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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04화 (104/180)

104화

짐승이 비명을 토해내듯 고통에 가득 찬 절규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

자일 지그하르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강대한 마기.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은 물론, 저택 전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단심문관들이 몸을 떨며 괴로운 듯 침음했다.

“이, 이게 무슨…….”

“이것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악마, 아니 마신…이다!”

“아아, 라파엘이시여──! 우리를 구원해주서서!”

자일 지그하르트의 머리 위로 칠흑처럼 검은 창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청십자회 소속으로 수많은 악마들과 마신숭배자들을 사냥했던 크리스 발렌타인조차도 이 정도로 강렬한 마기는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저 자도 마신숭배자였단 말인가. 지그하르트의 후예가 마신숭배자라니.”

묵색 오러를 전신에 휘감은 맥도웰이 대답했다.

“이거 아무래도…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같군. 이 마기…… 최소 사도급 이상의 흑마술사 인 것 같소.”

“그럴 만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동감이오. 나도 그를 제자로 들이려고 했었건만…… 설마 마신숭배자였을 줄이야…… 그 아이의 말이 정말 사실이었군.”

“그 아이라면…?”

“새로 들인 제자가 있소. 그 아이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 자일 지그하르트를 조심하라고. 그의 가면에 속지 말라고. 그는 마신숭배자라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소. 제국을 구한 영웅의 일족이 마신숭배자일리 없으니까…. 허나 이 광경을 보고 나니 할 말이 없구려.”

“…제가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엄호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콰과과광──!

칠흑의 창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단신으로 돌격한 크리스 발렌타인이 검을 뽑아들며 창들을 베어냈다.

순백색의 신성력이 깃든 그녀의 검이 대부분의 창들을 베어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미처 해결하지 못한 창들이 이단심문관들의 전신을 꿰뚫었다.

성마술을 통해 결계를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관통한 것이다.

“……아아. 라파엘이시여…….”

상대적으로 부상이 덜한 이단심문관들이 죽어가는 동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실질적인 전투 인원은 크레스 발렌타인과 검귀 맥도웰 뿐 이었다.

눈앞에 날아든 흑색 창을 쳐내며 맥도웰이 중얼거렸다.

“상황이 좋지 않군.”

바닥에서 솟아난 검은색 사슬이 맥도웰의 전신을 감쌌다.

그가 마나를 끓어 올리며 검을 휘둘렀지만 그럴수록 쇠사슬은 더욱 그의 몸을 옥죄였다.

“성가시긴!”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은 크리스 발렌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바닥에서 무수히 많은 사슬들이 올라와 그녀를 덮쳤다.

촤르르르르륵!

그러나 맥도웰과는 달리 그녀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슬들은 힘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연신 검을 휘두르며 자일 지그하르트를 향해 전진했다.

“일리야(Ilya).”

자일 지그하르트의 주변으로 짙은 안개가 퍼졌다.

다그닥. 다그닥.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한 손에는 머리, 한 손에는 거대한 검을 쥐고 있는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쥐고 있던 머리통의 입에서 한 맺힌 여인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크리스 발렌타인과 맥도웰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설마, 듀라한(Dullahan)인가! 저건 내가 맡겠네!”

“…부탁합니다.”

유령마를 타고 돌진한 듀라한의 검이 맥도웰의 검과 맞부딪쳤다.

챙!

능숙한 몸놀림으로 연달아 검을 휘두르던 맥도웰이 돌연 침음을 했다.

“환상종이라니……. 까다롭기 그지없군.”

맥도웰의 검이 일방적으로 압도하고 있었지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맥도웰이 이내 그의 고유 검술을 발휘했다.

“참살(慘殺).”

묵색 오러를 휘감은 검이 뱀처럼 휘더니, 유령마의 머리통을 베었다.

본래 환상종은 통상적인 물리공격으로 상처를 입힐 수 없었지만, 특수한 아티펙트 혹은 마나를 응축한 오러(Aura)라면 상처를 입히는 것을 넘어 소멸시키는 것 또한 가능했다.

“생전에 상당한 수준에 이른 기사였던 듯 하군. 허나 마물이 되면서 본래의 힘에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어.”

한줄기 빛처럼 쏘아진 검이 일리야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귀살(鬼殺).”

흐릿해진 일리야의 전신이 검은 연기가 되어 소멸했다.

맥도웰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자일 지그하르트의 앞에 도달한 크리스 발레타인.

그녀가 눈앞에 상대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그대에게는 빚이 있었지.”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텅 빈 보랏빛 눈동자만이 그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걸로 갚도록 하지.”

그릇된 선택을 한 이에게 신의 사자로서 죽음을 부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구원이라고 믿는 그녀였다.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

어찌 된 것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새하얀 서리가 그녀의 팔위에 피어나고 있었다.

“……정령?”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까드드득.

그녀의 몸 위로 강렬한 한기가 피어올랐다. 서서히 얼어 붙어가는 그녀의 양팔과 다리.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의 전신이 얼어붙었다.

“크리스 경!”

뒤이어 자일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온 지옥의 화마가 크리스 발렌타인의 몸을 뒤덮었다.

화르르르륵!

얼어붙은 그녀의 몸뚱어리가 강렬한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빠르게 녹아내렸다.

뒤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라파엘 교단의 성직자들이 절망했다.

그들은 충격과 경악에 휩싸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크리스 경이 당했어?”

“이럴 수가…….”

“……그럴 리가. 뭔가 잘못 된 게 틀림없어!”

그들에게 있어 크리스 발레타인이라는 존재는 그야 말로 영웅이었다.

악에게 맞서 교단을 지키는 절대적 존재.

그 상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눈앞에서 녹아내린 것이다.

자일 지그하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낱 이교도 따위에게.

더 이상 그들의 눈에 ‘자일 지그하르트’는 단순한 마신 숭배자 따위가 아니었다.

…이블보다도 더한 공포를 지닌 ‘마신’ 그 자체.

저벅. 저벅.

자일 지그하르트가 크리스 발렌타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마창(魔槍) 악시온(axion)이 쥐어져 있었다.

예리하게 날이 선 창날에는 검보랏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완전히 녹아내려 액체가 되어버린 크리스 발레탄인.

그 앞에 멈춰 선 자일 지그하르트가 창을 겨눈 채 붉은 핏물을 빤히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그가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있지 못 했지만, 자일 지그르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붉은 액체에서 순백색의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방안을 뒤덮은 기둥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크리스 발렌타인.

──동시에 자일 지그하르트가 창을 뻗었다.

서걱!

툭.

깨끗하게 잘려나간 그녀의 오른팔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찰나에 순간,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발휘해 몸을 비튼 것이다.

“놀랍군.”

그녀의 몸에서 솟아오른 신성력이 팔을 재생시키려 했다.

그러나 절단 부위에 피어난 검은 불꽃으로 인해 재생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녀가 감정을 드러냈다.

당혹감이었다.

허나 이내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다시 검을 쥐었다.

“…….”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자일 지그하르트의 양팔에 보라색 팔찌가 생성됐다.

초강화(超强化)를 사용한 자일 지그하르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폭발적인 기운이 일대를 휩쓸었다.

벽면이 부서지고, 주변에 가구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의 몸을 뒤덮은 검보랏빛 기운은 마치 갑옷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때.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지붕이 무너져 내리며 푸른색 망토를 두른 10명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는 망치를 어깨에 맨 채 말했다.

“단장. 이번에는 꽤나 고생 좀 하는 것 같습니다?”

“…….”

자신만만한 말투를 증명이라도 하듯 사내의 전신에는 순백색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9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자일 지그하르트를 둘러싼 11명의 성기사들. 그들 모두가 청십자회의 일원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몇 년간 호흡을 맞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서로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들을 알고 있었다.

11명의 성기사들이 자일 지그하르트를 향해 일제히 무기를 휘둘렀다.

처절한 사투가 시작됐다. 성기사들의 합공에도 자일 지그하르트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온몸이 찢기고, 팔 다리가 썰리고, 눈알이 찢겨나감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오로지 상대를 찢어발기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그 광기 어린 광경에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성기사들마저 공포심을 느낄 정도였다.

───얼마나 흘렀을까.

망치를 쥔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본 사내가 질린다는 듯 말했다.

“하아…. 하아…. 괴물 같은 자식…….”

“고작 이교도 한 명에게 이 꼴이라니… 청십자회의 명성이 바닥을 기겠군….”

치열한 공방 끝에 남은 건 양쪽 팔이 잘려나간 6명의 성기사와 4명의 시체.

그리고 자일 지그하르트의 심장에 검을 꼽아 넣은 크리스 발렌타인 뿐 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를 바라봤다.

자일 지그하르트는 아직도 눈을 감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살기 어린 눈빛으로 크리스 발레탄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그녀를 향해 창을 휘두를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팔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뻗어 자일 지그하르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녀 본인조차도 어째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됐다.

단 한 명의 마신숭배자에 의해 20명이 넘는 이단심문관들이 사망하고, 4명의 청십자회 소속 성기사가 죽었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피해가 너무 막심했다.

남아있는 교인들이 시체를 수습하고, 부상자를 이송했다.

크리스 발렌타인은 한쪽 구석에 몸을 기댄 채 회복을 취했다.

저택 수색을 마친 이단심문관들이 크리스 발렌타인에게 다가와 보고를 했다.

“저택 지하실에서 마신의 석상과 제단을 발견했습니다.”

“할튼 칼리고의 유서를 확인한 결과, 그가 마신숭배자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저택 곳곳에 있는 사용인들의 시체 또한 그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칼리고 백작가의 집사장 잭슨 칼리고의 시체와 함께 칼리고 백작가의 장부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확인 결과, 잭슨 칼리고가 마신숭배자들이 운영하는 경매장과 그 외에 산하조직과 거래한 내역들이 확인되었습니다.”

뒤편에 있던 교인들이 과거, 칼리고 백작가에 돌던 소문들이 사실이었다며 수군댔다.

어느새 크리스 발렌타인의 곁에 다가온 맥도웰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씁쓸한 듯 중얼거렸다.

“과거에 할튼 칼리고가 마신숭배자라는 소문이 떠돌았었지. 그의 저택 지하실에는 마신 숭배를 위한 제단이 있고, 그가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마신의 힘을 빌린 것이라는 소문이. 그 당시에 나는 그것들을 전부 거짓이라고 치부했었네…….”

“…….”

“할튼 칼리고라는 인간이 보여준 행보는 절대 마신숭배자일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는 영웅이었고, 무엇보다 백성들을 위할 줄 아는 기사였다네. 근데 그 정체가 실은 마신숭배자였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군. 당신이 절대 아닐 거라고 믿는 인간이 마신숭배자일 거라는 말이 진실이었을 줄이야 …….”

크리스 발렌타인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자일 지그하르트의 시체였다.

순간, 그의 몸이 꿈틀거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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