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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62화 (162/180)

162화

“쿨럭.”

빙룡 스카디아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죽는다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허무한 최후.

【──복원.】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용언을 발동시켰다.

“…….”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 없이 잠잠했다.

【복원!!!!!】

“아무리 해봤자 소용없다. 너도 이미 알지 않나?”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이미 마법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심장을 관통한 창날. 거기서 피어난 마기가 몸 내부를 침식하고 있다.

마나의 근원이 되는 심장.

마나를 운용하려고 할 때마다 심장에 스며든 마기가 고통을 준다.

수명의 절반을 받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따위 결과라니…….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결국은 인간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와중에도 멍청한 동생 놈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다. 드래곤치고 너무나도 낮은 지능.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했다.

성장도 남들보다 월등히 느리고, 지식을 탐하고자 하는 욕구도 적었다.

솔직히 말해 단점 밖에 없는 아이였다.

드래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열등한.

그래도 한 가지 예쁜 점이 있다면 자신을 정말 잘 따랐다는 것이다.

피도 절반 밖에 섞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그래서 결국 나와 같이 인간들 손에 붙잡히게 된 거지만…….

“허무하군. 결국 이 따위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그 그토록 긴 시간을 버티고 버텨왔던 것인가….”

“그러게 오래 살고 싶었으면 여길 오지 말았어야지. 결국 네가 그렇게 무시하던 인간들 손에 죽게 되는 것이다. 말해라. 어째서 이곳에 침입한 거지? 목적이 무엇이냐?”

“목적……. 자유를 위해서다.”

“자유?”

자일 지그하르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스카디아는 모든 걸 체념한 듯 초연한 얼굴이었다.

“그래. 자유……. 잃어버린 나의 자유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들에게 빼앗긴 내 자유. 더 이상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누구지?”

“너와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인간들. 마신의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괴물들이지.”

“……게티아인가?”

“그래. 그렇게도 부르던 거 같더군.”

역시 자일의 예상대로였다.

이런 변방에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날 리는 만무하다.

그것도 두 마리가.

평범한 인간이 한 평생 살면서 드래곤을 못 보고 죽는 일이 허다하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환상의 동물인 셈.

“커헉……. 지쳤다. 아는 건 전부 얘기해줬으니 이제 슬슬 끝내주면 안 되나?”

검붉은 피를 토하던 스카디아가 텅 빈 눈동자로 바라봤다.

“알겠다.”

자일은 그녀의 가슴팍에 있던 창을 단번에 뽑았다. 그리고는 창을 휘둘러 그녀의 머리를 베었다.

“아……. 실로 허무하군…….”

서걱!

툭.

그것이 그녀의 최후였다.

“……과연 맡은 바 임무를 다 수행했다 한들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또 새로운 이유를 덧붙여서 다른 임무를 시킬 것이다.

그게 끝나면 또 다른 임무를, 그게 끝나면 또 다른 임무를, 아마 이런 식으로 무한의 굴레에 빠져들지 않을까.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드래곤이라는 소중한 전력을 그렇게 쉽게 놓아줄 리가 없으니까.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애초에 그들에게 종속됐으면 안 됐고.

이곳에 오면 안 되었다.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에 있는 이들을 먼저 죽이려 한 건 너희들이기 때문에.

“르네.”

[네. 주인님.]

“흡수할 수 있겠어?”

[네. 이 정도 기운이면 꽤 유의미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듣기 좋은 얘기네.”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스카디아의 시체로 향했다.

저벅. 저벅.

쑤욱!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카디아의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는 르네.

그리고는 그녀의 심장을 빼낸 뒤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으득. 으득.

꿀꺽.

방금까지 살아있던 생명체의 생생한 심장을 꺼내 삼키는 광경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참고 지켜봤다.

“…….”

르네의 주변을 뒤덮는 서리바람.

잠시 후.

바람이 걷히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외형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르네……?”

[네. 주인님.]

본래 가지고 있던 분위기는 비슷했으나 외형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푸른 머리칼은 마치 은하수를 보는 것 같았다.

또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눈동자는 그녀가 지니고 있던 몽환적인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성장했구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었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이 정도면 형제들을 죽일 정도는 될 거 같군요.]

형제들을 죽일 정도는 될 거 같다는 말은 그녀가 정령왕의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이번 성장으로 상당한 힘을 얻었다는 얘기였다.

‘상급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군.’

“그래. 내가 널 정령왕으로 만들어주마.”

[믿고 있겠습니다. 주인님.]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교, 교주님이 드래곤을 해치우셨다!”

“미친. 역시 교주님이야. 드래곤 따위는 상대도 안 된다고!”

“새로운 드래곤 슬레이어의 등장이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요!”

숨 죽여 보고 있던 교인들이 하나 둘 씩 입을 열며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몸이 멀쩡한 이들은 부사장들을 챙겨라.”

“네!”

“이든. 너는 나를 따라와라. 아직 한 마리가 더 남았다.”

“…한 마리가 더 남았다고요?”

“그래.”

남은 시체는 일단 레비아탄의 뱃속에 보관하기로 했다.

* * *

“헉…….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프레이.

그녀의 전신은 온통 피투성이었다.

늘러 붙은 살점과 고기타는 냄새.

아름다운 백금발의 머리칼도 본래의 매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헝클어진 머리칼 곳곳에 엉겨 붙은 잿가루.

“…괜찮습니까, 로만?”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미 죽은 몸이라는 거.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프레이 님부터 돌보시지요. 몸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자일이 정령을 통해서 빙(氷)속성을 부여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미 잿더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프레이였다.

‘이제는 마력도 거의 떨어져 간다.’

그녀의 원천속성 중 하나는 바로 생명.

어둠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희귀하고 드문 속성이며, 거창한 개념이기에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지금 그녀가 살아있는 것은 이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생명의 하위 속성 중 하나인 재생(再生).

그녀의 마나에는 재생의 기운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회복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근접에서 싸우는 그녀와는 가장 잘 맞는 속성인 셈.

‘…이번에 끝을 봐야 해.’

그녀 못지않게 화룡 또한 전신이 상처투성이였다.

자일이 걸어준 강화마법과 한층 더 강해진 로만, 그리고 그 전에 입은 부상들로 인해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게 된 결과였다.

정상적인 컨디션에 성체 드래곤이었다면 이 정도를 버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레이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 당당하게 서려면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 강한 자들을 만나게 될 테니.

“칼리고 식(式). 결전기(決戰技). 개(改).”

그녀의 전신을 감싸는 금색 마나의 전류가 흐른다.

치지지지직.

화룡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또한 이채를 머금고 있다.

“뇌격(雷擊).”

공중으로 뛰어오른 프레이가 한 줄기 벼락이 되어 낙하한다.

콰과과광!

우레와 같은 노호성이 울려 퍼지며 검의 모습을 한 벼락이 화룡의 목덜미에 꽂힌다.

푹!

드드드득!

엄청난 파괴력으로 목 끝까지 파고든 검끝.

【누나…….】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화룡은 자신의 누나를 찾으며 그대로 숨을 멎었다.

용의 피를 뒤집어쓴 프레이가 자신의 손과 화룡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봤다.

“내가……정말……드래곤을 벤 건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

뒤편에 있던 로만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죽은 것 같군요. 축하드립니다. 프레이님. 용살자(龍殺自)가 되셨네요.”

“제가 정말 용을 베다니……믿기지가 않네요……. 로만 씨 덕분이에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자일과 로만.

용의 시체를 발견한 자일이 놀란 듯 소리쳤다.

“프레이! 정말 용을 죽인 겁니까? 어떻게?”

멋쩍은 웃음을 짓는 프레이.

“하하……. 어쩌다 보니…이렇게 됐네요.”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이든이 프레이를 발견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교, 교주? 지금 저 앞에 있는 사람이 프레이 님이 맞습니까?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죠?”

“보시다시피.”

“…왜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거죠?”

“내가 불렀다.”

“네?”

자일 지그하르트는 이번에도 빙룡 때와 마찬가지로 아그니에게 용의 심장을 먹였다.

불의 정령 아그니 또한 소년의 모습에서 청년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이제 두 정령이 모두 최상급 바로 직전에 힘을 얻게 되었다.

남은 용의 시체는 방어구의 재료로 쓰기로 했다.

용은 전신이 마법재료나 다름없기에 한 군데도 버릴 곳이 없었다.

“이 용은 프레이가 처치했으니 제가 무기를 하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이에요, 자일? 고마워요!”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프레이를 흐뭇하게 바라본 자일의 시선이 이든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이든.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며칠 전에 연합 쪽 흑마술사들이 찾아왔었습니다.”

“연합이라면 게티아?”

“예.”

“저번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했고, 저희는 교주님이 부재중이기 때문에 오시면 그때 다시 한번 물어보고 말해준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넘어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보복을 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저번에 그들이 부탁했던 것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일들도 있고, 아마 자신들의 세력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워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들리는 애기로는 세간에 공개된 그들의 규모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합니다.”

잠시 고민하던 자일 지그하르트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들을 직접 한 번 만나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이든. 자리를 주선해라.”

“직접 만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상상이상으로 위험한 놈들입니다.”

“알고 있다. 허나 어차피 부딪칠 놈들이야.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단 뭐라도 얻어 보는 게 낫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말하는 게 어떻겠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자일 지그하르트의 차가운 눈동자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네 진짜 정체가 뭐지. 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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