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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06화 (106/180)

106화

A 클래스 기숙사 뒤편에 인적 드문 창고.

“그게 정말입니까, 공자님? 프레이 칼리고와 대련을 해서 이기기만 한다면 맥도웰 학부장님의 제자로 추천해주시겠다고요?”

“그렇다. 내가 거짓을 얘기하는 걸 봤는가?”

“아닙니다. 공자님께서는 절대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죠!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이참에 확실히 짓밟아 놓겠습니다. 다 무너져가는 백작가의 자식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설치기는. 안 그래도 꼴에 소드마스터의 자식이라고 매사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 믿고 있다. 리델. 나는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겠다.”

“예!”

창고 구석으로 이동한 사딘이 품에 있던 반지를 착용했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착용자의 모습을 감춰주는 아티팩트.

「보이지 않는 눈」이었다.

잠시 후.

창고의 문이 열리며 프레이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리고는 리델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대인가? 이 따위 장난질을 친 것이?”

본래 그녀라면 고작 이딴 쪽지 하나로 인해 인적 드문 창고를 방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제 발로 찾아갈 만큼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쪽지에 적힌 말이 거짓이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확인하러 가야만 했다.

아버지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고, 이 쪽지에 적힌 내용들은 칼리고 백작가의 내부인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적어도 칼리고 백작가 내부의 사정을 알고 있지 않은 이상은 불가능하다.

사딘 룬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녀를 유인할 만한 내용들을 쪽지에 적어둔 것이었다.

리델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로 인해 순간 움찔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래. 프레이 칼리고. 내가 쪽지를 보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쪽지를 보낸 거지…? 감히 칼리고 백작가를 우롱하는 것인가…? 우리 가문의 사용인들 중 마신숭배자가 있단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거짓된 정보로 나를 속이려 들지 마라! 그들은 내게 모두 가족과 같은 이들이다. 오랜 세월 함께한 그들이 아버지를 배신할 것 같으냐!”

“정말 확신하는가?”

“…뭐라고?”

“정말 확신하느냐고 물었다. 너는 정말 칼리고 백작가의 사용인들 중 단 한 명의 배신자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느냐? 한때 제국을 대표하던 소드마스터인 할튼 칼리고가 고작 전투 중 입은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 침상에 누워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리델이 말하고 있는 모든 대사는 사전에 사딘 룬델이 짜준 각본 그대로였다.

프레이가 흉흉한 눈빛으로 리델을 응시했다.

“그 입에 아버님의 존함을 담지 마라.”

그녀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은 리델은 공포를 느꼈지만 속으로 자신을 달랬다.

‘쫄지 말자. 소드마스터의 자식이라고 하나 지금은 그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닌가. 그렇게 잘났다면 S 클래스가 아닌 A 클래스에 배정되었을 터……. 내게는 사딘 공자님이 주신 아티팩트도 있으니 두려워 할 거 없다.’

리델의 오른팔에 있는 붉은 보석이 박힌 팔찌.

사딘 룬델이 직접 건네준 아티팩트로서 무려 금화 100개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무구였다.

능력은 착용자의 근력을 강화시켜주는 것.

무척 심플한 능력이었지만 그에 걸맞게 효력 또한 강력했다.

“허세 부리지마라. 네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쪽지에 적힌 내용은 사실이다. 나는 칼리고 백작가에 사용인 중 누가 마신숭배자인지 알고 있다.”

“원하는 게 뭐지?”

“대련. 나와의 대련을 통해 네가 승리한다면 칼리고 백작가에 숨은 쥐새끼가 누군지 알려주마.”

“고작 그거면 충분한가?”

“하! 네놈이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가?”

프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

그녀의 침묵이 곧 그의 질문에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한 리델이 소리쳤다.

“그래. 그 오만한 콧대를 눌러줘야 내 직성이 풀릴 것 같구나. 조건이 있다. 네놈이 나와 대련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제 발로 아카데미를 나가라.”

“알겠다.”

리델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명검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상당히 예리한 날을 지니고 있었다.

“검을 뽑아라.”

프레이는 연무장에서 사용했던 녹슨 검을 뽑아들었다.

품질 자체는 좋았으나 오랜 시간 사용한 탓에 날이 무뎌져 있었다.

“지금 장난하는 것이냐? 고작 그 따위 검으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내가 무슨 검을 사용하든 그건 그대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않나?”

프레이는 처음부터 진검을 뽑아들 생각이 없었다.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동급생을 상대로 진검을 뽑아들 만큼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정식 대련도 아니고, 개인 간에 대련 중 혹시 모를 사고가 생기게 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만한 자신감도 지니고 있었고.

상대를 무시한다기보다는 본인이 가진 재능과 노력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자일 지그하르트를 통해 클래스 간의 격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였다.

비록 그녀 본인이 원하는 A 클래스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자신이 지닌 재능과 힘은 그들에 필적 아니, 그 이상이라고 자부했다.

“…후회하지 마라.”

짓이기듯 내뱉은 리델이 반박자 빠르게 발을 움직이며 프레이의 왼쪽 어깻죽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안정적인 자세.

마치 검술 교본에 실려 있는 동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정석의 표본이었다.

“뻔하다.”

프레이가 몸을 가볍게 트는 것만으로 그의 검을 피했다.

고작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검을 올려쳤다.

챙!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녹슨 검날이 리델이 쥐고 있던 검을 쳐냈다.

힘 싸움이라면 자신이 있던 리델이 손목에 가해지는 충격을 무시하고 버텨냈지만 이내 검을 빼내며 거리를 벌렸다.

‘무슨 힘이……!’

기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는 제자리에 선 채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라.

라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리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고, 흥분한 리델이 심장에 깃든 마나를 끓어 올리며 다시금 보폭을 좁혔다.

공기를 가르고 쏘아지는 검.

맹렬한 기세를 뿜고 있는 검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프레이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회피와 방어에만 치중할 뿐 이렇다 할 반격은 하지 못했다.

리델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고작 S 클래스에 불과하지! 네놈 따위가 감히 A 클래스 10위에 달하는 이 리델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언뜻 보기에 프레이가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리델 본인조차 본인이 우위에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분명 그가 더 많이 검을 휘두른 것은 맞다.

헌데 어찌 된 영문인지 프레이의 몸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검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 된 유효타 한 번을 입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아… 하아… 왜 닿지 않는 거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한 탓에 급속도로 체력을 소모한 리델은 눈에 띄게 지친 상태였다.

검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프레이가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텅!

리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이내 바닥에 꽂혔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리델이 허무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그를 보며 프레이가 말했다.

“승부는 끝난 것 같군. 더 할 텐가?”

뒤쪽에서 사딘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다.

그의 인정을 받아, 맥도웰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리델이 다시금 검을 뽑아 들었다.

“끈기 하나는 인정하지.”

그가 괴성을 지르며 프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체력이 다 떨어진 것인지 그의 검은 전보다도 더 형편없었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였다.

텅!

리델의 검이 튕겨져 나가 다시금 바닥에 꽂혔다. 무력감이 그를 덮쳐왔다.

그럼에도 다시 검을 뽑아들어 돌진했다.

다시.

다시.

다시.

몇 번을 해도 똑같은 결과였다.

바닥에 엎드린 그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프레이를 바라봤다.

“……어째서. 어째서 닿지 않는 거지?”

프레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몇 번을 반복해도 그대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녀와 검을 섞어본 리델 본인이야말로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사딘의 눈에 들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버텼지만, 한 번 꺾인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이길 수 없다.’

체념한 리델이 포기를 선언했다.

“……내가 졌다.”

프레이가 검을 내리며 말했다.

“약속한대로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해라.”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딘 룬델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리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니 더욱 처참하군.”

“…고, 공자님?”

그를 발견한 프레이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사딘은 프레이를 무시한 채 말했다.

“쓸모없는 녀석.”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델의 전신에서 붉은 마나가 솟아올랐다.

텅 빈 눈동자로 중얼거리던 리델이 바닥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죽여야 돼……. 프레이 칼리고를 죽여야…….”

그리고는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몸놀림으로 프레이의 가슴팍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런 리델의 기습에 당황한 프레이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솨아아아!

검을 떨어트린 리델의 목덜미에서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털썩.

그가 맥없이 쓰러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프레이가 이성을 붙잡고, 그에게 다가가 상처부위를 압박했다.

허나 상처가 너무 깊은 탓에 피가 쉴 새 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겁니까.”

구석에 있던 사딘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프레이 칼리고가 사람을 죽였군?”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리델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그녀의 손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이건… 사고였습니다. 저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을 뿐…….”

“전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대가 잘 알고 있을 텐데, 프레이 칼리고? 이유야 어찌됐건 네가 휘두른 검에 사람이 죽였다. 그것도 동급생이.”

프레이가 사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당신도 보셨지 않습니까! 그건 분명 사고였습니다! 이딴 얘기를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회복술사를…….”

“이미 늦었다.”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다급히 리델의 맥을 살폈다. 허나 이미 그의 맥은 끊겨 있었다.

“아비는 마신숭배자에 자식은 살인자라니. 이거 참 볼만하군. 하하하하하!”

“당신이었습니까…… 이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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