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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37화 (137/180)

137화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차가운 날붙이가 가슴을 꿰뚫었다.

눈앞에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여인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나의 누나.

테레사 룬델.

“……누, 누님?”

믿을 수가 없다.

…누님께서 어째서 이런 짓을?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다. 꿈이 분명해.’

그러나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은 지금 이 광경이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붉은 피를 토한다.

“…쿨럭.”

손이 덜덜 떨린다.

테레사 룬델.

일찍 어머니를 여읜 사딘 룬델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자신을 향해 오롯한 사랑을 아낌없이 주던 인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나만을 사랑해주던 인물.

나의 사랑. 나의 누나. 내가 가장 신뢰하는 여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내 인생의 지표.

그런 그녀의 검이 내 가슴팍을 꿰뚫었다.

왜? 어째서? 무슨 일로? 무슨 이유로? 누나가? 누나가 나에게?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착각한 게 분명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

자일 지그하르트…….

그 망할 놈이 또 무엇인가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다.

붉은 피를 토해내던 사딘 룬델은 안타까운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누님. 괜찮습니다. 전부 다 이해합니다. 하긴 그럴 리가 없지요. 누님의 의지로 이러한 일을 벌일 리가 없을 테니까요.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자일 지그하르트…… 저 개 같은 놈에 의해 일어난 사실이라는 것을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누님.”

사랑하는 누이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절대 자신을 찌를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 결국 이 모든 행동의 원인이 자일 지그하르트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병적인 애정이 만들어낸 자기합리화에 불과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차갑다.

그러나 그 위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은 뜨겁다.

보아라.

역시 이 행동은 누이의 의지가 아니지 않나.

나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을 영원히 사랑하기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다.

혈연(血緣), 그 이상의 신뢰.

우리의 유대는 그 무엇으로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것이니까.

“……저 버러지 같은 놈의 술수로 인해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라는 걸 알기에 저는 누님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누님은 그저 예전과 같이 저를 사랑해주시면 됩니다. 저 또한 평생 누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니 누님께서는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실 필요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전부 제가 안고…….”

사딘 룬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레사가 말을 끊었다.

그녀는 수 십 가지의 감정이 공존하는 눈빛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악마로 자라버린 자신의 동생을.

조용하고, 축축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동생아.”

가슴에 검이 꿰뚫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딘 룬델은 자신의 누이를 바라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예, 누님.”

“아직도 모르겠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촤아아아악!

사딘의 가슴팍에 있는 검을 뽑아내자 붉은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다급하게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막는 사딘 룬델. 그리고는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테레사를 바라봤다.

“……누, 누님?”

그 무엇보다도 서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테레사.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사술로 인해서 이러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순전한 나의 의지. 우리 가문이 저지른 죄들을 내 손으로 끝내기 위한 속죄일 뿐. 동생아. 착각하지 마라. 아니, 착각해서는 안 된다.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님?”

실시간으로 피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도 그녀가 한 말에 더욱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누이가 한 말에 충격을 가누지 못하는 사딘 룬델.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은 죽음 따위가 아니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믿고 있던,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배신감.

……이 세상 전부였던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

그것이 사딘 룬델에게 있어 가장 큰 괴로움이었다.

그의 인생에 전부는 테레사 룬델이었기에 그런 그녀에게 버림받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자일 지그하르트가 애써 테레사 룬델을 이곳까지 데려오고, 또 그녀의 팔을 치료해준 이유이기도 했다.

허나 아직은 이르다.

그가 받게 될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테레사 룬델도.

오로지 자일 지그하르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힘이 빠진 사진 룬델이 무릎을 꿇었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정신력을 발휘해 버티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자신의 누이를 바라봤다.

“……누님. 제, 제가 잘못들은 것이죠? 그렇죠? 아니라고 말해주십시오. 제발!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십시오! 이게 다 저 버러지 같은 놈의 음모라고 얘기해주십…….”

“…….”

“……누님?”

테레사는 그저 묵묵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둔 자신의 동생을.

그 누구보다 애절한 눈빛으로 대답을 듣길 바라는 자신의 동생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자신의 동생을.

나의 아이를.

“제발……. 이 모든 게 다 거짓이라고 해주세요…….”

“미안하다.”

──서걱!

뎅강!

툭.

“이것이 진실이다.”

사딘 룬델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누이를 응시했다.

“기다리고 있거라. 곧 따라 가겠다.”

죽음을 마주한 그 순간에도 그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것들이 제발 꿈이라고 해주기를.

그리고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보다 더 지독한 꿈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 * *

잠에서 깬 사딘 룬델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어디지?”

끝없이 펼쳐진 미로.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나 본능적으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기억을 되찾고 싶으면 일단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실 하나 만큼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누님…….”

그리고 누이를 보고 싶다.

이곳을 나가면 누이를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어째서 본인이 이러한 공간에 갇힌 것인지 모르겠지만 딱히 절망스럽지는 않다.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게 전부 해결 될 것이다.

나가기만 한다면…….

사딘 룬델은 정처 없이 미로를 걸었다.

미로의 크기는 그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했다.

매일 같이 수 만, 수 억 번의 걸음을 걸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걸었다.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서.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태양이 있지도 않았고, 밤과 낮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 자체를 알 수 없게끔 설계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저 하루, 하루 기록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유추했다.

…하루.

…일주일.

이곳에 온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끝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곳을 헤매야 하는 걸까. 가끔 마주치는 귀신들과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마물들을 베어내며 계속해서 걸었다.

이곳에는 죽음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갈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계속해서 걷는 것 뿐 이었다.

…한 달.

슬슬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 온 지 이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아무리 많이 걸어도 결국에는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벽에 새겨진 표식을 보며 자신이 같은 곳을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벽에 표식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제대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일 년.

틀렸다. 틀렸다. 틀렸다. 모든 게 틀렸다.

벽에 새겨진 표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내가 제대로 걷고 있던 게 아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표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일 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제대로 걷고 있는 게 맞을까.

이 길이 올바른 길이 맞을까. 언제까지 이걸 반복해야 할까.

……십 년.

이곳에 온지 꽤나 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이…….

어……? 내가 그동안 뭘 하면서 지냈더라……?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아! 그래. 이곳을 나가기 위해 나는 걷고 있었다. 그래. 이곳을 나가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사랑하는 누이를 만나야 한다.

그래.

그 일념 하나로 지금껏 버텼다.

나는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백 년.

“드디어.”

끝에 도달했다.

이 거대한 미로의 끝.

그곳에 도착했다.

불가능 할 것이라고 여겼던 그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누님을 만날 수 있었다.

“……누님! 저 사딘 입니다! 누님의 하나 뿐인 동생 사딘이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테레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사딘……? 내 동생……? 이리오렴!”

환희에 찬 사딘이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음성.

【미로의 끝에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 사딘 룬델. 이제 마지막 관문에 대해 설명하겠다.】

“……마지막 관문?”

【너는 지금 이 시간부로 잃어버린 기억을 모두 되찾게 될 것이다. 고개를 들고 앞을 봐라. 네 눈앞에 버튼이 하나 보일 것이다. 저 버튼을 누르면 너의 기억들을 전부 리셋함과 동시에 다시 이 미로의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하. 어떤 병신이 그딴 선택을 해?”

【이 미로를 나가고 싶다면 네 품에 안겨있는 너의 누이를 네 손으로 죽여라. 혹시나 해서 말해주지만 어차피 그것은 환상이다. 네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짜라는 것이지. 그러니 이곳을 나가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것을 죽여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물 밀 듯이 밀려오는 사딘의 기억.

…자신의 가슴을 향해 검을 꿰뚫는 누이의 모습.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누이의 모습.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을 벤 채 중얼거리던 누이의 모습.

“……사딘? 왜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테레사는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고, 그 모습을 본 사딘은 미친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린 채 버튼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버튼을 눌렀다.

“하하하.”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이 지옥 같은 미로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보다 자신을 배신한 누이를 떠올리는 것이 그에게는 더 끔찍한 지옥인 셈.

버튼을 누른 그는 모든 기억을 잃고 다시 미로의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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