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진짜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몰골일까…….’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것처럼 온통 붉게 물든 하늘.
음습한 공기.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끔찍한 비명소리와 울음소리.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인 외길.
끊임없이 이어진 외길에 양쪽 모퉁이에는 시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시체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외형을 취하고 있었다. 누구는 팔 다리가 없었고, 누구는 머리통이, 누구는 상반신 전체가 없었다.
결코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좀비.
죽어도 죽지 못한 망령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이었으니까.
지금까지 그의 일생을 보았던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들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곳에 룬델의 세 인간들을 보고 깨달았다.
사딘 룬델과 다곤 룬델, 그리고 제논 룬델.
본래의 말끔한 모습들은 아니었지만, 그 얼굴들을 내가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어쩔 수 없었어. 너희들이 먼저 나를 죽이려 들었으니까. 이건 정당방위야.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너희들이 악이잖아? 나는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쳤을 뿐이야.”
“그러게 왜 가문의 힘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누르려고 하는 거지? 그냥 좀 조용히 살아가면 안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왜 하필 프레이와 나를 건드리는 건데……. 나는 그저 조용히 살아가고 싶었어. 이 세계에서 버티는 게 내 유일한 목표였을 뿐. 솔직히 말해 처음부터 사람 따위 죽이고 싶지 않았어.”
“이곳에 있는 이들이 내가 만든 세계 속에 존재하는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어. 허나 그것은 착각이야. 이들은 한낱 소설 속 등장인물들 따위가 아니야. 말을 하고, 감정을 나누고,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야. 모두 나와 같은 인간들이라고.”
그들의 입에서는 이런 말들이 흘러 나왔다.
결코 저들이 할법한 말들이 아니었다.
그 옆에 줄지어 있는 시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각기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하나 같이 그들의 말 속에는 후회와 죄책감이 묻어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외길이었기에 앞으로 가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다.
양옆은 낭떠러지였기에 떨어지면 뭐가 됐든 좋은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이들의 고해성사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살기 위해서 당신을 죽였습니다. 저를 용서치 마세요.”
“악을 죽이는 것도 죄가 됩니까? 네. 맞습니다. 그것도 죄입니다. 그 악을 규정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저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신이라는 존재일까요? 그렇다면 그 신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미안합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죄송합니다.”
이것을 듣고 있는 내 정신마저도 피폐해질 것 같았다.
하나 같이 진심이 담긴 목소리.
처음에는 저들이 직접 내는 거라고 착각했으나 걸음을 걸을수록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자일…….”
이 목소리의 주인은 자일 지그하르트.
이들은 사실 그의 죄책감이 형상화 된 것들이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용서를 바랄 수 있을까요. 죽은 이에게 용서를 바라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동은 없겠죠.”
“미안합니다. 제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네요. 저도 살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저도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당신을 안 죽였으면 당신이 저를 죽였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까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까요? 어떻게 보면 저도 피해자가 아닐까요? 저도 이딴 세계 따위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 나한테만 지랄인데! 왜! 내가 이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데! 너희들도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쓰레기들이잖아! 그런 쓰레기들 몇 명 죽인 거 가지고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데……내가 왜…….”
스스럼없이 인간을 죽여 온 것처럼 보여도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무의식 한 구석에 몰아넣었을 테고 그 결과 이런 형태의 공간이 생성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 오기 전 그를 보았던 나였기에…….
그가 지니고 있는 나약함을 알고 있다. 이 세계에서 나고 자란 나와는 다르다.
마법사와 기사.
마법과 검.
오러.
약육강식.
이 세상에서 자고 나란 나에게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찌 보면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이다.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개하다면 미개할 수 있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가 자연스레 녹아져 있다.
무력(武力)으로 많은 것을 행할 수 있는 세계니까.
그러나 자일이 태어나 살아왔던 세계는 이곳과는 많이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신분과 계급 따위가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며, 개개인 가진 무력보다는 자본의 힘을 더욱 중요시 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이란 행위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적이라고는 하여도.
다른 이들보다 죄책감 자체는 적을지 몰라도 아예 없을 수는 없다.
태어나서 평생 사람 한 명 죽여보지 못한 인간이기에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그 쓰레기 같은 룬델 가의 인간들도 그의 죄책감으로 형상화 되어 있을 것인가.
심지어 다곤 룬델과 사딘 룬델을 죽인 당사자는 그가 아니다.
나와 테레사였지.
‘…듣기로 사딘 룬델은 자신의 누이를 그렇게 따랐다고 하던데 결국에는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누이의 손에 죽다니……아마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형태의 죽음 중 하나가 아닐까.’
아주 나이스였다.
쓰레기 같은 새끼.
그 빌어먹을 새끼는 테레사에게 100번이고, 1000번이고 몸을 찢겨도 모자라다.
저벅. 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이곳에 온 이후로는 시간 감각이 없어졌다.
특히 이 공간에서 들리는 거라고는 우울한 비명소리와 죄책감에 찌든 통곡소리 밖에 없으니 멀쩡한 사람이어도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다행히 자일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정신을 다잡고 걷는 중이었다.
저벅. 저벅.
길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슬슬 시체들도 보이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이 끝에 자일이 있다는 것이.
…….
…보인다.
저 멀리 거대한 고치가 보인다.
마치 심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외형.
붉게 물든 고치가 두근거리고 있다.
“저 안에 자일이…….”
고치 앞에 선 나는 손을 뻗었다.
마나를 끌어올려 손끝에 집중시킨 뒤 고치를 뜯어냈다.
“큭.”
허나 뜯어질 뻔 한 것은 내 손이었다. 무슨 강철을 손으로 긁어내는 듯한 감각.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에 기분이 이상하다.
“맨손으로는 꿈적도 하지 않겠는데…….”
나는 다곤 룬델과 싸웠던 그때 그 감각을 떠올려 본다.
그만큼에 마력이 내 몸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다곤 룬델을 베었던 감각만큼은 아직 남아있다.
이곳은 현실세계가 아닌 자일의 무의식.
그가 정말 바란다면 내 바람 또한 이루어주지 않을까.
눈을 감고,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황금빛 마나가 몸 전체를 휘감으며 이내 뚜렷한 형체를 갖춘다.
촤르르르르!
머릿속으로 검을 떠올린다. 오러가 응축된 예리한 검날.
그러자 내 손에 검이 생성된다.
“──칼리고 식(式). 일검(一劍). 분쇄(粉碎).”
온전히 펼치는 가문의 검술.
허공을 수놓는 금색의 검날이 눈앞에 고치를 분쇄한다.
콰과과광!
고치가 사라지자 눈앞에 드러난 건.
“이건…….”
바로 장롱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혼날 때면 자일이 매번 숨어들어가던 그 장롱.
나는 조심스레 장롱에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똑똑.
“……안에 있니?”
미약하게나마 숨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귀를 기울여 보니 숨소리가 아닌 훌쩍이는 소리다.
“……무서워 할 거 없어. 너를 도와주려고 온 사람이야.”
“…….”
그러나 여전히 경계하는 눈치다.
단단히 닫혀있는 문이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떤 말을 하면 그가 안심하고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
떠올랐다.
“우리 소설 얘기할까? 음….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아주, 아주 멋진 주인공이 있어. 그 주인공은 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잘하고,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쓰러지지 않고 멋있게 헤쳐 나가. 이 주인공의 이름을 알아?”
“…….”
“시온 지그하르트라고 해. 멋진 이름이지?”
그러자 서서히 열리는 장롱 문.
그 안에 있는 작은 아이가 겁을 잔뜩 먹은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나. 시온 지그하르트에 대해서 어떻게 알아?”
나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와 눈높이를 맞춘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나가 다 읽어봤지~아주, 아주 멋진 주인공이던걸?”
그제야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
“그치? 이름도 짱 멋지지? 내가 좋아하는 만화에 나오는 ‘시온’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랑 신화 속에 용살자인 지크프리트에 이름을 합쳐서 만든 거야! 내가 이 이름 만들려고 얼마나 고민했는줄 알아? 스토리도 내가 전부 다 짰다? 용사인 시온 지그하르트가 마왕에게 잡힌 공주를 구하려고 모험을 떠나는 거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겪지만 시온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 그게 주인공이니까!”
나는 방긋 웃으며 아이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거 참 멋진 얘기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등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쓸어주었다.
“앞으로도 더 들려줄래?”
“…….”
“자일.”
아이였던 그는 어느새 내가 알던 자일 지그하르트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 품에 안긴 자일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프레이.”
“네. 자일.”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나는 그의 손을 뻗어 그의 고개를 천천히 올렸다.
그리고는 머리를 쓸어 넘긴 채 그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술을 포갰다.
자일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솔직한 미소를 짓는다.
“사랑해요.”
“…….”
“사랑해요. 아주, 아주, 아주 많이.”
“……프레이?”
“거짓말 아니에요.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에요. 진심으로 사랑해요. 자일.”
“…….”
“전부터 쭉 사랑했어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평생 사랑해요. 자일.”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나는 더욱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자일이 저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아니, 사실은 조금 상관있을 지도 몰라요. 저도 기사이기 이전에 한 명에 여자니까. 사랑받고 싶은 건 어쩔 수 없거든요. 그렇지만 자일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평생 자일을 사랑할 거에요. 평생 자일을 위해 살아갈 거에요.”
“프레이…….”
“제가 그렇게 정했으니까요.”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싼다.
그리고는 얼굴을 가까이 댄 뒤 그의 입술 위에 나의 입술을 포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