그것은 전적으로 학장님의 선택이시죠.”
“그렇지. 내 선택이지. 그럼 할 얘기는 다 한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네.”
“예. 들어가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맥도웰 학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절뚝거리던 다리가 지금은 놀랍도록 멀쩡했다.
‘지금껏 보여준 것 역시 전부 연기였나.’
그와 직접 대화를 하고 나니 그가 내게 보여주었던 호의는 전부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교활한 늙은이. 본성은 어디가지 않는 법이지.’
새삼 그가 왜 검귀(劍鬼)라 불리며 대륙 전체에 악명을 떨친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괜히 기분만 잡쳤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찝찝함이 가시지를 않았다.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축제는 이제 다 끝난 듯 했다. 답답함에 공원을 몇 바퀴 돈 후 기숙사로 향했다.
‘하필 사딘 룬델을 제자로 들이다니……. 좋게 지내기는 글렀군.’
앞으로 더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숙사 근처에 도착하니 연무장 쪽에서 기합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프레이가 연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상당히 집중하고 있는지 내가 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연무장 바닥은 검상(劍傷)들이 가득하다.
나는 근처에 앉아 그녀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정직하고 올바른 자세.
그녀가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황금빛 마나가 아름답게 흩날렸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그녀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목검을 들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랑 한 번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