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쿵.
내가 바닥에 착지하자 지면이 울렸다.
허나 내 몸에는 그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겪었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
그때는 인지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인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것이 본래의 나의 힘이었던 것처럼.
문득, 과거 아스모데우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온 지그하르트. 그 또한 마성(魔性)을 극복하고 신격(神格)을 얻었지.
“그, 그럼 서, 설마 내가 신이 되었다는 건가……?”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초월자 아르스 디에고였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를 향해 주먹을 뻗는 그.
‘이 정도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엔 눈으로 쫓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펑!
어느새 저 멀리 날아가 거대한 나무에 쳐 박혔다.
분명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날아갔다.
허나 딱히 통증은 없었다. 딱밤을 맞은 것 같은 정도?
저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아르스 디에고가 나지막이 말했다.
“더럽게 단단하군……. 자, 봐라. 네가 신이 되었으면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 주먹에 맞고 날아갈 것 같으냐?”
생각해보니 그렇다.
만약 내가 정말 신이 된 거라면 이런 생각이 들 거 같다.
‘이 까짓게 정말 신이라고? 이게?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아스모데우스가 조그만 팔을 공중에 휘두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반신(半神)이지. 지금의 너는 반쪽자리 신격(神格)을 품고 있는 것이다. 자력으로 마성을 극복해내었다면 시온 지그하르트처럼 온전한 신격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네놈은 너의 힘이 아닌, 프레이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지 않았더냐?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한 번 각성이 시작된 인간이 이블이 되지 않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사례는 네놈의 선조 밖에 없다.】
“…자, 자일이 반신이 되었다는 겁니까?”
“하! 살다 살다 이제는 반신이라니…….”
놀란 듯 소리치는 프레이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요한.
【그리 놀라워 할 것 없다. 너희들 눈앞에 있는 저 사내 또한 반신과 진배없으니. 아니. 어찌 보면 가장 신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자일 놈과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본인 스스로 쌓아올린 격이라는 것이다. 아마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안 그렇느냐, 인간?】
아르스 디에고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뭐……. 신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 듯 말 듯 합니다만은……. 그래도 저 아이는 저와 다르지 않습니까. 이미 영혼의 크기부터가 압도적입니다.”
【아무리 커다란 힘이라도 본인이 다루지 못한다면 무용지물 아니더냐. 자일의 격(格)이 월등히 상승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네가 저 아이와 겨뤄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 않느냐?】
“…그렇긴 합니다.”
아스모데우스의 말이 맞다.
운이 좋게 반쪽 자리 신격을 얻었다한들 현재로서는 초월자인 아르스 디에고를 이길 리가 없다.
시간이 좀 지난 뒤라면 모를까.
아니.
정정하겠다.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도.
지금의 내 상태를 예시로 들면 쉽게 말해 패더급에서 헤비급이 된 격이다.
말 그대로 체급이 달라진 것.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족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나를 다루지 않는 것을 가정했을 때 기본적인 육체 능력이 가장 우월한 것은 마족이다.
타고난 근력 자체가 인간이란 종족과 궤를 달리한다. 활을 쏘는 능력이나 민첩성을 따지면 엘프다. 손재주를 따지면 드워프고.
이처럼 각 종족이 가진 순수한 장점들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내 종족은 신은 아니지만 반신이 됐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처음부터 설정되는 기본 값이 달라진 셈.
가장 체감이 되는 것은 더 이상 머릿속에서 끔찍한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권능을 사용해도 이제 예전만큼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했나……. 죽음 아니면 학살 밖에 없는 이지선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해낼 줄이야. 결국 이 또한 프레이 덕분이다. 프레이가 목숨을 걸고 내 무의식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꼼짝 없이 배드 엔딩을 맞았겠지.’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끔찍한 괴물이 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는 아르스 디에고.
“나는 뭐 한 것도 없는데?”
요한 또한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자일 군. 저 또한 감사 인사를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지 알고 있어요. 허나 제가 교수님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죄책감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진심입니다. 만약 교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다곤 룬델을 죽이기도 전에 이미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교수님이 프레이를 데려오시고, 길을 뚫어주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저희가 있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갚겠습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자일 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오지 않았더라면 프레이도 오지 않았을 테고, 또한 룬델 공작가의 저택을 뚫는 것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은 솔직히 안 섭섭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내가 그였어도 그런 선택을 내렸을 거라 생각하기에 충분히 이해했다.
세계를 멸망시킬 급의 이블이 태어난다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번에는 프레이를 바라봤다.
“프레이는 이미 안에서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프레이.”
프레이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당연한 겁니다. 자일.”
마지막으로 아스모데우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스모데우스.”
【흥. 네가 언제부터 그리 예의가 발랐다고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냐.】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마워.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야. 비록 서로 동등한 목적을 위해 거래한 계약 관계지만 난 진심으로 당신에게 감사를 느끼고 있어. 언제나 고마워. 아스모데우스.”
진심 어린 내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
어차피 인형의 모습인지라 웬만한 행동은 전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돼, 됐느니라! 위대하신 이 몸께서 하등한 네놈을 돕는 것은 봉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하나하나 고맙다고 할 필요 없다!】
“하하. 어쨌든 고마워.”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길고 길었던 싸움의 끝.
‘길어도 너무 길었다. 체감 상 한 달은 흐른 것 같군.’
아직도 처리해야 될 게 한가득이지만 지금은 너무 지쳤다.
신격을 얻은 덕분에 육체의 피로는 말끔히 사라졌지만 심적인 피로는 아직 그대로다.
그렇기에 일단은 휴식을 취한 뒤 밀린 것들을 처리할 생각이다.
우선은 돌아가자.
집으로.
그러자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낡은 기숙사.
‘살다 살다 내가 기숙사를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샬럿의 떽떽 거리는 목소리마저 이제는 그리울 지경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불어 닥치게 될 후폭풍은 적지 않을 것이다.
명색이 제국 최강으로 손꼽히던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수습을 잘 하지 못한다면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제국이 반으로 쪼개질지도 모르는 일.
‘일단 휴식부터 한 뒤에 생각해보자.’
나는 요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공간 마법을 한 번 더 쓸 수 있을 까요?”
“…아까 전이었으면 마력이 간당간당 했을 텐데 지금은 괜찮네요.”
저 인간도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마력 회복속도가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요한이 마법을 일으키려 하자, 아르스 디에고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잠깐. 거기 너 이리 와봐라.”
“…저요?”
“그래. 너.”
나는 잠자코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르스 디에고.
“흠……. 이 놈이 정말 그 예언 속 아이란 말인가.”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는 아르스 디에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야.”
“예.”
“네가 처리할 것들을 전부 처리하고 나면 다시 한번 이곳으로 오거라.”
“……아르스 디에고님을 만나러 오라는 말씀이신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사문과 창술, 그리고 너에 관해서 긴히 할 얘기가 있다. 대화 여부에 따라 우리의 인연이 바뀔 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리를 하고 이쪽으로 오거라.”
고치 상태가 되었을 때 얼핏 들은 얘기.
시온 지그하르트와 창천문(槍天門).
아마 그와 관련된 얘기가 아닐까 싶다.
‘설마 초월자 중에 시온 지그하르트를 아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으나……. 차라리 잘 됐다. 이미 내가 모르는 정보들이 범람하기 시작했어. 초월자이자 시온 지그하르트의 창술을 이은 아르스 디에고라면 내게 새로운 정보들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 또한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 그럼 우리도 출발하도록 하죠.”
마력을 집중시킨 요한이 허공에 손짓을 하자 공간의 균열이 일어났다.
잠시 후.
우리는 균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공간전이의 여파 때문인지 속이 매스꺼웠다.
두통도 약간 있는 듯 하고, 평소와는 느낌이 다른 것이 마법이 불완전하게 발휘된 것 같았다.
옆을 보니 프레이와 요한 또한 나와 마찬가지인 듯 했다.
몸 안에 마기를 끌어올리자 신기하게도 두통이 사라졌다. 이제는 완전히 내 몸의 일부가 된 듯한 마기.
‘아스모데우스가 나보고 반신(半神)이라고 했으니 그럼 이제 나도 반은 마신(魔神)이 된 건가?’
프레이에게 다가간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
“프레이. 괜찮아요?”
약간 어지러운 듯 균형을 잘 잡지 못하고 내게 몸을 기대는 프레이.
“……살짝 어지럽네요.”
평소와 같이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돌아온 요한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식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조금 있던 것 같군요. 아마 어지럼증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그럼 수업 때 보죠. 자일 군. 프레이 양.”
“네.”
시야에서 사라지는 요한을 보던 나는 뒤늦게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있는 이곳은 아카데미 내부.
그것도 우리가 머무는 S 클래스의 기숙사와 강의실이 있는 건물 근처였다.
“연무장은 분명 저기 있는데…….”
헌데 강의실 건물과 기숙사가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잔해들 뿐.
“설마…….”
불안한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너져 내린 잔해 뒤편에는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푯말이 적혀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우리 기숙사라고……?”
개고생을 하고 돌아와 보니 집이….
아니, 기숙사가 사라졌다.
덤으로 강의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