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당황한 이든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놈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두꺼운 철판을 깔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 세계의 설정과 배경을 직접 짠 내가 모르는 인물.
평민 출신? 그런데 마검사? 심지어 흑마술사 교단의 제사장?
이 모든 게 전부 ‘우연히’ 맞아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믿지 않았다.
그가 나와 함께 이블과 싸우고, 72교단의 소속된 걸 밝힌 이후에도, 그 이후에 수많은 일들을 함께 겪었을 때도 나는 그를 믿지 않았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구린내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와 ‘동류’다. 나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아마 이든도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시치미를 뗄 셈이지?”
순간적으로 이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자일? 갑자기 왜 그러는 겁니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프레이가 나를 바라봤다.
허나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여전히 이든을 응시했다.
“교, 교주? 장난치시는 거지요? 갑자기 왜 그러는 거신지 전 정말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하나하나 전부 설명해드릴 테니 일단은 조금 진정하시는 게…….”
“풉. 그래. 이 정도 철판은 깔 줄 알아야 지금껏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거겠지. 인정한다.”
“철판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뭘까 대체.
어떤 목적으로 우리 곁을 맴도는 걸까. 전부터 그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보았다.
허나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든’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인물.
변수? 이레귤러?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가 S 클래스에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됐다.
S 클래스에 소속된 인물들은 전부 이 세계의 메인 서사와 관련된 이들이었으니까.
자신이 72교단 소속인 것을 밝힌 것도 내가 품고 있는 의심을 덜어내기 위한 행동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나조차도 모르는 인물.
내가 이 세계에 개입했기에 생겨난 변수.
그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
이 정도 비중을 지니고 있는 인물인데 내가 모른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인데 내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벨 크로이인 내가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이용해 자일 지그하르트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저 녀석 또한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다룰 수 있었고.
실제로 내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었었지.
백금발의 적안…….
이 세계에서도 결코 흔치 않은 얼굴이었다.
‘동공의 형태가 어떻게 생겼더라.’
다시 떠올려 봐도 동공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그의 성흔은 눈동자에 새겨져 있었으니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찝찝하다. 그의 본 모습을 봤을 때 무언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백금발……. 적안…….
비현실적인 외모.
“설마……?”
짐작이 가는 인물이 한 명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될 인물.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다름 아닌 내가 다 바꿔놨기 때문이다.
‘나’라는 변수가 개입하여 흐름이 바뀌었다면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도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가정한다면 내가 본 장면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든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교주. 장난은 그만둬주십시오. 짓궂으십니다.”
“이든. 아직도 나를 모르는가?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작정 너에게 이런 말들을 할 거라 생각하는가?”
“…….”
“너라면 알겠지. 마신의 권능에 대해.”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번에 예지와 개화의 마신인 단탈리안의 권능을 얻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느냐?”
“……무언갈 보셨군요.”
“그래. 미래를 봤지. 너도 알다시피 단탈리안의 권능은 먼 미래의 파편을 무작위로 보여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지. 그곳에 네가 나왔다.”
“그 미래 속에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모두가 너를 따르는 이들로 보이더군. 허나 72교단의 교인들은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던 이든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저 동아리 활동이라고 하면 믿으실 건가요?”
“너는 동아리 활동으로 반역을 모의하나?”
“하하. 반역이라뇨?”
“그곳에서 너는 황제가 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더군.”
이 말을 듣고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황제요……? 이든이 정말 그런 얘기를 했단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든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 따위가 무슨 황제를 합니까. 농담 삼아 뱉은 말을 교주님께서 잘못 보신 걸 겁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이…….”
후웅!
나는 이든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살짝 힘을 빼고 휘두르기는 했으나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내지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든은 주먹을 피해냈다.
“이걸 피할 줄이야.”
“이제 정말 그만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농담 삼아 말한 것을…….”
후우웅!
이번엔 발차기.
아깝게 스쳐지나갔다.
“…정말 진심이시군요?”
이든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나는 조금 더 난이도를 올려보기로 했다. 어차피 진심으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부패 사슬.”
촤르르르륵!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수십 개의 사슬들.
허나 이든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그것들을 전부 피해냈다.
그 많은 사슬들을 피해내며 나를 향해 접근하는 이든.
‘근접전을 할 생각인가?’
내 쪽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마법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나는 근접전이 더욱 강하다.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번 볼까.’
마기로 만든 창을 쥐었다.
이든 또한 마기로 만든 검을 휘둘렀다. 의외였다.
어째서인지 당연히 마력을 이용하여 만든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했다.
허나 그는 마기로 만든 검을 택했다. 그 말은 마기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다는 얘기였다.
‘느껴지는 마기 또한 평소에 보여주던 것과 다르군.’
나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든의 공격을 전부 피한 뒤 곧장 반격했다.
그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허공을 가로지른 창끝이 빠르게 쇄도한다.
‘어쭈. 이것도 피해?’
조금 더.
‘이것도?’
조금 더.
나는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갔다.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이든의 몸놀림. 이미 아카데미 학생들 수준이 아니었다.
“저, 저게 이든이라고요…?”
오죽하면 지켜보고 있던 프레이조차 감탄을 할 정도였다.
“이만한 힘을 숨기고 있었으면서 자꾸 모른 척 할 것이냐?”
“그러는 교주님이야 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숨기고 있지 않습니까?”
챙!
내가 휘두른 창날과 이든이 휘두른 검날이 부딪쳤다.
아무리 힘 조절을 하고 있다지만 이든의 무력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슬슬 끝낼까.’
마기를 더욱 끌어올린 뒤 사방으로 퍼트렸다.
“공간지정(空間指定).”
요한 크루이프 교수의 공간 마법의 영감을 얻어 만든 흑마술로 내가 지정한 공간 전체를 나의 영역으로 만드는 흑마술이었다.
영역이 된 공간은 나에게는 온갖 종류의 버프를 선사하고, 상대에게는 온갖 종류의 디버프를 선사한다.
마기 소모가 어마어마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지만 지금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군요.”
몸이 무거워 진 것인지 상당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든.
내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펑!
귀를 찢어버릴 듯한 파공음이 울리며 이든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무방비하게 날아간 이든은 저 끝에 있던 바위에 박히고 난 뒤에야 멈출 수 있었다.
육지에 나온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이든.
내가 다가가자 그가 물어왔다.
“……죽이실 겁니까?”
“죽여? 내가 널? 왜 굳이?”
“그게 교주님 방식 아니었습니까?”
“내 방식이라……. 뭐, 후환을 둘 바에는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긴 하지. 근데 너 이거 전력 아니었잖아.”
“그게 무슨 말…….”
“이 새끼 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시치미를 떼네. 난 알아. 네가 나와 동류라는 걸. 너 같은 놈들은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자신이 살 궁리는 다 해놨을 거란 말이지. 솔직히 말해봐. 지금도 숨겨 놓은 패 두 세 개 정도는 있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진심으로 이든을 죽이려 한다면 그는 어떤 수를 써서든 빠져 나갈 것이다.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보여주어 나에게 덤벼들던가.
“하…. 하하하! 교주님은 정말 못 따라가겠군요. 제가 졌습니다. 항복입니다. 항복.”
체념한 듯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올려 보이는 이든.
“말은 그렇게 해놓고서 도망갈 준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 마십시오. 여기서 도망가봤자 어차피 아카데미에서 계속 마주쳐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다.
“그렇지. 서로 더 힘 빼지 말고 이제 진실을 말해라. 이든.”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군요.”
“원래 인생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지.”
“…그렇죠.”
사뭇 진지해진 표정의 이든.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에 묻은 잔해들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안드로말리우스의 권능을 해체하여 자신의 본래 얼굴로 되돌아왔다.
입학시험 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질 못했던 것일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와……. 이렇게 잘 생겼었던가?”
속으로 생각할 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칭찬해주시면 아무리 저라도 부끄럽습니다.”
“저, 저게 이든의 본래 얼굴인 겁니까……?”
프레이 또한 감탄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이든은 빈말로도 잘 생겼다고 말하기 애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뭐랄까, 기억에 잘 남지 않는 무미건조한 얼굴. 이목구비가 너무 평범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 떠오르는 그런 외모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성별 여하를 막론하고,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절로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이든. 역시 너는 황족이었나?”
이번에는 이든도 놀란 얼굴이었다.
“……설마 제 외모만 보고 유추하신 겁니까? 대체 당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이든.
“하아…. 네. 맞습니다. 저는 카이사르 제국의 6황자. 로이든 카이사르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 받은 얼굴로 말까지 더듬는 프레이.
“이, 이, 이든이 화, 화, 황족이라고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본래라면 진즉 죽었어야 할 인물.
그런 그가 멀쩡히 살아서 반역을 꿈꾸고 있었다.