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왜… 바닥…에 누워 계신 거…에요……?”
핏기 없는 얼굴.
초점 없는 눈동자.
파르르 떨리는 입 꼬리.
“아…… 버… 지…? 대답… 좀 해보…세요…. 네……?”
그녀의 눈은 한 없이 고요했다.
정적을 넘어 공허함이 느껴지는 투명한 눈동자. 그 속은 텅 비어있었다.
러나 그녀의 입꼬리는 치켜져 올라가 있었는데 꼭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이질감이 드는 얼굴은 기괴하면서 처량하고, 안타까우면서 소름이 돋았다.
“하하. 아니죠…? 이거 다 장난치는 거죠…? 그렇죠…?”
간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그 어떠한 말도 감히 내뱉을 수 없었다.
위로도. 진실도.
그 어떠한 말들도 감히 내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가 이곳에 찾아와주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인간은, 아니 나는…….
얼마나 간사한 인간인지를 다시금 실감했다.
그녀가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녀가 무릎을 꿇은 채 차갑게 굳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천장에 매달린 상태일 때의 할튼 칼리고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몰골을 보았다면 그녀는 아마 제 정신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 저에요, 아버지의 딸. 프레이……, 눈 좀 떠보세요. 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녀가 차갑게 식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손이 아닌, 돌덩이를 만지는 것 같은 감각.
프레이는 손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똑바로 실감했다.
“아버지……. 금방 나아서 제게 검을 전수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아버지의 꿈을, 칼리고 백작가의 명성을 드높이는 그 과정들을… 전부 지켜보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무슨 몰골이에요…….”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이제야 나를 발견한 것이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투명한 눈물.
“자일……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가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네……?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에요……?”
“…….”
“대답 좀 해봐요……. 제발…… 대답 좀 해보라고요……. 제발…… 아니라고…… 이 모든 게 전부 꿈이라고 해달라고요!!!”
비명에 가까운 절규.
그녀는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오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죽지 않았다고, 지금 보는 모든 것들을 사실 꿈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기만을 바랄 뿐.
허나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광경들은 꿈도, 허상도, 무엇도 아니다.
냉혹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그렇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신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은 꿈이나 허상 따위가 아닌 사실이니 냉혹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아버지의 죽음에 얽매이기보다 당장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본인의 목숨과 미래부터 먼저 걱정하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바라본 프레이가 이내 침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할튼 칼리고의 조작된 유서가 놓아져 있었다.
그녀가 쪽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처음 그녀가 보였던 표정은 절망.
고통.
그리고 분노.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내가 다급히 말했다.
“프레이……. 그 쪽지는 아마 조작된 것입니다. 아버님의 일은 유감이지만, 이번 일에는 배후가 있습니다. 아버님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고, 칼리고 백작가를 마신숭배자로 몰아넣으려는 세력. 그들이 이 모든 것을 꾸민 게 틀림없습니다.”
내 말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계속 쪽지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내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프레이……?”
그녀는 여전히 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텅 빈 눈동자로 자신의 손에 들린 쪽지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녀, 자세히 바라보니 그녀의 입술이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자, 미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튼 칼리고가……. 나의 아버지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쪽지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조금 이상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붉은 핏물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뚝. 뚝.
“자?마 숭¿신…배…, 제단……. 지버▒가아……? 사여¿을 죽람¿ 우…리 아…버지가……? 사였인?들고… 죽용¿다을”
물위에 물감을 짜 넣은 것처럼 서서히 붉게 물드는 쪽지.
“프레이……!”
내가 다급히 그녀를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쪽지만 바라보고 있을 뿐 이었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린 핏물이 어느새 쪽지 전체를 적셨다.
“악고¿라마¿ 괴▒이라¿고? 제국6을? 평[email protected]$생 위해 휘두…른? 검을 사람6을? 그 누구$%^보다 백$*을 아…낀 사¿람을? 그런 사¿람?을 죽¿어?서 까지 모¿욕6하는 거야¿ 거야¿ 거야¿ 거야¿ 거야¿거야¿ 죽인 걸로9도 모자라 그 사6람의 한 평6생을 부¿정?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6하¿고…… 정?하¿고…… 정?하6¿고…… 정?66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하6¿고…… 정?하¿고…… 정?하¿고…… 정?하¿고…… 정?6하¿고…… 정?666하¿고…… 정?하¿고…… 정?66하¿고……정?하66¿고……악고¿라마¿ 악고¿라마¿악고¿라마¿ 악고¿라마¿ 검을 사람6을? 검을 사람6을? 검을 사람6을? 검을 사람6을? 검을 사람6을? 검을 사람6을?”
마치 테이프를 거꾸로 틀어놓은 듯한 괴기스러운 음성.
나는 다급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프레이! 정신 좀 차려보세요! 프레이!”
──그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마기(魔氣).
흡사 검은 기둥 같은 것이 치솟아 올랐다. 뒤이어 그녀의 눈동자가 칠흑처럼 검게 물들며, 관절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득. 으드득.
“제발…….”
안 된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계약자여! 지금 당장 저 계집을 죽여라!】
그럴 수 없다.
다시 돌이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뭣하고 있느냐! 어서 죽여! 이대로 있다가는 이블(evil)이 되고 말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돌이킬 수 없다.】
──텅!
그녀가 휘두른 손에 맞아 나가떨어져 벽에 부딪쳤다. 벽면이 부서지고, 잔해가 내 몸을 덮쳤다.
“쿨럭!”
일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강력한 충격.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갈비뼈가 모조리 박살난 것 같다.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내가 그녀를 막아야 한다.
…분명 그녀를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멍청한 자식! 두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보아라! 지금 저 꼴을 보고도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대로 있다가는 네놈이 당한다! 완전히 각성을 끝마치기 전에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라!】
……아니.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래. 시온 지그하르트도 마성(魔性)에 잡아먹혔지만 이내 정신을 되찾고 신격까지 얻지 않았던가.
할 수 있다.
그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나라면 해낼 수 있을…….
그때, 문 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닥.
순식간에 방안을 가득 채운 이단심문관들. 그들은 모두 검을 뽑아 든 채 경악한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주 중이던 이교도(異敎徒), 프레이 칼리고를 발견했습니다! 현재 이블화 진행인 것으로 추정. 이제 막 1단계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역시 본성을 숨기고 있었군. 모두 섣불리 다가가지 마라! 청십자회가 오기 전까지 대기한다!”
“현 시간부로 이교도 프레이 칼리고를 재앙급(災殃級) 마물로 규정. 이블 토벌 대형을 구축한다. 모두 착검.”
“라파엘의 이름으로!”
“라파엘의 이름으로!”
일사분란하게 진형을 구축하는 이단심문관들.
뒤이어 푸른색 망토를 펄럭이는 여성과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 들어왔다.
청십자회 소속 주교, 크리스 발레타인과 살로몬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학장 맥도웰이었다.
크리스 발렌타인의 싸늘한 눈동자가 프레이에게로 향했다.
“2단계 직전이군.”
맥도웰을 발견한 나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영향력이라면 약간이지만 이들을 막아설 수 있을 것이다.
“학장님! 저 자일 지그하르트 입니다!”
나를 발견한 맥도웰이 놀란 듯 물었다.
“자일 지그하르트……? 어째서 자네가 이곳에…….”
“사정은 나중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라파엘 교단의 성기사들을 잠시 물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해가 있습니다! 프레이는 절대 마신숭배자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맥도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며칠 전 내가 그의 제자 제안을 거절했을 때 보았던 눈빛과 동일했다.
“……지금 이교도의 편을 드는 건가? 자일 지그하르트라면 반드시 프레이 칼리고를 두둔할 거라던 제보가 사실이었나 보군.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자네가 설마 이교도였을 줄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해입니다. 저는 이교도가 아닙니다! 프레이 또한 이교도가 아니고요!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이 자들을…….”
“그 입 다물게나. 이교도여. 감히 나를 우롱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될 것…….”
──그 순간.
괴성을 지르며 돌진한 프레이가 크리스 발렌타인의 목덜미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뻗었다.
나는 절규하며 그녀를 불렀지만 이미 그녀는 크리스의 코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프레이──! 멈춰──!”
크리스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청십자회(靑十字會) 주교, 크리스 발렌타인. 주신(主神)의 이름으로 지금부터 집행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뻗어져 나온 크리스 발레타인의 검날이 반짝였다.
서걱──!
프레이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반대쪽 팔. 어깨. 손목. 다리. 발목. 무릎. 허벅지.
그리고 목.
툭.
데구르르르르.
깔끔한 절단면을 남기며,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프레…이…?”
당연하게도 그녀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그녀가 죽었다.
이윽고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마기가 저택 전체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