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화르르륵!
케인이라 불린 악마는 전신이 새하얀 불꽃에 뒤덮였지만, 그 어떠한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살점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그저 요한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 뿐.
“……제법 뜨겁네?”
살점이 촛농처럼 전부 녹아내리자, 그의 진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외눈.
귀밑까지 찢어진 입꼬리.
상어를 연상케 하는 이빨.
그가 입을 쫙 벌리자 그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불꽃들이 전부 빨려 들어갔다.
“꽤 뜨거웠어. 인간들 중에 이 정도로 마법을 다루는 이들이 있는 줄 몰랐네?”
“케인. 제발 방심 좀 하지마라.”
“내가 고작 이 정도로 죽을 거라 생각한 거야? 하찮은 인간 따위한테? 너는 겁이 많아서 탈이야, 하인만.”
케인의 전신에서 짙은 마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을 뒤덮었다.
프레이는 그 기운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폐가 타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독으로 된 연기를 들이마시는 듯한 기분.
“정화(淨火).”
그러나 요한이 가볍게 외친 한 마디에 이번에는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그가 뿜어낸 마기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는 순수한 불꽃.
마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마법의 극의.
물리 현상을 극한으로 비틀어내 탄생한 이능.
공간지배(空間支配)의 마법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이 자식이…….”
본 모습을 드러낸 케인이 아가리를 쫙 벌린 채 요한을 향해 돌진했다.
그 옆에 있던 하인만이라는 악마 또한 자신의 팔 한 쪽을 뜯어낸 뒤 손에 쥐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뜯어낸 그의 팔이 핏줄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괴한 형태의 창으로 변모했다.
새애애액!
“절단.”
악마의 전신에 사선으로 그어지는 선.
서걱!
이어서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두 악마의 몸이 갈라졌다.
18등분으로.
“끼에에에엑!!”
“크아아악!!!”
바닥에 흩어지는 살점.
본래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넝마가 된 악마들.
뒤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로만과 프레이는 전율을 느꼈다.
‘괴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이 정도 일 줄이야…….’
‘교수님이 이 정도로 강하시다니…….’
그러나 상황이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그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닥에 흩뿌려진 잔해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뒤이어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움직인 살점들이 한데 모여 뒤섞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공간 전체에 새겨진 마법이 문제인가? 별 희한한 인간을 다 보겠네.”
“그러게. 내가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 않았던가, 케인?”
“그러는 너는 방심 안 해서 그 꼴이 됐냐?”
그 모습을 보던 요한이 짜증난다는 듯 혀를 찼다.
“쯧. 더럽게 질기군.”
그들은 악마들 중에서도 재생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렇기에 신성력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죽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썰고, 베고, 태워도 체내에 마기만 남아있다면 무한히 재생을 하기 때문.
요한은 마법사였고, 당연하게도 신성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낸 백염(白炎)과 정화(淨火)도 항마(降魔)의 기운이 깃든 기술들을 보며 본인 스스로 응용을 하여 만들어낸 것이지 엄밀히 말하면 성마술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죽이는 게 불가능하다면…….’
요한의 머릿속에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공간을 다루는 그이기에 가능한 방법.
“분쇄(粉碎).”
──펑!
허공에서 떨어진 무형의 기둥이 두 악마를 짓눌렀다.
보이지 않는, 오로지 요한의 마나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망치.
공간의 주인인 요한의 의지에 따라 가히 폭발적인 위력으로 악마들을 박살냈고, 그들은 곤죽이 되었다. 허나 이대로라면 어차피 다시 재생을 할 터.
요한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마법을 발현했다.
“압축(壓縮).”
원본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눌린 두 악마의 신체를 극한으로 압축한다.
마력의 허락을 받은 불가해한 힘이 그것들을 한 점으로 만든다.
그다음 그의 시선이 닿은 공간 한 구석을 도려낸다. 그리고는 그곳에 응축시킨 그들의 시체를 집어넣었다.
몸 그 자체를 분자 단위로 분쇄시킨 뒤 압축하고, 그 다음 공간을 잘라 봉인한다.
죽일 수 없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격리(隔離).”
마지막으로 그가 떼어낸 공간 내부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검은 구체를 만들어낸 뒤, 분리된 공간을 다른 차원으로 격리한다.
요한이 펼친 마법을 모두 이해한 이가 있다면 아마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미 그가 펼친 마법은 단순히 한 명의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해를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 또한 요한과 비슷한 수준의 존재일 터.
평범한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들을 잘게 다져 소멸시킨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시죠.”
그렇게 저택 안으로 들어선 요한은 프레이와 로한과 함께 저택 지하로 향했다.
* * *
반달 형태의 검격.
일리야와 테레사가 동시에 막지 않았더라면 아마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검격 한 번으로 사귀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것을 막아낸 테레사는 팔이 부러져 덜렁거렸고, 더욱 앞에 있던 일리야는 전신에 자상이 새겨졌다.
그러나 진명을 되찾은 덕분에 본래 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일리야는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회복했고, 덩달아 팔이 부러진 테레사 또한 회복시켜주었다.
진명을 찾은 일리야는 단순히 강해진 것을 넘어서 내게는 회복이 가능한 성직자 한 명이 생긴 셈이었다.
“복합칠중강화부여(複合七衆强化附與).”
7가지 종류의 복합 강화 마법을 테레사와 일리야에게 부여했다.
용사 파티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마법.
온갖 영약들과 기연들로 인해 마력 자체도 웬만한 마법사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순한 상태였다.
보랏빛 마나가 그들의 전신을 감쌌다.
그녀들의 전신을 뒤덮는 보랏빛 아지랑이.
한 눈에 봐도 확연히 강해진 테레사.
오러를 두른 그녀가 질풍과 같은 몸놀림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돌진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검날.
쾌검의 묘리가 깃든 우아하고도 예리한 검끝이 다곤 룬델의 목덜미를 노렸다.
촤아아앙!
“살의(殺意)가 깃들었군. 예전과는 달라. 드디어 검사로서의 몫을 하기 시작했구나.”
그러나 다곤 룬델은 그 모든 동작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발 한 발자국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가볍게 회피했고, 곧장 허공을 향해 수직으로 손날을 그었다.
쩌어어억!
그의 손짓을 따라 생긴 균열.
검도 아니고 손날 따위가 공기를 베어버렸다.
때마침 끼어든 일리야가 아니었다면 테레사는 그대로 몸통이 반으로 갈라질 뻔 했다.
“아버지, 아니 당신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가 없겠군요.”
“내 눈에는 너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구나.”
다곤 룬델이 다시 손을 움직이자, 테레사의 왼쪽 손목이 잘려나갔다.
서걱!
성마술을 펼치는 일리야.
신성력이 깃든 검날이 폭풍처럼 쇄도했다.
이미 다곤 룬델은 마기와 오러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성마술을 사용하는 듀라한은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
심지어 그녀는 환상종이며, 신성력을 다룬다.
재생도 가능하고, 남을 치료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거슬리는 군.”
본래 환상종은 특수한 아티팩트가 아닌 이상 물리적인 피해를 입힐 수가 없지만, 경지에 이른 기사들 은 오러를 통해 상처를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그가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허나 손잡이만 있을 뿐 검날은 존재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무형검(無形劍).
검날이 없는 검이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짙은 마기로 이루어진 검은색 검날이.
‘저건 위험하다!’
다급하게 일리야를 불렀지만.
“일리야!”
이미 늦은 뒤였다.
준비자세도 없이 곧장 쏟아지는 종베기.
일리야 또한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한 건지 같이 검을 휘둘렀고.
쩌저저적.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환상종인 그녀가 물리적 일격으로 소멸한 것이다.
목이 반으로 갈라지고, 몸이 반으로 갈라지고, 다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말 그대로 이등분이 되었다.
그 위력이 너무 강했기에 회복조차 불가능했다.
영혼 그 자체에 상처를 입었기에 자칫하면 소멸할 뻔 했다.
다행히 그 찰나에 순간 나는 그녀를 역소환하였고, 영혼 그 자체가 사라지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당분간은 소환할 수 없게 되었다.
‘진명을 회복한 일리야를 단칼에 베어버리다니…….’
예상은 했지만 흑마술을 이용하여 그를 처치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마창 악시온(axion)이라면 그를 죽이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나 그가 맞아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폭풍처럼 쏟아지는 테레사의 검술과 끊임없이 달라붙는 사귀들의 공격에도 그 어떤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기에.
단순히 수준 차이가 나서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지닌 능력.
단탈리온의 서.
단탈리온과의 계약을 통해 얻은 그 능력 때문에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단편적이든 혹은 그보다 더 먼 미래든, 그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지금 이런 상황조차도 이미 그가 본 미래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지금껏 내가 아스모데우스의 권능을 아낀 이유 또한 이것 때문이었다.
최후의 최후.
가장 확실한 순간을 노리고 싶었기에.
“룬델 식(式) 일검(一劍) 바람 가르기.”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남은 사귀들마저 전부 소멸되었고, 근접에서 싸우고 있던 테레사 또한 양팔이 잘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서 빨리 네가 가진 것을 보여봐라 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는 그 시선에 대답이라도 하듯 아스모데우스의 권능을 발동했다.
“무의 경계(境界).”
무리해서 영역을 넓힐 필요는 없다.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은 범위가 아닌 미세한 컨트롤.
범위는 다곤 룬델과 나 사이의 공간.
마기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무(無)로 되돌아가자 다곤 룬델이 일순 당황했다.
나는 그 찰나에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무의 경계를 해제함과 동시에 폭식의 권능을 발동했다.
“먹어치워라. 레비아탄(Leviathan).”
다곤 룬델이 딛고 있던 지면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이내 지면 전체가 거대한 입으로 변모했다.
이 땅 전체가 바로 폭식의 마신 레비아탄의 입이 된 것이다.
거대한 흑색 고래가 아가리를 쫙 벌린 채 다곤 룬델을 집어삼켰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신체 절반을 집어 삼켰다.
확실하게 끝이 났다고 생각한 순간,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신체 절반을 희생한 다곤 룬델이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허공을 계단 삼아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