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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59화 (159/180)

159화

‘…아직 성체(成體)가 아닌 건가?’

내가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하나 드래곤이 저렇게 약한 존재는 아니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월등하다고 불리는 종족.

의지가 깃든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드래곤이다.

그럼 혹자는 이렇게 애기할 수 있다. 마법을 잘 다루는 건 인정하겠지만, 정작 육체 능력은 별로가 아니냐고.

그 또한 착각이다.

드래곤이 왜 가장 월등하다고 불리겠는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비늘을 베려면 최소 7서클 이상의 기사가 검을 휘둘러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6서클 이하의 기사들은 아무리 검을 휘두른다 한들 드래곤의 비늘에 상처하나 낼 수 없단 얘기였다.

“……끄아아악!!!!”

쿵!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추락한 드래곤.

전신의 이글거리는 불꽃이 덕지덕지 달려 있는 걸 보니 아마도 화룡(火龍)인 듯 했다.

뜨거운 열기에 반응한 것인지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튀어나온 불의 정령 아그니.

[주인! 나 저거 먹어도 돼?]

처음 성장을 했을 때도 화룡의 심장을 먹어서 그런지 개코가 따로 없었다.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귀신 같이 냄새를 맡고 나타났네? 근데 생각해 보니 살아있는 화룡의 심장이면 이번에도 성장 할 수 있겠는데?’

저번에 먹었던 건 이미 사망한 화룡의 것이었고, 지금 눈앞에 있는 용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미 죽은 용의 심장과 살아있는 용의 심장은 그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

“먹기 좋게 요리해주마.”

후속타를 날리려는 순간.

펄럭!

다시 상공으로 비행하는 화룡.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또 다른 용이 있는 장소였다.

‘겁을 먹은 건가?’

용은 굉장히 호전적인 종족이다.

기습을 당했으면 당연히 반격을 해야 정상이었지만 저 녀석은 도망가는 것을 택했다.

그것만 봐도 아직 정신적으로 덜 성숙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용이 인간에게 겁을 먹는 다라.”

저 멀리서 뛰어온 프레이가 토끼 같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자일! 대단해요! 어떻게 창을 던진 것만으로 드래곤의 날개를 찢어버린 거죠?”

“그러게요. 저도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역시 반쪽 뿐 이라지만 신격(神格)은 신격(神格)인가보네요. 이대로라면 자일도 시온 지그하르트처럼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거 아니에요? 지그하르트 가문의 새로운 용살자라니……. 그거 되게 낭만 있는데요?”

용살자(龍殺者)로 이름을 떨친 가문의 선조, 그리고 그 피를 이은 후계자가 다시 용살자(龍殺者)가 된다.

확실히…….

멋있긴 하다.

‘이거 오히려 좋을 지도?’

드래곤의 육체는 전신이 귀중한 영약 혹은 마법적 재료라고 볼 수 있다.

잔혹한 말이긴 하지만 어떤 부위든 커다란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였다.

거기에 불의 정령 아그니 또한 진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으니 나에게는 오히려 괜찮은 상황이었다.

‘교인들의 피해만 없다면 말이지…….’

화룡 쪽은 상당히 어리숙해보였지만 다른 쪽 드래곤은 어떨지 모른다.

교단에 있는 모두가 흑마술사라고 하지만 성체인 드래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프레이. 용이 한 마리가 더 있습니다.”

“네? 용이 한 마리가 더 있다고요? 그러면 이곳에만 용이 두 마리가 있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저 끝에서 저희 교단의 교인들이 그 용과 맞서고 있습니다. 방금 제가 격추시킨 용 또한 그곳으로 향했죠.”

“그럼 어서 가서 교인들을 도와야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되셨습니까?”

프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준비요?”

“싸울 준비 말입니다.”

“아! 물론이죠.”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그녀를 안아 올렸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당황한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자, 자일!? 이게 갑자기 무슨…….”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 같은 자세가 되었지만 딱히 불순한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내린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었다.

“각력강화(脚力强化).”

이번에는 마력이 아닌, 마기를 이용한다.

매번 마나를 동력으로 강화마법을 사용하였지만 이번에는 마나가 아닌, 마기를 사용하여 강화를 할 것이다.

강화마법의 흑마술 버전인 것이다.

매번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것이었지만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가속(加速).”

평소와는 다르게 검은 연기가 내 몸을 감싸며 정상적으로 흑마술이 발동됐다.

“가시죠.”

──펑!

지면에서 발을 떼자 내 몸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 풍경이 초단위로 바뀌어간다.

워낙 빠른 속도 때문인지 내 귓가에는 마치 태풍이 부는 것 같은 바람소리가 들린다.

‘보이는군.’

저 멀리 있던 점 같은 게 서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빙룡(氷龍)인가…….’

만년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새하얀 비늘을 지닌 커다란 드래곤.

어림잡아 아까 전 화룡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크기였다.

“……예쁘네요.”

홀린 듯 황홀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프래이.

그녀의 말처럼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허나 외형은 어디까지나 외형일 뿐. 저것은 우리의 적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새하얀 드래곤은 땅에 있는 교인들을 향해 극한의 냉기를 뿜고 있는 브레스를 뿜어대고 있었다.

교인들이 펼친 흑마술로 인해 전신이 쇠사슬에 속박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더욱 날뛰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수작질을 부리는 구나!】

이미 얼음조각상이 되어버린 교인들 몇몇이 눈에 들어온다.

바닥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있다. 그 중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존재했다.

내가 처음 교주가 되었을 때 잠자리를 제공해준 사람,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할 때 인사를 해준 사람, 나를 향해 기도를 하던 사람 등이었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얼굴만큼은 확실히 기억했다.

비록 이들이 마신을 숭배하는 흑마술사들이지만 일단은 내가 교주로 있는 교단의 교인들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사람이라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교인들 중 데이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든이 따로 그녀를 빼둔 것 같다.

이제야 겨우 자신을 속박하던 주박에서 벗어난 아이다. 그녀는 평범하게 살아야만 했다.

그것은 로만과 내가 나눈 약속이며, 그가 내게 충성을 맹세하게 된 맹약이다.

‘그래.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꽃집이 좋겠어. 이번 일이 끝나면 곧장 실행으로 옮겨야겠다.’

화룡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빙룡(氷龍)과 화룡(火龍).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두 용이었지만 그 둘이 힘을 합치면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갈 것이라는 예감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프레이. 제가 저 하얀 용을 죽일 때까지 아까 그 빨간 용을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제가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일시적으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능이 만들어낸 기적.

본래의 그녀는 그저 평범한 아카데미 학도에 불과하다.

그런 그녀에게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드래곤을 상대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으니 미친 소리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에게 이러한 부탁을 한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그녀라면 드래곤을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잠시 발을 묶어두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제가 던진 창에 날개가 찢겨서 많이 약해진 상태일 겁니다.”

“……그, 그렇지만 그래도 상대는 드래곤인데.”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망설이던 그녀의 눈빛에 각오가 깃들었다.

그래.

이래야 프레이지.

“자일이 올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되는 거죠?”

“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드래곤을 상대로 이런 애기를 꺼내게 될 줄이야. 내 스스로도 입 밖으로 내뱉고서 놀랄 정도였다.

무척이나 오만한 발언이었지만, 거짓이 섞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도록 할게요.”

“크게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빙룡 쪽과는 다르게 화룡은 아직 성체(成體)도 되지 못한 어린 용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지금은 제가 던진 창에 맞아 부상도 입은 상태. 제가 강화마법과 함께 로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아마 할 만 할 겁니다.”

프레이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만.”

“부르셨습니까, 주인.”

내 부름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로만.

처음 나를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내 마기가 강해짐에 따라 로만 또한 훨씬 더 강해졌군. 사역마들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이다.’

이제는 마스터 어쌔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포스였다.

“프레이와 함께 저 붉은 용을 저지해라.”

“……죽여도 되는 겁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가능하다면.”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그리고는 프레이에게 다가가 각종 강화 마법을 부여했다.

보랏빛의 마나가 그녀의 몸 전체를 휘감는다.

후우우웅!

이중내구강화(二重耐久强化). 마력전도율강화(魔力傳導率强化).

청력강화(聽力强化). 시력강화(視力强化). 전신복합강화(全身複合强化).

각력강화(脚力强化). 근력강화(筋力强化).

재생력강화(再生力强化). 지구력강화(持久力强化).

거기에 얼음의 정령을 이용한 속성부여(屬性賦與).

‘르네. 부탁해.’

[네. 주인님.]

프레이의 검에 깃드는 냉기(冷氣).

예리하게 날이 선 검 끝에서 새하얀 서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프레이의 전신에서 보랏빛 마나로 이루어진 아지랑이가 일렁거린다.

그녀는 갑작스런 신체적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지 계속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자일. 몸이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거기에 설마 이건 제 검에 얼음 속성을 부여하신 겁니까?”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면 충분하겠죠?”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프레이.

“충분이라니요! 지금 이 상태라면 정말 드래곤을 사냥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자일!”

“괜히 용사파티에서 보조 마법사 역할을 맡았던 게 아니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명색이 드래곤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지면을 박차고 날아오른 프레이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로만 또한 그 뒤를 따라갔고,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상상이상인데?”

자, 그럼 나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해볼까.

“초가속(超加速).”

한층 더 강해진 마력이 전신을 휘감는다. 강력한 힘의 여파로 인해 주변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린다.

치지지직!

선명해진 감각.

주변 모든 것들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갑(魔鉀).”

체내에 마기를 통제하여 갑옷 형태로 만들었다.

전보다 더 강력해진 마기로 만들어진 칠흑의 갑옷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내구도를 지니고 있었다.

발끝부터 얼굴까지 전부 둘러싼 형태.

“악시온(axion).”

내 품을 떠난 악시온을 재소환 하였고.

“화속성부여(火屬性賦與).”

아그니의 힘을 빌려 악시온에 화속성을 부여했다. 검게 물든 창끝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강화(超强化).”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 주변 일대에 공기가 요동치고, 지면이 갈라졌다.

“용 사냥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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