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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39화 (139/180)

139화

터벅. 터벅.

요한이 프레이와 일행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왼쪽 손에는 무엇인가 질질 끌려오고 있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아르미 룬델의 시체였다.

이미 숨통이 끊어진 것인지 실이 끊어진 구체관절인형처럼 축 늘어진 채 그의 손에 매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핏물이 늘러 붙어 있었다.

“대충 보아하니 상황이 어느 정도 끝이 난 것 같네요?”

그를 바라본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룬델 가의 가주 다곤 룬델은 죽었어요. 교수님은 괜찮으신가요?”

요한의 몸 이곳저곳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그의 피도 있었고, 아르미 룬델의 피도 있었다.

군데군데 자상 또한 있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상처는 아닌 듯 했다.

“……네, 뭐. 소문보다도 훨씬 강하긴 했으나 보시다시피 멀쩡하게 살아있네요. 이정도 상처쯤이야 별 거 아니죠. 그런데 다곤 룬델의 시체가 보이지가 않네요? 어떻게 된 거죠?”

“아……. 그건…….”

프레이는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아무래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프레이 본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이제 갓 아카데미의 입학한 신입생이 제국 최강의 소드 마스터로 널리 알려진 룬델 공작을 죽였다?

그것도 시체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보이며? 그 누가 믿겠는가.

또한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한다고 하여도 그를 납득시키려면 자신이 그러한 힘을 가지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 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권능을 사용한 당사자인 자일 지그하르트에 대해 설명해야 했고.

프레이가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자, 요한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솔직하게 얘기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자일 군이 흑마술사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네, 네? 그, 그게 무슨.”

“하하. 프레이 군은 거짓말을 참 못하시는 군요. 표정에서 티가 확 납니다. 아마 태어나서 거짓말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으신 거 같군요. 아, 아닌가요? 하긴…… 한 평생 성별을 바꾸며 살아오셨으니 그건 그거대로 평생 거짓말을 하며 살아오신 거군요.”

프레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충격적인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달아 터트리는 요한을 바라보니 머리가 더욱 어지러웠다.

‘교수님은 이 사실들을 전부 다 어떻게 알고 계신 거지? 내가 여자라는 사실까지 알고 계셨다고? 아니면 혹시 떠보시는 건가?’

이제는 성별을 밝혀도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어째서 그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티팩트와 더불어 프레이 본인도 굉장히 신경을 쓰며 생활했을 터인데…….

“보십시오. 지금도 표정에서 전부 드러나지 않습니까? 거짓말을 하려면 표정 관리를 하는 것부터 연습해야 할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제게 교육을 받는 동안 차차 배우게 될 것이니……. 아, 그리고 혹시나 오해를 하실까 싶어 말씀드리면 프레이 군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 제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제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제가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우월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지요.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에는 좀 민망하지만 제가 나름대로 마법에는 식견이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군요. 교수님은 처음부터 제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었군요.”

“그렇지요. 그보다 이곳에서 있던 일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프레이는 이내 이곳에서 자신이 보고, 또 겪은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모든 얘기를 들은 요한이 평소와는 다르게 상당히 진중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골똘히 고민했다.

“……대단하군요. 그 권능이 정확히 어떠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레이 양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 다곤 룬델을 이길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겠죠.”

“…제가 느끼기로는 그것이 아마 제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 있던 재능이 폭발적으로 피어나던 감각이 느껴졌어요.”

“그렇군요……, ‘개화(開花)’라는 걸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프레이 학생 본인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미래의 프레이 학생 본인이 사용할 무위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빌려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일지도 모르겠군요. 결국 그 또한 프레이 학생 본인의 힘과 재능이니까요.”

“……그것들이 전부 저의 재능일까요. 정말 미래의 저는 그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프레이 학생 본인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고개를 내리며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투박하다.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혀있고, 피가 묻어 있다.

그러나 그런 손이 부끄럽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다.

이것이야 말로 그녀가 했던 노력들의 증명이었으니까.

아직도 손에 감각이 남아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베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느낌.

초월의 영역에 일순간이나마 발을 들어선 것 같은 느낌.

검의 극의(極意).

정작 당사자인 프레이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날의 기억과 경험이 그녀에게 있어 엄청난 기연(奇緣)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검사들은 평생을 받쳐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단 한 번이라도 일시적으로 들어섰다는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검로(劍路).

그녀가 걸어가야 할, 검의 길을 그녀는 이미 한 번 본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은 이것의 가치를 똑바로 알지 못하겠지만,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검사들은 아마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기 위해 달려들 것.

그만큼 값진 경험인 셈이었다.

권능이 끝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다.

정작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단순히 경지에 도달한 경험을 한 것만으로 그녀의 검은 한 단계 상승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근데 프레이 양? 자일 군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둘 모두의 시선이 자일 지그하르트에게로 향했다.

요한의 말처럼 자일의 상태는 한 눈에 봐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린 채 쇳소리 같은 것을 내며 붉게 충혈 된 눈동자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닥$^@#쳐. 닥%$^^치%^$라고!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제발 그 입 닥치66라고! 꺼져. 꺼져 이 개새끼들아. 내 머릿속에서 당장 나가. 어차피 너희들 따위 내 마성이 만들$%^$어낸 환청과 환상에 불과하다는 건 내가 잘 알고 있다……,”

요한은 심각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느껴지는 마기가 심상치가 않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를 마기가 막아주고 있는 것인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더 좋지 않다. 어눌한 말투와 붉게 충혈 된 눈동자. 이 증상들은 설마…….’

불현 듯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단어.

이블(evil).

심지어 그는 알고 있었다.

이곳을 향해 청십자회에 일원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들이닥치게 된다면 여러모로 위험하다.

“프레이 양……. 자일 군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야만 해요.”

그 말을 들은 자일 지그하르트가 힘겹게 대답했다.

“교, 교수님……. 서@^째어… 에#4기$여?”

프레이 또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 그리고 그의 어눌한 말투.

“자, 자일……. 정신이 좀 들어요? 조금만 더 버텨요. 아, 교수님! 회복 계열 마법 사용하실 줄 아시잖아요? 그걸로 자일 군좀 치료해주세요! 네?”

프레이의 간절한 외침에도 요한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프레이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교수님?”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습니다.”

“네?”

“이미 저 상태가 된 자일 지그하르트 군에게 회복 계열 마법은 별 다른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의 말대로 자일 지그하르트 본인 또한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지만, 초단위로 자신을 괴롭히는 저주들이 뇌를 좀먹는 기분이 들었다.

몸 안에 싹튼 저주의 씨앗이 발아하여 뇌를 헤집는다.

붉은촉수가 뇌를 헤집는 것 같은 감각이 연신 울려 퍼졌다.

충혈된 눈동자로 보는 시야는 지옥도가 따로 없다. 촉수들이 움직이고, 촉수들이 말을 한다.

프레이와 요한 또한 그저 촉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붉은 촉수.

맛@#@어 보인다.

안간힘을 다해 요동치는 마기를 통제한다. 그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테레사…….”

텅 빈 눈동자로 자일 지그하르트를 바라보는 테레사.

그녀 또한 방금 전 자신의 혈육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걸까.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이런 생각 등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말을 걸었다.

“……뒷정리를 부탁해. 너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라고 믿어. 너희 아버지가, 너희 가문이 저질렀던 그간에 일들에 대해서 나날이 고하고 차기 가주로서 그에 걸 맞는 행동을 해.”

“…….”

“할 수 있지……?”

테레사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자일 지그하르트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 그게 네가 바라는 영웅의 모습이야. 지금 딱 영웅 같네…. 가짜 용사 따위가 아닌 진짜 영웅….”

그리고는 요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치지지직.

절반의 시야가 붉게 물들고, 절반의 시야는 본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양쪽 눈으로 본 세상에서 요한의 몸 절반은 분홍빛 내장이 꿈틀거리는 촉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본래의 인간 모습이다.

그가 손을 뻗는다.

하필 촉수로 이루어진 손이다.

“네. 접니다. 요한. 대체 그 꼴은 뭡니까. 당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무모했습니다.”

-네. 접$#@@죽어.#@니다. 요한. 대체 그죽어.%#%% 뭡$^$^까. 당$^이 죽어. 아무리 뛰어나$#%#고 죽어. 혼@#서 이#$ 짓을 죽어. 하는 것은 무모했습니다.

요한의 목소리가 두 가지로 나뉘어 들린다.

다행히도 자일 지그하르트는 똑바로 인지하고 있다.

이상한 건 요한이 아니라 본인이라는 것을.

“……부탁이 있습니다.”

“말하십시오.”

“지…금 당…장 저$%^$^를… 교수$#%님이… 아는 가장 한적한 곳으로 이동시켜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으득.

으드득.

자일의 고개가 서서히 꺾이며 반쯤 돌아간 눈동자가 요한을 응시한다.

“다니립드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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