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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05화 (105/180)

105화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여있다. 그 어디를 보아도 온통 어둠 뿐 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는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다.

“여기는…….”

──심연(深淵).

그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방향 감각이 없다.

아니, 오감이라고 칭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냄새도, 맛도, 감촉도, 소리도, 시야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허무(虛無).

이곳을 공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

광활하게 펼쳐진 어둠 전체가 꿈틀거렸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볼 수 없을 텐데. 내게는 눈이 없을 텐데.

시각이라는 감각이 없을 텐데.

그런데.

보였다.

나를 둘러 싼 이 어둠이 꿈틀 거리는 것이.

우주 속에 먼지가 되어 표류하던 중 마주친 거대한 성운(星雲)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 앞에서 인간이란 미물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인지를 초월한 공포가 엄습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눈꺼풀이 치켜 올라가며,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그 안에는 우주를 이루는 수많은 행성들과 은하, 그리고 미지의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했으며 비루한 나의 표현력으로는 은하, 그 외에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실제로 저런 것을 보았더라면, 아니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크기의 단위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지금처럼 특수한 공간이기에 지금 나는 ‘저것’을 ‘본’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멍청한 놈……. 네놈이 이제 알량한 권능을 믿고 그리 설쳐대는 것이냐?】

“……아스모데우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여기는 어디야?”

【너의 정신을 임의적으로 옮겨놓은 나의 공간, 어비스(Abyssus)다. 보아하니 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네놈이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도 똑바로 기억하고 못하고 있는 듯 하구나. 한심한 놈. 어쩌다 이런 놈과 계약을 하게 된 것인지…….】

“나……. 또 죽었구나…….”

【영원한 안식에 들지 못한다는 것이 축복인줄 알고 설치는 것이냐? 네놈의 목숨이 사실은 한 개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렇게 행동을 했을 거라 생각하느냐? 멍청하고, 미련하고, 무모하고, 참말로 병신 같은 짓거리였다. 네놈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 그렇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네 각오의 무게가 고작 그것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냐?】

“…….”

【명심해라. 미련한 계약자여. 이 세계에서 네놈이 소멸하게 된다면 다시는 네놈이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네게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지 말란 말이다.】

“……그렇지. 맞아.”

그녀의 말이 옳다.

구구절절 옳은 말 뿐이다.

매번 작은 인형으로 보던 그녀가 지금은 초현실적인 존재로 보인다. 저것이 그녀의 본체일까. 혹은 본체의 일부분일까.

무엇이 되었든, 나란 존재는 그녀에 비하면 한 없이 보잘 것 없을 뿐이다.

얼마나 같잖았을까.

지금까지 나를 보며.

벌레, 먼지, 아니 그 이하의 취급도 아닐 것이다.

미생물……. 그 정도는 될까?

【이 몸의 일부분을 본 것만으로도 그렇게 겁을 집어 먹으면 앞으로 네놈이 만나게 될 수많은 마신들을 상대로는 대체 어찌할 셈이냐? 한심하기는. 자꾸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네놈에게 봐줄 수 있는 장점은 그나마 뻔뻔한 것 뿐 이었으니까.】

“……노력할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 좀 해줄래?”

【쯧. 그 인간 계집이 죽자 눈이 돌아버린 네놈이 폭주했고, 라파엘의 종놈들이 네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역시 죽은 거구나.”

【그래. 처참한 패배였다. 나의 계약자라는 놈이 고작 라파엘의 노예들조차 이기지 못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마신서의 사본을 얻었음에도 고작 4명을 죽이는 게 고작이니…… 정작 그 크리스 발렌타인이라는 인간 계집은 죽이지도 못했고. 그때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천불이 나는 구나!】

그래도 4명은 죽였나보네.

이제야 슬슬 기억이 돌아온다.

푸른 망토를 두른 청십자회 소속 성기사 10명.

하나 같이 크리스 발렌탄인과 비견되는 괴물들이었다.

그나마 폭식의 권능이 없었다면 4명을 죽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네놈의 죽음으로 인해 나의 권능인 원시회귀(元始回歸)가 발동했다. 너는 이제 저번보다 더 먼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마신서의 사본으로 인해 마기가 강해졌기 때문이지. 허나 잊지 말 거라. 저번에도 말했든 원시회귀는 지극히 불안전한 권능이라는 사실을. 네놈 따위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을 거듭할수록 네놈의 정신은 마성(魔性)에 잡아먹힐 테고, 그 끝은 결국 파멸이다.】

“……그래.”

【대답 하나는 잘 하는 구나. 네놈이 나의 힘을 완벽히 통제하기 전까지 ‘원시회귀(元始回歸)’라는 권능을 발동하는 것만으로 네놈의 정신과 영혼의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는 얘기이다. 마신서의 사본을 얻음으로서 약간에 유예가 주어진 것이지, 그것이 네가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라.】

그녀가 이토록 경고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간(時間).

명백히 인과율의 법칙을 무시하는 권능이다.

최상위 마신(魔神)인 그녀조차도 완벽하게 다룰 수 없다는 초월적 권능.

이대로 죽음을 거듭하다가는 나는 더 이상 인간도, 악마도, 마신도, 마물도 아닌 이형의 존재가 되어버릴 거라는 확신이 든다.

【네놈이 예상하는 대로 그 끝은 이블 따위가 아니다. 그 이상의 존재.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이형의 존재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를 띠고 있고, 어떤 힘을 지니고 있을 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그렇게 된 이상 그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고, 네놈 스스로 이 세상을 멸망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거지. 시온 지그하르트가 마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블이 되었다면 아마 딱 그런 꼴이 됐을 것이다.】

“애초에 이블이란 존재가 왜 생겨나는 건데? 너희 마신들 때문 아니야?”

【이블이라는 호칭은 너희 인간들이 붙인 것 아니더냐? 그것들은 악마도, 마물도, 뭣도 아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오염된 존재’라고 할 수 있겠군. 나도 모른다. 어째서 그런 것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누가 그것들을 만들어낸 것인지. 왜 인간들에게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그들이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만 알고 있다. 외형은 악마와 비슷하지. 뿔과 날개를 지니고 있고, 마기 또한 품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지닌 마기는 괴이하다. 게헤나에서 보던 것들과는 성질이 달라.】

“성질이 다르다고……? 같은 마기인데도……?”

【더 이상 묻지 말아라. 나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이니. 어찌됐건 그것들은 이형의 존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계의 존재가 개입된 게 아닌 다른 차원의 존재가 개입되어 생겨난 것일 지도 모르지.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고. 바르바토스를 봐라. 그 멍청한 년은 나보다 곱절을 오래 살았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느니라.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욱 많지. 그 년의 10분의 1도 채 살지 못한 단탈리온이 그 년의 100배, 아니 1000배는 되는 지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내 장담하지.】

이블이란 존재가 단순히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또한 마신이라는 존재들도 살아온 세월과 비례해 지식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고. 각자 관장하는 영역과 권능이 다른 만큼 특화된 분야갸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잡담은 끝이다. 이만하면 네놈도 상황 파악을 했을 테지. 하여간 내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구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지. 자, 마지막 선물이다.】

그녀의 마지막 음성을 끝으로 사라졌던 시각이 돌아왔다.

오감 중 시각만 돌아온 것이기에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여긴…….’

살로몬 아카데미 내부 어느 창고 안이었다.

그곳에는 프레이와 사딘 룬델, 그리고 그의 추종자인 리델이 있었다.

* * *

오후 수업을 마치고 오늘도 어김없이 연무장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던 프레이.

그녀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요한의 이론 수업, 벨라 트레이의 실전 훈련.

그리고 자일 지그하르트와의 대련으로 인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어느 정도 잡은 것이었다.

그녀가 가상의 적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

촤아아악!

허공을 타고 뻗어나간 그녀의 검날이 금빛물결을 일으켰다.

그녀를 중심으로 연무장 바닥에 커다란 원 형태의 검흔(劍痕)이 새겨졌다.

“이걸로는 부족해.”

그녀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연무장 전체의 검흔이 새겨졌다.

후웅!

검풍(劍風)으로 인해 주변 일대의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연무장 전체를 아우를 만큼 넓은 범위가 그녀의 간격 안으로 들어왔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검을 쥐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보다 더 넓은 범위를 베셨다.”

그때.

그녀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자 A 클래스의 학생 한 명이 그녀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이야~ 이 정도면 A 클래스에서도 상위권의 들 실력일 텐데 어째서 S 클래스 같은 곳에 배정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군요.”

학생이 그녀에게 다가와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프레이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누가 좀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저는 그저 부탁을 받은 것 뿐 이니 저에게 물으셔도 원하는 대답은 들이실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다시 연무장 바깥쪽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프레이가 손에 쥔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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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소드마스터 할튼 칼리고의 장남(長男) 프레이 칼리고.

그대는 본인의 하나 뿐인 아버지가 어째서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는가? 전투로 생긴 상처? 제국의 유명한 회복술사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 전부 틀렸다.

그것은 그의 몸에 지속적으로 주입된 마기 때문이다.

칼리고 백작가의 사용인들 중 마신숭배자가 있다. 그자가 가주의 몸을 망치고 있다.

그가 먹는 음식과 그가 먹는 약에 지속적으로 마기를 응축한 독을 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게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대의 아버지의 몸을 망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A 클래스 뒤편에 있는 창고로 와라.

단, 반드시 혼자 와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오로지 프레이 칼리고 그대 혼자 이곳으로 오도록 해라.

이 말을 어길시 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쪽지를 본 프레이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쪽지를 구긴 뒤 품안에 넣었다.

그리고 쪽지에 적혀있던 창고를 향해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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