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11화 (111/180)

111화

수도 루살렘 외곽에 위치한 오두막.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뒤편에는 호위기사로 보이는 두 명의 이단심문관들이 서 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자일 지그하르트였다.

그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맞은편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파엘 교단의 추기경 토마스 이스카리옷이 은근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그대가 제 눈이 되기로 하였으니 이 정도쯤은 감수해야지요. 허나 서신이나 교인들을 통해 전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자고 한데에는 그에 걸 맞는 이유가 있을 테지요?”

그의 뒤편에 있는 이단심문관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추기경이 직접 자신의 눈이 되어주기를 부탁한 인물이라고는 하나 사전에 연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보자고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본래 추기경이라는 자리는 한낱 교인 따위가 영접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추기경의 눈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도 지금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자일 지그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디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요.”

자일 지그하르트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부터 해드릴 이야기는 어쩌면 제국 전체의 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해야겠지요.”

“추기경님은 저를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뒤편에 있는 이단심문관 중 한 명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어이, 학생. 지금 자네가 어떤 분과 대화를 하고 있는지 잊어버린 것인가? 감히 추기경님에게 그 따위 질문을…….”

허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토마스가 손을 저었고, 말을 내뱉던 이단심문관은 곧장 입을 닫았다.

“믿습니다. 믿어야지요. 그대는 제가 직접 뽑은 저의 눈이니까요. 그러니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자일 지그하르트가 품에 있던 편지 한통을 책상 위에 꺼냈다.

“이건…?”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편지에는 황금빛 왕관을 가로지르는 잿빛의 검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룬델 공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편지를 읽던 토마스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여기 적힌 이 내용들이 전부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아……. 제국을 수호하는 가장 거대한 검이 마신숭배자라니…….”

자일 지그하르트가 꺼낸 편지는 며칠 전 칼리고 백작가의 하녀로 잠입한 레일라의 오두막에서 가져온 증거자료 중 하나였다.

토마스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자일 지그하르트. 그대는 룬델 공작가문이 마신숭배자와 엮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이단심문관 두 명이 움찔했다. 그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추기경님! 저 자가 잘못 알고 있거나 혹은 어떤 세력이 음해하려고 드는 것이 분명합니다! 추기경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룬델 공작 가문은 제국 건국 이래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제국을 수호하던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그들이 저렇게 부정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이야 교단 소속으로 마신숭배자들을 사냥하러 다니는 이단심문관이지만 한 때는 그들 모두 기사를 꿈꿨던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제국 최고의 무가라 불리는 룬델 공작 가문이 지닌 상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이번에 그가 꺼낸 것은 메모리 크리스탈이었다.

자일 지그하르트가 크리스탈에 마나를 불어넣자 음성이 재생됐다.

-그게 정말입니까, 공자님? 프레이 칼리고와 대련을 해서 이기기만 한다면 맥도웰 학부장님의 제자로 추천해주시겠다고요?

-그렇다. 내가 거짓을 얘기하는 걸 봤는가?

-아닙니다. 공자님께서는 절대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죠!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이참에 확실히 짓밟아 놓겠습니다. 다 무너져가는 백작가의 자식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설치기는. 안 그래도 꼴에 소드마스터의 자식이라고 매사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 믿고 있겠다. 리델. 어차피 머지않아 칼리고 백작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 한 마디를 끝으로 메모리 크리스탈에서는 어떠한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

“…….”

사실 이 메모리 크리스탈 속 음성은 아스모데우스가 자일 지그하르트에게 보여주었던 기억을 토대로 조작한 것이었다.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 아직은 말이야.’

자일 지그하르타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방금 들은 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사딘 룬델입니다. 제가 건네 드린 편지에도 적혀 있다시피 룬델 공작가는 칼리고 백작 가문을 노리고 있습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그들을 음해하고 있었지요. 과거, 제국을 호령하던 소드마스터였던 칼리고 백작의 몸이 급격히 악화된 것도 전부 이들이 꾸민 짓입니다. 칼리고 백작가에 잠입한 하녀 레일라가 그의 음식에 독과 마기를 섞은 약물을 지속해서 투입하였다는 것은 이미 편지를 통해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것들이 전부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추기경 토마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침음했다. 아마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했다.

“하아……. 라파엘이시여…….”

“이 외에도 다양한 증거가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그대는 이것들을 전부 어떻게 알아낸 것입니까?”

“할튼 칼리고 백작의 자제인 프레이 칼리고와 저는 같은 클래스에서 배움을 청하는 학우입니다. 그러한 인연으로 인해 그의 저택에 초대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이라…….”

토마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자일 지그하트는 최대한 무표정함을 유지한 채 빠르게 말을 이었다.

“또한 저는 살로몬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당시 사딘 룬델 공자와 대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와 검을 맞대며 느낀 이질감의 정체. 그것이 흑마술의 일종일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그 이후로 꾸준히 그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마기를 다룬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허나 그대 말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군요.”

“무엇입니까?”

“이번에 자네를 포함하여 아카데미의 학생들 전부 검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대가 방금 얘기한 것처럼 룬델 공작가의 자제가 마신숭배자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났을 터인데…… 저는 보고 받은 게 없군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지요. 무려 제국 최고의 권력자의 자식이 그 정도 대비는 했을 거라 봅니다.”

“골치 아프군요. 허나 이 정도 사실만으로는 저희 쪽에서도 섣불리 나설 수 없습니다. 설령 사딘 룬델이라는 청년이 마신숭배자라 하여도 룬델 가문 전체가 마신숭배자라는 증거는 없으니까요. 제가 직접 나선다고는 해도 꼬리를 자르는 게 고작 일 것입니다.”

“그들이 지닌 권력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들이 매년 라파엘 교단에 가장 많은 헌금을 지불하기 때문입니까?”

토마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대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교단과 제국의 이해관계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또한 룬델 공작가문이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권력을 생각하면……. 후우…….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현재의 라파엘 교단은 예전과 같지가 않습니다. 수많은 가문들과 세력들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패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러니 사딘 룬델이 의도한대로 이단심문관들이 움직인 것이겠지.

그런 게 아니라면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움직이는 것이 말이 되지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뿌리 채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나라를 지탱하는 개국공신 가문이 마신과 엮어있다는 것만으로도 근간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토마스가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지요. 허나 이건 단순히 한 명의 이교도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자칫하면 제국 전체의 혼란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 그대의 얘기만 믿고 움직이기에는 확실한 증거도 명분도 너무 부족합니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자일 지그하르트가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그 명분.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제가 직접 룬델 공작가가 마신숭배자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찾아오겠습니다. 제가 증거를 모아온다면 그때 추기경님이 나서주시지요. 만약 제가 증거를 얻지 못한다면 저를 버리셔도 됩니다. 추기경님은 모든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어디까지나 저를 지원만 해주시는 겁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너무나도 당돌한 자일의 제안에 토마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대가 실패한다면 저는 당신을 지켜드릴 수 없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다.

“괜찮습니다. 책임은 전부 제가 지겠습니다. 이참에 교단 내부의 부패한 것들도, 제국을 어지럽히는 마신숭배자도 싹 다 정리하시죠.”

토마스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좋습니다. 제가 뭘 더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 * *

하르만 백작가의 별채 내부.

추기경과 했던 대화를 되새기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바라보았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됐다.

옆에서 초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뢴달 하르만이 중얼거렸다.

“……미쳤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야. 정말 룬델 공작가를 칠 생각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뢴달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하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이냐? 다른 가문도 아니고, 무려 룬델 공작가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지닌 그 룬델 공작가란 말이다! 사병들의 숫자도 숫자지만 개개인의 무력 또한 웬만한 기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 않는가!”

“물론. 잘 알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가주인 다곤 룬델은 무려 소드 마스터다. 제국 최강이라 일컫는 검사란 말이다. 부가주 제논 룬델 또한 그 못지않은 기사이고. 그 둘을 대체 누가 상대하겠단 거지?”

“내가 해야지.”

“하아……. 자일 지그하르트여. 그대가 강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소드 마스터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모한 계획이란 말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봤자 바위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뢴달 하르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네가 원치 않는다면 내 계획에 동참하지 않아도 좋다고. 대신 방해만 하지 마. 지금이라도 빠지고 싶으면 빠져도 상관없어.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자신의 수하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뢴달 하르만이니 이러한 말을 하는 것도 충분이 이해가 갔다.

그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룬델 공작가를 상대한다는 것은 제국 최강의 검사를 필두로 한 거대 세력을 적으로 돌린다는 얘기였다.

“……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 귀띔이라도 해달라는 얘기다. 그래야 나를 믿고, 목숨을 맡기는 수하들을 조금이라도 납득시켜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절대 빠지겠다고는 안 하는 뢴달이었다.

‘그래도 은근 의리가 있다니까.’

“곧 손님이 올 거야.”

뜬금없는 내 말에 그가 의문을 표했다.

“손님? 갑자기 무슨 손님이 온다는 것이냐?”

“조력자.”

“……조력자?”

때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테레사 룬델이었다. 그녀를 본 뢴달 하르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당신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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