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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40화 (140/180)

140화

많은 것을 물어보고,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요한 또한 자일 지그하르트가 어떤 의도로 자신에게 이러한 부탁을 한 것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아마 그 또한 나와 하고 싶은 얘기가 많겠지.’

허나 이 모든 걸 무사히 넘긴 뒤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프레이가 다급히 요한을 불렀다.

“교, 교수님! 자일 군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설마…….”

요한이 검지를 입 앞에 갖다 댔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섣불리 얘기하지 말라는 의도였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단어.

“다들 가시지요. 여기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테레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와 프레이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테레사의 입장에서 프레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인간이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이 향하고자 하는 검의 극의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했다.

그때 보았던 그 찬란한 검술은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꿈에만 그리던 이상향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한 것 같은 감각.

그녀가 칼리고 가문의 자제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한때 최강의 소드 마스터로서 명성을 날렸던 칼리고 백작의 자식이기 때문일까…….

그녀를 향한 감정은 복잡했다.

질투와 연민.

동경과 증오.

그러나 그것을 느끼는 것은 프레이 본인 또한 마찬가지.

여인의 몸으로 황실 기사단장의 자리까지 오른 테레사를 프레이는 예전부터 존경하고 있었다.

룬델 가문의 배경 따위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지조 있는 검사.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테레사의 시선이 프레이에게로 향했다.

“프레이 칼리고……. 맞죠?”

“네.”

자리에서 일어난 테레사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대에게는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프레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는 하지만, 테레사의 입장에서 자신은 그의 아비를 죽인 인간이 아닌가.

제아무리 극악무도한 인간이라고는 해도 아비는 아비다.

눈앞에서 아비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대와 그대의 가문이 겪은 일들……. 저 따위가 노력한다고 해서 전부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그 대가를 치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드세요.”

테레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프레이를 바라봤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룬델 공작가가 저와 저희 아버지, 그리고 저희 가문에게 저지른 일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테지만 적어도 테레사님은…… 저희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당신과는 이런 형태의 만남이 아니었더라면 더욱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또 모르는 일이죠. 이후에는 저희가 얘기했던 것처럼 될 수 있을 지도……. 다음에 뵈었을 때는 대련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죠.”

두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던 요한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대화는 끝이 난 것 같으니 지금 바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요한이 마력이 깃든 손가락을 허공에 움직이자, 자일 지그하르트가 엎드려 있는 바닥 아래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졌다.

주변에 공기가 요동치며, 그들이 위치한 공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자일 지그하르트와 요한 일행.

그 광경을 바라보던 테레사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리도 쉽게 공간전이 마법을 사용한 요한의 능력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기사인 그녀 또한 공간전이 마법이 얼마나 고난이도의 마법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소천마 천악천에게 목숨을 잃을 뻔 했을 때 린 메이지가 지니고 있던 공간전이 스크롤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모두 죽었을 테니까…….

정신을 차린 테레사는 이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야 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그것을 치울 수 있는 것은 본인 뿐 이다.

룬델 공작가의 새로운 가주가 되어 아버지가 저질렀던 사고들을 수습해야 한다.

긍지 높은 룬델 가의 핏줄로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내가 참회해야 한다.

‘내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

나는 이제 룬델 가(家)의 새로운 가주다.

테레사 룬델.

“룬델 가의 기사들은 들어라!”

그것이 룬델 공작가의 새로운 주인의 이름이다.

“전쟁은 끝이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마력이 가득 담긴 그녀의 목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려 퍼졌다.

* * *

머리가 어지럽다.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는다.

호흡을 할 때마다 걸리는 느낌이 들고, 기분 나쁜 쇳소리가 연신 울려댄다.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어져 있다.

내가 보는 풍경들이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하아… 하아….”

괴롭다. 머리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

내장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여기는 어디지……? 시간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이대로 죽게 되는 건가? 아니면 역시 마성(魔性)에 사로잡혀 이블(evil)이 되는 건가?

죽고 싶지 않다.

집에…… 가고 싶다.

가족들이 보고 싶다.

편안한 침대에 눕고 싶다.

……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

나는 요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email protected]입니까?”

내 입에서는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언어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이게 이블이 되어가는 기분인가. 그들 또한 이런 기분이었을까.

요한이 한층 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정신이 드십니까, 자일? 여기는 제국 동남쪽에 위치한 로키 산맥의 중턱입니다.”

로키 산맥…?

어째서 이런 곳으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요구대로 인적이 드문 장소인 것은 틀림없었다.

룬델 공작가의 저택에서부터 이곳까지 상당히 떨어져 있었을 텐데 단번에 공간전이를 한 것 보면 그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여도 적잖이 무리를 했을 것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요한 또한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평소에 귀찮고 나른한 얼굴이 아니라 하얗게 질린 창백한 얼굴이었다.

프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고.

“교수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요한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보다는 자일 군 쪽을 신경 써야 할 거 같군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3@#$…….”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만 #@$^@#%@#…….”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작게 들린다.

아아.

절반은 멀쩡했던 시야마저 온통 붉게 물든다.

꿈틀. 꿈틀.

프레이도.

요한도.

모두 촉수로 변해간다.

내가 알고 있던 인간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눈앞에 있는 것은 지옥의 창자를 꺼내놓은 것 같은 풍경이다.

온통 붉게 물든.

……내장.

사실 이 세계는 누군가의 뱃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아.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이블이 되고 싶지도 않다.

─두근. 두근.

살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뛴다.

기껏 갈무리했던 마기를 더 이상 주체할 수가 없다. 내 몸 곳곳에 마기가 퍼진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살의가 들끓는다.

“이게 마성(魔性)…….”

신이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

아스모데우스가 잠시나마 내 몸을 빌려 현신했을 때 느꼈던 그 감각.

그것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짜릿하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다.

이 또한 어찌됐건 힘이지 않은가?

그간 내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죽여왔던가.

그들의 입장에서도 나는 결국 악(惡)이고, 흑마술사이고, 마신숭배자가 아닌가.

마신숭배자가 마신을 받아들이고, 흑마술사가 흑마술을 사용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인간이 인간의 살을 뜯어먹고, 머리를 자르고, 눈깔을 파내고, 뭐 그런 거 살면서 한 번 씩은 다 해보는 거잖아?

¿아잖거 는보해 다 은씩 번한 서면살 거 런그 뭐 ,고내파 을ᄁᆞᆯ눈 ,고르자 르리머 ,고먹어뜯 을살 의간인 이간이

너도 그랬잖아? 안 그래? 선한 척, 뭐뭐한 척, 뭐뭐뭐한 척 다들 가면을 쓰고 살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잖아?

¿아잖니아 게그 은심본 만지살 고쓰 을면가 들다 척 한뭐뭐뭐 ,척 한 뭐뭐 ,척 한천 ¿래그 안 ¿아잖랬그 도너

네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는 너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추악한 욕망이 들끓잖아.

받아들여.

그냥.

너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받아들이면 편해.

거절할 필요 없어. 그냥 받아들이면 다 해결돼. 더 이상 끔찍한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거고, 끔찍한 것들이 보이지도 않을 거야.

이걸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구원’이야.

소천마? 마신? 청십자회?

더 이상 그 누구도 두려워 할 필요 없어.

자일 지그하르트.

아벨 크로이.

아니.

김■■.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나는 눈앞에 놓인 검은색 구체를 손에 쥐었다.

* * *

자일 지그하르트를 향해 뛰어드는 프레이와 그녀를 말리는 요한.

“자일!”

“프레이! 떨어지십시오!”

검은 기둥.

마기로 이루어진 검은 기둥이 하늘을 뚫고 솟아오른다.

자일 지그하르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마기가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그들이 위치한 산 전체를 가득 뒤덮었다.

지금껏 느꼈던 기운들과는 그 결이 다르다.

산 전체를 가득 덮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요한조차도 느껴보지 못한 이질적 존재감이었다.

‘결국 각성하게 된 건가……. 이블을 마주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건 무언가 다르다…….’

오랜 시간.

울리지 않았던 그의 생존 본능을 담당하는 경종이 힘차게 울리고 있었다.

요한 또한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질적인 존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저것’이 깨어나는 순간.

단순히 재앙 따위로 끝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이 세계에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만했다. 내가 너무 시간을 끌었어. 아무리 제자라고 해도 공과 사를 똑바로 구분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없애야한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자일 지그하르트라면 어떻게든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거 하나만을 믿고서 그를 방치해두었다.

그 결과,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잔혹한 판단이지만 처음 자일 지그하르트가 마성에 오염된 기미가 보였을 때 주저하지 않고 그를 처치했더라면…….

최악은 면할 수 있었을 터.

“교, 교수님……. 대, 대체 저게 뭔가요……. 서, 설마 저게 자일 군인 겁…니까…?”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고치.

흡사 심장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고치였다.

두근. 두근.

진짜 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박동을 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실 같은 것들이 가지처럼 퍼져 있었다.

요한 또한 공포와 감탄이 뒤섞인 듯한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건 저도 처음 보는 거군요.”

이블의 각성단계에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현상이 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건 마치…….

무엇인가 태어나기 직전에 만든 부화장 같지 않은가.

“……교, 교수님?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에요?”

요한은 프레이의 말을 무시한 채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머리 위로 고밀도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수 십 개의 무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 교수…님? 교…수님? 제 말 들리세요……? 설마… 아니죠? 제가 생각하는 그게…….”

요한은 여전히 눈앞의 고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프레이 양. 지금보다 더 일찍 이러한 선택을 했어야 했어요.”

“멈춰…주세요. 아직 그를 되돌릴 방법이 있을…….”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공에 떠 있던 무기들이 고치가 된 자일 지그하르트를 향해 일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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