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뢴달 하르만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해제한 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얼굴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흉터.
그러나 전보다는 조금 더 옅어진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뢴달 하르만이 깜짝 놀랐다. 나는 드디어 내 정체를 눈치 챘나 싶어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알겠나? 내 정체가 무엇인지? 그래. 나는 사실 용사 파티의 보조 마법을 담당하던…….”
“끔찍하군……. 본판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흉터가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어. 대체 왜 그런 흉터를 지니고 있는 겐가?”
“나를 모르겠나?”
“그걸 알아야 하나?”
“…….”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제국의 어둠을 지배하는 살수 조직의 수장이라는 놈이 용사 파티의 일원을 못 알아본다고?
이게 말이 돼?
이쯤 되면 못 알아봐주는 게 서운할 지경이었다. 그때 뢴달 하르만의 곁에 있던 로즈가 입을 열었다.
“이 분은…… 혹시 용사 파티의 보조 마법사 아벨 크로이 경입니까?”
그제야 나는 기쁜 듯 소리쳤다.
“그래. 내가 아벨 크로이다.”
그 얘기를 들은 뢴달이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 붙여 내 얼굴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네가 아벨 크로이라고……? 흐음…… 보고 받았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아벨 크로이는 인간으로 볼 수 없는 끔찍한, 마치 고블린이나 오크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하였는데 거기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다고…… 정말 네가 그 아벨 크로이가 맞나?”
일부러 뼈아픈 말들만 골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우선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내가 아벨 크로이다.”
“이거 놀랍군……. 전설 속 영웅의 후예가 사실 흑마술사였다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용사 파티의 일원인가?”
로즈 또한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놀랍군요……! 가주. 저희 푸른달도 더욱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너희들 얘기는 너희끼리 알아서 하시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나는 그들에게 내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다. 살로몬 아카데미의 재학 중인 자일 지그하르트는 그 날의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거야. 하르만 백작 가문과는 우연한 계기로 약간의 연을 쌓았을 뿐 인거고.”
“이해했다. 새로운 신분을 사용하겠다는 얘기군.”
“그래. 그러니 그들에게는 그렇게 전해라. 그리고 다음에는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러 가겠다. 아마 그쪽에서도 나와의 접선을 원할 거야.”
“괜찮겠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의뢰도 방해하고, 거기에 자신들 쪽 부하도 죽인 셈인데?”
“물론. 마냥 평화로운 대화가 되지는 않겠지. 그러나 우리 쪽도 명분은 있다. 그들에게 의뢰를 직접 받은 것은 현 가주인 뢴달 하르만이 아닌 가주 후보에 불과했던 기레스 하르만이 아닌가? 그를 믿고 투자한 것은 그쪽이지. 우리가 아니다. 가문 내 서열 싸움이야 어차피 그들이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 정도는 귀족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그렇긴 하다만.”
“너는 가주가 되기 위해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너를 가주로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장애물들을 치운 것 뿐 이다. 허나 그 과정에서 기레스 하르만이 독단적으로 의뢰를 받았고, 비록 우리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는 현 가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지.”
“…도의적 책임이라. 최소한의 겉치레만 하라는 것인가.”
“머리 회전이 빨라서 좋군. 그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최대한 부딪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도발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도 웬만하면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정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면 그때는 나를 부르도록.”
“…알겠다. 근데 그대가 말한 대로 하게 되면 결국 그대가 이끄는 교단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상관없다. 오히려 그걸 노린 것이기도 해. 어차피 한 번쯤은 직접 부딪쳐야 할 산이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
“…그대는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군.”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뢴달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칭찬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할 게 있다.”
“뭔데?”
“오늘 아침, 칼리고 백작가에 심어두었던 푸른달의 살수 두 명과 연락이 끊어졌다.”
“……연락이 끊어졌다고?”
“정확히는 실종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원인은?”
“현재 조사 중이긴 하나 단서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표정의 변화는 딱히 없었으나 그의 말투에서는 진한 분노가 그대로 묻어져 나왔다.
“……할튼 백작은 무사하신가?”
뢴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 별 다른 이상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곧장 보고하도록 하지.”
“그래. 수고 좀 해줘.”
아카데미를 나올 때부터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도저히 가시지를 않았다.
뢴달과 얘기를 하고 나니 오히려 더욱 증폭된 기분이었다.
‘하아……. 찝찝해 죽겠네.’
그때였다.
【계약자여. 지금 당장 이곳으로 와야 할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다급히 울리는 아스모데우스의 목소리.
【프레이 칼리고가 지금 라파엘 교단으로 이송됐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곧장 마법을 발동시켰다.
“──초가속(超加速).”
지이이잉!
전신을 뒤덮는 보랏빛 마나.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하며, 전신에 깃든 혈액이 가파르게 용솟음친다.
쿵! 쿵! 쿵!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정지한 것처럼 느리게 흘러가고, 마나가 스며든 나의 뇌는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가열한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한 뢴달이 물었지만 나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급하게 저택을 빠져 나갔다.
“자일 지그하르트!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인가!”
* * *
후우우우웅!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발을 한 번 내딛을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지나가며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방금 아스모데우스가 해준 얘기들로 가득 찼다.
‘……프레이가 라파엘 교단으로 이송됐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어째서……? 대체 무슨 이유로 프레이가…….’
‘침착하자. 침착해.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착오가 생긴 게 분명해. 우선…….’
어느새 기숙사 앞에 도착한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누군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벨라 트레이였다.
그녀는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나를 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감 선생님!”
내가 그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들리지 않는 것인지 혹은 무시하는 것인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대련을 할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살기(殺氣)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기숙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쪽에서 울음소리와 고함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 개X끼들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라고!!!!! 이거 놔!!!!”
“샬럿! 제발 좀 진정하십시오!”
안쪽을 바라보니 반쯤 뒤집어진 눈동자로 괴성을 지르는 샬럿과 안간힘을 다해 그를 말리는 이든이 눈에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칼.
눈 밑에 자욱한 눈물자국….
불길한 예감은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이든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곧장 나를 향해 뛰어오는 샬럿.
분노와 슬픔, 온갖 감정이 뒤섞여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손을 뻗어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간절함과 독기가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일!!!! 프레이가……! 프레이가 사람을 죽였대……!! 이단심문관들이…… 그 개X끼들이…… 프레이를 끌고 갔어…….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오오!!!! 뭔가 잘못 된 게 틀림없어! 빨리 어떻게든…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내야 돼… 그래. 아버님. 아버님에게 연락을 하면…… 아니야…… 아버님이 내 부탁을 들어주실 리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자일! 자이이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충격이 상당한지 그녀의 말에는 앞뒤가 없었다.
횡설수설하는 샬럿의 어깨를 붙잡고 마력을 불어넣은 목소리로 말했다.
“샬럿. 진정해.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 프레이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도와줘!!! 제발 프레이를 도와줘!!! 너라면 할 수 있지?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응? 지금까지 어떻게든 다 해결해냈잖아? 그러니까 어떻게든 프레이를 구하란 말이야!!!!!”
그러나 이미 그녀는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든. 상황 설명해.”
상대적으로 침착한 이든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경위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제가 들은 대로만 얘기하자면…… 프레이 님께서 사람을 죽였고, 거기에 마신숭배자라는 의혹까지 받아 지금 막 라파엘 교단의 이단심문관들에 의해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프레이가 사람을 죽였다고……?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감정의 동요로 인해 목소리가 떨렸다.
“저도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프레이 손에 죽었다는 인간이 누군데?”
“리델이라고 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 있지 않습니까. 사딘 공자님과 함께 다니는…….”
생소한 이름이었으나 이내 기억해냈다. 사딘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추종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프레이가 사람을 죽였다니, 그 프레이가…?
내가 아는 누구보다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혹시 그 자리에 사딘 룬델도 같이 있었나?”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목격한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프레이 님과 사딘 룬델 사이에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고, 거기에 끼어든 리델을 프레이 님이…….”
“막아.”
“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단으로 이송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나는 이든을 지나쳐 그대로 계단을 오른 뒤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안쪽을 바라보자 그녀의 짐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라는 사람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 설령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그녀가 죽였다고 하여도 이렇게 빠르게 상황이 진행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딘 룬델…….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뚝. 뚝.
내 손아귀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프레이가 사용하는 침대에 앉아있던 아스모데우스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만들다 만 인형에 불과했지만 어째서인지 내 눈에 비친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겠는가? 계약자여.】
“뭘 물어. 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