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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57화 (157/180)

157화

갑작스런 발언에 당황한 내가 되물었다.

“…네, 네?”

내 어깨를 팡팡 치는 칼리고 백작.

그러더니 그대로 내 몸을 붙잡고 근처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자연스레 벤치에 앉게 된 나는 그의 부담스런 시선을 마주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러나. 말 그대로의 의미일세. 나는 돌려 말하는 걸 잘하지 못하기에 솔직하게 말하겠네. 그대가 내 사위가 되어주었으면 하네. 그대만큼 든든하고 멋진 사내가 없다는 걸 이미 내가 알아버렸거든. 그대가 칼리고 가문을 이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 같네. 아, 그리고 나는 속도위반도 찬성이라네. 내가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손자도 빨리 보고 싶더군. 이미 프레이도 자네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 같던데 자네는 어떤가?”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할 줄 몰랐기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물론 나 또한 프레이를 마음에 품고 있는 건 맞지만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별로인가? 음. 내 딸아이여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사내의 시선으로 봐도 내 딸아이 정도면 상당한 미인이지 않은가? 아. 조금 곰 같은 구석은 있네만. 그건 차차 고쳐질 걸세. 그건 그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문제거든. 내가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셈이지. 그래도 천성이 착하고, 고운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평생을 함께 하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걸세. 거기에 그 아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 기꺼운 마음으로 자네에게 칼리고 가문의 모든 검술을 전수해주겠네. 어쩌면 자네가 차기 가주가 될 수도 있겠지. 그 외에도 필요한 게 있다면 모든 얘기 하게나!”

“……저 또한 프레이 양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런 얘기는 아직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 프레이 양과 함께 대화를 나눠 본 뒤에 얘기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거니 부담 갖지 말게나. 내 욕심일세. 욕심. 자네가 내 딸아이와 만나지 않고, 다른 여인을 만나도 그건 자네 마음이지. 본디 사랑이란 게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네. 다만 자네가 너무 탐이 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말한 걸세. 내 목숨을 구해주고, 내 딸아이를 구해주고, 가문을 구해준 자네와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 아깝겠는가. 아, 물론! 가족이 되지 않는다고 자네가 칼리고의 은인이 아닌 건 아닐세!”

“하하. 알겠습니다.”

혹시나 내가 오해할까봐 한참을 얘기하던 할튼 칼리고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어색한 정적.

그리고는 이내 다시 말을 여는 할튼 칼리고.

“사실 요새 프레이가 자네 얘기를 많이 한다네.”

“프레이가요?”

이번 일이 끝나고 샬럿이 만든 임시거처에서 어쩐지 프레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본가로 돌아왔던 듯 했다.

전에 살던 기숙사는 불가피하게 동거를 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얼굴을 보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샬럿이 의도라도 한 듯 방을 수 십 개를 만들었기에 프레이와 같은 방을 쓸 일은 없었다.

“하루빨리 강해져야 한다며 내게 검술을 배우고 있거든. 그 아이의 재능은 나 이상일세. 아마 머지않아 소드 마스터가 되겠지. 그 아이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네. 만약 내가 모든 기억을 잃고서 검을 다시 휘두르게 된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역시 소드 마스터는 소드 마스터인가.

그녀가 내 권능을 통해 미래의 자신의 힘을 빌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검술 실력 또한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제대로 알아보고 있었다.

사실상 경험과 숙련도가 부족할 뿐.

소드 마스터가 되어 검을 휘둘렀던 그날의 감각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며 걸어가는 것이 아닌 완성된 길을 빠르게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

“덕분에 나도 다시 검을 쥐게 되었고, 또 지금껏 못다한 얘기들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지. 이 또한 자네 덕분이야. 내게 건강을 주었기에 나는 다시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하나 뿐인 딸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지.”

“……별 말씀을요.”

“그래서 알 수 있었네. 딸이랑 많은 얘기를 하다보면 꼭 빠지지 않고 자네 얘기를 하더군. 입학시험에서 이블이 나타났는데 자일이 어땠는 줄 아느냐, 룬델 공작가에서 홀로 기사들을 상대하던 자일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등등 말이네.”

그 말을 듣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그 모든 얘기들을 할 당시 그 아이의 표정은 전부 한결 같았다네. 아주 밝게 웃고 있었지.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는 것처럼.”

“…….”

가슴이 저미어온다.

그녀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당연하게도 매번 웃음을 짓는 건 아니야. 걱정스러운 얼굴, 슬픈 얼굴, 안타까운 얼굴 등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더라고. 나는 그 아이에게 그렇게 많은 표정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네. 그리고 그 많은 표정들이 전부 한 사람을 생각하며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지.”

할튼 칼리고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두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의 체온이 느껴진다.

“내 딸아이를 부탁하네. 이런 부탁을 하는 것조차 염치가 없다는 걸 알고 있네. 자네에게 받은 은혜는 내 남은 평생을 받쳐도 다 갚지 못하겠지.”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올곧은 눈동자.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인으로서 받아줄 수 없다면 그 아이가 더 이상 상처입지 않도록 확실하게 끊어 내주게. 못난 아비 때문에 힘들게 살아온 아이일세. 자네에게 받은 은혜는 내 평생을 다해 갚도록 하겠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부탁하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백작님. 고개 드십시오!”

고개를 든 그가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럼 내 부탁 들어줄 겐가?”

“말하지 않으셔도 그렇게 하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이왕이면 아내로 받아들이는 걸 생각해보게. 아비인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그렇지만 프레이의 어미이자 내 부인 되는 여인도…….”

갑자기 말을 멈추는 할튼 칼리고.

그리고 그의 뒤편에서 들리는 싸늘한 목소리.

“아.버.지.”

입만 웃고 있는 프레이가 자신의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몸을 풀고 있었다.

“프, 프레이?”

“자일은 이따가 얘기하시죠.”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기를 풀풀 뿜어댔다.

텅 비어있는 공허한 눈동자.

“대체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하신 거죠?”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그런 대화를 나눴을 뿐이야. 그, 그렇지 않나? 자일?”

프레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만 봐도 말하고자 하는 발을 알 수 있었다.

무언의 경고.

동의하면 죽는다.

그리고 실제로 무서웠다.

“…….”

“자, 자일? 자네 정말 이러긴가?”

“……죄송합니다. 백작님.”

프레이의 입 꼬리는 여전히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대로 자신의 아버지를 질질 끌고서 사라지는 그녀.

예전이었으면 그녀가 소드 마스터인 아버지를 이기는 것은 무리였겠지만 지금은 서로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10분 정도가 지나자 후련한 얼굴로 돌아오는 그녀.

안타깝게도 백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프레이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자일.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많이 했죠? 제가 알아듣게 잘~얘기했으니 아마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에요.”

“그, 그래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왜, 왜 그러죠?”

“저희 말 편하게 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아……. 미안. 프레이.”

“아직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해줬으면 해요. 물론, 저도 노력할 테니까요.”

부끄러운 듯 끝말을 흐리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럼 지금 한 번 해볼래?”

“지, 지금요?”

“응. 지금. 나도 말 편하게 하고 있으니까 프레이도 해주면 안 될까?”

점점 더 얼굴이 붉어지는 그녀.

질끈 묶은 머리칼 아래 흰 목덜미마저도 서서히 붉은 기운이 돌고 있었다.

“……자, 자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평소에도 하는 말이잖아. 다른 거.”

질끈 눈을 감은 그녀가 내 얼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이내 눈을 떴다.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녀의 올곧은 눈동자 속에는 내가 비추고 있었다.

“…좋아해. 아주 많이.”

그러고는 배시시 웃는 프레이.

갑작스런 고백에 오히려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을 피했다.

허나 이대로는 그녀의 대한 예의가 아니라 판단했기에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많이 좋아해. 어쩌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그, 그만! 이 이상은 안 돼요! 한계입니다. 이대로는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릴 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은 나 또한 동감이었다.

내 귓가에서 들리는 심장소리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렇게 약 3분 정도 휴식을 취한 우리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뒤에야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저희 집에는 어쩐 일로 오신 거에요?”

“아…. 백작님께 인사도 드릴 겸 겸사겸사 건강도 살필 겸 왔지. 다행히 많이 좋아지신 거 같네.”

“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는 오러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으신 거 같아요. 이미 한 번 경지에 도달하신 분이라 그런지 회복이 엄청 빠르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아버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어요.”

“프레이도 금방 강해질 거야. 그럼 오늘은 아카데미로 안 오고, 백작가에서 자고 가는 건가?”

“음……. 그건 아직 모르겠네요. 딱히 결정하고 온 건 아니라서. 자일은 어디 갈 예정인가요?”

칼리고 백작의 건강도 확인했으니 이제는 72교단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룬델 공작가일로 직접 나를 도와주기도 하였고,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많은 일도 있었을 테니 한 번은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걸 프레이 앞에서 말하려고 하니 눈치가 보였다. 내가 흑마술사이며, 마신숭배자 집단의 교주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선뜻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자일?”

“아……. 교단에 한 번 가보려고…요.”

그제야 내가 왜 망설였는지 이해했다는 듯 프레이가 나에게 몸을 밀착하며 눈을 빛냈다.

“자일이 교주로 있다던 교단 말이죠? 72교단이었나?”

“응. 맞아.”

“그럼 저도 가도 되나요?”

“……프레이도?”

“네. 저도 가보고 싶어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알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그녀는 내 모든 것을 안다.

그런 그녀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할 필요도 무엇인가를 숨길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나와 프레이는 백작가를 빠져 나와 교단의 본산과 연결된 석상이 위치한 장소로 이동했다.

푸른 달.

밤하늘에 깔린 수많은 별들.

시원한 밤공기가 코 끝에 스며드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

“소천마 천악천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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