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잭슨의 일처리 속도는 훌륭했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저택.
이제 이 저택에 남아있는 것은 나 뿐 이었다.
지하실로 향한 나는 손을 뻗어 마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피어난 검은 마기가 지하실을 가득 매우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
방금 내가 사용한 흑마술의 이름은 절망의 가시.
본래 있던 흑마술을 내 방식대로 개량한 것으로서 주변의 기척을 감지해 거대한 가시가 솟아오르는 함정용 마술이었다.
그리고는 제단 앞에 있던 시체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마기를 흩뿌렸다.
촤르르륵.
제단 위에 놓아진 시체들이 제멋대로 뒤엉키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조그마한 인간의 형체가 되었다.
이걸로는 만족하지 못한 내가 손톱의 마력을 주입한 뒤 반대쪽 손등을 그었다.
사악!
가느라단 선을 따라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눈앞에 시체더미에게 다가가 핏물 두 방울을 떨어뜨렸다.
흉측하게 찢어진 입을 벌린 채 핏물을 받아먹는 시체더미.
꿀꺽. 꿀꺽.
심장이 뛰는 것처럼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이내 강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는 인간을 닮은 무엇인가, 정도였다면 이제는 얼추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녀 레일라가 사용했던 흑마술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었다.
“누더기 골렘.”
내가 마기를 일으키자, 누더기 골렘의 손아귀에 거대한 낫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 누더기 골렘은 이 방에 침입한 자들을 거침없이 도륙 낼 것이다.
그것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이었다.
지하실에서 올라온 나는 저택 전체에 마기를 퍼트렸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저택 전체를 뒤덮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들이나 혹은 흑마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은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저 연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그때는 이미 늦었을 테지만.
“이 정도면 됐나.”
방금 내가 퍼트린 마기는 공간 전체를 탐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들의 영역 내에 들어온 모든 생명체의 활력을 빨아먹고, 심지어 그들에게 각종 정신 계열 공격을 퍼붓는다.
환상, 환청, 악몽 등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부정적 욕구들을 마구마구 끓어 올려 미치게 만든다.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단순, ‘현상’에 불과하기에 해주를 사용할 수 있는 성직자 혹은 상당한 수준의 흑마술사, 그리고 오러를 다루는 무인이 아닌 이상 없애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 저택 전체가 이제는 흑마술로 이루어진 거대한 함정이 돼버린 것.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
…아니.
수비를 위한 것이 아니니 그에 걸맞는 명칭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침입자들을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니.
“비탄의 늪.”
급조해서 만든 명칭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내 작명센스가 살짝 중 2병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 오히려 좋았다.
이곳에 들어온 모든 이들이 절망에 사로잡혀 끝없이 괴로워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역시…….’
그를 찾아가는 것 뿐 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해결할 열쇠.
그의 도움이 있어야만 내가 계획한 것들을 비로소 실현할 수 있다.
‘그를 설득하지 못하면…….’
아니.
이런 생각은 좋지 않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 낼 것이다.
반드시.
흑마술의 준비를 마친 나는 칼리고 백작가를 빠져 나와 강화마법을 발동했다.
오늘은 무척 긴 밤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강의실로 향하기 전이었다.
연무장에 선 프레이는 자일 지그하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시작 전에 따로 할 말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그의 부탁 때문이었다.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셨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많은 가정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대부분 망상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얼굴이 붉어진 프레이가 거칠게 고개를 흔들며 이러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미쳤나봐. 미쳤어!’
그러고 보니 어제 새벽에 잠깐 깼을 때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연무장에 있나 싶어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해보았지만, 연무장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 부쩍 새벽에 외출이 잦아진 것 같았으나 그녀는 그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각자 자신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또, 여자인 자신과 한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궁금증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치, 친구니까! 궁금할 수 있는 거지! 친구니까!’
그렇게 한참을 망상에 빠져 있을 때, 저 멀리서 자일 지그하르트가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피로해보였다.
눈 밑을 뒤덮은 다크서클을 본 프레이의 얼굴이 금세 우울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돕고 싶었지만 그가 직접 부탁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자, 자일! 오늘따라 유독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그래요? 최근에 잠을 좀 뒤척여서 그런 가 봅니다. 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가요.”
그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을 본 프레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받으세요.”
“이, 이게 뭡니까?”
십자가 형태의 은색 목걸이.
로자리오였다.
“……제가 드리는 선물이니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너무도 단호한 어조에 프레이가 당황하며 로자리오를 건네받았다.
“아, 아, 알겠습니다.”
“프레이.”
“…네?”
“오늘 하루만큼은 절대 그것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어딜 가든, 어떤 행동을 하든 반드시 그걸 착용하고 계셔야 합니다. 아시겠나요?”
왜죠?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일 지그하르트가 자신에게 이토록 강하게 무엇인가를 부탁한 적이 없었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되는 부탁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셔야 됩니다. 반드시, 그 어떤 순간에도 이 로자리오를 지니고 계셔야 돼요. 약속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약속할게요.”
그제야 자일 지그하르트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도 지금 당장 궁금한 것들이 많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이채를 띠고 있는 보랏빛 눈동자가 잔잔한 파도처럼 부드럽게 일렁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의문들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래. 그의 말대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어딜 가신다는 건지?”
“아, 제가 이걸 말씀을 안 드렸네요. 저는 오늘 수업 안 듣습니다. 교수님한테는 미리 말씀드려놨고요.”
프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조금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푹 쉬면 나아질 겁니다.”
“……그럼 제가 수업 끝나고 죽이라도 좀 해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수업 늦겠습니다. 어서 가보셔야죠.”
단호한 거절의 프레이는 침울한 얼굴로 대답을 한 뒤.
“……네.”
힘없이 강의실로 향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일 지그하르트는 로만을 불렀다.
“네. 주인.”
“남은 공간전이 스크롤은 몇 개지?”
“2개입니다.”
자일 지그하르트는 자신의 품에 있던 스크롤 두 장을 건네주었다.
“혹시 모르니 이것도 챙겨라.”
“네.”
“프레이의 근처를 벗어나지마. 무조건 그녀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행동해라. 최악의 상황에서는 네 몸을 희생해서라도 강제로 그녀를 이동시켜. 알겠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절대 그녀가 붙잡히게 두어서는 안 된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필요하다면 한계치 이상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도 허락한다. 책임은 전부 내가 질 테니.”
“…알겠습니다.”
“부탁한다.”
“걱정 마시길.”
순식간에 로만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느새 그는 프레이의 근처에 그림자가 되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일 지그하르트의 마기가 강해지면서 사역마인 로만 또한 더욱 강해졌다.
생전의 전투 경험과 사후의 전투 경험. 거기에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육체까지.
지금의 로만은 푸른달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살수였다.
준비를 마친 자일 지그하르트는 하르만 백작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가 복수의 시작이었다.
‘목 닦고 기다려라. 룬델 개X끼들아.’
* * *
자일과의 대화 때문일까.
프레이는 오늘 하루 종일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가 보여주었던 표정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화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얼굴은 무엇인가를 결심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어쩐지 씁쓸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루 종일 이러한 생각들로 인해 도저히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나태함을 인간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요한 크루이프 마저도 그녀의 수업태도를 지적할 정도였다.
생각을 떨쳐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보았지만 마음만 먹는다고 가능한 거였으면 이 세상에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수업을 끝낸 프레이는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연무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움직이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그녀였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검을 휘두를 때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다.
최근 꽉 막혀있던 벽도 넘어섰으니 검을 휘두르는 것도 더욱 즐거워졌다.
‘──집중하자.’
같은 동작을 1000번.
그 다음 동작을 1000번.
이후.
가상의 적을 상대로 검을 휘두른다.
허공을 타고 뻗어나간 그녀의 검날이 금빛물결을 일으켰다.
그녀를 중심으로 연무장 바닥에 커다란 원 형태의 검흔(劍痕)이 새겨졌다.
“이걸로는 부족해.”
그녀가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연무장 절반 정도의 검흔(劍痕)이 새겨졌다.
후웅!
검풍(劍風)으로 인해 주변 일대의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절반인가……. 마음을 다스리는 것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네.’
마지막 동작이 완성되는 순간, 집중력을 잃은 탓인지 힘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았다.
평소보다도 힘을 내지 못하니 짜증이 날 뿐이었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그때.
그녀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자 A 클래스의 학생 한 명이 그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레트리.
리델과 함께 사딘 룬델을 따라다니는 추종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에게 쪽지를 건네받은 프레이의 얼굴이 섬뜩하게 일그러졌다.
프레이는 쪽지에 적혀있는 창고로 향했고, 그 뒤를 로만이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