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레비아탄(Leviathan)의 권능 폭식.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권능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꼭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더라도 이론적으로든 육안으로든 구분 지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라도 레비아탄은 삼킬 수 있다.
당연히 이렇게만 본다면 무적처럼 보이겠지만 이 세상에는 격(格(이라는 게 존재한다.
권능의 능력만 봤을 때는 레비아탄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마신이나 혹은 천신, 고대신 그 외에 존재들에게는 각각 부여 받은 개연성과 격이 존재하기에 자신보다 높은 격의 존재를 집어삼킨다 한들 그 편린조차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내게 된다.
모든 걸 집어삼킬 수 있지만 본인의 격 이상에 존재는 불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옥의 지배자이자 마신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바알(Baal).
레비아탄이 마음만 먹는다면 바알을 삼킬 수는 있으나 그게 끝이다. 삼켜봤자 어차피 소화 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바알의 진체의 크기는 레비아탄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작지 않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그 무엇이든 삼킬 수 있는 레비아탄이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단 얘기다.
의미가 없다.
개미가 코끼리를.
개미가 바다를.
개미가 우주를.
집어삼키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금 특이한 개미긴 하다. 아무리 먹고, 먹고,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개미니까.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격이 다른 존재들에 대한 얘기고, 위에서 설명한 것들은 같은 신들 중에서도 이질적이고, 불가해(不可解)한 것들이다.
신격(神格)을 얻어 신이 됐다고 해도 모두가 같은 급의 신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 정도 격을 가진 존재들이 아니라면 그의 폭식을 멈춰 세울 수 없다.
하물며 인간들 따위는 몇 백만, 몇 억, 몇 조가 와도 그저 그의 허기를 달래 줄 양분이 될 뿐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국 최고의 검술 명가인 룬델가(家)를 지탱하는 기사들이 모두 고래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칭송받고, 인정받으며,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하나가 훌륭한 기사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인간으로서는 보일 수 없는 무위를 지닌 초인들.
그런 기사들 백 여 명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확히는 삼켜졌다.
검은 고래의 뱃속으로.
그들이 딛고 있던 지면이 검게 변하더니 부글부글 끓었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흑색 고래.
세로로 찢어진 동공.
작은 산을 연상케 하는 크기.
그리고 모든 걸 집어삼킬 기세로 벌어지는 거대한 입.
그 안으로 룬델가(家)가 자랑하는 기사들 전부가 빨려 들어갔다.
흑기사들도.
원로회의 기사들도.
평생을 충성 받쳐온 일반 기사들도 전부.
그 광경을 목격한 테레사가 충격 받은 얼굴로 입을 뻐금거렸다.
“……이,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많던 병력들 중 남은 것은 오로지 다곤 룬델 하나.
갑자기 나타난 흑색 고래가 룬델 가의 병력들을 전부 쓸어버렸다.
이게 가능하긴 한 걸까?
인간 한 명의 힘으로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게 가능한 얘기란 말인가?
내가 알고 있던 아벨 크로이가 맞는가?
그렇게 테레사는 생각하고 있었다.
귓가에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들린다.
【맛…없…어…】
“조금만 참아. 곧 맛있는 거 줄 테니까.”
【맛…있…는 거…?】
“그래. 이번에는 아주 별미 일 거야.”
‘폭식’의 권능을 사용한 영향인지 레비아탄의 목소리 이외에도 평소 들리던 환청이 들려왔다.
여전히 나를 향해 온갖 저주와 쓰레기 같은 말들을 퍼붓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그게 네 힘 같아? 착각하지 마. 너도 어차피 마신의 노예일 뿐이야.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 네가 이 세계에 주인공이라도 될 거 같아? 웃기지 마. 넌 어차피 죽어. 넌 벌레야. 넌 쓰레기고. 네가 발버둥 쳐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프레이를 구한 것 같지? 네가 그녀의 미래를 바꾼 것 같지? 결국엔 네 선택으로 인해 그녀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 너로 인해 더 괴롭게 될 거야. 더 처참하게 살아가게 될 거야. 전부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프레이를 망친 건 너야!
-자일……. 아파요……. 왜 나를 버린 겁니까, 자일……. 그냥 나를 내버려두지 그랬어요……. 당신이…… 당신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어요……. 당신만 아니었다면! 당신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거야! 전부 당신 때문이야! 너를 증오해! 자일 지그하르트!
느껴진다.
마기(魔氣)가 몸을 침식하고, 뇌가 마성(魔性)에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
“시끄러. 닥쳐. 내 머릿속에서 중얼 거리지마. 닥치라고….”
시종일관 공허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던 다곤 룬델의 얼굴에 호기심과 경악이 공존했다.
가문의 수장인 그가 놀라고 있는 것은 자신의 부하들이 사라졌음이 아니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모두를 책임져야 할 인물인 그였지만 백 여 명이 넘는 부하들이 소멸되었단 사실은 그에게 연민이나 안타까움, 죄책감 등에 감정을 불러올 수 없었다.
그저 이만한 인원들을 한 번에 없애버린 자일 지그하르트라는 사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그리고 그 힘의 원천에 대한 감탄이 전부였다.
“방금. 그것도 흑마술인가……? 아니지. 마기는 느껴졌지만, 흑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다곤 룬델은 수하들에 죽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여주었던 능력에 대해서.
“그렇군! 그래! 권능이야. 마신의 권능이라면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겠지. 역시 그대는 마신의 사도가 분명하군. 대체 어떤 마신의 사도이길래 이만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대체 어떻게 이러한 권능을 얻게 된 것이냐! 네 정체가 무엇이냐, 자일 지그하르트!”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며 한층 더 상기된 목소리로 소리치는 다곤 룬델.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테레사에게 시선을 옮겼다.
“보이나? 테레사? 저게 네가 그토록 존경하던 아버지의 실체다. 눈앞에서 자신의 부하들 수 백 명이 소멸되었음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관심도 갖지 않는 저 모습이 바로 그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오롯이 내가 사용한 힘의 정체에만 관심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너는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한 치에 망설임도 없이 네 팔과 다리를 베어버린 자를 너는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지금 온갖 감정들이 공존하는 듯 했다.
불가해한 힘을 목도한 공포.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배신감.
다른 가족들에 대한 걱정.
이 모든 일들에 대한 회의.
“…….”
“네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라. 저 자의 핏줄을 이었다면 네 손으로 저자를 죽이고 이 비극의 연쇄를 끊도록 해라. 영웅이 되는 것이다. 테레사.”
저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다곤 룬델이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이런 식으로 내 딸 아이를 설득한 것인가? 이 또한 흑마술의 일종일지도 모르겠군.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내야. 진즉 네놈을 알았어야 했는데…….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진즉 나를 안다고 뭐가 바뀌나?”
“많은 게 바뀌지. 미래를 보는 권능을 얻었지만, 이 또한 완벽하지 않다. 또한 연합 그 버러지 같은 놈들도 나를 귀찮게 굴지. 내가 원하는 미래를 얻기 위해 그들을 이용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단 말이야. 그때 네놈을 알았더라면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얻었겠지.”
“……새로운 미래라. 내가 너와 협력이라도 하는 미래를 말하는 건가? 안타깝지만 그런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너와 더 빨리 만났더라면 네놈의 숨통이 더욱 빨리 끊어졌을 뿐이지.”
그 말을 들은 다곤 룬델이 파안대소를 했다.
“푸하하하하하!!!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놈이구나.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 나라에서 나를 향해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그래. 어디 한 번 보여 다오. 네놈이 가진 힘을.”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허공을 향해 손짓을 했다.
나 또한 사귀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수 백의 사귀가 일제히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사귀들에게 강화 마법을 부여했다.
“다중복합강화(多衆複合强化).”
전체적인 근력과 내구도 등 다방면에서 강화를 하는 마법을 사귀 전체에게 부여하였기에 꽤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했다.
그러나.
“반달.”
허공을 가르고 쏘아진 검격이 반달 모양의 형태로 나아가더니 점차 그 크기를 부풀렸고, 직선상에 경로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확히 반으로 베어버렸다.
내 강화마법이 부여된 사귀들 절반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이등분이 되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욱 맹렬한 기세로 쇄도하는 검격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
* * *
로만이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프레이는 흥분을 가라앉힌 뒤 다시금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조금 흥분한 바람에 경우 없이 얘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인데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자일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도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지만 이 질문들도 결국 자일에게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기에 저는 직접 그를 찾아가 묻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를 그에게 데려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로만은 곤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주인이 계신 곳은 무척 위험합니다. 하실 얘기가 있다면 주인께서 돌아오시고 난 뒤에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봤습니다. 자일이 룬델 공작의 동생인 제논 룬델과 있는 것을.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룬델 공작가의 영지가 아닙니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허나 당신이 얘기한 것처럼 이곳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얘기를 전하지 못하게 된다면요? 왜 그가 저로 인해 그러한 일들을 겪어야 하는 겁니까! 저는 자일에게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그를 도우러 가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인이 계신 곳은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그리고 프레이 당신은……. 약합니다.”
“…….”
“당신이 그곳에 간다고 한들 결국은 주인님의 발목을 잡는 것 밖에 안 되죠. 정말로 주인님을 위하신다면 당신께서는 이곳에 남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주인님을 위한 길입니다. 당신의 의문을 해소하자고 주인님을 위험에 빠트리고 싶으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