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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18화 (118/180)

118화

프레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숲 안쪽을 내달렸다.

발을 한 번 내딛을 때마다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헉… 헉… 아버지…….”

오늘 그녀에게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아버지 생각 뿐 이었다.

-정말 확신하느냐고 물었다. 너는 정말 칼리고 백작가의 사용인들 중 단 한 명의 배신자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느냐? 한때 제국을 대표하던 소드마스터인 할튼 칼리고가 고작 전투 중 입은 상처 때문에 지금까지 침상에 누워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허세 부리지마라. 네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쪽지에 적힌 내용은 사실이다. 나는 칼리고 백작가에 사용인 중 누가 마신숭배자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그의 몸에 지속적으로 주입된 마기 때문이다. 칼리고 백작가의 사용인들 중 마신숭배자가 있다. 그자가 가주의 몸을 망치고 있다. 그가 먹는 음식과 그가 먹는 약에 지속적으로 마기를 응축한 독을 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몸은 쉴 새 없이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는 불길한 음성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분명 괜찮으실 거야.”

세뇌에 가까운 암시.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느새 칼리고 백작가 앞에 도착한 프레이.

그러나 저택을 지키고 있어야 할 기사들은커녕 정원사나 다른 사용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평소 그녀가 알던 저택의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위화감(違和感).

저택 외부에서부터 감도는 서늘한 느낌은 그녀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정문에 들어선 그녀가 정원을 돌아보았다. 조금 걷자,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렀다.

“다들 어디 간 거지……?”

본능이 경고한다.

그녀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댄 뒤 저택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충격적인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게 대체 무슨…….”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바닥은 온통 핏물이 가득하고, 주변에는 수 십 구의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다.

전신이 꼬챙이에 꿰뚫리기라도 한 것인지 온몸이 구멍 투성이었다.

흡사 시체로 이루어진 강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욱!”

밀려오는 구토감을 간신히 참아낸 그녀는 혹시라도 아는 얼굴들이 있을까 싶어 시체를 살폈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그 말은 즉 이 시체들은 저택 내부 사람들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침입자가 있던 것인가?”

프레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시체의 품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와 분홍빛이 감도는 내장 같은 것들이 흘러나왔지만 애써 무시한 채 손을 움직였다.

“이건…….”

왕관을 꿰뚫는 검.

룬델 가(家)의 인장이었다.

프레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녀의 전신에서 흉흉한 살기(殺氣)가 피어올랐다. 허나 아직까지는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까지 피가 이어져 있다.

한 평생을 이 저택에서 보냈던 프레이였지만 지하실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직접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사장을 불러보았지만.

“잭슨!”

되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뿐 이었다.

척 봐도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하실을 향해 그녀는 발을 내딛었다.

저벅. 저벅.

계단을 내려가자, 거대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는 자물쇠가 떨어져 있었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안 쪽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흘러 나왔다.

“확인만 하는 거야. 확인만.”

그녀는 검을 뽑아든 채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줄지어선 촛불들.

그리고 바닥에 늘러 붙은 정체불명의 액체.

새삼 저택에 이런 장소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곱씹어보던 그녀의 눈앞에 기괴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아니.

이걸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3m 정도 되는 키.

세 개의 머리.

다섯 개의 팔.

성별은 제각각이었다.

마치 인간의 시체를 억지로 이어붙인 듯 온몸에 실밥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손아귀에는 거대한 낫이 쥐어져 있었다.

그 정체는 자일 지그하르트가 흑마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누더기 골렘이었다.

‘……징그러워.’

끔찍한 외형과는 별개로 어째서인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작동을 멈춘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뭐가 됐건 프레이의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골렘의 주변에 떨어져 있는 살점들이 그녀가 여기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야. 대체 누가 이런 걸 설치해놓은 거지? 이 또한 룬델 공작가의 짓인가…?’

골렘의 뒤편에 위치한 마신의 석상과 제단.

딱 봐도 급조한 티가 역력했다.

본인의 아버지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녀다.

누구보다 올곧은 길을 걷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그가 마신을 숭배할 리가 없었다.

쪽지에 적혀 있던 것처럼 정말 백작가의 사용인들 중 마신숭배자가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이제는 확신으로 변해갔다.

프레이는 지하실을 빠져 나와 가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복도 곳곳에도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마기(魔氣)였다.

그녀가 차고 있던 추기경의 성물이 미세한 빛을 뿜어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전신을 뒤덮은 불안감이 그녀의 숨통을 조여 온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발을 내딛었다.

3층.

가주의 집무실이 위치한 복도에 도달한 그녀는 다시 한 번 집사장을 불렀다.

“잭슨! 나야, 프레이! 내 말 들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집사장 잭슨을 제외한 다른 사용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전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빠르게 성호를 그으며 주신 라파엘을 향해 간절함을 담아 기도했다.

제발 모두가 무사하기를.

프레이가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누군가 이미 오기라도 한 것인지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아버지!”

간절함을 담아 소리쳤지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가 아닌 정체불명의 사내였다. 아버지가 있어야 할 침대는 텅 비어있었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옆구리를 움켜 쥔 사내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프레이와 눈이 마주친 사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내뱉었다.

“하아… 하아… 프레이 칼리고인가…….”

반대쪽 손에는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프레이는 단번에 그가 이 저택에 침입했던 룬델 공작가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까지 오며 보았던 시체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뽑아든 프레이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짓이기듯 내뱉었다.

“아버지는 어디 있지…?”

“……모른다.”

사내의 입에서는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호흡을 할 때마다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이딴 임무는 맡지 않는 건데……. 로이드, 그 멍청한 새끼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염치없는 짓이라는 건 알지만 혹시 회복약이 있으면 내게 건네 줄 수 있겠는가? 목숨만 살려준다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고 약조하마.”

프레이가 품에서 붉은색 물약이 담긴 병을 꺼냈다.

상급 회복약이었다.

“먼저 얘기해라. 그렇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지.”

사내는 기 싸움을 할 힘조차 없다는 듯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이미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룬델 공작가의 기사다. 가주님에게 칼리고 백작가의 인간들 전원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았지.”

“저택 지하에 있는 마신의 석상과 제단도 너희들이 꾸민 짓인가?”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을 내뱉는 사내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쿨럭. 그렇다. 칼리고 백작가가 사실 마신숭배자였다는 것으로 꾸미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지. 본래라면 너의 아버지인 할튼 칼리고 또한 자살로 위장하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미 떠난 모양이더군. 젠장. 모든 게 꼬여버렸어.”

“아버지…를 죽인 뒤 자살로 꾸미려 했단 말인가?”

새어나오는 살기에 움찔한 살수가 간절함을 담아 호소했다.

“……그래. 그것이 룬델의 방식이니까. 미안하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야. 그러니 가까이 와서 내게 물약을 건네주지 않겠는가? 목숨만 살려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내 죄를 뉘우치고 평생 그대를 위해 살겠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란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

“보다시피 움직일 수 없는 몸이니 이리 가까이 와주었으면 한다.”

프레이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힘겹게 손을 뻗는 사내.

프레이가 손에 쥔 물약을 그에게 건네줌과 동시에.

“고맙…….”

반대쪽 손에 있던 검을 휘둘렀다.

──서걱!

소름끼치는 날붙이 소리가 방안을 울리며, 사내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쓰레기 같은 것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또 다시 검을 휘둘러 그의 팔과 다리를 절단했다.

평소에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현재 그녀의 정신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다.

남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마나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혹은 샬럿이었다면 이미 폐인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내의 품에서 쪽지 한 장이 떨어져 나왔다. 겉면에는 ‘유서’라고 적혀 있었다.

쪽지를 주은 프레이가 유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괴물입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죄악을 저질러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추악한 이면을 죽음으로서 고백하고자 합니다.

.

.

.

.

죄송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용서를 구하며, 할튼 칼리고.

쪽지를 쥐고 있던 프레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의 입에서 짐승이 비명을 토하듯 고통스런 신음이 새어나왔다.

목이 메어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절규는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아아──!!”

…뚝.

…뚝.

그녀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쪽지를 적셨다.

그것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새로운 감정이었다.

예리한 칼날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다.

그토록 존경하던 아버지의 일생을 고작 한 문장만으로 부정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그녀의 살갗을 파고들어 흉터를 남긴다.

가슴 깊숙이 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진득한 증오가 그녀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이성의 끈은 끊어지지 않은 채였다.

이대로 증오에 사로잡혀 폭주하게 된다면 그녀는 또 다시 이블이 되어 버릴 터였다.

위태로운 외줄타기 속에서 그녀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아직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사내의 얘기대로라면 아버지와 저택의 사용인들은 살아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서서히 감정을 추스른 프레이는 생각했다.

아버지와 잭슨이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단서를 남겨놓았을 것이라고.

‘아버지를 찾아야 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방을 뒤지려고 몸을 움직이자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여기 있었군.”

뒤를 돌아보니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맥도웰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프레이가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맥도웰 학장님.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오신 겁니까?”

맥도웰이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내가 자네에게 볼일이 좀 있어서 말이지.”

한 걸음.

“그 볼일이란 게 저희 가문의 저택까지 찾아오셔야 할 정도로 중요한 얘기입니까?”

두 걸음.

“…그렇네.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거든. 쓸데없는 놈들이 방해를 하지 않았더라면 더 빨리 올 수 있었을 테지.”

세 걸음.

“왜 그러는가?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제가 이곳으로 올 거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

꿀꺽.

프레이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검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거 실언을 했군.”

네 걸음.

앞으로 남은 거리는 어림잡아 다섯 걸음 정도.

이 정도 거리라면 맥도웰 정도의 기사는 단숨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가 이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 방 전체가 그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신도 룬델 공작가와 한패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딘과 나는 그저 사제 관계일 뿐일세. 룬델 공작가는 아무런 관련이 없네.”

“……그 살기나 거두시고 거짓말을 하시죠.”

“허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새 들어 조절이 잘 안 되는 구만. 미안하네. 오래간만에 검에 피를 묻힐 생각을 하니까 흥분을 감출 수가 없더라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러니.”

평소 보여주던 인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살인귀의 얼굴을 한 맥도웰이 엄청난 속도로 검을 뽑아 돌진했다.

“어서 그 살갗을 내게 보여 주게나!”

프레이 또한 뒤늦게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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