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정신이 든 다곤 룬델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사딘 룬델과는 다르게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영혼의 격이 닳은 탓일까. 자신이 어째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인지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사딘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주어진 임무를 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적만이 남아있을 뿐.
“하아… 하아…. 젠장!”
그가 위치한 이곳은 레비아탄의 뱃속.
사딘과 마찬가지로 그를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낸 특제 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딘만의 지옥.
특별히 망각의 미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의 영혼은 영원히 그곳을 헤맬 것이다.
자일 지그하르트라는 인간은 생각보다도 훨씬 쪼잔하고 치졸한 사람이다.
자신이 겪었던 부조리함과 부당함은 반드시 갚아줘야 하는 인물.
이자까지 쳐서 말이다.
그들은 자일 지그하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적까지 여러 번 있었고, 지금껏 끔찍이도 괴롭혔던 인물들이기에 이처럼 특별한 이벤트들을 준비해두었다.
다곤 룬델이 있는 이곳은 일종의 투기장이었다.
콜레세움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으나 조금 특이한 것은 외형.
투기장을 가득 매운 관중들은 전부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껏 그가 죽였던 혹은 그에 의해 죽었던 직간접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관중들은 끊임없이 다곤 룬델을 향해 끔찍한 저주를 퍼부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제발. 죽어. 제발. 죽어. 끔찍하게 죽어. 죽고 또 죽어. 살갗이 찢어져서 죽어. 목이 베어져서 죽어. 불에 타서 죽어. 피부가 녹고, 가슴팍이 꿰뚫리고, 전신이 잘게 썰려서 죽어. 영원히 고통에 몸부림쳤으면 좋겠어. 지옥에서도 계속해서 죽었으면 좋겠어. 너를 원망한다. 다곤 룬델.”
“가주. 왜 저희를 버리신 겁니까. 평생 가주와 가문만을 위해 헌신하지 않았습니까. 가문을 위해 명예롭게 죽지 않았습니까. 그런 저희를 대체 왜 버리신 겁니까! 최소한 저희를 인간으로서, 가문의 기사로서 예우는 해주셔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악마 같은 새끼! 가증스러운 새끼!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서는 그 어떤 악독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버러지 쓰레기 같은 새끼! 죽어라! 네놈의 가족들도, 네놈의 가문도, 네놈의 후예뜰도 전부 멸망해라!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아라!”
“공작님.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제가 공작님을 위해 몇가지 일만 하면 저희 마을 사람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하셨잖아요. 왜 저를 속이신 겁니까. 네? 왜 저를 속이신 거냐고요. 왜!”
이와 같은 저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다곤 룬델은 인상을 조금 찌푸릴 뿐.
크게 괴로워하는 내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이를 갈며 반드시 이곳을 나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만 품을 뿐.
맹목적인 일념 외에는 그 어떤 생각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 일념이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 공간이 무엇인지, 정말 이곳을 나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은 품지도 못한 상태다.
왜?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으니까.
주어진 임무들을 수행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곳을 나가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투쟁.
한 평생을 바친 투쟁을 모티브로 경기장을 만들었다.
지금부터 그는 수 천, 수 만 명의 인간들을 상대하고 또 죽여야 한다. 죽일 수 없다면 죽일 때까지.
본인의 죽음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그 또한 사딘 룬델처럼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선택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바로 룬델 공작가의 가주(家主)이며, 제국 최강의 소드 마스터인 다곤 룬델이다! 바로 이 제국을 지배하는 최고의 권력자란 말이다! 이 몸이 이런 곳에서 죽어갈 듯 싶으냐! 웃기지 마라! 악착같이 살아남아 이 거지 같은 곳을 빠져 나가 나를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해주마! 하찮은 버러지들. 칼리고 백작가, 자일 지그하르트, 그리고 라파엘 교단까지 전부! 전부!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야!”
다곤 룬델의 포효.
광기 어린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서 품위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그저 독기만 남은 미치광이 검사일 뿐.
첫 번째 상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버지?”
바로 그의 아버지인 전대 가주 하이미 룬델이었다.
그와는 다르게 총명하고 공정하며 담대했던 인물.
“……이게 무슨 꼴이더냐. 내가 이런 모습을 보고자 네게 가주 직을 물려준 것이 아니었거늘.”
허나 다곤 룬델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에게 있어 혈연 따위 자신의 인생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테레사와 사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와의 대결에서 다곤 룬델은 총320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날.
겨우 승리했다.
이곳에서 영구적인 죽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죽음을 맞이하면 하루가 지난 뒤 다시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었다.
허나 당연하게도 고통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현실보다도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통각을 더욱 더 높게 느낄 수 있도록 설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전전대(前前代) 가주.
그 다음은 전전전대(前前前代) 가주였다.
차례로 1470번, 1670번에 죽음을 맞이했다.
허나 그럼에도 다곤 룬델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투쟁심을 불태웠다.
실로 놀라운 정신력이었다. 이쯤되면 일반적인 인간들, 아니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는 인간들이라도 정신이 마모되어 더 이상 살아있는 의미를 잃기 마련이건만 그는 오히려 더욱 불타고 있었다.
“…그래. 재밌군. 재미있어. 룬델 가의 빌어먹을 늙은이들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그래. 내가 증명해주마. 룬델 가문의 역대 가주들 중 가장 강력한 인간이 누구였는지.”
그렇게 다곤 룬델은 룬델 가의 초대 가주까지 쓰러뜨렸다.
다른 가주들과 다르게 그를 쓰러뜨릴 때까지 총 4277729번의 죽음을 맞이했다.
시간은 어느덧 1000년이 넘게 흘렀다.
뒤이어 나타난 사람들은 전부 그와 관련된 이들이었다.
그의 어머니.
그의 누이.
그의 자식인 테레사 룬델과 사딘 룬델.
그리고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인 레인 룬델까지.
마지막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으나 모조리 죽였다.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그 모두를 죽였다.
“빨리 다음 인간을 보내라!”
오히려 다음 인간을 보내라고 보채고 있을 정도였다.
그 다음 상대는 자일 지그하르트.
한눈에 그를 알아본 다곤 룬델은 전의를 불태웠고, 생각보다 빠르게 죽일 수 있었다.
【드디어 이곳까지 도달했군. 마지막으로 등장할 적들은 바로 네놈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인간들이다. 네놈도 알다시피 그 숫자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지. 그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고 선량하게 살아갔으며 오로지 네놈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살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이들이다. 네가 이들을 죽이게 되면 이들은 평생 이곳에서 떠돌며 살아가게 된다. 허나 네가 만약 자비를 베풀어 이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이들은 모두 성불하게 되고, 너는 100년 뒤에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 너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이지? 지금껏 네가 죽인 생명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가? 아주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참회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걸 들은 다곤 룬델이 웃음을 터트렸다.
“풉. 자비? 참회? 내가 왜 그까짓 버러지들을 죽인 것으로 죄책감 따위를 느껴야 하는 것이지? 그저 약해서 죽은 게 아닌가? 힘이 없어서, 약해서, 죽게 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것을 내가 왜 참회해야 한단 말이지?”
진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수 만 명의 영혼을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렸으니까.
【역시나 똑같은 선택을 하는군. 참고로 말하자면 네가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수 천 년에 걸쳐서 이곳까지 온 네놈은 매번 같은 선택을 반복했고……】
마지막으로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각성한 프레이.
미래의 힘을 빌려온 프레이 칼리고였다.
【매번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지. 그래. 역시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네놈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곳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흐른다.
이 공간을 구성한 자일 지그하르트가 설정한대로 흐르기 때문.
엄밀히 말하면 다곤 룬델은 이와 같은 일들을 정확히 12회 차 째 반복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참회한다는 선택지를 고른 적이 없었고, 이번에도 또 다시…….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프레이의 손에 영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네년은……. 설마! 프, 프, 프레이 칼리고! 그래! 네년이…! 네년이 감히 나를…!”
그의 머릿속에 지난 ‘12회’차의 기억이 전부 흘러들어왔다.
만 년도 넘어가는 시간.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참회를 한다는 선택지를 골랐다면 적어도 영혼의 일부분만큼은 이 지옥에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자일 지그하르트의 충실한 사역마가 되어 쓰였겠지만 이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자일 지그하르트의 성격상 ‘다곤 룬델’이라는 소재를 안 쓸리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인격을 담당하는 영혼’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가능했다.
실제로 그럴 생각도 있었고.
허나 역시 이번에도 실패였다.
괴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다곤 룬델을 분자 단위로 썰어버린 미래의 프레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13회 차로 가셔야겠군요.”
“…….”
“그거 아십니까. 당신은 1만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게 덤벼들었지만 단 한 번도 저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현실에서도, 이곳에서도 당신은 저를 이기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칼리고 가문의 핏줄을 당신은 단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
“그것이 당신이란 인간이 지닌 한계입니다. 당신이 자랑하던 룬델 공작가는 완전하게 몰락했고, 당신의 자식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당신의 시체는 이곳을 만든 주인이 꼭두각시로 부려 먹을 테고, 당신의 영혼은 무한한 굴레 속에 갇혀 영겁의 시간을 고통 받을 겁니다.”
“…….”
“그리고 당신은 이 모든 얘기들을 또 잊게 될 것입니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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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눈을 뜬 다곤 룬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하아… 하아…. 젠장!”
그의 마음속에는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맹목적인 일념 하나만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