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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99화 (99/180)

99화

7일 간에 축제가 끝나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이 시작됐다.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눈 뒤에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듣는 수업이었기에 반 아이들 대부분은 상당히 열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정작 담당 교수인 요한이 가장 의지가 없어 보였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축제 기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만끽할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갑작스럽게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휴식은커녕 평소보다도 더욱 바쁜 하루를 보냈다는 것 같았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는 개인적으로 요한을 찾아갔다.

요한의 교수실.

똑똑.

노크를 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뻔하지.’

나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요한. 나는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수님.”

“…….”

“요한 교수님.”

“…….”

내 부름에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무명이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했다.

“교수님. 자일 지그하르트 군이 찾아왔습니다.”

무슨 알람시계라도 되는 것처럼 무명의 말에 반응하는 요한.

그제야 고개를 든 요한이 기지개를 핀 뒤 크게 하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자일 군?”

그러더니 다시 눈을 비비고 책상에 엎드렸다.

“교수님.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요한이 엎드린 채로 대답했다.

“다음에 하시죠. 다음에.”

“다음에 언제 하실 겁니까?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자. 모르십니까?”

“…오늘 할 일도, 내일 할 일도 미룰 수 있으면 미루는 게 최고입니다.”

정곡을 찌리는 그의 말에 잠시 말문을 잃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맥도웰 학장님의 제자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번에는 꽤 흥미가 생겼는지 벌떡 일어난 요한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입가에 늘러 붙은 침 자국이 매우 적나라하게 나를 응시했다.

“…제자 제안을 거절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왜 거절하셨죠? 분명 자일 군에게도 꽤 좋은 기회였을 텐데… 학장 자리라는 게 자일 군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만만한 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저 저와 맥도웰 학장님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요한이 흥미로운 기색으로 말했다.

“뭐. 그것은 자일 군의 선택이니 제가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근데 구태여 이 사실을 제게 찾아와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약간에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교수님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요한이 심드렁한 태도로 대답했다.

“마법이라면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죠?”

“정확히는 교수님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고 싶습니다.”

“…제 경험과 지식 말입니까?”

“예. 미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저는 기사를 지망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학년이 되면 전공으로 마법을 선택할 거지만 교수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싸우는 방식이 평범한 마법사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교수님은 저희 아카데미의 유일한 마투사이시지 않습니까?”

“마투사라…… 그런 건 그냥 붙이기 나름이라고 저번에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 이외에도 마법을 사용한 전투에 능한 교수님들이 여럿 있을 텐데요.”

“제가 원하는 건 교수님의 전투 방식입니다. 교수님의 전투방식이야 말로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가장 근접한 형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은 마법 뿐 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술에도 능통하시지 않습니까?”

“……흐음.”

“저는 마투사가 되고 싶습니다. 정확히는 그런 형태의 마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근접전과 원거리 모두 다재다능한 마법사 말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요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자를 들인 적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를 제자로 들여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앞으로의 수업에서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마투사로서의 전투 방식을 배우고 싶습니다.”

요한의 뒤편에 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조교 무명이 입을 열었다.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그가 먼저 입을 연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교수님. 제 생각에도 자일 군이라면 교수님이 추구하는 전투 방식과 가장 잘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르케에 생각이 그러합니까?”

“소피 마르틴입니다. 교수님.”

요한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내게 물었다.

“자일 군이 말하고자 하는 얼추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가르칠 생각이었으니까요. 저희 S 클래스는 다른 클래스에 비해 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게 맞는 형태로 지도할 생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연한 얘기지요. 그래도 명색이 교수 아닙니까. 귀찮아도 해야 할 건 해야죠. 그게 어른이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른 같은 건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평생 어린이로 살 걸……”

그게 지 마음대로 되는 거라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어린이였을 것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군요. 맥도웰 학장님의 제자 사랑은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자일 군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거절 할 이유가 있나요? 학장님께서 지금까지 보인 관심을 생각하면 아마 그 이상의 조건들도 충분히 보장해준다고 했을 거 같은데 말이죠.”

“말씀하신대로 학장님께서 내건 조건들은 하나 같이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혹하는 것들 뿐 이었습니다. 그대로 학장님의 제안을 수락하였다면 제 미래는 보장된 것과 다름이 없겠죠. 허나 저는 제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 싶습니다. 다른 누구의 인생도 아닌, 제 자신의 인생이니까요.”

요한이 피식 웃었다.

“…미련하지만 마음에 드는 군요.”

그와의 대화를 통해 문득 맥도웰의 첫 번째 제자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 혹시 맥도웰 학장님의 첫 번째 제자가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요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번째 제자요? 그 영감님의 제자가 한 둘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요…. 워낙 욕심이 많은 양반이라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죄다 제자로 들이려고 했거든요. 뭐, 그게 꼭 나쁘단 건 아닙니다만.”

“그렇긴 하죠…….”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다름이 아니라 맥도웰 학장님의 첫 번째 제자였던 분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 얘기를 듣자 요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죽었다고요?”

“네.”

“그 얘기 확실한 겁니까? 누구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거죠?”

돌변한 그의 태도에 당황한 내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맥도웰 학장님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심각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골똘히 고민하던 요한이 조교 무명에게 물었다.

“무명(無名). 이 이야기 알고 있었습니까?”

웬일로 명칭을 틀리지 않는 걸 보니 사실 지금까지는 고의적으로 틀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욱 커졌다.

“네. 그 당시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이야기였습니다. 아카데미 졸업 후 모험가 길드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던 도중 불의에 사고를 당했다고…….”

요한이 나지막이 말했다.

“사고라…… 이 사실을 알았다면 자일 군에게 제자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라는 얘기는 안 했을 것 같네요. 잘하셨습니다.”

“그런가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보기 드문 진지한 얼굴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눈치를 보던 나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저… 그럼… 대화는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내일 보도록 하죠.”

“넵. 고생하십쇼. 조교님도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무명이 나를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하하. 자일 군도 고생이 많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방문을 열려는 순간. 등 뒤에서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일 군.”

“네?”

“아마 제가 최초로 제자를 받게 되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일 지그하르트 군일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방에서 나온 나는 기숙사가 아닌 아카데미 정문으로 향했다.

어제 새벽.

뢴달 하르만으로부터 급히 전할 말이 있다는 편지가 왔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뽑아 들었던 카드. 거기에 낫을 든 사신과 부러진 검이 있었다 했지?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하네. 부러진 검은 저 여인인 셈이지.

-자네의 죽음은 확정이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죽게 될 것이야. 이건 운명일세.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들을 애써 무시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 * *

하르만 저택에 도착한 나는 로즈의 안내를 받아 뢴달 하르만의 집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심각한 얼굴을 한 뢴달 하르만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자연스레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우리 하르만 백작 나으리.”

“……기레스 하르만에게 의뢰를 했던 세력이 접촉해왔다.”

드디어 연합이 움직였다.

나는 한층 더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말해봐.”

“차기 가주로 내정되어 있던 기레스 하르만의 행방, 기레스 하르만에게 붙여주었던 외팔 검사의 생사여부, 자신들이 의뢰했던 임무의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그래서 뭐라고 답했지?”

“기레스 하르만은 나와의 가주 쟁탈전에서 밀렸다고 답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문 내에 일이니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고 단호하게 잘라냈다. 그쪽에서도 의아함을 느끼긴 하지만 우선은 수긍하는 눈치더군. 허나 외팔 검사의 생사여부에 대해선 모른다고 대답했다. 당연하게도 그쪽은 나를 의심하는 눈치고.”

뢴달 하르만의 무력으로는 하늘이 무너져도 그 외팔 검사를 이길 수가 없다.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더욱 추궁하는 것일 터.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이렇게 하지. 그들이 찾는 외팔 검사는 죽었다고 전해라. 그리고 너희들이 원하는 피해보상은 처음 받았던 착수금의 절반 그 이상은 못 준다고 확실히 말하도록 하지.”

뢴달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외팔 검사를 죽였다고 전하라는 것이냐? 대체 누가 그를 죽였다고 말하라는 것이지?”

“나다.”

“……그대 말인가?”

“그래. 허나 그를 죽인 것은 자일 지그하르트가 아니다.”

뢴달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미안하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길 바란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를 죽인 것은 살로몬 아카데미의 신입생 자일 지그하르트가 아닌 72교단의 새로운 교주인 아벨 크로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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