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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14화 (114/180)

114화

선두에 걷던 아이리가 프레이와 속도를 맞추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옆으로 섰다.

“네 이름이 프레이 칼리고냐?”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 정말 이 놈이 흑마술 쓰는 거 봤어?”

프레이가 복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그녀의 머릿속은 그 누구보다 복잡했다.

‘아버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갑자기 흑마술을 사용하는 사딘 룬델.

그리고 자신의 가문을 둘러싼 얘기들.

자신의 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안전하기는 한 건지, 추기경의 성물은 무엇인지, 자일 지그하르트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것을 건네준 것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자일은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걸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눈앞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그저 꿈같았다.

“하! 제국 최고의 무가(武家)라는 것들이 흑마술에 손을 대? 나 참 어이가 없네.”

앞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토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새삼스럽게 뭘 그러십니까. 자매님. 원래 이교도놈들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저희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뭐 그건 맞지만 이런 거물들은 얘기가 다르지. 제대로 된 증거 못 잡으면 꼬리 자르기 할 거 아니야. 결국엔 이놈이 전부 뒤집어쓰고 끝나겠지. 토미, 메모리 크리스탈 연락 온 거 없어?”

“네. 아직 입니다. 자매님 마음도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진득하게 기다려보시지요.”

“하아…… 이거 애매하게 굴다가 괜히 우리만 똥 밟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자매님은 팔 다리가 다 잘려도 죽지 않는 괴물이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쇼.”

“뭐? 괴물? 야, 숙녀한테 괴물이 뭐야, 괴물이! 그러는 너는 뭐 인간 같은 줄 아냐?”

“하하하. 제가 뭐 어때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 또한 전부 신의 은총,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아닙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아카데미 후문으로 이동하는 일행들.

낯빛이 어두운 프레이와 다른 이단심문관들과는 다르게 청십자회 소속 두 명은 만담이라도 나누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후문을 빠져나와 인근 숲속을 걸었다.

──그때였다.

왕관을 꿰뚫는 검.

룬델 공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차려 입은 열댓 명에 기사들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을 본 아이리가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하아…….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래, 어쩐지 너무 쉽게 진행된다 했다.”

“하하. 이 정도는 전부 예상하지 않으셨습니까? 명색이 공작 가문의 자제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허나 저희 예상보다 더 빨리 오긴 한 거 같군요.”

칠흑 같은 갑옷을 입은 기사 한 명이 기사들 사이를 헤집고 저벅저벅 걸어왔다.

“나는 룬델 공작가 소속 기사 파인델이다.”

“어, 그래. 룬델 공작가의 그 유명한 흑기사를 여기서 보게 되네?”

투구 속에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살로몬 아카데미의 학부장인 맥도웰 교수에게 허가를 받았다. 지금 당장 사딘 공자님을 내려놓아라.”

그 말을 들은 아이리가 싱긋 웃으며 토미를 바라봤다.

“토미.”

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들쳐 매고 있던 사딘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털썩.

바닥을 나뒹구는 사딘. 허나 아직도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그것을 본 흑기사가 소름끼치는 음성을 내뱉었다.

“……라파엘 교단의 사낭개여. 그대는 룬델 공작가가 우스운가?”

아이리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라파엘 교단이 개미 좆으로 보이냐?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입 아프게 계속 말하게 만들지 말고. 사딘 룬델 이 새끼는 대단하신 룬델 공작가의 자제가 아니라, 마신을 숭배하는 이교도 신분으로 지금 끌고 가는 거거든? 지금부터 교단으로 끌고 가서 네들이 감추고 있는 추악한 진실을 하나하나 파헤칠 거니까 방해하지 말고 내 눈앞에서 꺼져. 지금 당장.”

흑기사가 검집으로 손을 향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의 마나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공자님은 이교도 따위가 아니다. 또한 맥도웰 학장께서도 너희들의 행동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 분은 살로몬 아카데미의 학생이다. 그분의 처우에 관련해서는 아카데미 측에서 결정한다.”

“아, 자꾸 개소리를 그럴싸하게 쳐하네? 아카데미고 뭐고, 자시고 우리는 라파엘 교의 이단심문관으로서 마신숭배자 새끼를 교단으로 끌고 가는 거라고. 거기서 이 새끼가 진짜 마신 숭배자가 아닌지, 어쩐지는 우리가 알아서 심문 할 거니까 너네는 네 갈 길 가시라고.”

“룬델 기사단. 전원 발검(拔劍).”

그 광경을 본 아이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득.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아. 그래. 아예 막 나가자 이거지? 이 새끼들. 진짜 켕기는 게 있긴 있나 보네. 그 고귀하신 흑기사까지 대동할 정도면 말이야. 정보력도 빠르고. 그치, 토미?”

토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자매님. 저희가 누군지 아는데도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는 거 같습니다.”

“하아… 그렇단 말이지. 어쩔 수 없지. 이게 우리 임무인걸. 어쩌냐.”

“뭘 고민하십니까. 새로운 이교도가 늘어난 것 뿐 입니다. 자매님.”

“그래. 그렇지.”

그녀가 신성력을 끌어올리자 양쪽 주먹에 순백색의 너클이 나타났다.

동시에 토미 또한 신성력을 발휘했고, 그의 오른손에서 기다란 검신을 자랑하는 매끈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십자회 소속 주교, 아이리 칸나.”

“청십자회 소속 주교, 토미 메이든.”

둘은 눈앞에 기사들을 바라보며 동시에 외쳤다.

“지금부터 주신 라파엘의 이름으로 집행을 시작한다.”

“지금부터 주신 라파엘의 이름으로 집행을 시작한다.”

룬델 기사단 또한 검을 뽑아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모두 그쯤 하시게나.”

목소리의 주인은 살로몬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학장이자, 사딘 룬델의 스승인 맥도웰이었다.

* * *

테레사는 멍한 얼굴로 자신의 숙부인 제논 룬델과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현장을 응시했다.

“이게 대체…….”

동굴 내부는 상당한 크기를 자랑했다.

오랜 기간 공사를 통해 내부를 확장한 것인지 웬만한 운동장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수레 같은 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옮기고 있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대부분 시체였다.

인간, 혹은 짐승.

그리고 아인종들도 섞여 있었다.

훼손된 상태는 시체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어떤 시체는 원본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반면 어떤 시체는 안구나 팔, 다리 정도만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수레를 옮기는 이들은 대부분 허름한 복장과 깡마른 신체를 지니고 있었고, 그들을 감시하는 이들로 보이는 기사들은 중무장을 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허나 그들 모두 갑옷에는 룬델 공작가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이 룬델 공작가의 사병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굴의 가장 끝부분.

제논 룬델이 위치한 곳에는 아주, 아주 거대한 석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내가 지금껏 봤던 그 어떤 석상들보다도 거대했다.

동굴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의 높이니 웬만한 건물 5층 높이는 되는 듯 했다.

책을 손에 진 사내의 머리 뒤편에는 여인의 머리가 달려있다.

그 오른쪽에는 노인의 머리. 그 좌측에는 아이의 머리.

석상의 외형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저 석상이 누굴 가리키는 지 알 수 있었다.

──71계위(繼位) 마신,

‘단탈리온(Dantalion).’

그 앞에 놓인 제단.

석상만큼이나 커다란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제사용 검.

일렬로 늘어선 촛불들.

그리고 그 위에 뭉뚱그려 뒤섞인 시체들. 이미 몇 번이고, 이런 광경을 본 적 있었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서 규모가 남달랐다.

‘72교단에서 본 것보다 더 크군….’

이 정도면 여기 모인 이들이 하나의 교단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저건…….’

그리고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았다.

제단 위에 있는 시체들 중 익숙한 얼굴의 소년을 발견했다.

아까 전 노파의 집에서 보았던 그림 속에 소년과 일치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기사들 사이를 헤집고 한 명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과거, 뢴달의 가주 취임식에서 보았던 인물.

룬델 공작의 동생인 제논 룬델이었다.

“기어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테레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 숙부님……. 이, 이게 다 어찌 된 것입니까. 가문의 기사들과 숙부님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겁니까? 이 시체들은 전부 뭐란 말입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표정에 깃든 냉정함은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역시 형님 말이 맞았군. 불청객들이 올 거라고 하더니… 그게 설마 내 조카일 줄이야.”

테레사가 주변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나를 목소리에 담은 것인지 이 거대한 동굴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였다.

“룬델 기사단──! 지금 이게 뭐하는 것인지 당장 내게 설명을 하여라──!”

“…….”

그러나 그 누구의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

정적이 흘렀다.

“테레사. 내 조카야. 이 모든 것들은 너와 우리 가문을 위한 것들이다. 네가 뭘 생각하든 전부 오해에 불과하니 이만 이리 건너오거라.”

“……똑바로 설명을 해주십시오.”

“무엇을 말이더냐?”

“이곳에 있는 시체들은 뭐고, 저 석상은 뭐고, 왜 가문의 기사들과 숙부님이 이곳에서 시체들을 옮기고 석상 앞에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까? 이곳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마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어째서 저희 영지 내에 있는 교회 밑에 이런 곳이 있는 것입니까?”

“하아…… 나중에 다 설명해 줄 테니 일단은 이쪽으로 오거라. 이 숙부 말을 듣지 않을 것이냐?”

테레사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무래도 충격이 상당한 듯 했다.

“제대로 설명해주시기 전까지는 숙부님에게 갈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논 룬델의 얼굴이 돌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니고 있던 일말의 온기가 사라지며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그것이 네 선택이면 어쩔 수가 없지. 나는 분명 기회를 주었단다. 조카야. 그 기회를 걷어 찬 것은 바로 너 자신이다. 가주님 또한 이러한 일이 생겼을 때 네가 정녕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죽이라고 명하였다. 고맙다. 덕분에 너를 죽일 명분이 생겼구나.”

그러더니 검을 뽑아들고 미친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그의 눈이 붉게 물들며,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뒤이어 그가 손을 딱하고 부딪치자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함께 동굴 전체가 진동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 챈 뢴달이 내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입구가 무너진 것 같다.”

그리고는 뒤쪽에서 수 십 명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이 포위된 것이다.

나는 제논 룬델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곳에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린 그가 입 꼬리를 귀밑까지 올린 채 말했다.

“그래. 거기에 내 조카가 포함되어 있을 줄은 몰랐지만, 차라리 잘됐지. 이제야 내 소망을 이룰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눈엣가시 같은 년. 이 숙부는 말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널 죽여버리고 싶었단다, 조카야. 언제나, 언제나 말이지! 크하하하하하!!!”

“어째서…….”

테레사가 충격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제논 룬델에게 말했다.

“우리가 올 것이라는 사실은 가주가 알려주던가? 단탈리온의 권능을 이용해서?”

그가 나를 보며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네놈……. 전부 알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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