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프레이가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네, 네?”
그 모습을 본 아르스 디에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안에 있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물었다. 이 질문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몸을 배배 꼬는 것이냐.”
“아니, 그게…… 이렇게 직접 들어본 건 처음이라…….”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가는 아르스 디에고.
“본인도 모르고 있던 것이냐? 그래… 그럴 수 있지…. 인간의 감정이란 무릇 본인조차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은 법이야. 그렇기에 무모할 수 있고, 그렇기에 이런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랑이란 고귀한 만큼 광(狂)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살다보면 너 또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위해서 목숨까지 받칠 수 있는 감정이 광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더냐! 하하하하하!”
“사…랑…….”
본인이 가진 감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프레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자일 지그하르트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은 어느 정도 그녀가 호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유추했을 테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단 얘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프레이는 그녀 또래의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무거운 책임감, 성별을 속여야 된다는 부담감 등 온갖 굴레들이 그녀를 짓눌렀고, 일반적인 여자아이가 지니고 있어야 할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조차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기도 전에 이미 맹목적인 목표가 그녀를 옥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각조차 안 해봤다.
한 마디로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방금 아르스 디에고의 말 한 마디로 인해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 위치한 작은 불꽃이 거세게 피어올랐다.
‘나……. 자일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드디어 깨달았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그가 다른 여인들과 친하게 지내면 왜 그리도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인지.
자신은 왜 그렇게 그에 대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 건지.
우정.
유대감.
그런 류의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사랑.
“……그렇게 된 거였어.”
친구로서, 동료로서 그를 생각한 것이 아닌.
한 명의 사내로서 자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혼자 중얼거리는 프레이를 바라보던 아르스 디에고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깨달았나 보구나. 검술 실력과는 별개로 연애 쪽은 완전 둔재가 아니더냐. 하하하하하!”
“덕분에 제 감정이 무엇인지 똑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묻고 싶어서 물었고, 네가 깨닫고 싶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 뭐 어찌됐건 본인이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도 똑똑히 알게 되었으니 나를 막겠다는 마음은 변함없겠구나.”
프레이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책임져야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요한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프레이!”
“…….”
프레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아르스 디에고를 바라보았고, 아르스 디에고 또한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디, 디에고 님!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요한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르스 디에고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기(鬪氣)를 끓어 올릴 뿐.
그저 기운을 한 데 모아 응축시키는 것뿐임에도 산 전체가 진동을 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
그가 쥐고 있는 녹슨 창날에 남색 오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저 늙은이가 진짜 저지를 생각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이 세계의 존폐를 위해서라도 저 고치를 부서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프레이를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허나 요한 본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저 늙은이를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목숨을 걸고 맞선다고 해도 결국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그것은 정해진 사실. 결코 뒤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교수다.
프레이는 그가 담당하는 학생이고.
스승이 제자가 죽는 꼴을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미 각성에 들어선 자일 지그하르트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프레이는 다르다. 이블이 되어버린 인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모른다.
자일 지그하르트에게는 야속한 얘기지만 그가 각성에 진입한 순간, 자신의 미천한 능력으로는 그를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번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자신의 전력을 발휘해 그가 깨어나기 전 그를 죽이는 방법 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기에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행동할 뿐.
“젠장!”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은 요한이 마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며 프레이와 자신 사이의 공간을 구기며 마법을 사용했다.
그 광경을 마주한 아르스 디에고가 대견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 꼬마가 그동안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더구나. 제법이야. 허나…….”
──콰아앙!
접어든 공간을 뚫고서 날아드는 녹슨 창끝.
“아직은 부족하지.”
만약 그가 창끝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요한은 그대로 자신의 머리통이 꿰뚫렸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허나 정작 아르스 디에고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가있는 듯 했다.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그.
“흐음……. 이래도 나오지 않는 건가. 그러면…….”
기세가 변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아르스 디에고.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제자리에 서 있던 그의 창끝이 움직였다.
극의(極意)에 다다른 창술(槍術).
그 일격은 이 산을 통째로 지울 수 있을 만큼 강대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그러나 공중 위에 떠오른 작은 인형의 손짓 한 번에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본 아르스 디에고가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등장하셨군.”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형에 빙의한 아스모데우스였다.
【꿇어라. 버러지들아.】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요한과 프레이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감.
거대한 쇳덩이가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오죽하면 천재 중의 천재인 요한마저도 그 한 마디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오롯이 서 있는 것은 단 한 명.
희끗희끗한 백발의 사내.
아르스 디에고 뿐 이었다.
“마신(魔神)……. 그것도 상당히 고위급의 마신인가보군…….”
그러나 그 또한 압도적인 힘 앞에 저항하고 있는 것일 뿐.
초월자의 격(格)에 도달했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지. 그녀와 대등하다거나 혹은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오히려 아르스 디에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초월자가 되고 나서야 흔히들 ‘신(神)’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불가해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기에.
【쯧. 또 그놈의 초월자인가? 인간치고는 제법 쓸만한 것 같기는 하다만 네가 이 몸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냐?】
아르스 디에고가 바닥에 창을 내려놓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감히 위대하신 마신을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꼴에 초월자이기에 다른 인간들이 보는 앞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아 버틴 것 뿐 입니다. 위대하신 마신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
【초월자라는 것들은 하나 같이 뻔뻔하게 그 조동아리를 나불대더군. 그래. 너희들은 그 정도의 오만함을 지닐 자격이 있지. 너희들이 쌓은 ‘격(格)’이라는 것이 그 원천일 테니까. 별의 힘을 믿고서 까부는 것도 좋다만 뭐든지 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인간.】
“……명심하지요.”
아르스 디에고는 눈앞에 하찮은 인형에 깃든 존재가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지고한 존재라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깨닫고 있었다.
본디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격을 얻어 초월자가 된 그의 눈으로도 눈앞에 존재는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아스모데우스가 팔짱을 낀 채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 일어나라.】
그제야 몸을 일으키는 프레이와 요한.
“…이, 이, 인형은.”
침착한 요한과는 다르게 프레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눈을 연신 비벼댔다.
【오랜만이구나. 계집.】
“자, 자일 군이 들고 있던 인형……!? 이게 어째서 여기에…….”
프레이의 반응에 피식 웃는 아스모데우스.
【풉. 그래. 이 몸을 좀 알아보겠느냐?】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프레이에게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요한.
“이, 이게 대체…….”
“저 분이 아무래도 자일 지그하르트 군이 모시는 마신(魔神)인 것 같습니다. 어떠한 방식인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저 인형을 통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 같군요.”
“저, 저, 저 인형이 마, 마, 마신(魔神)이라고요?”
“네.”
“내, 내, 내가 마신을 갖고 놀았었다니…….”
아르스 디에고가 물었다.
“위대하신 마신(魔神)님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 몸은 7대 죄악의 원천이며, 정욕과 격노를 지배하고 있는 마신(魔神).】
“설마…….”
【아스모데우스(Asmodeus)다.】
그녀의 진명을 들은 아르스 디에고는 속으로 경악했다.
그녀가 지옥을 지배하는 마신들 중에서도 최상위의 마신이라는 사실과 그에게 이 사실을 예견했던 이가 했던 말들이 전부 진실이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니. 대체 그 인간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던 것인가!’
“여기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신 이유는 저 안에 갇혀있는 아이 때문입니까?”
【그래. 저 아이는 나의 계약자다. 나의 숙원을 이뤄주기로 약속한 귀중한 아이지. 그런 아이를 죽이려드는 것을 내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
“위대하신 마신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저 아이를 처치하지 않으면 이 세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지?】
“예?”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저 아이의 손에 의해 이 세계가 멸망하든, 인간들이 전부 사라지게 되던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말이다.】
“그건…….”
생각해보면 지금 자신과 대화 하고 있는 저 불가해한 존재는 마신(魔神)이었다.
살육과 투쟁, 그리고 파괴를 목적으로 살아가는 포악한 신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의 멸종 따위는 별로 중대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지금 깨달았다.
【허나 나 또한 그것을 원치 않는다. 저 아이가 내 숙원을 이뤄주려면 온전한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한 가지 도박을 하고자 한다.】
“도박이라면……”
【프레이. 저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