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라스 칼 세이번.
용사라고 불리던 사내의 이름이다.
그는 16살이 되던 해 여신의 선택에 의해 용사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보다 더 재능 있고, 뛰어난 인간들도 많았지만 어째서인지 여신은 그를 선택했다.
한낱 인간들이 어찌 신의 뜻을 알랴.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라스는 그저 자신이 신에게 선택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고,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사로잡혀 성장했다.
검사라면 응당해야 될 성실함도, 재능도, 노력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범인.
그러나 그의 몸에 내려진 가호들이 그것들을 전부 상회하고도 남았다.
신의 가호란 그런 것이었다. 재능보다도 더 상위의 힘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자신은 용사니까.
여신에게 선택받은 유일한 용사니까.
그러나 그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용사는 이 세상에 하나가 아니었다.
또한 그가 신의 가호를 어째서 받은 것인지 그 자신도 모르는 만큼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가 지닌 가호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신의 뜻은 인간인 그 따위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라스 본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마왕이라는 존재를 그가 아니면 죽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용사를 한 명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사라지면 새로운 용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의 존재를 대체할 인간은 널리고 널렸다.
그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그저 여신이 선택한 이번 대의 꼭두각시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누, 누구시오?”
“푸하하하하! 정말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재미난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는 자일 지그하르트.
라스는 그런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영문 모를 사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보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래. 이 꼴이면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지. 나 참 이런 데서 보게 될 줄이야. 이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한 잔 하지? 내가 살 테니까.”
“조, 좋지.”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공짜 술을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라스는 정체불명의 사내를 따라 근처 술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술집 사장이 퉁명스럽게 인사했다.
라스를 바라본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미 그가 빈털터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뭐야, 이 거지 새끼가 웬일이래?”
“야. 너 술 먹을 돈은 있으면서 우리한테 갚을 돈은 없다 이거냐?”
이 근방에서 유명한 빚쟁이였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근처에 있던 덩치 큰 사내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라스는 허리를 굽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 돈이 아니야! 난 돈 한 푼도 없어. 여기 이 인간이 술을 산다길래 따라 왔을 뿐이야. 저, 정말이야. 믿어줘!”
한심한 몰골.
자일 지그하르트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알던 라스가 맞나? 저게 용사 라스라고?’
얼굴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보는 게 열이 받아서 그렇지 절대 못 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히 미남 축에 속했던 라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 그 인물과 동일인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했다.
오래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아 기름이 질질 흐르는 떡진 머리칼.
검게 그을린 피부와 얼굴에 묻은 찌든 때.
그리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진 몸뚱어리.
심지어는 팔도 한 짝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 네 옆에 있는 이 남자가 술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왔다고?”
“그, 그렇다니까!”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자일 지그하르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어이, 형씨. 여기 이 거지 새끼 알아?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그래. 아는 사람이든 뭐든 상관없고. 당신이 이 거지새끼 술을 사준다고 했으니 그 돈을 우리한테 좀 줘야겠는데? 이 인간이 우리한테 돈을 빌려놓고 아직도 갚지 않았거든.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지?”
자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내를 빤히 바라봤다.
“…….”
“하아……. 꼭 좋게 말해주면 듣지를 않아요.”
사내는 모르겠지만, 그는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죽일지 말지.
만약 죽이게 되면 일이 귀찮아 질 것 같고, 또 여기에 있는 모두를 죽여야 되지 않나 싶었다.
모처럼 옛 전우와의 아름다운 재회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애들아. 손님 정신 좀 차리게 해…….”
뎅강!
“……주라.”
툭.
바닥에 떨어진 사내의 머리통.
절단면에서는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러게. 왜 명을 재촉해.”
손날에 묻은 핏물을 슥슥 닦으며 중얼거리는 자일 지그하르트.
그 충격적인 광경에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보다 이내 한 명이 소리지차 일제히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으아아아악! 이 새끼가 감히!”
“다 같이 덤벼! 어차피 한 놈 뿐이야!”
자일 지그하르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기를 끌어올리며 손가락을 부딪쳤다.
“하아…….”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허공 위로 검은색 구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구체에서 쏘아져 나간 검은 송곳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후두두두두!
1초.
술집 안에 있는 20여 명의 인간들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짧았을지도 모른다.
가느다란 바늘과도 같은 검은 송곳이 그들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술집 사장은 이미 겁에 질린 채 바닥 아래 엎드려 있었고, 라스 또한 입을 쩍 벌린 채 자일을 바라보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그대로 자리에 앉은 자일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다시 얘기를 시작해볼까, 라스? 너도 앉아. 어서.”
그리고는 술집 사장을 향해 주문을 했다.
“사장님. 여기 시원한 맥주 두 잔 갖다 주세요.”
바닥에 엎드려있던 술집 사장이 몸을 일으켰다.
흡사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의 남성.
머리 한 톨 자라지 않는 두피.
외관만 본다면 가장 험상궂게 생긴 그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자일은 책상에 턱을 괸 채 눈앞에 라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이 거지가 제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그 용사라니.
품안에 리아를 끼고,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누, 누, 누구십니까? 당신은?”
“나 진짜 모르겠어?”
라스의 기억 속에 이토록 미형인 남자는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자일 지그하르트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르더니 이내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발동해 모습을 바뀌었다.
“저……기억 안 나세요?”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
그는 완벽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사내라면 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아름다운 여인으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있던 라스의 두 눈동자가 그녀의 풍만한 가슴으로 향했다.
탐욕으로 일렁거리는 눈빛.
“……미, 미안하지만 누군지 모르겠소.”
꿀꺽.
여자라면 환장을 하는 라스.
그가 거지꼴이 된 이유이기도 했다.
도박과 여자.
생기는 족족 도박에 손을 대고, 남은 돈으로는 여인을 품에 안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남아있던 모든 돈을 탕진했고.
여인을 안지 못한지 오랜 시간이 되었기에 거대한 공포도 이길 정도의 성욕을 지니고 있었다.
자일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역시 기억을 못하시는 군요…….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저는 용사님께서 구해주신 마을에 생존자 중 한 명입니다. 지금은 용병 활동을 하기 위해 잠시 수도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죠. 우연히 길을 걷다가 용사님을 발견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렇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아! 내, 내가 도와준 사람이라고?”
“네! 용사님! 라헨다 마을이라고 기억나세요?”
“라헨다 마을! 그, 그래! 기억나지! 맞아! 내가 도와줬지!”
그래.
라헨다 마을.
그곳은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이었다.
마물의 침입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용사 라스는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그것을 모른 체 했다.
그 결과 주민들은 모두 죽었고, 마을은 멸망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의 기억 속에 그 마을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역시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그래. 내가 누군데! 내가 바로 용사 라스인데!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이 여자를 이용해서 지금부터 다시 재기하는 거야. 우선은 돈부터…….’
자일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역시 용사님!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저는 그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용사님을 잊은 적이 없답니다. 제가 사용하는 이 능력들 또한 용사님이 마을에 오시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신에게 선물 받았습니다. 검은 구체를 다루는 능력과 외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능력이에요.”
“시, 신의 가호를 받았다는 말인가? 그것도 두 개나?”
“네! 저도 용사님처럼 어려운 이들을 도우라는 신의 계시겠죠.”
라스는 속으로 환호했다.
‘신의 가호를 두 개나 지니고 있다니! 흐흐흐.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일단 오늘 밤은 이 년 몸으로…….’
“용사님께서 마왕을 처치했다는 애기는 전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이러한 몰골이 되신 건가요?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 제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라스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간 있던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동료들은 멋지게 마왕을 처치했고, 자신은 그 과정에서 동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팔 하나를 희생했다.
그리고 모든 임무를 완수한 지금, 자신의 몸에 있던 신의 가호들이 사라졌고.
자신과 함께하던 동료들은 팔을 잃고, 가호를 잃은 자신을 버려서 이러한 몰골이 됐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된 거다.”
자일은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는 얼굴로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어쩜 그리도 지독한……. 용사의 동료라는 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큼큼. 괜찮다. 나는 전부 이해한다. 인간이란 본디 그런 존재들이니까. 그렇기에 그들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용사니까.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것. 그것이 용사의 역할이니까.”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듯 중얼거리는 자일.
“용사의 역할…….”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이 변모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얼굴 절반을 뒤덮는 끔찍한 흉터.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라스.
“너, 너, 너, 너는 아, 아, 아벨 크로이……?”
“오랜만이다, 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