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아이는 분명 자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인물이 그를 향해 소리를 치고 있었다.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살 일도 없었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그 인간이 나를 버리고 간 것도,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게 된 것도 전부 다 너 때문이라고!”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너 같은 건 태어나는 게 아니었어! 왜! 왜 태어나서 내 인생을 망쳐 놓은 거야! 왜!”
산발이 된 머리칼.
출혈된 눈동자.
오랜 시간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길게 자란 손톱.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빼빼마른 여인이 아이를 향해 온갖 독설을 퍼부으며 때때로 손찌검을 한다.
나는 그걸 막기 위해서 손을 움직여 보았지만 이들은 나를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나는 철저한 방관자다.
이 아이는 자일의 어린 시절 모습일까. 그렇다면 이곳은 대체 어디인걸까.
잠깐만…….
위화감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저 아이는 자일과 전혀 닮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자연스럽게 저 아이를 자일 지그하르트라고 생각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저 아이가 자일 지그하르트라고 확신한다.
이 또한 자일의 무의식에 들어온 영향 때문일까?
혹은 이곳이 그의 무의식이기 때문에 내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인식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흑……. 흑…. 죄송해요. 죄송해요.”
일방적인 폭행을 끝낸 여인은 식탁에 앉아 초록색 병에 든 액체를 마신다.
그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여인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혀가 꼬여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술……인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아이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훌쩍인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놓아져 있던 노트를 쥐고 장롱 안으로 들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는다.
끄적. 끄적.
‘이 작은 공간이 저 아이의 안식처인가…….’
상처투성이가 된 작은 손으로 열심히 글자를 써내려간다.
처음 보는 문자이지만 어쩐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인가?”
아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그 어떤 역경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다.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고, 지켜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외로운 영웅.
그러나 절대 패배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으며, 스스로 모든 것을 개척해나가는 완벽한 인물.
아마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현실과 반대되는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시온…… 지그하르트?”
우연일까? 자일의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되는 아이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 제국의 영웅이며, 용살자로 유명한 시온 지그하르트와 똑같다.
심지어 이곳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처음 보는 가구, 문물, 도구들이 가득하다.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저 아이는 정말 자일 지그하르트가 맞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스러움이 더욱 커져만 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관찰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자일 지그하르트를 찾고 싶다면 이 아이를 따라 가라고.]
* * *
시간이 흘렀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라는 건 확실하다.
작은 아이가 이제는 앳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그를 관찰하며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다.
마법과 검술이 존재하지 않는 과학이라는 이름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지니고 있는 세계.
바퀴 달린 고철 덩어리가 기사보다도 빠르게 달리고, 새를 연상케 하는 기계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마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법보다도 더 신기한 것들이 가득하다.
표면적으로는 귀족의 작위나 계급 또한 없는 듯 했다.
그리고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존재한다.
아카데미와 같은 역할을 하는 듯 했으나 이곳에 있는 학교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평등한 제도로 운영된다.
“……자일.”
그곳에서도 이 아이는 외톨이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학기 초에는 몇몇 이들이 그에게 말을 걸었으나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동급생들의 괴롭힘이 시작되자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거는 이들은 없어졌다
괴롭힘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그가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 중 한 명을 날카로운 날붙이로 찔렀기 때문이다.
그 도구의 이름은 컴퍼스라고 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집에서 글쓰기에 몰두했다.
그가 만들어낸 영웅 시온 지그하르트가 세상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만이 그에게는 삶의 이유인 것처럼 보였다.
집에서도 그는 철저한 외톨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은 그가 4살이 되던 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아마 다른 여자가 생긴 듯 했다.
매일 같이 그를 학대하던 그의 어머니는 어느 시점부터 그를 향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냥 죽은 사람처럼,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그 또한 자신의 어미를 향해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어미와 자식은 서로를 남처럼,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여겼다.
그는 방에서 글을 쓸 때도 자신의 책상이 아닌 장롱 안에 들어가 글을 썼다.
아마 그곳이 그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 라는 추측을 해본다.
이것을 지켜보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속으로 그를 응원하는 것 밖에 없었다.
지켜보는 나조차도 점차 정신이 피폐해짐을 느낀다.
“얼마나 외로울까.”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학생이었던 그는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성인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사인은 간암이었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살던 그녀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더욱 망가져갔다.
책상 한 구석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고, 바닥에는 술병이 너부러져있다.
쾅!
“씨발! 대체 왜! 왜! 왜! 왜 내가 쓴 글은 안 읽어주는 건데 이 개새끼들아!”
흥분한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책상을 내려친다.
오랜 시간 글을 써왔지만 본인이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듯 하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그의 몸과 정신은 더욱 더 초췌해져만 갔다.
“죽을까…….”
텅 빈 눈동자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그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 어차피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나를 버린 아빠도, 나를 학대한 엄마도,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도…….”
이번에도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내 손은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갈 뿐 이었다.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그.
“하하…. 그래, 처음부터 나는 철저한 외톨이였어. 이 세상에 하등 쓸모도 없는 놈. 활자 폐기물 덩어리나 생산할 줄 아는 머저리 같은 새끼지.”
그리고는 서랍 속에서 노끈을 꺼낸다.
의자 위에 올라간 그가 천장에 파인 홈에 노끈을 묶기 시작한다. 뒤이어 자신의 목을 매단다.
툭.
그가 의자를 발로 차자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빼빼마른 그의 몸이 힘없이 늘어진다.
“…….”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의 얼굴이 더없이 편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안간힘을 다해 팔을 휘젓는다.
“자일! 자일!”
계속해서.
계속해서.
어차피 내 손이 그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노끈을 향해 팔을 움직인다.
닿아라.
제발 닿아라.
그런 내 간절한 소망을 들어준 것일까.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목을 매달고 있던 노끈이 끊어지며, 그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컥! 컥!”
새빨개진 얼굴로 황급히 숨을 들이신다.
그리고는 이내 눈물을 흐리며 악에 받힌 비명을 지른다.
“씨발! 이 좆같은 세상!”
뚝. 뚝.
그의 뺨을 타고 흐른 물방울이 하염없이 바닥을 적신다.
“왜! 씨발 나는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대체 왜!”
뚝. 뚝.
“……대체 왜.”
기적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등을 힘껏 안아준다.
내 미약한 온기가 조금이라도 그에게 전달될 수 있게.
천천히 그를 안은 뒤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 사랑을 내가 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죽지 말아요.”
그 날 그는 밤이 새도록 목 놓아 울었다.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무엇이 그리도 원통한지,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처럼 연신 울음을 터트렸다.
그 날을 기점으로 그는 변했다.
새롭게 얻은 인생에 감사라도 하는 것처럼.
미뤄두었던 방 청소를 시작하고, 알바를 시작하며, 운동을 했다.
거지같던 수염과 머리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시금 글에 몰두했다.
진지하게 공부를 하며, 스스로 자신에 글을 발전시켜나갔다.
처음부터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었기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기뻐하며, 그렇게 성장했다.
“진짜. 이제 좀 뜰 때도 되지 않았냐. 아니, 많은 것도 안 바랄 테니까 제발 읽어주기라도 하라고. 클릭이라도 좀 하라고. 댓글이라도 좀 달라고! 아카데미, 후회, 집착, 피폐, 그딴 걸 왜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어떤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연신 키보드 배틀을 뜨기 시작하더니 새로운 글을 집필했다.
“그래, 어디 한 번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밤낮을 안 가리고 열심히 집필하는 그.
입으로는 툴툴 거리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기대하는 듯 했다.
그 결과, 그의 노력을 인정이라도 해주듯 지금껏 그가 써왔던 그 어떤 소설들보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미친······. 이게 된다고···?”
처음이었다.
그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모니터에서 정체불명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뒤바뀌었다.
* * *
“여기는……?”
주위를 돌아본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여관인가…?”
익숙한 외형.
그전에 있던 세계와는 다르게 허름한 가구들.
틀림없다.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가 맞다.
“그럼 자일은……?”
설마…….
“아오, 머리야. 최근 카페인을 너무 마셨….”
내 눈앞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사내.
그의 얼굴은 절반이 끔직한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들은 적이 있다. 용사 파티의 일원 중 한 명인 아벨 크로이의 얼굴은 절반이 흉터로 뒤덮여있다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아버지의 말씀.
-자일 지그하르트…. 아니, 용사 파티의 전 보조 마법사인 아벨 크로이. 그가 바로 내 병을 치료하고, 우리 가문을 도와주신 은인이다.
“그럼 설마 저 자가…….”
혼란스러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내.
“뭐야, 씨부럴. 여기가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