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공간전이 스크롤을 통해 칼리고 백작가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살폈다.
“……조용하군.”
칼리고 백작가가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저택 주변을 지키는 기사들, 사용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이질감이 들 정도로 고요하다.
정원을 돌아보던 나는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무엇인가에 찢긴 것인지 전신이 난도질 당해있다.
‘프레이는 어디있지……?’
내가 만약 그녀였다면 이단심문관들에게 도망쳐서 올 곳은 이곳 백작가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선 저택 안쪽을 살피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씨X. 이게 뭐야.”
코를 찌르는 지독한 피 냄새.
1층 곳곳에는 사용인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너부러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습격이라도 받은 것일까.
【아래쪽에서 마기가 느껴지는 구나.】
저택의 지하에서 미약하지만 마기가 느껴졌다. 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 지하실로 향했다.
커다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을 보니 자물쇠가 떨어져 있었다. 그 앞에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절명한 시체가 놓여 있었다.
나는 시체의 눈을 감긴 뒤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양쪽에 켜진 촛불.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단이었다.
그때.
하녀의 집 지하실에서 보았던 제단과 동일한 형태였다.
그곳에는 짐승과 마물, 인간 등의 시체가 놓아져 있었고 의식용으로 쓰인 단검과 붉은 핏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뒤편에 있던 석상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대체 이곳에 왜 이런 게 있는 걸까.
설마……. 칼리고 백작가가 정말 마신 숭배자였던 걸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처음 내가 저택에 방문했을 때 이런 곳이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단은 내가 저택에 방문한 이후에 생긴 거라는 얘기였다.
【방금까지 의식을 치른 듯 하군. 허나 너무 조잡하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놓은 것 같구나.】
그녀의 말에 나도 동감했다.
마기가 느껴지지만 그 기운은 미약했다.
무엇인가를 소환할 의도였다면 적어도 그 잔재는 남아있어야 할 터.
흑마술을 사용한 장본인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광경을 연출한 것처럼.
제단에 쌓여있는 인간들의 시체 중에는 저택 내부의 사용인들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하나 같이 잔혹한 형태였는데 숨길 수 없는 악의(惡意)가 느껴졌다.
【더 이상 볼 건 없는 것 같구나.】
고개를 끄덕인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사방이 시체였다.
저택 내부는 놀랍도록 고요했다.
복도를 걸을수록 강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조잡한 연출이네.”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복도와 남은 방들을 뒤져 보았지만 아직까지 프레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일까.
그 사이에 잡히기라도 한 것일까.
내가 지금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게 맞을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여유롭게 저택을 수색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녀를 찾으러 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어쩌면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녀는 내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괘념치 말아라. 잡념이 많아지면 길을 잃는 법이니라. 기다리다 보면 그 계집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그래.
괜히 그녀를 찾으러 나섰다가 길이 엇갈리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다.
‘혹시 몰라 로만을 보내놓았으니 어떻게든 연락이 오겠지.’
최우선은 그녀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이었기에 일단 수색에 능한 로만을 보내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머릿속을 헤집어대는 잡념을 떨쳐내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3층.
복도는 다른 층에 복도들과 다르게 깔끔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빈 방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았지만 시체도, 사용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주의 방이었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가주의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
시야에 들어온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뭐지……?
내가 잘못 본 건가…?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천장에 목을 맨 노인.
그것은 할튼 칼리고였다.
그가 목을 맨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천근같은 발을 억지로 옮겨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천장 위에 매달린 그를 꺼내 바닥에 놓아주었다.
“……할튼 경.”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마기.
그리고 죽음의 기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 그 자는 이미 죽었느니라.】
머리가 정신없이 소용돌이친다.
…어째서?
할튼 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나?
머릿속에 생겨난 수 백 개의 물음표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허나 그에 대한 대답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옆에 놓아진 검이 눈에 들어왔다. 검날에는 핏물이 늘러 붙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방안을 살폈다.
그의 침대 위에 새하얀 쪽지가 놓여있었다.
쪽지의 겉면에는 ‘유서’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
.
.
.
나는 괴물입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죄악을 저질러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추악한 이면을 죽음으로서 고백하고자 합니다.
나의 이름은 할튼 칼리고. 칼리고 백작 가문의 가주이자, 소드마스터 라고 불린 사내입니다.
나는 한 평생 검을 휘둘렀습니다. 강해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경지에 오르고, 벽을 넘고,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사람들이 내게 해주는 칭찬과 환희, 그리고 부러움에 가득 찬 눈빛들이 나는 좋았습니다.
그 우월감은 마약과도 같았고, 그 희열은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이상의 성장은 없고, 내가 믿고 있던 검은 정체된 것을 넘어 오히려 퇴보하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검에 받친 내게 그 사실은 너무도 가혹한 처사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마신의 힘을 빌렸습니다.
저택 지하실에 제단을 세워 매일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택의 사용인들을 제물로 받치고, 인근 마을에 주민들을 제물로 받치고, 내 핏줄을 제물로 받쳤습니다.
이미 달콤한 마약과도 같은 우월감을 맛본 저로서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신숭배자가 되어 마기를 얻은 저는 다시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할튼 칼리고는.
영원히 소드마스터여야 했기에.
퇴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힘에 취해, 이러한 죄악을 저지르는 것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아마 주신 라파엘께서도 저를 용서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의 죄악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기가 주는 힘이란,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마기라는 힘에 중독이 되어 있었습니다.
허나 쉽게 얻은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
마기를 통해 소드마스터가 된 저의 육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희생시키며 얻은 힘의 말로는 결국 덧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죽음이 가까워지고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저는 악마이고, 마신숭배자이며, 괴물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이들을 잡아먹은 마귀입니다.
인간들의 목숨을 희생하며 만들어진 거짓된 소드 마스터입니다.
이 또한 그저 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최후의 최후는 이런 식으로라도 저의 죄를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저라는 인간이, 이토록 악독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림으로서 조금이라도 제 죄를 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건, 오늘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마기에 시달리고 있던 저는 결국 광증(狂症)을 견디지 못하고 저택에 사용인들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우습게도 저 자신은 그러한 사실을 인지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제가 쥔 검과 서늘한 시체가 된 그들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었지요.
그것을 보았을 때 저는 비로소 결심했습니다.
아.
나라는 악마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죄송합니다. 끝까지 이기적이고, 지독한 인간이라. 돌이켜 보면 저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저 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과분하겠죠.
저는 그런 괴물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앗아간 모든 생명들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용서를 구하며, 할튼 칼리고.
할튼 칼리고의 유서를 전부 읽은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순간, 이성을 잃어 그의 유서를 전부 찢어버릴 뻔 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냈다.
그의 유서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전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으드득.
짓이긴 손아귀에서 핏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허나 분노로 인해 통각이 마비된 것인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았다.
할튼 칼리고가 자살? 어제, 오늘 하는 노인네가 검을 뽑아들어 사용인들 모두 죽였다? 그가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마신의 힘 때문이다? 저택 지하실에 있는 제단을 만든 것이 힐튼 칼리고라고?
전부 다 개소리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을 아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것이 분명했다.
저택에서 벌어진 모든 것들이 그의 죽음을 위한 쇼였던 것이다.
직접 그의 몸을 진단했던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마기는 계약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계약으로 인해 생겨났다면 심장 부근에서 마나를 좀먹고 있는 형태가 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정도로 미약한 마기만을 남겨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또한 그가 아무리 소드마스터라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육체로 저택 내부에 있는 사용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그의 몸에 있는 마기는 오히려 그의 육체를 좀 먹고 있었고, 지금 같은 상태로는 검을 쥘 힘조차 없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그를 마신숭배자로 몰아넣으려는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소리다.
“룬델 공작가 이 개X끼들이…….”
그때.
문 밖에서 다급함이 느껴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그녀가 지금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 상황을 어떻게든…….’
문이 덜컥 열리며, 프레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우두커니 선 그녀.
그녀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