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콰과과광!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한계까지 응축시킨 마력.
그것이 변모한 무기들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여파로 인해 산 전체가 진동을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프레이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자일.”
이 정도 공격을 정면에서 받았으니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터였다.
자욱하게 깔린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시야가 드러났다.
“……이런. 이건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인데요?”
여전히 굳건함을 유지하고 있는 고치.
요한의 무자비한 마법을 폭격하듯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흠집조차 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크고 단단해진 듯 보였다.
‘착각이 아니야. 전보다 더 커졌다……?’
자일을 감싸고 있는 고치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더욱 징그러운 외형으로 변모했다.
인간의 핏줄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표피 바깥에 덕지덕지 붙어 있고, 고동소리와 더불어 계속해서 숨을 쉰다.
두근. 두근.
그것은 태동(胎動).
무엇인가 이 세계에 강림할 것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프레이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굉장히 모순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고.
저곳에 있는 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일 지그하르트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그녀의 생존본능은 저것이 깨어나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저것이 깨어나기 전에 저것을 없애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또 다른 마음에 그녀는 요한의 마법이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건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재앙이 되어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를 포기할 수가 없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이블이 얼마나 위험하고 끔찍한 존재인지도 알고 있다. 본인이 직접 겪어 보았기에.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가 자신을 구원해준 만큼 그녀 또한 그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설령 이것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이기심이라 할지라도.
이 선택 하나에 인류의 목숨이 저울질 당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프레이. 당신도 이미 느끼셨겠지만 자일 지그하르트는 지금 ‘각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건 제가 여태 보고, 배우고, 들었던 곳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각성이에요. 이블에 강함은 생전에 지니고 있던 강함과 비례한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프레이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일 지그하르트 군에 강함은 그 누구보다 프레이 당신이 잘 알고 계시겠지요. 그는 단신으로 룬델 공작가에 쳐들어가 살아 돌아올 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마저도 그가 지닌 힘의 일부분일지도 모르죠. 만약 그가 당신과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설마…….”
“아마……. 인류를 멸망의 위기에 몰아넣을 정도의 이블(evil)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단 한 명의 이블에 손에 의해 제국 전체, 아니 이 세상 전체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그때가 되면 저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어떻게 해서든 자일 지그하르트를 죽여야 합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듣게 되니 확실히 실감이 났다.
자일 지그하르트를 죽여야 한다.
인류를 위해서라도.
그가 깨어나면 이 세상이 위험하다.
그럼 그는 그냥 희생되어야 하는 건가? 지금껏 모든 위기에서 지신을 구해준 자일 지그하르트가?
머리로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감정은 이성을 배제한다.
살려야 한다.
살리고 싶다.
어떻게든 그를 살리고 싶다.
“……방법이 있을 겁니다. 교수님이라면 생각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일 지그하르트를 죽이지 않고 원래대로 돌리는 방법을.”
“미안하지만 저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고민해봤습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더군요. 거기에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 고치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프레이 당신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방금 전 제 마법에 직격으로 맞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 고치를. 시간이 없습니다. 프레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학생에 힘을 빌리는 것은 탐탁지 않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겠죠. 또한 그대는 룬델 공작을 직접 끝낸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든 전력을 끌어내어 저와 힘을 합친다면 고치를 부술 수 있을 겁니다.”
망설이는 프레이.
그의 말은 이해했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
요한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가 이만큼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매사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고, 크게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수많은 리스크를 감당하고 전장에 나섰다.
거기에 지금은 자신의 제자를 죽여야만 하는 선택을 적극적으로 종용하고 있었다.
그 또한 결코 이런 선택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 반대편 저울추에 걸려있는 무게가 너무 크다.
단순히 자일 지그하르트 한 명을 살리고자 이 세계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생각한 이 방법마저도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른다.
여차하면 그는 마력 탈진에 걸리더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고치를 파괴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프레이의 힘이 더해진다면 어떻게든 가능하겠지. 그녀의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걸 고려할 때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해. 이건 시간 싸움이다. 조금만 지체하게 되면 나중에는 아예 내가 손을 쓸 수 없을 거야…….’
“프레이!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겁니까!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결단을 내린 프레이가 결연한 얼굴로 요한을 바라봤다.
“……교수님.”
“네. 프레이. 어서 마력을 집중하세요!”
그러더니 요한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프레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십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얘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요.”
그런 프레이를 보며 요한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금 이런 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그 순간.
감히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존재감의 주인은 일부로 자신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고, 상시 전신에 겹겹이 마력을 두르고 있는 요한조차 일순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강대했다.
“이 기운은 설마…….”
요한이 존재감의 원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거구의 사내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는 그의 덩치만한 거대한 창이 쥐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뺨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와 별을 닮은 듯한 황금빛 눈동자가 엿보였다.
특이하게도 반대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는 것을 미루어보아 사내는 외눈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50대 중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
그러나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원래도 훌륭했던 외모는 더욱 농익은 열매가 되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아, 아르스 디에고 님?”
아르스 디에고라 불린 사내의 시선이 요한에게 향했다.
잠시 누군지 고민하던 그가 이내 떠올린 것인지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누군가 했더니 그때 그 꼬마 아니냐? 이야, 몇 년 사이에 많이 컸네? 근데 저 괴상망측한 건 네가 가져온 거냐?”
“……예. 창천(槍天)께서도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한동안 폐관에 들어가실 거라고 하셨던 분이 어찌 이곳에 있으신 겁니까?”
“생각보다 빠르게 깨달음을 얻었거든.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폐관이 끝났다. 근데 나오고 보니 어디서 지독히도 기분 나쁜 기운들이 느껴지더군? 거기에 설마 꼬마 네가 있었을 줄이야……. 대충 보아하니 저 고치 안에 인간이 있는 것 같은데…… 이블(evil)로 각성중인 건가?”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는 사내를 바라보며 요한은 생각했다.
‘여기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다행이다. 더 이상 힘이 부족할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네. 그렇습니다. 저 안에 있는 것은 제 제자입니다. 하나하나 설명드리기에는 상황이 복잡하기는 하나 빠르게 요약을…….”
요한의 말을 자르며 묻는 아르스 디에고.
“이름이 어떻게 되지?”
뜬금없는 질문에 요한이 의문을 표했다.
“이름… 말입니까? 그건 왜…….”
아르스 디에고의 금빛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꼬마. 언제부터 그렇게 혀가 길어졌지?”
그걸 본 요한은 심장이 옥죄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괴물 같은 늙은이…….’
“자일 지그하르트입니다.”
그걸 들은 아르스 디에고는 마치 무엇인가를 떠올리려는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자일 지그하르트…… 지그하르트…… 지그하르트…… 아! 그렇게 된 거로군. 그래, 그렇게 된 거야. 역시 그 양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니까. 올 게 왔구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됐다.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그래서 저거 어떻게 해결할 거냐?”
요한이 씁쓸한 얼굴로 대답했다.
“……창천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제 생각에는 가망이 없다고 봅니다. 여기서 시간을 더욱 지체하다가는 끔찍한 재앙이 도래하게 될 테죠. 인류를 위해서라도 저것이 깨어나기 전에 없애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런가. 거기, 아이야. 네 생각은 어떻지?”
단번에 자신이 여자인 것을 알아본 정체불명의 사내.
요한이 이토록 깍듯이 대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 그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곧장 알 수 있었다.
“……저는 그를 되돌리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교수님이 그를 죽이려 한다면 저는 교수님과 맞설 생각입니다.”
“프레이!”
아르스 디에고가 재밌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호오. 그래? 그럼 내가 저 자를 죽이려 한다면 넌 어떻게 할 것이냐?”
잠시 고민하는 프레이.
“…….”
그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흔들림 없이 확고한 눈동자로.
“똑같이 막아설 것입니다. 그것이 설령 별의 이름을 하사받은 초월자 일지라도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아르스 디에고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그거 참 재미있는 얘기로구나. 그래. 내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프레이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대하는 태도와 그가 요한을 부르는 호칭.
외눈과 얼굴의 흉터.
손에 쥐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창.
그리고 자신들이 위치한 이곳.
그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그의 정체는 바로 7명의 초월자 중 한 명인 창천(槍天), 아르스 디에고.
가장 밝게 빛나는 별 룩스(Lux)의 칭호를 하사 받은 초월자이다.
“네. 그렇습니다. 제 이름은 프레이 칼리고. 칼리고 가문의 장녀입니다.”
“칼리고라…… 그 소드 마스터 청년이 있는 가문이군. 재미있는 인물들이 한 곳에 모여 있구나. 그래. 그렇다면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겠지, 프레이 칼리고?”
꿀꺽.
침을 삼킨 프레이가 검을 뽑아들며 전신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상대는 초월자.
승산이 없는 싸움일지라도, 이미 그녀는 마음을 정했다.
금빛 오러가 그녀의 전신을 휘감으며 서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자일 지그하르트를 죽이겠다면 그것이 설령 초월자라 하여도 저는 막아설 겁니다.”
결연한 의지.
의미 없는 발버둥이라 할지라도 내가 선택한 길이다.
이미 마음은 정했다.
허나 그런 그녀의 마음과는 별개로 아르스 디에고의 입에서는 상상도 못할 얘기가 튀어나왔다.
“아이야. 저기 저 안에 갇힌 아이를 사랑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