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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29화 (129/180)

129화

공간전이(空間轉移)를 통해 룬델 가의 영지에 도착한 프레이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웁. 우웩!”

“괜찮으십니까, 프레이?”

“…괘, 괜찮. 우웁!”

말은 괜찮다고는 하나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프레이를 내버려둔 요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옛 기억에 의존하여 공간전이 마법을 사용하였지만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이곳이 자신의 기억 속 그곳과 맞는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공간계열 마법 중에서도 공간전이는 좌표가 확실하게 고정되어야 한다.

즉 시전자 본인이 이동하고자 하는 공간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본인이 직접 간 곳이 아니라면 공간전이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들이 도착한 곳도 룬델 가의 저택이 아닌 과거 요한이 직접 다녀갔던 룬델 가의 영지인 것.

그러나 그 시절 요한이 봤던 풍경과는 많은 괴리가 있었다.

사방은 온통 시체가 가득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그 뜻 그대로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 같이 흐른다.

룬델 가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시체가 걸을 때마다 발에 치일 정도다.

요한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봤고, 어느새 옆에 다가온 로만이 조심스레 말했다.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군요.”

“그렇네요.”

“그쪽도 피 냄새가 납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요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게서는 피 냄새, 그리고 썩은 내가 나는 군요.”

“…….”

로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한의 저 말이 자신의 정체를 지적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룬델 공작가가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일을 치르려고 하는 가 보군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아예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생각은 있었을지 몰라도… 불가능하겠죠. 이 광경을 보면….”

앞서 말했듯 이곳을 가득 매운 시체들은 전부 룬델 가의 기사들 뿐 이다.

그 말은 이곳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죽은 것이 전부 룬델 가의 사람들 뿐 이라는 얘기다.

“라파엘교의 이단심문관 그들 중에서도 청십자회는 괴물들이죠. 단순히 악마를 사냥하는 데에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자들입니다. 인간을 상대하는 데에도 도가 튼 이들이죠.”

“그렇다 해도……. 이런 광경을 보면 누가 신의 사도인지 모르겠군요.”

앞장서서 제국을 수호하는 최강의 검이라 불리는 공작가.

신의 총애(寵愛)를 받으며 백성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라파엘 교단.

둘이 부딪쳐 만든 참혹한 광경은 무수히 많은 전장을 겪어온 요한과 로만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광경을 만들 수 있던 청십자회(靑十字會)에 무력에 감탄을 했다.

워낙 뛰어난 실력으로 인해 명성이 자자한 이들이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였다.

요한은 이미 청십자회의 단장인 크리스 발렌타인을 만난 적이 있었고, 그녀의 무력 또한 확인한 적이 있었지만……,

극소수의 인원들만으로 룬델 공작가의 정예 기사들을 쓸어버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제국 최고의 권력 가문.

일부분이라고는 하나 그 병력들을 몇몇 인원들이 뚫고 지나갔다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수님.”

“이제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토악질을 끝낸 프레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요한을 향해 다가왔다.

“원래 이렇게 어지러운 건가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그 중에서도 프레이는 공간 계열 마법과 궁합이 맞지 않는 듯 하군요.”

“선천적인 문제군요…….”

“그렇습니다. 허나 어쩔 수 없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네.”

“그럼 다시 가겠습니다.”

요한의 전신에서 마나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파아아앙!

바다처럼 새파란 마력이 그의 몸을 뒤덮으며 주변 일대로 퍼졌다.

그의 눈동자가 번뜩이며, 머릿속에 술식이 구현되었다. 프레이의 손을 잡은 그의 입에서 마력이 깃든 언어가 현현했다.

“축지(縮地).”

후웅─!

그가 발을 한 번 내딛을 때마다 주변 풍경이 휙휙 바뀌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경험에 프레이가 경악했다.

5초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주변 풍경이 수 십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축지’는 ‘공간전이’와는 조금 다른 성질의 마법이다. 같은 공간 계열 마법인 것은 맞지만 ‘공간전이’는 좌표를 고정하여 공간 자체를 비집고 이동하는 것이지만 축지는 시야에 닿는 공간과 자신이 딛고 있는 공간을 접어 연결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마법이다.

더욱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시야에 닿는 곳으로만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짧은 거리를 빠르게 주파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법이지만 그 난이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애초에 공간 계열 원천 속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기도 하고, 이 정도 수준으로 응용할 수 있는 것은 마탑주를 제외하면 요한 정도 뿐 이었다.

마투사(魔鬪士)인 그가 전투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마법 중 하나.

허나 공간 계열 마법과 상성이 좋지 않은 프레이는 죽을 맛이었다.

그가 발을 한 번 내딛을 때마다 공간을 접어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니, 그때마다 프레이는 강렬한 어지럼증과 두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웁!”

“조금만 참으십시오.”

프레이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겠지만, 요한은 그 찰나에 순간에도 주변 모든 시야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청십자회 소속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극소수의 인원들과 룬델 가의 기사들, 그리고 마법사들이 대치하고 있다.

그중에는 크리스 발렌타인도 존재했다.

“……역시 저 여자도 왔나 보군요.”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쪽은 룬델 가의 기사들 뿐 만이 아니었다. 상대편을 바라보니 강렬한 마기(魔氣)를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인간들.

아니, 인간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신원불명의 존재.

확실한 건 흑마술사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허나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들 변하는 건 없었다.

그녀를 도울 만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또한 그런 이유들이 아니더라도 흑마술사들을 상대하는데 가장 도가 튼 것은 그녀였으니 걱정할 이유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이목을 끌어준 덕분에 상대적으로 쉽게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축지를 통해 순식간에 저택 입구에 도착한 요한 일행.

안쪽에서부터 강렬한 마기와 마력이 동시에 느껴졌다.

요한이 로만에게 물었다.

“당신. 자일 군의 사역마가 맞죠?”

갑작스런 질문에 말문이 막힌 로만.

“…….”

“괜찮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의 정체에 대해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의 사역마라면 지금 그의 위치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일 지그하르트의 마기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로만이었기에 그가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역마인 그와 주인인 자일 지그하르트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주인님의 기운이 아래 쪽에서 느껴집니다.”

“아래요? 이 저택 아래를 말하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침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이 딛고 있는 지면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쿠궁!

힘의 진원지는 지하.

아래쪽에서 느껴진 거대한 힘에 의해 그들이 딛고 있는 땅 전체가 움직인 것이다.

“흐음…… 지하라…….”

잠시 고민하던 요한.

뒤이어 그의 눈동자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술식.

그의 입에서 영창이 튀어나오며, 그의 손짓을 따라 마력이 춤을 추었다.

“공간지배(空間支配).”

농도 짙은 마력이 거대한 저택 전체를 뒤덮으며 이내 투명한 구 형태가 되었다.

그는 지금 이 저택 전체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공간 전체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마법진을 구축.

공간전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최상급 마법의 현현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마력을 억제하기 위한 구속구로서 쓰고 있는 아티팩트 한 개를 벗은 상태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요한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적…입니다.”

로만이 경고를 했다.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은 몸.

마물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만이었기에 가장 빠르게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듯 하군요.”

저택의 문이 열리며,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두 명의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좌측에 있던 사내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놈들이 저택 전체에 장난질을 치나 했더니 너희였구나?”

“케인. 네 마기를 뒤덮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인간이라니……. 악마로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부끄럽기는 뭐가 부끄러워. 내가 저딴 놈한테 정말 밀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한 눈에 봐도 폭발적인 마기(魔氣).

흑마술사들이 뿜어내는 것과는 질 자체가 다른 정순한 마기(魔氣).

장난스럽게 말하는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마성(魔性).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종족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들을 마주한 순간, 그들이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악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어떤 동요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지막이 내뱉었다.

허나 그와는 다르게 프레이는 전신에 엄습하는 불쾌감에 몸서리를 쳤다.

“…아, 악마요?”

마신숭배자가 존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악마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악마를 보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물론, 그녀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운명이지만…….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것은 검은 로브를 입은 존재들 쪽이었다.

“이야.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닌가본데? 우리가 악마인 걸 단번에 알아보네?”

“방심하지마라. 저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다.”

“어머, 하인만. 이제는 인간들에게까지 겁을 먹는 거야? 라파엘의 개새끼들이면 몰라도 저 인간은 그냥 마법사야, 마법사. 별 거 없다고. 단탈리온님의 사단장이라는 놈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가슴팍을 꿰뚫는 수 십 개의 창날.

그것은 어떠한 전조도 현상도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평소에 푸른 마나가 순백의 마나를 두른 창끝이 악마의 전신을 꿰뚫었다.

팔, 다리, 가슴, 눈, 어깨, 옆구리, 허벅지, 종아리, 입.

순식간에 꼬챙이가 되어버린 악마.

그 옆에 있던 악마가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케인?”

이어서 흘러 나오는 요한의 음성.

“태워라. 백염(白炎).”

말이 끝남과 동시에 꼬챙이가 된 악마의 전신에서 순백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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