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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53화 (153/180)

153화

라스는 기겁한 듯 소리를 질렀다.

“어, 어, 어째서 네가 이곳에 있는 거지?”

“왜?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나?”

“그 끔찍한 면상 저리 치워라!”

“정체를 보여주자마자 본색을 드러내는 군. 역겨운 놈.”

때마침 술집 사장이 맥주를 가져다주었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 마, 맛있게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말했다.

“크. 시원하군. 너도 한 잔 마시지 그래?”

라스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접근한 거였나? 여전히 음침하기 짝이 없군. 아벨 크로이. 여기서 네놈의 역겨운 낯짝을 보게 될 줄이야.”

“라스. 난 너라는 인간 참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여신의 가호를 빼면 본인이 가진 바 능력은 가장 하찮은 주제에 인성도 더럽고, 노력도 안 하고, 재능도 없는 놈이 그저 ‘용사’라는 칭호 하나에 심취해 패악질을 부리느냔 말이다. 심지어 지금은 거지꼴이 된 주제에 대체 뭘 믿고 그렇게 까부는 것이지? 원래부터 멍청한 것은 알았지만 지금은…….”

“닥쳐라! 닥쳐! 닥쳐! 닥치라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난 라스가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후웅!

‘가호가 없다는 건 정말 사실인가보군. 이 정도로 쓰레기가 되다니……. 죽여서 사역마로 삼는다 한들 크게 쓸모가 있지는 않겠어.’

고개를 젖혀 가볍게 주먹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더 빠르고 강하게 주먹을 휘둘러댔다. 흥분에 가득 찬 주먹질.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같잖아서 웃음이 났다.

저런 놈이 인류의 수호자라고 자청하고 다녔다는 걸 생각하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것을 보고 있자니 점점 확신에 찬다.

여신이 저놈을 용사로 선택한 것은 어떤 대의나 인간인 우리가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커다란 그림이 아니다.

그저 만만하고, 재미있고, 멍청한 인간 놈 하나를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저 자리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너 같은 벌레 따위가 감히 용사인 이 몸에게!”

“벌레는 내가 아니라 네놈인 거 같은데? 아무리 가호 빨이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건 조금 심하지 않나? 육체 능력 수준이 6서클 기사보다도 못한 것 같군.”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던 나는 날아오는 주먹을 붙잡은 뒤 힘을 주었다.

지금의 내 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라스의 주먹을 잡았을 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힘을 주면 주먹 그 자체를 부숴버릴 수 있다는 걸.

아니. 단순히 부수는 것을 넘어서 짓이겨서 피떡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힘을 조금만 조절해서.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입안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끄아아아아아악!”

“아, 미안. 힘 조절이 잘 안 됐네.”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얼굴이 일그러진 라스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옆을 힐끔 바라보니 술집사장님이 귀를 막고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마 저 남자 또한 이곳에서 우리를 덮치려고 했던 사내와 별 반 다를 바 없는 인간이겠지만 어찌됐건 내가 그의 영업을 방해하는 입장이니 조금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 개새끼야아아아!!! 네놈이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역시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용사도 뭣도 아닌 그저 한낱 거지에 불과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용사라는 사실에 심취해있다.

눈앞에 옛 동료가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모습만 떠올리고 있다.

“그래. 이래야 내가 알던 라스지. 변하지 않아서 고맙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아무래도 인성교육이 시급할 거 같다.

“이 괴물 새끼가 내가 이 꼴로 있으니 만만해 보이냐? 어차피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너는…….”

힘을 조금 더 주자 그의 주먹이 아예 흐물흐물해졌다.

근육과 뼈가 커다란 바위에 깔린 듯 아예 남작해져 버린 것.

붉은색 핏물이 터져 나오듯 사방에 흩뿌려졌다.

나는 그 피에 닿는 것조차 혐오스러웠기에 마기를 끌어올려 내 쪽에 튀는 피를 차단했다.

손가락이 전부 박살나 곤약 같은 형태가 돼버린 라스.

그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에으에에에엑!!!”

묘한 쾌감이 샘솟는다.

이 몸의 원주인인 아벨 크로이의 기억들.

용사파티에서 그가 보낸 세월들은 동료로서의 유대감보다는 분노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용사파티에서 짐꾼인 칼 데미안을 제외하면 가장 약자였고, 또 가장 소외 받는 인간이었다.

다른 이들도 전부 그를 인간 이하의 취급, 벌레, 괴물 등으로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간 이하로 그를 대한 것이 바로 용사 라스.

매일 같이 아벨 크로이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며 그를 희화화하고 태생적으로 말을 더듬는 것에 대해서도 쪽을 주며, 때로는 물리적 폭행까지 동반했다.

대부분의 잡일도 전부 그에게 떠맡기며, 자신은 주색잡기에 빠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어떤 마을에서 아벨 크로이에게 호감을 표하던 마을 처녀를 회유해 실컷 범한 뒤 자신의 노리개로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벌레처럼 여기던 아벨 크로이에게 호감을 표했다는 이유 딱 하나.

그는 그저 아벨 크로이라는 인간의 얼굴이 슬픔과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아직도 교육이 필요하다면 얘기해라. 라스.”

“미, 미, 미안하다. 제발 이것 좀 놔줘! 제발!”

나는 그제야 그의 손을 놓아주며 눈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라스는 피가 철철 나는 손을 책상 위에 힘겹게 올려놓았다.

“쯧.”

내가 손짓을 하자 검은 연기가 그의 손을 감쌌다.

그러자 피가 멈추고, 손이 점차 그럴 듯한 형태를 갖추었다.

“!”

라스는 그런 나를 이제 괴물 바라보듯 보고 있었다. 자신이 무시하고, 하대하던 그 괴물이 아니라 경외와 공포로 둘러 싼 진짜 괴물.

“그거 알고 있나, 라스?”

“무, 무엇이 말이냐.”

나는 다시 아까 그 여인의 얼굴로 변했다.

“라헨다 마을은 멸망했고, 이건 그 마을의 마지막 생존자의 얼굴이다. 네놈이 마을에 닥친 위기를 무시하고 리아 그년이랑 놀아났기에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이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가?”

“……그, 그럴 리가 없다. 나는 그런 적 없어.”

“그런 적 없다고? 네놈이 용사라는 이름을 달고 행한 만행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건가? 네놈은 용사 따위가 아니다. 그저 그 이름에 빌어먹고 사는 한낱 기생충에 불과하지. 아무런 죄 없는 마족들보다도 더 악마 같은 게 네놈이지 않느냐?”

“개소리 집어 쳐라! 나는 용사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용사란 말이다!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선택 받은 내가 왜 하찮은 것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지?”

“후우.”

서걱!

허공에서 생겨난 검은 칼날이 그의 왼쪽 발목을 베었다.

“끄이이이엑!!! 이 개새끼가아아아아!!!!”

“소리 지르지 마라 시끄럽다.”

내가 마기를 운용하자, 그의 입이 닫혔다.

“한 번 더 시끄럽게 굴었다가는 네놈 혓바닥을 뽑아주마. 알겠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였다.

공포에 질린 게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끌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내게 덤벼든다.

이게 진짜 배기 분노조절장애일까.

아니면 그저 뼛속까지 라스라는 인간 그 자체여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의 입을 막고 있던 마기를 회수한 뒤 다시 물었다.

“네놈에게 죄책감 운운하는 것 따위는 별 의미가 없겠지. 나를 향한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지니고 있나?”

내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당연하게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얼굴 근육이 떨리고 있다.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저 놈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지금부터 거짓을 말할 때마다 네놈의 신체부위를 하나씩 자를 것이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아까처럼 덤벼도 상관없다. 얼마든지 나를 죽이려 해도 괜찮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가는 마땅히 치르게 될 것이다.”

“…아, 알겠다. 근데 어디서 그런 힘을 얻게 된 것이지? 내가 알던 너는…….”

“내가 용사 파티에서 나간 뒤 가만히 있었을 거라 생각했나? 너와 다른 이들에 대한 분노로 복수를 할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못했나?”

“…….”

“그렇겠지. 그게 너란 인간이니까. 내가 복수를 하겠다고 얘기했어도 너는 꿈적도 하지 않았겠지.”

라스의 미간이 움찔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차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마왕을 처치한 게 정말 너희가 맞나?”

“……그, 그래. 우리가 마왕을 죽였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그의 귀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 응축된 마기가 검은 바늘처럼 쏘아져 나갔다.

팡!

“끄윽!”

찢어진 귀를 붙잡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라스.

“네놈들 따위가 마왕을 죽였다고? 살생을 못하는 검사에, 원소마법을 제외하고는 별 볼일 없는 마법사, 전투능력은 전무한 성녀가?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거짓말을 할 때마다 네놈의 신체 일부분을 도륙 내겠다고. 다음은 반대편이다.”

내 손가락이 그의 반대쪽 귀를 가리키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 맞아! 네 말이 맞아! 우리는 마왕을 죽이지 못했다. 우리의 명예를 위해 거짓된 공표를 한 것이야.”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지?”

내 말을 들은 라스는 분하다는 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망할 놈의 짐꾼 새끼! 그 새끼가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그 놈이 모든 것을 망쳐놨어. 그 괴물 같은 새끼가!”

역시 내 예상대로 그들이 마왕을 처치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조금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는데 소천마 천악천이 마왕성을 자신의 영토로 지정했다는 것.

그러니까 마족들의 땅 전체를 천마신교의 영역으로 선포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짐꾼인 칼 데미안 때문에 마왕을 죽이지도 못하고 도망쳐 왔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그 놈은 인간이 아니야.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던 건지,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너라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차원이 달라. 마왕조차도 그놈에게 무릎을 꿇었으니 우리로서도 도망쳐 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원래도 괴물 같은 놈이었으니 용사 파티를 상대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겠지.

허나 지금의 그는 어느 정도 힘을 찾았는지가 관건이었다.

본래의 힘에 더해 마신 바르바토스와 계약이라도 맺었다면…….

“토벌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보고를 한 것은 네놈들의 명예를 위해서인가? 하긴 그 일로 인해 제국이 어떤 위기에 쳐하든 너희들 알바 아니겠지. 그러한 제안을 한 것은 린인가?”

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안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인간이니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럼 그 이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모양이 된 거냐? 거기에 여신의 가호까지 전부 뺐기고?”

“……리아와 린이 나를 배신했다는 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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