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혼란스러운 건 내 눈앞에 사내 뿐 만이 아니었다.
분명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이곳이었다.
“그럼 저자가…….”
얼굴 절반을 뒤덮고 있는 끔직한 흉터.
내 예상이 맞다면 저 자는 아마 아벨 크로이가 맞을 것이다.
허나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상태가 좀 이상했다.
마치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를 모른다는 듯한 말투.
“실화냐. 진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손과 발을 확인하는 그.
“빙의라니….”
빙의? 그가 살던 세계를 통해 빙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인지 알게 되었다.
그곳에는 무당이란 직업이 존재하였고,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이들이라 했다.
흔히 말하는 귀신(鬼神).
그런 자들이 누군가에 몸에 들어가 접신하는 것을 빙의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빙의라는 소재는 그가 집필하던 소설 속에서 상당히 많이 차용되었다.
“하아…. 빙의해도 하필 이딴 새끼한테….”
근데 지금 저 자는 마치 자신이 누군가에게 빙의되었다는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
‘용사 파티의 보조 마법사가 아벨 크로이의 정체가 사실은 자일 지그하르트였다…….’
그렇게 된 이유가.
아벨 크로이의 몸에 빙의된 존재가 내가 알던 자일 지그하르트였다는 건가.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는 자신이 쓴 소설 속 세계에 빙의하게 되었고, 그 인물이 용사 파티의 아벨 크로이이며, 나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자일 지그하르트라는 얘기이다.
머릿속으로는 이해했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 신도 존재하고, 마신도 존재하고, 그보다 더 이해 안 되는 이능들도 존재하는데 빙의라고 못할 건 없지 않을까?
혼란스럽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어쩌면 이마저도 다를지 모른다. 전부 내 추측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다른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아직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를 더 지켜보다보면 내가 궁금해 하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당신이지? 흑화망? 고작 그딴 댓글 때문에 날 이딴 세계로 쳐 넣은 거야?”
허공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자일.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마치 무엇인가를 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혹시 이 세계에 오게 되면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일까?
이번에는 갑자기 욕설을 뱉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5분 동안 쉴 새 없이 욕을 내뱉던 그는 정신을 차린 것인지 침착한 얼굴로 상황을 정리했다.
“종지부라······.”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다가서는 그.
“그럼 나는···?”
거울을 본 그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가면을 썼다.
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열었다.
순박한 시골청년처럼 참 선하게 생긴 사내였다.
그러나 자일은 그를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였다.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다.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고, 딱히 무술 수련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평범한 사내.
둘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고, 자일은 그가 방을 나가자 바닥에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도 못하고 뒤질 뻔 했네.”
저게 무슨 의미일까.
자일은 아마 저 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가 얘기했던 종지부.
그리고 시작도 못하고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
이곳은 정말 그가 쓴 소설 속 세계인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세계에 있을 때 그가 쓰고 있는 소설을 읽어볼 걸 그랬다.
그를 관찰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그가 연재하고 있던 소설은 읽어볼 생각도 못했는데…….
복잡한 머릿속을 전부 정리한 것인지 자일은 갑자기 방을 내려가 여관 로비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용사 파티의 일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용사 라스. 샬럿의 언니인 린 메이지. 성녀 리아. 기사단장 테레사까지.
“……진짜 용사 파티의 일원이 맞았구나.”
예측은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자일의 무의식 속에서 그가 걸어온 길들을 보고 있었다.
그의 무의식은 어째서 내게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일까.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도 보다 보면 전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끝에는 자일 지그하르트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 *
예상치도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자일 지그하르트, 아니 아벨 크로이는 용사 파티를 탈퇴하겠다고 과감하게 선언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동료들의 태도는 더욱 이상했다.
같은 동료로서 여기는 것이 아닌,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
그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느낀 것만은 아닌 듯 했다.
같은 파티의 일원이라는 이름으로 엮어 있었지만, 실상은 그저 그런 부하 취급.
아니 그 이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아벨 크로이 뿐만 아니라 그의 방에 들어왔던 짐꾼 칼 데미안이라는 청년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용사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썩어빠진 인성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용사와는 전혀 다른 인간.
저런 작자들이 이 나라를 구원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용사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여신께서는 어째서 대체 저런 쓸모없는 인간을 선택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일이 테레사를 대하는 태도가 왜 그렇게 고압적이었는지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탈퇴선언을 한 뒤 곧장 여관을 나온 자일은 몸의 강화마법을 두른 채 어딘가로 향했다.
산 속에 숨겨져 있는 공간.
그곳은 흑마술사들의 거처였다. 마신숭배자들은 그곳에 모여 어떠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수 백 명이 넘는 인간들을 제물로 사용한 듯 했다.
자일은 그곳에서 자신이 아스모데우스의 사도라는 것을 밝히며 주도권을 쥐었고, 그 과정에서 소환된 마신과 조우했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자일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곳이 자신의 소설 속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고, 본인만이 아는 정보들을 통해서 마신조차 설득해버렸다.
이제야 갖고 있던 의문들이 해소됐다.
왜 그가 흑마술사가 된 것인지를 납득했다.
자일 지그하르트의 얼굴은 안드로말리우스라는 마신의 권능을 통해 변한 것이었고, 지그하르트 가문이라는 신분은 72교단이라 불리는 흑마술사 집단이 만들어준 것이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못했을 테지……. 그럼 지그하르트 가문의 자일 지그하르트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데……. 그렇다기에는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안드로말리우스의 힘을 통해서 수도 한복판으로 전이한 그.
그때 그와 부딪쳤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그 당시에 나는 입학시험 때 사용할 무기로 인해 급하게 대장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그 시점부터 이미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가 만든 소설 속 인물이었으니.
그럼 이 세계의 창조주는 자일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나라니.
아마 그는 내 미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내가 어떤 인간이 될지 말이다. 입학시험에서 내게 접근한 것도 고의적이겠지.
허나 상관없다.
이미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다하다 이제는 그의 꿈속까지 따라갔다.
그곳에서 자일은 아스모데우스로 보이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충격적이게도 그녀는 단번에 자일의 정체를 맞추었다.
그가 아벨 크로이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빙의된 존재라는 것을 맞추었고, 심지어는 나에 대한 것도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지금 내게 보여지는 모든 것들은 분명 자일의 무의식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
이 무의식의 주인인 자일조차도 나를 보지 못하는데, 그녀는 나를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응? 이것 봐라. 내가 만든 공간에 내가 모르는 손님이 있네?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그래. 미래의 내가 보낸 거라면 이해가 가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너는 내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이런 발언도 했었다.
정확히 나를 노리고 하는 발언이다.
그 외에도 그녀는 이 세계에 정체에 대한 것을 말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혀 동요하거나 놀라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흥미로워 하는 듯한 표정.
근데 그 둘의 대화를 들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자일 지그하르트는 본래 아스모데우스의 사도가 아니었고, 그 몸의 원 주인인 아벨 크로이는 아스모데우스와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저당 잡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흑마술사였던 것은 아벨 크로이였다는 말이었다.
이제야 자일이 아벨 크로이의 몸에 빙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왜 그렇게 욕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벨 크로이의 육체에 빙의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흑마술을 다뤄야 하고, 심지어는 영혼이 저당까지 잡혀있으니 최악 중의 최악일 수밖에.
허나 자일은 기지를 발휘하여, 아스모데우스를 설득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사도가 될 수 있었다.
“자일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가 최초의 초월자 살몬이 가지고 있던 전설의 마신서 레메게톤을 얻기 위해서라니……. 정녕 이 세계의 끝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내 물음에 반응이라도 하듯 그의 무의식은 자일의 머릿속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것을 통해 나는 이 세계의 멸망은 확정되어있고, 심지어 이 세계를 멸망시킬 인물이 누구인지 또한 알게 되었다.
마신도. 마왕도. 마족도 아닌.
아까 전 여관에서 보았던 용사 파티의 짐꾼 칼 데미안.
아니.
정확히는 소천마(小天魔) 천악천.
자일과 같은 빙의자이자, 자일이 만든 소설 속의 진정한 주인공.
그가 바로 이 세계를 멸망시킬 인물이었다.
자일이 처음부터 그를 경계했던 이유 또한 이 사실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본래의 나는.
자일을 만나기 전에 나는.
그가 쓴 소설 속에 나는.
소천마 천악천과 함께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어갈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
“내가…… 멸망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런 나의 모습이.
자일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세계 멸망에 일조하는 인간이 되었을까.
“……멸망이라.”
결과적으로 자일이 내게 접근한 것은 내 운명을 뒤바꾸는 일이였다.
나의 가문을 구하고.
나의 아버지를 구하고.
거기에 더해 이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갈 나 자신의 운명까지 구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나의 구원자가 아닌가.
만약 그가 이 세계에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최악의 미래를 맞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입학시험에서 그가 이블(evil)을 어떻게 쓰러트릴 수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다음 보게 된 것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그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